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모파상 단편선] 날카롭게 포착되는 속되고도 아름다운 삶
2021년 11월 25일
서평:<모파상 단편선(열린책들)>
[속되고도 아름다운 삶을 표현한 모파상의 작품들]
단편소설의 매력은 그 내용이 짧아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운율감과 방대하지 않고 짧게 끝나는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있다. 일반적인 장편소설은 기승전결의 구성을 따르지만 모파상의 이야기들은 결말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경향이 있다. 모파상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더 이어져야 하는데 급히 끝나는 듯한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이야기의 진면목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이렇다 할 결말이 없이 어느날 끝나버린 연애담, 친구간의 우정도 있고 그 당시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 일들도 있다. 또 어렴풋이 우리가 기억하는 좋은 시간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 사랑, 냉소, 허무를 다룬 세편의 이야기를 뽑아 소개하고 작품을 읽으며 느낀 점을 적어보았다.
※ 사랑
「시몽의 아빠」는 아빠가 없는 아이 시몽의 이야기이다. 아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시몽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시몽의 엄마는 뛰어난 미모를 갖춘 여자였지만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울고 있는 시몽과 우연히 만난 필리프는 자신의 아빠가 되어달라는 아이의 말에 아이의 엄마인 라 블랑쇼트나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시몽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어쩌다 아빠가 생긴 시몽은 자신을 괴롭히는 녀석들에게 자신이 필리프라는 멋진 아빠가 생겼다고 자랑하지만 “네게 아빠가 있다면 네 엄마의 남편일 텐데, 아니잖아.”라는 한 아이의 말을 듣게 되고 다시 필리프를 찾아가게 된다. 결심한 필리프는 라 블랑쇼트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한다. 시몽은 진정으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아빠를 얻게 된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학창시절에 국어책에서 배웠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작)]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작품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화자인 옥희라는 아이가 (애매하기 그지없는)남녀 간의 매개체가 되어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옥희의 엄마와 사랑손님(죽은 아빠의 친구)사이의 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당시 시대적 한계에 순응하는 결말이었다. 작가가 모파상의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19세기 사회에서 과부가 외갓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총을 받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필리프는 첫눈에 반한 그녀의 집 근처를 지나며 용기를 내어 말도 걸고 나름의 구애행동을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과부인 그녀는 그에게 철저히 거리를 둔다. 하지만 정중하게. 그러나 대장장이이자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필리프는 매력적인 남자였고 결국 그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라 블랑쇼트가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대사는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녀도 필리프를 아마 연모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불행한 모자가 우연한 기회로 남편과 아빠를 얻게 되고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는 대목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사회적인 편견으로 불행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어떠한 변화로 일상의 행복을 얻게 되는 이야기만큼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건 없지 않을까.
※ 냉소
「비곗덩어리」는 이 작품의 제목이자 극중 등장하는 매춘부 엘리자베트의 별명이다.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은 진리로 여겨진다. 친구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야 할 때에는 친구에게 돈이 아닌 그 무엇도 바칠 수 있고 돈을 갚을 능력이 되면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고 떵떵거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계좌에 빌린 돈이 입금이 된 순간 마치 그 돈이 자기의 돈인 것인 마냥 변제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돈을 ‘떼어먹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만약 빌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자기 목숨이나 재산에 대해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어떨까, 작품 중 프랑스는 독일(프로이센)과의 전쟁 중에 등장인물들의 도시는 독일군에게 점령되게 된다. 점령군과 피점령민 간의 어색한 동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 무리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투자해 놓은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는데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새벽에 급히 떠나는 마차 안에서 그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체면보다 굶주림이 더 강했는지 그들이 평소에 경멸해 마지않던(마차에 합석하는 것도 싫어했다) ‘비곗덩어리’가 가져온 포도주와 요리를 나눠먹게 된다. 그들이 받은 호의에 따르는 감사한 포만감도 잠시, 중간에 들린 숙소에서도 독일군 장교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는데 그 장교는 그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엘리자베트와의 잠자리를 요구한다. 망측스러운 요구를 하는 독일군 장교를 비난하는 것도 잠시, 우리의 일행들은 엘리자베트에게 원래 매춘부의 미덕에 따라 ‘모르는 남자에게 잠자리를 베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것 아니냐’라는 등의 논리(?)로 또 한 번 희생을 강요하게 한다. 마차에서부터 같이 동행한 수녀들(말이 없고 기도만 한다)도 의도가 선하면 행동의 악함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나름의 종교적인 해석으로 거들어 주는 대목은 압권이다. 며칠 후 불쌍한 비곗덩어리는 희생양이 되기로 마음먹고 독일군 장교와 동침을 한다. 독일군 장교는 약속대로 그들을 방면해주게 되는데 이후 우리 엘리자베트는 숭고한 희생에 따르는 명예나 감사함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경멸의 대상이 되고 귀부인들은 그를 더러운 매춘부로 여기며 말도 섞지 않는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사회적 체면과 명예를 중시했던 귀족들도 본인의 이익이 달린 일에는 온갖 협잡과 속임수를 써서 한 인간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까지는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이고 귀족들의 이중적이고 표리부동한 모습에 대한 해학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목숨의 은인에게 저렇게 180도 돌변해서 냉소를 퍼붓는 모습은 보기 불편했다.(그럼에도 지극히 사실적이다) 모파상 이야기의 절묘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런 비도덕적인 인간들의 모습이 결코 우리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도 저런 상황에 처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돌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보는 사고, 그들에게 ‘비곗덩어리’는 이미 실용가치가 끝나버린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귀여워해 마지않던 애완견도 죽던 말던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특히 귀부인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없는 성적매력과 젊음이 있는 그녀였기에 귀부인들의 경멸은 더 지독하고 냉소는 더 차가울 뿐이다.
