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달리오 저/송이루,이종호,임경은 공역
폴 크루그먼 등저/오노 가즈모토 편/최예은 역
피터 필립스 저/김정은 역
일본의 사례였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한 나라에만 국한된다고는 보기 힘들 거란 생각이 앞섰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우리의 인터넷 수준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이를 완벽히 관리할 수 있는 제도라는 건 아직 미비하다.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굴어 언론의 뭇매를 맞기 일쑤였다. 이미 여러 차례 개인정보 유출을 경험해 보았다. 특정 카드사의 고객 정보가 팔려 나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무렵에는 출처 모를 곳에서 문자나 전화가 꽤 많이 왔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엔 이름도 낯설 결혼 정보 업체들이 그리도 많이 날 찾았는데, 이 역시도 어디선가 나에 관한 정보를 획득했기에 가능했지 싶다. 각종 SNS 를 오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맞춤형 광고 역시 뭔가 미심쩍다. 나보다 더 나를 많이 알고 있는 거만 같은 아찔함. 편하기에 무시하자니 좀 아찔하다.
일본의 사례는 무시무시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마냥 어려운 상황. 다수의 구직자들이 특정 포털에 가입해 구인 정보를 살피하고 이력서를 넣는 모양이다. 내가 반복해 검색하는 영역의 회사 정보가 나의 모니터에 뜨는 일은 익숙하다만, 일본에서는 그 수준을 넘어선 일이 벌어졌다. 이 사람이 몇 개의 기업을 검색했는지, 주로 찾아 본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담은 데이터가 버젓이 기업들에게 제공됐던 것이다. 데이터는 아마도 가공됐을 것이다.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 정보는 다름 아닌 이직률이었다. 내정퇴사율이라고 책에서는 표기됐는데, 이 사람을 우리 회사에 받아들였을 시, 본인의 관심사와 다른 곳이므로 퇴사를 가능성이 얼마가 된다는 식의 정보를 사측이 지녔다.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한 수치인진 잘 모르겠지만 높은 내정퇴사율을 보인 이들은 아예 서류전형에서 이유도 모른 채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어느 기업에 어떤 정보가 제공됐는가는 기밀이요, 정보의 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요구를 하더라도 대응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내 눈에는 그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해 보인다. 게다가 자신은 그런 정보를 개인에게 제공하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다 주장한들 소용없었다. 조금 더 세세하게 문구를 넣지 않았을 뿐이라는 발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대체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언지 어디에 물을 수도 없다. 주객이 전도돼 내 데이터가 나를 지배하고 내 미래를 결정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을 거둔 측이 있다. 이의 역이용에 정보주체가 나서면 어떨까. 흥미롭게도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통하는 시도가 행해졌다. 문제시되는 동의 측면에서 안전할 터이니 나름 가치가 높을 줄로만 알았는데, 가공되지 않은 개인의 정보는 크게 대접받질 못했다. 1만원도 채 아니 되는 거래 가격. 대체 이 영역에서 돈을 번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수없이 많은 개인이 뭉쳐 집단을 이루어야만 정보도 비로소 정보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는 모양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의 실천이 가능한 소수 기업에게만 정보 가공 및 유통으로 인한 이득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로 인한 위험이 더욱 커 보였다.
중국의 사례도 잠깐 등장했다. 정부의 정보 통제력이 어마어마한 듯했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불편한 일상을 감당해야만 했다. 휴대폰과 연동돼 금융 거래까지도 한 번에 가능한 시스템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내 정보의 불법 유출을 염려한 나머지 특정 포털 가입 및 이용을 거부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듯하지만, 나의 지인 대부분이 혹은 회사의 업무 시스템이 해당 포털에 의존적이라면 나 홀로 그로부터 빠져나오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를 인지 못한 경우도 상당수고, 알더라도 충분히 대응을 준비치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항상 부족했으며, 예산의 투입 또한 우선순위에서 다른 것들에 밀리고는 해 왔다. 우리가 어떤 미래에 살게 될지, 다소 암울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우려가 일었다. 나의 한계를 모른 채 뻗어 나가는 상상력이 마냥 비현실적이길 바라는 게 지금으로선 왠지 최선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이름으로 진행되어 오다가 코로나 19를 계기로 한층 빨라진 사회 현상이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데이터가 산업의 쌀로서 등장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우리 사회를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편리하고 스카트한 사회를 가져오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일본경제신문 데이터경제취재반에서 펴낸 이 책은 데이터 사회의 실험실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조명한다. 디지털 전환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면서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본다. 하지만 그 촛점은 정보주체의 권리보호와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윤리에 놓여져 있다. 데이터와 관련된 정보 보안, 프라이버시, 투명성, 책임성, 포용성 등 윤리적이고 법제도적 측면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주고 있다.
내 구직상황을 회사가 알고 나를 임의로 평가하여 채용시 최종결정에 활용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저자들은 일본의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들추어낸다. 일례로 지난해 8월, 일본 리쿠르트그룹 산하 취업 정보 사이트 ‘리쿠나비’에서 그들이 보유한 취업 준비생의 데이터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기업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판매한 데이터에는 단순 개인정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지원자의 최종 입사 가능성을 수치로 도출하여 예측한 데이터인 이른바 ‘내정사퇴율’을 기업에 제공했고 기업은 이를 최종합격자 선정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질타를 받은 이 사건은 우리가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범위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에 충분한 사례였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소위 GAFA로 불리는 정보기술 거인기업들이 사용하는 데이터를 보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알게 모르게 다 활용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개인의 사생활 보호의식이 약한 중국의 경우를 생각하면 전 국민이 감시받는 사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 학력, 직업, 주거지 등 개인정보를 분석해 신용도를 산출하는 스코어링 기술은 대출이나 채용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들이 점수로 평가되어 결과에 따라 각종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과정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버추얼 슬럼(virtual slum)'으로 새로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의 경제신문에서 일본의 상황을 중심으로 분석한 내용들이지만 다른 나라라고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국제적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 코로나 19의 대응과정을 보아도 전염병 예방에 촛점을 둔 대응방식이 개인정보의 보호에 미흡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데이터 기술의 혁신으로 성장을 추구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안전과 존엄과 비밀이 보장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데이터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