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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책은 내가 무엇을 사랑할지 알려줘요 (G. 정혜윤 작가)
2020년 05월 07일
2019년 12월 19일
그리스인 조르바; 가장 대지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자
"언제까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나 씹으면서 있겠다는 것인가?"
주인공은 친구와의 이별을 상기한다. 그리스인들을 구하러 직접 같이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거절한다.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속세를 비우고 해탈로 나아가는 붓다의 삶을 동경한다.
그런 그의 앞에 조르바가 우뚝 등장한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나를 비우고, 욕망을 거세하고 체면을 차리고 글을 쓰며 관조적으로 삶을 대했던 주인공은 '자연인' 조르바를 만나 점점 그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르바는 흥겨울 때 언제나 춤을 춘다. 주인공은 같이 춤을 추자는 조르바의 제안을 거절한다. 주인공은 늘 조르바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묻고 조르바는 대답하기를 어려워하고 주인공의 집요한 질문을 답답해한다. 터져나오는 열정, 사랑, 기쁨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 즉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르바는 늘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췄고, 감정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살려고 노력했던 주인공은 춤추기를 거부한것이(정확하게 말하자면 춤 출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몸을 굽혀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중략)...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 살면서 삶이라는 것,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본인이 공부했던 것, 글 쓴 것, 읽었던 순수시들은 인생의 피 한방울 안들어있는 관념들의 하모니일뿐이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삶의 야만스러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삶의 가치관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 몰라요."
언제까지 관조하고, 평가하고, 이리저리 재보고, 망설이며 선택을 미루고 살 것인가.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자들은 즐기는 것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두 세 발자국 떨어져서 평가하고 구경하는 자들은 시간이 넘칠뿐.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나는 외의 기능이 너무도 거침없고 대담한,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이 사나이에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주인공이 책으로 생각으로 관찰로 고민하던 것들을, 조르바는 몸으로 실천으로 경험으로 채워넣어 삶을 꾸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르바의 생각에는 거침이 없었고 언제나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책에서는 대지라고 은유하는 것에) 가장 밀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가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술을 토할 때까지 먹어보지 못한 자만이 술을 동경한다. 가득, 한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열정, 정열이 필요하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중략)...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 계획이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할 때가 두려움을 느낄까 아니면 실제로 무너져내렸을 때 두려움을 느낄까. 아마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미리 걱정할 때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막상 무너지고 깨지고 나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진다. 무너지고 깨졌을 때 내 속의 정신은 아직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또 다시 도전하고 시도할 힘이 넘쳐난다면 무너질 걱정이 무슨 두려움이 될까.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만고에 부족한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무식 말예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하고, 이해타산을 고려하고... 그 잘 돌아가는 머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고 단념하게 만든다. 살 빼는 방법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사람은 그대로 잠들 것이고 당장 나가 뛰는 자는 살을 뺀다.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행복하고 진정으로 슬프려면 흠뻑 젖으려면! 그만 고민하고 그만 재고 바로 뛰어들어야.
읽기도 전에 '조르바' 욕부터 들었던 책이라서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었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인생 책으로 여기셔서 이야기하셨고, 저 또한 이 책이 저희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이번이 기회다 생각하고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다른 두 인물이 만나서, 함께 사업을 하고 그리고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선 나와 조르바.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 둘이 나오죠. 어쩌면 조르바를 만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고 찾아가는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책을 읽다 보면요. 등장인물을 보면서 '어떤 인물이 나와 더 가까울까?'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저는 '나'에 더 가까운 사람이에요. 아마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나'에 많이들 가까우시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했고요. 책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너무나도 많이 들었어요. 책을 안 읽은 상황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제게 훨씬 더 나은 환경과 생각을 줄 거란 기대를 갖고 여태껏 책을 읽었죠.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 책이 아니어도 성숙하고, 지혜로운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책이 아니어도 이런 분이 있을 수 있다니?' 책에 모든 것이 있다며, 책에 집착해왔던 제가 어땠겠어요? 그런 분들의 존재(?) 자체가 되려 충격이었어요. 조르바를 바라보는 화자인 '나'가 딱 저의 모습 같았어요. 제게는 없는 부분들이 조르바에게 있어서 신기하고, 그런 분들의 삶의 지혜와 새로운 면모들을 봤으니 제게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은 거였겠죠. 그런 분들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르바가 그러죠?
