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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시오노 나나미 저/이경덕 | 살림출판사 | 2017년 6월 30일 한줄평 총점 9.0 (5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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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로마 이전에 위대한 그리스가 있었다!
서양 문명의 원형, 민주주의의 창시자
그리스인을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필생의 역작!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모태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세계를 향한 대여정이 시작된다!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읽는 그리스인의 역사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그중 첫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I: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그리고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역사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들과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휘몰아치는 전쟁의 격랑과 그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민주정치의 태동과 발전, 이 두 가지 축을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교차시킴으로써, 저자는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나간 세상을 손에 잡히듯 생생히 묘사해낸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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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제1장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올림픽
신들의 세계
해외로 웅비
제2장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리쿠르고스의 ‘헌법’: 스파르타
솔론의 개혁: 아테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아테네
쿠데타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아테네
도편추방
기권은? 그리고 소수의견 존중은?
제3장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제국
제1차 페르시아전쟁
마라톤
제1차와 제2차 전쟁 사이의 10년
정적 제거
전쟁 전야
테르모필레
강제 소개
살라미스로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이전투
에게 해,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제4장 페르시아전쟁 이후
안전보장
아테네와 피레우스의 일체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델로스동맹
영웅들의 그날 밤
연표
도판 출처

저자 소개 (2명)

저 : 시오노 나나미 (Nanami Shiono,しおの ななみ,鹽野 七生)
작가 한마디 이 책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이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1970년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고, 이 저서로 ‘마이니치 출판...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1970년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고, 이 저서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과 1983년에 ‘키쿠치 칸 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로마제국 흥망사를 그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1년에 한 권씩 15년간 집필했으며 1993년 『로마인 이야기 1』로 ‘신초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전 7권)을 출간했다. 2001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수훈, 2007년 일본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2008~2009년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전 2권)를 출간했고, 2010년부터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펴냈다. 그 외에도 『사는 방법의 연습』 등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심상을 전하는 많은 수필과 단상집 등의 저서가 있다.
역 : 이경덕 (李慶德)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연구교수로서 의례와 축제, 신화, 미디어 인류학 등을 강의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이야기로 읽는 세계의 신화(12권) 』,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연구교수로서 의례와 축제, 신화, 미디어 인류학 등을 강의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이야기로 읽는 세계의 신화(12권) 』,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고대올림픽은 정확하게 4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다. 경기가 열리는 7일을 포함해서 1개월 동안은 휴전이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은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정 나라를 배척하거나 하지 않았다. 현대의 자동차경주에서 안전자동차safety car가 들어오면 추월이든 뭐든 할 수 없는 것처럼 어제까지 전쟁터에서 싸웠더라도 1개월 동안은 싸움을 멈췄다.
이렇듯 그리스인에게는 올림픽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고대올림픽이 지속되었을 리 없다. 제우스에게 한 맹세를 인간 따위가 깰 수 없다는 생각도 고대올림픽 지속을 뒷받침했을지 모른다. 고대올림픽은 늘 다투던 고대 그리스인에게서 꽃핀, 인간성에 깊이 뿌리를 둔 ‘지혜’였다. _26쪽

스파르타인은 혼자서도 충분히 강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면 그들의 강력함은 더하기에서 곱하기로 변했다. 동료가 옆에 있으면 용감무쌍한 사람으로 변했다. 스파르타 중무장 보병의 전투력이 그리스에서 첫손가락에 꼽힌 것도 집단을 이루어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자들이 강한 이유를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동성애 관계에 있다고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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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의 필요로부터 탄생한다

