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유시민 저
안데르스 한센 저/김아영 역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김범준 저
유선경 저
"유언비어는 비록 비공식적 경로로 떠도는 부정확했지만 유용했다. 그러나 유언비어를 무조건 악의적 허위로 규정한 시대에는 정치적 표현은 제약되었고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았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부패한 권력자나 정부기관은 유언비어의 허위성과 해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정권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억눌렀다." - '영혼을 훔치는 자' 중에서
가짜 뉴스는 인류 역사 전반에 항상 존재해왔다. 이 한 문장이 갖는 힘은 엄청나다. 가짜 뉴스의 존재와 그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바쁜 수준을 넘어, 가짜 뉴스를 통제하고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기득권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집단과 그것을 막거나 극복하려는 집단 간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이 존재한다는 쪽으로 프레임을 완전히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날에 이르러 가짜 뉴스의 폐해가 더욱 강조되는 것은, 기존에 필터링을 담당하던 주요 언론 채널(신문, 방송 등)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권력이 뉴 플랫폼(포털사이트, SNS 등)에게 많은 부분을 내주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보 과잉은 혼란과 좌절을 일으킬 뿐 아니라 관점을 흐리게 만든다. 인위적 허위정보의 생산은 그 무질서를 약간 더 악화시킬 수 있지만, 생산자 역시 의도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려면 무질서의 혼란을 뚫고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 (중략) 디지털 시대에도 아테네의 선동가처럼 연단에 서서 주목을 받으려면 협조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관심시장의 제로섬 게임' 중에서
하지만 그 역시 올드 플랫폼과 뉴 플랫폼의 대결 양상에서 나온 경쟁적인 소떼몰이다. 오히려 인터넷의 개방 등으로 초래된 무한대 수준의 정보 과잉 환경으로 인해 의도적 목적을 가진 가짜 뉴스는 특정 '증폭기' 없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더 어려워졌다. 그 '증폭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올드&뉴 플랫폼이다. 가짜 뉴스는 플랫폼 사이의 경쟁과,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권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집단과 맞물렸을 때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진짜' 힘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거짓은 빠르게 이곳저곳을 누비지만 진실은 언제나 그다음에야 느지막히 걸음을 옮긴다. (중략)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정치적 국면에서 여론의 방향을 오도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의도적으로 뿌리는 전략은 계속 활용될 것이다." - '진실의 속도' 중에서
"선거의 승리가 모든 것을 잠재우고 권력을 부여하는 시스템에서는 유권자를 분노하게 만들든지, 속이든지, 선동하든지, 위협하든 승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 '허위정보, 여론, 민주주의의 관계' 중에서
문제는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가짜 뉴스의 전파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는데 있다. 상대적으로 진실의 규명 속도는 더디고 지난하다. 이런 이유로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진 가짜 뉴스의 활용과 전파는 줄일 수가 없다.
다만 저자는 이 부분을 억지로 누르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가짜 뉴스의 부당함을 이야기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동시에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악용되는데 오히려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스를 수용하는 주체들만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부분에 있어 올드&뉴 플랫폼의 '증폭' 단계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즉, 가짜 뉴스의 생산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 증폭기로서의 게이트 키핑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오히려 이 부분에 정치적 판단과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가짜 뉴스의 사회적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뉴스의 수용 주체가 의식적인 노력을 하더라도 증폭기가 불러일으키는 가짜 뉴스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권을 바꾸기도 하고 진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도록 차단하기도 하는 사례를 우리는 최근 다양하게 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가짜 뉴스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견제 또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수용 주체는 수용 주체대로 합리적 시민으로서의 뉴스 판별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가짜 뉴스의 증폭기 역할을 하는 플랫폼들에 대해서는 자정적 노력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정책적 제한 장치를 갖춰야 할 것이다.
지금이 디지털 굴뚝에서 매연과 소음이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저자는 우리들이 부지불식간에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앨리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의 상황은 모험을 겪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는 픽션의 세계가 아니라 아비규환의 현실이라는 게 문제다.