"나는 버찌에 미쳐있었어요. ...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 어쨋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웃으면 안 돼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 안 돼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p.289
조르바를 보고, 그의 스타일을 따라도 하고, 조언과 가치를 수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조르바는 조르바고, 저는 저죠. 이 말을 따라 '나'가 그랬듯이 저도 제 자신을 따라 여태껏 했던 것처럼 책을 터질 만큼 제 머리에 처(?) 넣어보려고요. 언젠가 그 끝이 오지 않겠어요?^^
이 책은 지금처럼 끝까지 책으로 가라고 격려하고 안내해 주는 책 같네요.
이 책에서 제게 가장 클라이막스 같은 장면은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이었어요. 그 어떤 책보다 '죽음'이 와닿았어요. 죽음을 대하는 주변의 모습에 씁쓸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썩어져가는 육신일 수밖에 없는 최후가 서글프게 느껴졌어요.
우리는 말이죠. 흔히 주변의 '죽음'을 접하게 될 때, 죽은 이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애도가 주(主)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죽은 이의 물건을 하나라도 탐하려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신경전의 긴장감, 그리고 오르탕스 부인네 닭을 잡아서 먹으려는 판이 벌어집니다. 오히려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는 '축제'를 앞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한 생명의 무게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요?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의 입장에서만 이해한 제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었어요.
또한, 한 사람이 죽으면 사후 처리되어 단정한 옷을 입은 모습이 아닙니다. 화장된 후 유골함에 담긴 모습도 아니에요. 구더기가 넘실거리고 파리가 꼬이며 악취로 진동하는 모습일 수도 있어요.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치며, 아픔에 괴로워하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고요. 생기 돋고 팽팽했던 탄력이 사라진 죽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꺼져버린 듯한 모습일 수 있어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오르탕스 부인의 최후 모습을 보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저렸습니다.
드디어 이 책을 읽어봤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엄청나게 뿌듯합니다.
그리고 많이들 욕하시는 포인트 잘 알 것 같아요. '여성'이란 존재가 남성 앞에 한없이 의존적으로 보였고, 여성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많디많은 도구 중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으니까요. '당시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내용들도 군데군데 많기도 했어요.
그래도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의 태도, 어쩌면 제게는 없어서 어느 정도 배울만한 사고방식, 조르바답게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빅데이터를 쌓아 해석한 그의 지혜가 있어서 이 책은 몇 번이고 재독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재독 후엔 지금보다 이 책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네요.^^
조르바는 본능적인 인물이다. 사실 읽으면서 조르바처럼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지성인으로, 책을 통해 삶을 구성해나가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교양있는 삶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나는 이성적인 쪽에 가까운 사람인데, 그래서 더 더욱 조르바가 새로운 것, 심지어는 항상 보던 것들을 보면서도 낯설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예를 들면 와인을 보고 적붉은 색의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액체라고 표현한다던지, 바다를 보고 푸른빛의 물결에 대한 예찬을 담은 표현들을 남발한다던지. 그런 식이다.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나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영감들이 존재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르바의 삶이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도 하고, 현대의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고 있기에 조르바와 같은 생활을 애초에 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르바의 모습이 매력적이기에, 만약 내가 조르바처럼 살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사적인 시점에서이해는 하지만 처음에는 조르바의 발언들을 읽으면서 여자에 대한 폄하라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 불편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행동들을 보다보니 여타 남자들과 달리 조르바는 어쩌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다. 물론 여성을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기에,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를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억압당하던 시절이기에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와 같은 워딩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가 진심으로 과부를 보호하고, 진심으로 노부인을 위로해준 점들을 봐가면서 사람에 진심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조르바를 여성에 진심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여성 뿐만 아니라 자기가 아끼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심지어는 술집에서 싸우고 화해한 인물에게도. 그런 부분에서는 약간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조르바라는 인물의 실화를 다룬 책이라는 걸 알고,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실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근데 어느정도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라는 걸 알고 더 흥미가 생겼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어떤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다음에는 꼭 해설서를 읽어보고 싶다.
