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 조지 오웰 서문 2편 수록 - 에디터스 컬렉션
조지 오웰 저/김승욱 역
장 폴 사르트르 저/임호경 역
레프 똘스또이 저/이명현 역
레이먼드 챈들러 저/김진준 역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저/홍대화 역
루이자 메이 올컷 저/김재용,오수원 공역
2021년 08월 12일
2021년 08월 03일
[책읽아웃] 책은 내가 무엇을 사랑할지 알려줘요 (G. 정혜윤 작가)
2020년 05월 07일
2019년 12월 19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리뷰입니다.
시대적 배경의 고전 소설에다가 책이 좀 두꺼운 편이라 읽는 게 엄두 안 났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몰입도 있게 잘 읽었습니다.
번역도 쉽게 잘 되어있는 느낌이라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책을 다 읽고 나서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르바 같은 친구이자 인생 선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네요 ㅎㅎ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카잔차키스는 태양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그리스 땅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지적인 작가인 주인공이 카리스마 있고 자유분방한 조르바를 만나면서 그를 따라가게 된다. 그들은 함께 음악, 춤, 사랑, 우조로 가득 찬 짜릿한 탈출을 시작한다. 지중해 연안을 동경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핵심은 인생을 최대한으로 즐기는 것이다. 조르바는 그의 전염성 있는 열정과 경험에 대한 욕망으로 우리가 매 순간을 포착하고 단순한 즐거움을 음미하도록 영감을 준다. 그의 지혜와 거친 모험을 통해 이 책은 우리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발성을 포용하고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작가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이야기에 엮어 인간의 본질, 열정, 행복 추구를 탐구한다. 내성적인 화자와 발랄한 조르바의 복잡한 관계는 삶과 사랑,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이 책은 우리 자신의 선택과 가치에 대해 성찰하도록 촉구하며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의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활기차고 생각을 자극하는 걸작이다. Kazantzakis의 연상시키는 스토리텔링과 풍부한 캐릭터는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스인 조르바; 가장 대지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자
"언제까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나 씹으면서 있겠다는 것인가?"
주인공은 친구와의 이별을 상기한다. 그리스인들을 구하러 직접 같이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거절한다.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욕망을, 속세를 비우고 해탈로 나아가는 붓다의 삶을 동경한다.
그런 그의 앞에 조르바가 우뚝 등장한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나를 비우고, 욕망을 거세하고 체면을 차리고 글을 쓰며 관조적으로 삶을 대했던 주인공은 '자연인' 조르바를 만나 점점 그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조르바는 흥겨울 때 언제나 춤을 춘다. 주인공은 같이 춤을 추자는 조르바의 제안을 거절한다. 주인공은 늘 조르바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묻고 조르바는 대답하기를 어려워하고 주인공의 집요한 질문을 답답해한다. 터져나오는 열정, 사랑, 기쁨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 즉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르바는 늘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췄고, 감정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살려고 노력했던 주인공은 춤추기를 거부한것이(정확하게 말하자면 춤 출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몸을 굽혀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중략)...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 살면서 삶이라는 것,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본인이 공부했던 것, 글 쓴 것, 읽었던 순수시들은 인생의 피 한방울 안들어있는 관념들의 하모니일뿐이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삶의 야만스러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삶의 가치관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 몰라요."
언제까지 관조하고, 평가하고, 이리저리 재보고, 망설이며 선택을 미루고 살 것인가.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자들은 즐기는 것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두 세 발자국 떨어져서 평가하고 구경하는 자들은 시간이 넘칠뿐.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나는 외의 기능이 너무도 거침없고 대담한,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이 사나이에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주인공이 책으로 생각으로 관찰로 고민하던 것들을, 조르바는 몸으로 실천으로 경험으로 채워넣어 삶을 꾸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르바의 생각에는 거침이 없었고 언제나 명확하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책에서는 대지라고 은유하는 것에) 가장 밀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가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술을 토할 때까지 먹어보지 못한 자만이 술을 동경한다. 가득, 한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열정, 정열이 필요하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중략)...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 계획이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할 때가 두려움을 느낄까 아니면 실제로 무너져내렸을 때 두려움을 느낄까. 아마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미리 걱정할 때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막상 무너지고 깨지고 나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사라진다. 무너지고 깨졌을 때 내 속의 정신은 아직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또 다시 도전하고 시도할 힘이 넘쳐난다면 무너질 걱정이 무슨 두려움이 될까.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만고에 부족한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무식 말예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하고, 이해타산을 고려하고... 그 잘 돌아가는 머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고 단념하게 만든다. 살 빼는 방법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사람은 그대로 잠들 것이고 당장 나가 뛰는 자는 살을 뺀다.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행복하고 진정으로 슬프려면 흠뻑 젖으려면! 그만 고민하고 그만 재고 바로 뛰어들어야.