이 책은 “수많은 형태의 ‘거짓’이 어떤 이유에서 생산되고, 누가 어떻게 전달했고, 어떤 혼란과 피해를 주고, 어떤 방식의 규제가 제안”되었는지를 살핀 가짜뉴스 현상의 고고학적 탐색이다. 국내 학계는 가짜뉴스 개념을 “형식과 내용을 모두 기만하는 가짜 정보”로 좁게 보지만, 저자는 ‘악의적 유언비어’, ‘거짓 소문’, ‘정치 프로파간다’, ‘왜곡된 뉴스 보도’, ‘뉴스 정보의 파편’까지 포함시켰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그 목적에 따라서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다. ①자극적 제목으로 노출시켜 클릭을 유도해서 광고 수익을 얻는 가짜뉴스, ②정치적 여론의 향방을 인위적으로 이끌기 위한 ‘온라인 프로파간다’ ③알고리듬, 봇넷botnet 등 허위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자동화 기술의 활용, ④광우병 보도, 기후변화, 백신 접종 거부, GMO 식품 등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과학적 위험성’을 다룬 뉴스가 그렇다.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의 오랜 주민이었고,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저, 모바일 인터넷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정보도 그림자와 같이 진화를 거듭했다.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이기도 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소문이나 발언 가운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를 지배 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때 생겨나는 해악은 중세 가톨릭 종교재판소, 18세기 청나라의 저혼 사건, 반대자를 가혹하게 탄압한 나치의 비밀경찰, 중국의 국가인터넷판공실이 실시하는 강력한 단속이 보여준다. 교황권은 이단 척결을 내세워 마녀사냥을 가톨릭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나치의 프로파간다는 게르만 민족주의 자긍심을 고취시켰고, 미국의 적색 공포 프로파간다는 반공산주의가 곧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동가가 거짓으로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는 많은 희생양들이 뒤따랐다.
왕권제와 교황의 지배력이 사라지고 민주적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취약한 제도였다. 대중의 심리는 언변을 갖춘 선동가가 제공하는 표면적 명분을 갖춘 반복적 메시지에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허위정보의 생산자들이나 프로파간다의 선동원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여론의 흐름이 쏠리면 소떼몰이가 가능했다. 선거의 승리가 모든 것을 잠재우고 권력을 부여하는 시스템에서는 유권자를 분노하게 만들든지, 속이든지, 선동하든지, 위협하든 승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뉴스 정보는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웅변술과 연설은 정보의 전달이나 공적인 토론이 아니라 대중의 ‘설득’에 사용되었다. 긍정성의 이웃으로 부정성도 따라다니듯 인쇄술은 라틴어 성경, 지식의 전파, 팸플릿을 통한 사회 비판뿐 아니라 마녀사냥의 방법과 지침을 담은 정보를 퍼트리는 데도 기여했다. 혹스(Hoax, ‘괴담 또는 속임수’)와 도시전설, 만우절 뉴스는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나 근거 없는 소문은 권력자나 집단 광기와 만나 1768년 저혼 사건,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 같은 폭력 행위를 낳기도 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옐로 저널리즘의 전성기였다. 페니 프레스 penny press 시대 신문사들은 괴담, 모험담, 엉터리 의료 지식, 괴물 이야기, 가짜 인터뷰 등 독자들이 원하는 흥밋거리를 신문에 실었지만 독자를 노골적으로 우롱하거나 정치 뉴스를 조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광고 수익을 얻기 위해 미확인 뉴스 정보를 뿌리거나 허위정보를 사실처럼 퍼뜨리는데 일조하는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는 옐로 저널리즘을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추측성 뉴스의 역사도 반복되고 있다. 1898년 2월 쿠바 하바나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국 전함 메인호가 스페인 군대의 공격 때문에 침몰했다는 보도 행태는 한국의 천안함 사건을 다룬 뉴스들과 비슷했다. 미국 해군은 메인호 침몰 원인을 1974년 재조사해 메인호가 탄약고에서 시작된 화재로 폭발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한국 천안함 사건은 어찌 될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은커녕 가짜뉴스로 곡해되고 있는 상황인데. 1912년 4월 타이타닉 호 사건에는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사고 당시 누군가 무선전신으로 송신한 가짜뉴스로 인해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타이타닉 호 승객이 전원 무사하다는 헤드라인을 앞다투어 올렸다. 이 가짜 무선은 신문 역사상 가장 많은 헤드라인에 실린 가짜뉴스로 기록되었다. 