『그리스인 이야기 I』 서두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인이 훗날 서양의 패자가 되는 로마인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아예 상대로 여기지조차 않았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고대 서방 세계의 대표주자는 그리스와 그리스인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 동방 세계에는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이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는 상당히 결점이 많은 나라였다. 국토가 주로 바위투성이 산악지대여서 자체 생산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그리스는 한 나라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난립한 형태였다. 게다가 도시국가들끼리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고대올림픽이 이 지난한 전쟁을 잠시나마 멈추기 위해 탄생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그리스가 어떻게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 문명의 한 모태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다. 이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싹트고 발전해간 까닭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 당시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 최강국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고, 코린토스와 테베가 그 뒤를 이었다. 군사력에서는 스파르타가 가장 막강했지만, 국가체제에서는 스파르타가 소수 지배였던 반면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민주주의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도, 순탄하게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테네의 개혁은 귀족정치를 타파한 솔론의 금권정치를 시작으로 해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실력주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시 위기관리 체제, 그리고 이후 아테네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이끈 페리클레스 시대로 이어진다. 이들 각각은 당연히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방향이 올바르지만은 않았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독재와 비민주의 요소가 표출되기도 했다. 다만 그 근간만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각 단계마다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의 요구, 즉 ‘필요’가 존재했고, 이에 발맞추어 나름의 색깔을 더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다음과 같은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고매한 이데올로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필요성 때문에 태어났다. 냉철한 선택의 결과다. 냉철하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작동했던 것이다.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양’의 열세를 ‘질’의 우수성과 ‘활용’의 힘으로 극복하다

민주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그리스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큰 과제는 국난 극복이었다. 바로 제1차,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그것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의 정복 전쟁을 시작으로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왕 중의 왕’을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자타공인 당대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다리우스는 마침내 그리스에까지 정복의 손길을 뻗친다.

당시 그리스의 군사력은 페르시아의 군사력에 턱없이 못 미쳤다. 누가 봐도 패배는 명약관화했다. 더욱이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다. 일체감이 부족하고 구심점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리한 전황을 극적으로 타개해낸 인물이 바로 아테네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페르시아전쟁 기간 동안 테미스토클레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마라톤전투, 테르모필레전투, 아르테미시온해전,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전투, 미칼레 공략 작전 등 주요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는 탁월한 전략과 위기관리 능력, 강력한 리더십으로 끝내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를 두고 저자가 “아테네 민주정치가 낳은 아이” “아테네 최고의 유명인일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유명인”이라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심지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존재 자체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경이로움”이라고 극찬한다.

그런데 한 개인으로서 영웅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그것을 ‘질’, 다시 말해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페르시아(동방)는 ‘양’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 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이때 ‘활용하는 능력’이란 ‘응용력’ ‘융통성’ ‘목적 지향성’ 등으로 읽힌다. 일례로 저자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누구든 활용하려 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은” 인물로 묘사한다. 실제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참주(독재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민주적 수단인 도편추방 제도를 정적 제거에 ‘활용’했으며,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제거한 정적을 다시 불러들여 ‘활용’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자질에 눈을 떴고, 이는 이후 유럽 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유럽은, 고대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동방과 차이를 만들었던 바로 그때,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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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그리스인 이야기1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혜*맘 | 2021.06.22

그리스인 이야기1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그중 첫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I: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그리고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역사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들과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휘몰아치는 전쟁의 격랑과 그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민주정치의 태동과 발전, 이 두 가지 축을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교차시킴으로써, 저자는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나간 세상을 손에 잡히듯 생생히 묘사해낸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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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나* | 2021.03.22

스파르타 사회구성

스파르타인: 시민권은 이들에게만 주어짐. 국정참여 권리를 완벽하게 보유. 일종의 양반층

페리오이코이: 스파르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거나 조달하는 역할. 주로 수공업, 상업에 종사. 전쟁 중에는 스파르타 병사를 보조하는 역할로 참전. 인간의 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동과 결혼의 자유 등은 인정. 일종의 평민층.

헬롯: 국가 소유의 농노. 농사나 목축과 함께 간단한 옷감을 짜는 일을 맡음. 결혼의 자유 정 도는 인정되지만, 다른 시민 권리는 인정 안됨. 전투에 참여는 불가능. 천민층에 해당.