너무나 다른 느낌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이 낯선 소설에서 받았다고 하면 억지일까
내면의 혼란, 주변인의 갈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과는 너무도 다른
조르바의 유쾌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절대로 나는 저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가 너무 겸손하여 본인보다도 노벨상을 수백번을 더 받아야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책을 읽은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카잔차키스가 더 나은지 알베르 까뮈가 더 나은지는 메시가 나은지 커쇼가 더 나은지를 판가름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만담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는 단연코 일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의 도움으로 조만간 많은 것을 까먹을테니 좀 기억을 잃어갈 때 쯤 다시한번 책을 펴 들어야겠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는 남자, 조르바
읽는 책마다 인용이 되곤 하던 고전인데도 읽지 못했다. 그저 자유분방한 남자 이야기거니 추측했다. 그러다 이번에 집에 내려와 읽게 됐다. 저번에 달리 고속버스를 타면서 달랑 책 한권만 넣어 왔다. 그 책도 그 날 다 읽어버렸다. 한 권 더 들고 올 걸. 아쉬워하던 차에 저번에 소정씨가 올린 전자책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쉬운대로 전자책을 봐야겠군. 광명 도서관에서 전자책 메뉴를 찾았다. 생각대로 신간은 거의 없고 전체 양도 적었다. 그래도 보석 같은 책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중 하나였다. 집에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여간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 휴대폰을 바꾼 것도 전자책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고 화면이 편해서 잘 넘어갔다. 지리한 주인공 이야기인 앞부분을 지나자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독성이 붙었다. 주인공인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작가다. 반면에 조르바는 모든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사랑도, 전쟁도, 선도, 악도 모두 그에게는 경험이자 이야기거리다.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르바의 인생 모토는 인생 별거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 나이든 여자든 어린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이어서 그런가. 만난 대다수 여자들은 남자 지갑에 혹한다. 그는 맘 가는 대로 살고 규칙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는 그에게 훈계하듯 말하지만 실은 부러워하며 대리만족 한다.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그들은 서로에게 끌린다.
사랑에 포커스를 맞춰 읽으면 이 책은 남자들의 환상이다.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순간적 만남에 충실한다. 이국적인 여자들과의 수많은 만남에도 그의 인생에서 죄책감은 없다. 그는 모든 걸 통달한 부처일까. 아니면 개념없는 망나니일까.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관을 높이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를 나도 책을 통해 터득하는 편이라 자신하진 못하겠다. 책으로 배운 지식과 몸으로 배운 지식 가운데 무엇이 나은지, 무엇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여자를 수없이 경험했으니 조르바의 여자에 대한 생각이 맞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눈에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사랑을 초월한 사람이든가.
반면에 조르바의 전쟁에 대한 체험은 와 닿았다. 국적은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좋은 놈이냐 나쁜 놈이냐를 구분할 따름이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일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아프리카 내전의 잔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대는 달라도 조르바가 살던 시대의 참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미친 듯이 불을 지르고. 무엇을 위해서일까? 남은 자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와 증오로 살아간다.
부불리나가 죽는 장면은 씁쓸하다. 죽음은 정말 혼자 맞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나마 조르바가 앵무새를 챙겨가 다행이다. 조르바가 좋은 남자는 아니여도, 사실 형편없는 거짓말쟁이 연인이지만 그와 사귄 보람이 있다. 그녀가 준 반지를 다른 여자와 결혼식에 쓰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김훈에 열광하는 남자 독자들이 많은 것처럼. 조르바의 인생은 남자들에게 로망일 게다. 여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남자로 태어나면 저런 인생을 사는 것도 뭐 호탕하고 대장부 같기도 하겠다. 이제 든 생각이지만 조르바는 다음 생에 '계집'으로 태어날 것 같다. 요망한 암컷들이라며 짜증내면서도 미친듯 좇아다니던 존재 말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조르바>보다는 <안나 카레리나>를 청소년에게 먼저 권한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라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관을 정립한 뒤에 조르바를 읽는 편이 낫다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난 순서를 바꾸어 이제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 날 보고 싶어하고 놀러오라는 사람에게는 가자. 사람과의 만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내가 읽은 전자책은 정재영 역인데 여기에 없어서 이윤기님 전자책으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