코로나19 음모설이 한창인 요즘, 1980년대에 “에이즈AIDS는 미국이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가짜뉴스를 전 세계 언론에 뿌린 KGB의 공작은 냉전시대 허위정보전으로 눈길을 끈다. 2014년 에볼라 감염 때는 러시아계 방송 《RT America》가 에볼라와 에이즈가 서구 제약회사와 미국 국방부가 합작한 무기라는 의혹이 라이베리아에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2017년 프랑스와 독일 선거, 2016년 브렉시트 투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도 러시아가 끊임없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CIA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미디어 홍보 캠페인(앵무새 작전)을 전개했듯 여론을 움직이려는 허위정보전은 ‘정치적 도덕성을 결여한 자’와 ‘진실을 지키려는 선한 자’의 대결로 보기 어렵다. 가짜뉴스가 가장 급증하는 때는 선거 시즌이다. 대선 경우 한국의 후보자는 안보관, 이념적 정체성, 5·18 정신 등을 검증받고, 미국에서는 출생, 이민자와 무슬림을 대하는 관점, 낙태 합법화, 총기 규제 등에 대해 정치 공세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허위 정보, 가짜 뉴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뉴스들이 대거 유포된다. 한국은 뉴스 기사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는 게 압도적이지만 미국은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전달받는 비중이 높다. 미국과 한국은 뉴스 소비 상황이 다르지만 네트워크 프로파간다에 흔들리는 건 동일하다. 독립 미디어 복스Vox의 분석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는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 캠페인의 결과를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가짜뉴스 웹사이트의 날조와 가짜 이야기는 극단적 정치적 관점을 가진 집단의 확증편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이다. 진정한 문제는 주류 미디어의 뉴스 편집 비중이다. 데이터 과학과 결합한 허위정보에 집중적으로 노출된다면 대중은 뉴스의 인물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지거나 그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원인은 무엇보다도 보수적인 미디어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었다. 1983년 미국 미디어 시장은 50개 미디어 기업이 지배했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타임 워너, 월트 디즈니, CBS 코퍼레이션, 바이어콤 등 여섯 개 기업들이 90퍼센트를 통제하고 있다. 4개 지상파 방송사 CBS, Fox, ABC, NBC도 모두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 내 언론의 전체적 판세는 보수 언론이 진보 언론에 비해 세력 면에서 우세하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뉴스의 ‘내용’이 정확한가는 관건이 아니고 ‘누가’ 그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뉴스의 신뢰도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은 2009년부터 신문·방송 교차 소유를 허용하면서 종편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일부 언론사들은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당파성을 드러내놓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과 추측성 논평과 보도를 계속해 가짜뉴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미디어 학자 제임스 케리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같은 이름’이라고 보았다.” 외신을 통해 팩트체킹까지 하는 지금 한국의 언론은 ‘공적인 삶’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외신이라고 다 믿을 수 없다. 페루의 퀴노아 가격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빈곤 국가들의 식량 부족 악화를 연결한 잘못된 해외 뉴스도 있었고, 뉴스 전재 계약을 타고 부정확한 정보가 국문 뉴스로 보도되는 구조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이 암을 일으킨다는 뉴스가 그대로 전해지는 오보 해프닝도 자주 있다. 가짜뉴스가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데이터는 “경제 성장률, 피해 규모, 사상자 수, 실업률, 범죄율, 물가 인상률”인데 한국의 언론들이 부정확을 넘어 데이터를 악의적으로 제시하는 걸 자주 본다.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전달할 기자도 부재하고, 책임 있는 기사가 아니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나 어뷰징 기사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바쁜 한국의 언론이 공신력을 다시 얻을 수 있을까.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악의적 소문, 허위정보를 동원한 선동, 날조된 뉴스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통점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적 요소 또는 불만을 강조하여 공포와 분노를 합리화하는 데 있다.
2. 경제적·정치적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생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 인쇄 시대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떠도는 비공식적인 뉴스 정보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가를 판정하여 공식화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자의 권한이었다. 지금은 이 권한의 범위와 책임이 광범위해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례로 반복되고 있다.
