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걸리버여행기는 아일랜드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172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영국사회의 타락과 정치의 부패를 비판한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걸리버여행기는 소인국, 거인국 여행기로 이루어진 동화였는데,
성인이 되서 이번에 완역본으로 읽으니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하고
300년전에 씌여진 책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에도 고전 풍자소설로 인기가 있지만 미래에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소설일거 같다.
어렸을 때 동화로만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가 이렇듯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담은 소설이란 걸 처음 알았다. 조너선 스위프트라는 작가가 삶에 대해 느끼고 인간관계에서 깨닫게 된 지혜를 소설의 주인공과 다양한 환경을 통해 과감히 표출해낸다.
내용도 방대하고 가독성이 좋은 소설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고 특히나 거인국과 소인국이라는 다소 엉뚱한 발상을 넘어서 현재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하는 장치들이 소설속에 많이 즐비해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대학과제를 제출한 경험이 있어 더 애착이 간다. 앞으로 종종 더 읽고 내 주변과 우리 사회에 대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
일독을 권한다.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 하면 소인국과 거인국에 간 걸리버의 모험담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의 완역본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걸리버여행기는 원작의 일부만 아동용 모험담으로 만든 것에 불과했다. 걸리버가 겪은 믿기 힘든 환상적인 모험에 인간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었기에 1726년 출판되었을 때 엄청난 인기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신랄한 묘사로 인해 내용이 삭제되거나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선상 의사로 무역선에 승선한 걸리버는 첫 번째 조난에서 소인국에 도착하고 두 번째 승선에선 거인국에 도착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걸리버의 모험담이다. 하지만 세 번째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성적 존재로 후이늠(말)이 주체가 되는 유토피아가 그려지는데 여기서 인간은 야후라는 비이성적 원숭이로 그려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작가의 일생과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아야 이 작품을 더 이해할 수 있기에 작품의 해설이 큰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모험담이라고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풍자와 유머로 담아낸 이야기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3부에서 지상 세계를 착취하는 라퓨다는 아일랜드 착취하는 영국을 풍자한 것이다. 4부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가 비이성적인 임을 풍자하기 위해 후이늠을 등장시킨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얼마 안 되는 이성조차 사악한 짓을 하는 데 쓴다며 비판한다.
사람들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황제의 자비를 칭송하는 그 장황한 언사이다. 왜냐하면 그런 찬양이 길면 길수록 그 처벌은 더욱 비인간적이고 또 처형을 당하는 자는 더욱더 무고하기 때문이다. (p.85)
야후 쉰 마리가 족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다섯 마리에게 던지면 그들은 평화롭게 음식을 먹기보다 음식을 모조리 차지하려고 조바심을 내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네. (p.317)
어린 시절 알던 이야기의 원작을 읽고 싶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이렇게 심오할 줄이야. 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이 작품이 발표되기 전후 100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풍자 작가로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진가를 내가 알기엔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비판한 모든 것을 수긍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위와 스위프트를 싫어했던 앤 여왕에 비판은 이해하겠으나 여성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표현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에 불편한 점 또한 있었다. 이 또한 작가의 개인사와 연관이 되었다고 하나 이런 여성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작가를 이해해주고 싶진 않다. 하지만 18세기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풍자와 유머는 사실 현재를 비추어도 어색함이 없기도 하다. 이번에 전혀 예상치 못한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