 

리쿠르고스 개혁

1. : 스파르타에서 계승된 두 명문 집안에서 한 명씩 왕을 결정. 주요 임무는 중무장 보병무대를 이끌고 전투를 지휘하는 것. 역할은 군사에만 국한, 내치와 외치는 참여 불가능.
                                                       

>>>>>> 스파르타인들은 7세부터 집단생활을 시작. 30세가 되면 외부에 가정을 꾸릴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기숙사로 돌아와야 함. 60세까지는 현역으로 지냄. 하지만 왕은 이 모든 과정에 대한 면제부를 가짐. 따라서 주입된 복종 정신 보다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음. 결국, 군사적 역할만 가진 왕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남.

 

2. 장로회의: 60세 이상의 은퇴한 군인 28+ 2명을 더해 30명으로 구성. 정치를 담당.

>>>>>전쟁을 직업으로 삼았던 스파르타인에게 60세까지 생존이 어려움. 결국, 국정을 담당할 수없게 됨.

3. 시민집회: 30세 이상에서 60세 이하에 속하는 전체 시민. 활발한 토론의 분위기는 아니었 음. 국정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기관. 일종의 입법기관.

>>>>>복종만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입법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

4. 감독관청: 1년 한번 시민집회에서 선출한 5인의 감독관(에포로스) 으로 구성됨. 감시와 감독이 주요 업무.

>>>>>이 기관이 결국 내각을 담당.

 

그리스

솔론의 개혁 이전 정치체제 (p.64)

 

솔론의 개혁 이후 : 재산정도에 따라 계급을 나눔. (p.64)

 

1계급: 500메딤노스(200) 이상의 보리나 그에 상당하는 올리브유, 포도주를 수확할 수 있는 토지의 소유자.

 

2계급: 300에서 500메딤노스이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토지의 소유자.

1계급과 제2계급에 속한 시민은 기병이 되어 군역에 종사. 종자와 마부까지 필요했으므로 재산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가능.기병 현역은 1000 명 정도밖에 없었음.

 

3계급: 200에서 300메딤노스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토지의 소유자

 숫자가 가장 많음. 중무장 보병에 속함. 중류계급 규모의 재산이 필요.

 

4계급: 수확량 200메딤노스 이하인 시민. 매일 노동을 해야 필요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시민 계층

경무장 보병. 해상에서는 배를 조타하거나 노를 젓는 일.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 솔론의 개혁에도 내부다툼 계속. 솔론은 살라미스 섬을 차지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해 관심을 외부로 돌림 ? 솔론의 외가 친척 페이시스트라토스큰 역할. 일약 스타로 발돋움.

 

               페이시스트라토스 VS 해안당 (명문 알크마이온 집안의 총수 메가클레스)

                                      + 평야당( 리코우르고스)

 

 >>>>>> 페이시스트라토스, 10년간의 전략적 후퇴

            - 트라키아지방에서 광산경영자로 변신. 용병대모집

  >>>>>>> 쿠데타

정권장악, 무혈입성 but 티라노스(독재자)로 불림.

반대파 유력자의 아이들 해외 유학을 명분으로 낙소스로 인질로 삼음

평야당의 아티카 지방의 토지를 접수해 소작농과 산악지대 농민에게 배분

새롭게 자영농이 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 (직접세)

망명생활 동안 개척한 판로를 아테네 무역 상인에게 개방 해안당의 기반 무너짐.

솔론의 개혁- 아테네에 질서 유지

페이시스트라토스 ? 아테네 안정과 경제력 향상.

그 당시 유명했던 코린토스의 항아리와 견주거나 뛰어넘는 항아리 유행.

신전 건축에 쓰이는 둥근 기둥 (도리아식)- 묵직한 양식으로 안정감 but 둔중한 느낌

 이오나이식으로 바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양피지에 필사하는 방법으로 정본화 함.