4. 언론과 비언론, 진실한 정보와 허위정보의 이분법으로 복잡한 가짜뉴스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5. 정보 과잉으로 인한 혼돈과 피로, 무질서 속에서 허위정보를 꿰뚫는 가시성 확보가 어렵다.
6. 올드 플랫폼(지상파 방송, 케이블 TV, 라디오, 신문)과 뉴 플랫폼(검색 엔진,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 모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증폭에 사용된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 성인 가운데 69퍼센트는 페이스북으로, 한국은 10명 중 8명이 포털 사이트에서 디지털 뉴스를 본다. “진실한 뉴스 정보이든, 거짓 소문이든 가장 효과적인 증폭기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7. 허위정보는 생산적 토의를 위한 전제를 망가뜨리므로 소모적 논쟁만이 겉돌게 되고 불신만 더 악화된다.
8. 미국 연방대법원과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규제 대상이 분명하고, 해악성이 구체적이어야만 표현의 자유 규제가 헌법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의 명확한 설정, ‘해악성·위험성’의 유형, 중립적 판단의 주체를 정하는 일이 요구된다.
9.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활동이 외주화·자동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힘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2019년 영국 하원이 펴낸 ‘허위정보·가짜뉴스 보고서’는 페이스북을 법을 초월하며 행동하는 ‘디지털 갱스터’로 표현하며, ‘민주주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극단적 콘텐츠를 찾아내 차단하는 것은 머신러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플랫폼마다 운영하는 ‘정책’ 또는 ‘가이드’를 통해 자율규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 또는 허위조작정보’는 위반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유해·위험한 콘텐츠, 폭력적·노골적 콘텐츠, 폭력·범죄 조직, 증오 표현, 권리 침해, 사이버 폭력’ 사이에서 많은 허위정보들이 전파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차단을 요청한 신고는 전 세계에서 2019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1,000만 건이 넘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쳤던 토머스 에머슨은 “진실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거짓을 억누르는 방법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는 ‘의견의 허위’만 예상했지 악의적 ‘사실 조작’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란 과소한 정보의 교환으로는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과도할 정도로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면서 경쟁을 펼치고 서로를 무너뜨리도록 그 과정을 지켜보자는 것”으로 경제학에서 온 아이디어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사상의 자유시장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다양한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 익명의 행위자들이 행하는 집단적 프로파간다가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들고, 미디어 산업의 소유권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 또는 뉴스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거짓 발언의 가시성을 증폭시키는 상황에서 여러 국가의 자정 역할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요구는 갈수록 많아지지만 그만큼 우리가 허위와 진실을 가려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뉴스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최은창 『가짜뉴스의 고고학』 체크 포인트 잡느라 포스트잇 플래그 한 통이 장렬히 전사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밑줄이 많아 포스트잇 플래그를 적게 쓰긴 했지만 『가짜뉴스의 고고학』 에 예상치 못하게 정말 많이 썼다. 주석 빼면 본문은 유발 하라리 책이 더 긴데! 예상대로 리뷰 정리하는데 300분 넘게 걸렸다;;
세상은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는데요.
하루에 쏟아지는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많은 정보들을 과연 내가 올바르게 거르고 받아들이고 있는 궁금해지더라고요.
어떤 정보가 진짜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도 하고요.
넘쳐나는 정보 중 믿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이 어려운 시대의 필독서로서
상식과 교양을 쌓고 싶은 저의 마음에도 꼭 필요한 도서더라고요!
아무리 속지 않으려고 해도 깨닫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말이 씁쓸하게 다가오는데요.
거짓말이라는 장난이 끝나도 그 효과는 남게 된다는 말처럼
글이나 말은 사람에게 정말 오래오래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이 드는 시기에
가짜뉴스가 돌아다녀서 더욱 불안감을 조성하고는 했는데요.
유언비어는 언제나 가짜일까와 같은 생각을 종종하고 있었기에 더욱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진실은 조금 더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많아서 ,
가짜 뉴스속 에 감춰진 진실을 보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좀 더 현명한 내가 되기 위해서 가짜뉴스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무척 재미나더라고요.
예전에는 농담도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웃어지는 건 아이를 볼 때말곤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