너무나 다른 느낌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받았던 감동을
이 낯선 소설에서 받았다고 하면 억지일까
내면의 혼란, 주변인의 갈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과는 너무도 다른
조르바의 유쾌한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절대로 나는 저러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가 너무 겸손하여 본인보다도 노벨상을 수백번을 더 받아야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책을 읽은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카잔차키스가 더 나은지 알베르 까뮈가 더 나은지는 메시가 나은지 커쇼가 더 나은지를 판가름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는 일이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만담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는 단연코 일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의 도움으로 조만간 많은 것을 까먹을테니 좀 기억을 잃어갈 때 쯤 다시한번 책을 펴 들어야겠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하여
여자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는 남자, 조르바
읽는 책마다 인용이 되곤 하던 고전인데도 읽지 못했다. 그저 자유분방한 남자 이야기거니 추측했다. 그러다 이번에 집에 내려와 읽게 됐다. 저번에 달리 고속버스를 타면서 달랑 책 한권만 넣어 왔다. 그 책도 그 날 다 읽어버렸다. 한 권 더 들고 올 걸. 아쉬워하던 차에 저번에 소정씨가 올린 전자책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쉬운대로 전자책을 봐야겠군. 광명 도서관에서 전자책 메뉴를 찾았다. 생각대로 신간은 거의 없고 전체 양도 적었다. 그래도 보석 같은 책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중 하나였다. 집에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있지만 여간해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 휴대폰을 바꾼 것도 전자책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가볍고 화면이 편해서 잘 넘어갔다. 지리한 주인공 이야기인 앞부분을 지나자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독성이 붙었다. 주인공인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작가다. 반면에 조르바는 모든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사랑도, 전쟁도, 선도, 악도 모두 그에게는 경험이자 이야기거리다. 몸으로 체화된 지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르바의 인생 모토는 인생 별거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고 달려든다. 나이든 여자든 어린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 그런 그가 상대하는 여자들이어서 그런가. 만난 대다수 여자들은 남자 지갑에 혹한다. 그는 맘 가는 대로 살고 규칙 따위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는 그에게 훈계하듯 말하지만 실은 부러워하며 대리만족 한다.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그들은 서로에게 끌린다.
사랑에 포커스를 맞춰 읽으면 이 책은 남자들의 환상이다.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순간적 만남에 충실한다. 이국적인 여자들과의 수많은 만남에도 그의 인생에서 죄책감은 없다. 그는 모든 걸 통달한 부처일까. 아니면 개념없는 망나니일까.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관을 높이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의 이치를 나도 책을 통해 터득하는 편이라 자신하진 못하겠다. 책으로 배운 지식과 몸으로 배운 지식 가운데 무엇이 나은지, 무엇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여자를 수없이 경험했으니 조르바의 여자에 대한 생각이 맞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눈에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사랑을 초월한 사람이든가.
반면에 조르바의 전쟁에 대한 체험은 와 닿았다. 국적은 따질 필요가 없다. 그저 좋은 놈이냐 나쁜 놈이냐를 구분할 따름이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일은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도 아프리카 내전의 잔인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대는 달라도 조르바가 살던 시대의 참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미친 듯이 불을 지르고. 무엇을 위해서일까? 남은 자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와 증오로 살아간다.
부불리나가 죽는 장면은 씁쓸하다. 죽음은 정말 혼자 맞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그나마 조르바가 앵무새를 챙겨가 다행이다. 조르바가 좋은 남자는 아니여도, 사실 형편없는 거짓말쟁이 연인이지만 그와 사귄 보람이 있다. 그녀가 준 반지를 다른 여자와 결혼식에 쓰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김훈에 열광하는 남자 독자들이 많은 것처럼. 조르바의 인생은 남자들에게 로망일 게다. 여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남자로 태어나면 저런 인생을 사는 것도 뭐 호탕하고 대장부 같기도 하겠다. 이제 든 생각이지만 조르바는 다음 생에 '계집'으로 태어날 것 같다. 요망한 암컷들이라며 짜증내면서도 미친듯 좇아다니던 존재 말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조르바>보다는 <안나 카레리나>를 청소년에게 먼저 권한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라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관을 정립한 뒤에 조르바를 읽는 편이 낫다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난 순서를 바꾸어 이제 <안나 카레리나>를 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 날 보고 싶어하고 놀러오라는 사람에게는 가자. 사람과의 만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내가 읽은 전자책은 정재영 역인데 여기에 없어서 이윤기님 전자책으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