아테네 점점 국제적 도시국가로 성장. 이에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경계함

 

페이시스트라토스 이후 그의 두 아들 히피아스(국정 전반), 히파르코스 (이벤트 담당)에게 권력이양. 해안당 알크마이온 집안의 메가클레스의 장남 클레이스테네스 9명의 아르콘 중 1명으로 선출.

 

플라타이아이를 테베가 공격하자, 플라타이아이 아테네에 도움요청. 테베와의 전투에서 아테네 승. But 테베와는 적. 결국, 국내에서는 클레이스테네스, 국외에서는 테베와 스파르타와 갈등.

   >>>>>기원전 514년 동생 히파르코스가 살해됨.

'‘클레이스테네스이 기회를 빌려 테베로부터 전초기로 증여받은 보이오티아 지방으로 돌아가 군대를 정비해 아테네 국경, 아티카 지방으로 진격 히피아스는 테살리아의 도움으로 승.

스파르타에게 도움을 요청. 아테네+테살리아 군대패배. 결국 페이시스트라토스 체제는 막을 내림. 스파르타 이 기회에 친스파르타 인물인 이사고라스를 아르콘으로 임명 되도록 하고, 그의 정권 수립을 이끌려고 했으나,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 사형. ‘클레이스테네스정권을 가짐.

 

 

클레이스테네스 개혁

도시국가 아테네의 영토인 아티카 지방 전체를 도시부, 바다와 면한 해안부, 내륙부로 나눔.

 

도시부 : 1구도시부: 1구역부터 10구역가지 분할

해안부        해안부: 마찬가지로   1구역부터 10구역까지 분할

내륙부           내륙부: 마찬가지로   1구역부터 10구역까지 분할

 

30             30개로 분리된 구역을 다시 3개 지역씩 합병해서 10개 구역으로 만듦. (트리부스)

? 도시부 제 1구역, 해안부 제 1구역, 내륙부 제 1구역을 합병해서 1 트리부스로 구성. 10개의 트리부스가 탄생.

1 트리부스를 다시 3개의 트리티움으로 분할해서 총 30개의 트리티움 탄생

1 트리티움을 다시 5개의 데모스로 분할해 총 150개의 데모스 (현재의 동, 마을 개념과 비슷) 탄생.

 

1. 왕이나 참주에 의지하지 않고 국내 부족이 가진 에고를 억압하면서 국내를 통합

유력 부족 간의 내부 다툼과 갈등해소

2. 땅의 분할로 유력자들의 소유지가 존재X. 땅을 배경으로 한 권위 유지가 어려워짐.

3. 지명도 높은 집안의 이름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재능(메리토크라티아- 실력주의)이 중시됨.

4. 아테네 시민 모두에게 호적을 부여. 피의 세금, 즉 병역 해당자를 파악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대비의미도 가짐.

5. 1계급, 2계급에서만 선출권이 있었던 아르콘을 9인에서 10인으로 늘려 권한약화

(내각 약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개의 트리부스에서 1, 10명의 스트라테고스 로 구성된기관 등장해 내각으로서 군사와 정치를 담당. - 매년 선출로 임기는 1. 재선 가능.

 

6. 불레(bule)- 10개의 트리부스에서 30세이상 성인 남자들 가운데 각각 50명씩 추첨으로 뽑음.  아테네 시민이 일생에 한 번은 공직을 경험하도록....

7. 20세 이상 성인남자 모두가 투표권을 가진 시민집회(Ecclesia)가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기관.

8. 도편추방제- 시민집회에서 6000명이상이 참여해 3000명이상의 찬성으로 가결. 10년동안 아티카 지방에서 추방 but,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고, 가족은 아테네 내에서 자유롭게 거주.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이용.

 

1차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 전투

클레이스테네스 이후 아테네

 

                    온건파                                      VS                         과격파

아리스티데스+크산티포스(페리클레스 아버지)           데미스토클레스+밀티아데스

 대립관계였지만, 국익 앞에서는 힘을 합침.

