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에서 보는 현대의 결혼
- 결혼, 밑 빠진 독으로 자맥질하기 -
주제별로 엮은 세계 문호들의 중/단편 선집 ‘테마명작관’ 시리즈의 [사랑], [가족], [사회적 약자]에 이어 네 번째로 [결혼]을 에디터에서 펴냈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이 작가의 대표작 장편 위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시리즈는 각권의 주제를 설정하여 그에 맞는 동서양의 고전 명작들을 골라 싣고 있다. 같은 주제이지만 시대적 · 공간적 배경이 다른 여러 작품들을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장들의 문학세계까지 접할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하며, 학생들에게는 사고력을 높여주는 문학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명작의 특성 중 하나가 ‘영원한 현재성’이다. 문학작품의 범주에서는 10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주면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이 고전문학이다. [테마명작관-결혼]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러한 고전문학의 정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머싯 몸의 「열두 번째 결혼」은 여성들이 빠져들기 쉬운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환상에 대해 유쾌하게 통찰해 내고 있다. 파울 하이제의 「고집쟁이 아가씨」는 결혼 제도를 거부하던 주인공의 내면에서 분노와 사랑이 통합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너대니얼 호손의 「혼례식의 조종 소리」는 결혼식 속에 삶과 죽음을 버무려 보여주면서 사랑을 종교적인 경지로 승화시키려 시도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가을」은 결혼한 여성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소망하던 것들을 어떻게 놓아 버리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토머스 하디의 「아내를 위해서라면」은 안전하게 의존할 대상을 찾기 위해 결혼하는 여성을 다뤘다. 모파상의 「첫눈」은 고작 난방장치 하나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억압적 결혼 제도 속의 여성을 그려 보인다. 체호프의 「사랑스러운 여인」은 자기 의견은 없이 남편의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여성을, 슈니츨러의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결혼 제도 속에 숨어 있는 배신과 신뢰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결혼 제도는 밑바닥 없는 항아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배우자와 마주 본 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자맥질하여야 한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인간성의 본질, 실존의 밑바닥을 찍고 올라와야 하는데 바닥에 닿지 못하는 것, 그것이 결혼 제도가 가진 딜레마처럼 보인다. 여덟 편이 작품이 결혼 제도의 본질, 그것에 내재된 모순 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다양한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