※ 허무
「목걸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이 이야기가 실화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드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이 이야기가 허구라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주는 작품이 있는데 「목걸이」는 완전히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태어났으나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마틸드’는 그 당시 세태에 따라 한 교육부 말단 직원인 루아젤을 만나 평범하지만 다소 궁상맞게 살아가는데 어느 날 남편의 노력으로 교육부장관이 주관하는 연회에 초대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기뻐하지 못하고 또 다른 고민이 생겼는데 화려한 연회에 어울릴만한 옷이 없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아내를 보고 남편은 모아둔 400프랑을 마틸드의 새 옷을 사는데 에 쓰도록 하지만 교육부장관 내외가 주관하는 연회에는 화려한 장신구도 있어야 하는 법.
다시 슬픔에 빠진 마틸드에게 루아젤은 묘책을 제안한다. 그녀의 친구이자 이제는 귀부인이 된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장신구를 빌리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맞아요.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
마틸드는 친구를 찾아가 까만 새틴 상자 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보는 순간 심장이 강렬한 욕망으로 뛴다.
연회 날, 그녀는 스타였다. 아름답고 젊은 그녀는 그 연회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 했고 그녀가 누구냐고 수군대는 사람들, 남자들은 그녀와 춤을 추려고 했으니, 그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쟁취한 승리에 얼마나 황홀한 감정이었을까. 하지만 연회는 연회일 뿐, 짧은 환희의 순간이 끝나고 새벽 네 시에 그들은 귀가를 하러 나왔다. 가난한 월급쟁이라 자가용도 없었는지 초라한 야간 승합마차를 타고 그들은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틸드는 자신의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몇 시간의 천국을 맛보던 마틸드는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결국 목걸이를 찾지 못하고 그들은 똑같은 목걸이를 보석상에서 찾게 되는데 무려 4만 프랑이나 한다고 한다. 10년 치 봉급보다도 비싼 그 목걸이를 구매하고 친구에게 돌려준 마틸드는 그 돈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부리던 하녀도 내보내고 온갖 부업을 했으며 여기저기서 빌린 빚을 갚기 위해 루아젤도 밤에는 대필 일을 하면서 빚과 어음을 갚았다. 막대한 빚을 지면 모든 것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장장 10년 동안 결국 모든 빚을 청산했다. 빚과 함께 마틸드의 아름다움과 젊음도 사라졌다.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나의 사소한 일이 가져다 준 파멸, 그래도 너무도 착한 마틸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빚을 갚았느니 그녀의 인품을 칭찬해야 할까, 어느 날 마틸드는 옛 친구 포레스티에 부인을 거리에서 발견한다. 돈 많은 귀부인이라 그런가 늙지도 않고 여전히 아름다운 거 같다. 얼마나 마틸드가 고생을 했는지 옛 친구는 친구를 첫눈에 알아보지도 못한다.
일련의 푸념 섞인 대화가 이어지고 마틸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대화를 몇 줄 옮겨보았다.
“내 다이아몬드 목걸이 대신 하나를 새로 사서 내게 주었다는 말이니?”
“그래, 너도 눈치 채지 못했지? 정말 모양이 똑같은 목걸이 였거든”
“(친구의 손을 덥석 잡고)오! 이를 어째, 마틸드! 내 것은 모조품이었어 고작 5백 프랑짜리였어!”
고작 5백 프랑 짜리 모조품을 위해 그들은 4만 프랑 가량의 빚을 지고 10년 동안 고생을 했으니 이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인가. 국어 교과서에도 등장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 작품은 해석하는 시각도 다양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마틸드의 욕망으로 인해 생긴 일이라는 해석은 전통적이지만 나는 다소 유치한 시각이라고 보는데 가난하면 그냥 분수에 맞게 살 것이지 괜히 상류층을 따라하려다가 벌 받았다는 식의 편협한 사고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모파상이 이 작품을 무슨 의도로 썼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내 나름의 결론은 그냥 인생이 원래 허무하고 부조리 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틸드가 그 날 연회장에서 받은 관심과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쟁취한 승리감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금세 휘발되는 하나의 향기이자 덧없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목걸이를 잃어버림으로써 그들이 짊어진 빚은 휘발되는 것이 아니었다. 실체적으로 그들에게 부과된 무거운 짐이었다. 덧없음을 위해 희생한 대가로는 너무도 무거운 것이었다. 그 목걸이가 모조품이라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아니면 친구에게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솔직하게 알렸더라도 그 고생은 없었겠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고 마틸드의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렸다. 좀 지나친 소설의 내용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은가, 부와 명예를 위해 본인의 시간과 건강을 모두 소모하고 나서 나중에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녀의 입시를 위해 본인들의 노후자금까지 다 써버리는 부모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비록 마틸드는 본인의 욕심 때문이 아닌 불운으로 인해 인생에서 지옥을 맛보았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말이다. 가엾은 마틸드가 실존 인물이 아니고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