 

마라톤 전투 (vs 다리우스 1)

 

좌익- 밀티아데스 (총지휘관)                              좌익과 우익의 병사는 , 중앙의 병사는

중앙- 테미스토클레스+아리스티데스    vs              적을 포위해서 괴멸하는 작전

우익-칼리마코스

 

스파르타의 도움 없이 아테네 승. 중무장 보병의 역할이 컸음.

 

 

마라톤 전투 이후

 

- 마라톤 전투이후 밀티아데스를 지휘관으로 해 이오니아 지방의 파로스 섬 공략. But 실패.

시민을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벌금형, 하지만 전쟁 중의 부상으로 곧 사망.

 

- 페르시아의 다리우스1세 마라톤 전투의 패배로 제국 전반에 반란이 일어남. 기원전 486년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고 사망. 아들 크세르크세스 왕 즉위.

 

-4개의 당파로 분리

 

알크마이온파- 클레이스테네스를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으로 아리스티데스, 메가클레스,

크산티포스가 지도자

페이시스트라토스파 - 참주정치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진 당파,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손자

히파르코스가 지도자

 

귀족파: 마라톤의 영웅 밀티아데스 아래 집결한 사람들의 당파

민중파: 테미스토클레스가 거느린 당파로 제 3계급의 아래 절반과 제 4계급의 시민으로 구성.

 

위의 두 당파는 페르시아에 대해 온건파 >>>> 외교로 문제해결 시도

나머지 두 당파는 페르시아에 대해 강경파 >>>> 다시 공격해 올 것이니 싸울 준비 주장.

 

 

테미스토클레스

- 도편추방제로 정적들 제거

- ‘삼단 갤리선건조로 아테네를 해상강국으로 탈바꿈.

  • 선출에서 추첨으로 바꾸어 권한 약화시킴
  • 10명의 스트라테고스 전시에 지휘권이 부여되어 10명이 돌아가면서 나흘씩 총지휘관이 되는 구조에서 9명이 1명에게 전시동안 지휘권 양도를 법제화.
  • 스트라테고스 아우토크라토르라 불림. BC480년 테미스토클레스가 스트라테고스 아우토크 라토르 됨.

 

2차 페르시아 전쟁

테르모필레 전투(육상) :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와 300 페르시아의 승

아르테미시온 방어선(해상) : 테르모필레에서의 패배로 전선이동

살라미스 해전 : 아테네와 그리스 해상군

>>>>>> 페르시아 패배 : 크세르크세스 페르시아로 도주. but 마리도니우스는 테살리아

지방에서 월동하면서 복수전 준비.

플라타이아이 전투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총사령관

 

 

(페르시아 지배하의) 그리스 부대-테베 등                                      아테네 ? 아리스티데스

(페르시아 지배하의) 오리엔트                        VS                     코린토스

-메소포타미아 + 이집트

페르시아- 불사부대                                                                스파르타 ? 파우사니아스

승리의 영예는 거의 100퍼센트 파우사니아스와 그의 중무장 보병에게 돌려야 한다’.

(P. 321)

 

아테네 해군: 페르시아 해군기지인 사모스와 가까운 미칼레 공격. ‘아테네 승사모스 획득

? 에게 해는 다시 그리스인에게로

 

페르시아 전쟁 이후

테미스토클레스 - 아테네와 피레우스+팔레론 연결하는 도로와 성벽 건설(p.355)

>>>>>> 에게 해 뿐만 아니라 동지중해 전역의 통상기지 역할

-파우사니아스 흑해연안의 비잔티온을 스파르타로부터 탈환 하지만 스파르타의 5명의 에파로스는 탐탁지 않게 여김. 이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파우사니아스에 대한 저잣거리 소문과 무책임한 중상모략의 정보를 건네고 그를 몰아내고 흑해 연안 차지

- 델로스 동맹 : 그리스 도시국가들 아테네 중심으로 결집. 에게 해역의 집단방위 목적.

- 테미스토클레스는 키몬(밀티아데스의 아들)의 주장으로 도편 추방됨. 페르시아의 새로운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배려로 소아시아 서쪽 도시 마그네시아와 두 지방의 장관직을 받고 조언자로 지내다 사망.

-파우사니아스 재판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소환되어 유죄판결로 체포. 도망친 신전에서 굶주림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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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오노 나나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자**국 | 2020.04.20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그리스의 역사가 술술 읽힌다.

 

묘사가 상세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보다는 그게 왜 태동했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그것이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위주로

 

설명한다.

 

군전략이나 계급이야기도 잘 나왔지만 민주주의를 이야기의 초점으로

 

정해서그런지 그리스인이야기가 아니라 베네치아를 물의 도시이야기라

 

제목을 정했던 것처럼 이 책의 제목을 아테네인 이야기로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제2차 페르시아전쟁 '300'이란 영화를 만든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p236

 

플라타이아이전투 이게 나니아 연대기의 싸움장면의 원형이었구나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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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3건)

그리스인 이야기 1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새*비 | 2023.04.03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사료에 바탕을 두었으되, 역사적 기술로 부터 벗어나 사료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에서는 작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 가설을 바탕으로 객관적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글을 구성합니다.

이러한 추론 방식의 서술이 때로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추론 방식은 상당히 근거가 있고 명확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미 그녀의 다른 저서인 "침묵하는 소수 - 내가 만난 남자들의 열정과 사랑에 대하여" 에서 그녀의 대표서인 '로마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야기 전개 구성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고백에서 엿 볼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로마인 이야기'에만 국한해서도 안될것이 그녀가 정통 역사학자의 사실에 기인한 역사론적 인식을 벗어나 아웃사이더적인 측면에서 '역사 그대로와 역사 이탈'이라는 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때로는 꼭 진실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진실이라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짓말(?)을 애용하는 방법을 그녀의 저서들에 두루 써 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고백처럼 역사에서는 종종 더욱 진실에 다가서는 것일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알 수가 있는데, 이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 이야기 제 1권의 주인공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제국 군대를 격파한 아테네인 테미스토클레스와, 플라타이아이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한 스파르타인 파우사니아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 나간 ‘산고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게끔 만들었을 것입니다.

영화 ‘300’의 실제 주인공인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도 한 몫을 했지만, 테르모필레전투에서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대군과 맞서 큰 타격을 입히고 장렬한 전사를 했기에,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실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기대하고 있는 저와 같은 독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큰 선물이 되준 책입니다.

 

(책 속으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평가와 그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 뒤 이와 같은 말로 이 시대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해서 스파르타인 파우사니아스도 아테네인 테미스토클레스도 각자 생애를 마감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들이 활약한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그 후 그리스에 빛나는 영광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중략)

 

인간이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한편으로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생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성가신 생물인 인간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철학’이다. 반대로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일괄해서 그 모든것을 써가는 것이 ‘역사’다.

이 두 가지를 그리스인이 창조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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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그리스인 이야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시**스 | 2019.05.01

로마인 이야기를 스무살때 읽었었는데 아직도 다 읽지  못  했다

그러던중 새롭게 그리스인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아직 로마인이야기도 읽지  못했지만 결국 구입했다

조금기다렸다 세트로 구매할걸 세트로 사는게 낱권으로 구입하는것 보다 가격이  싸더라 ㅠ

아쉽지만 그리스인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시오노 나나미 저자의 역사관이나 사실 왜곡등에 대한 문제는 있지만

감안하고 본다면 충분히 매력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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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소설과 같은 재미를 주는 역사이야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넷*커 | 2018.11.27

'그리스인 이야기' 1권을 이북으로 구입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이다. 어린시절 워낙 재밌게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라서, 그녀의 새로운 역사이야기가 궁금해져 구입하게 되었다. 그녀가 다루는 역사의 새로운 무대는 그리스로 그리스인들의 삶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였던 페르시아와의 전쟁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다뤄진다. 마치 소설과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 특유의 매력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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