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스 드 케랑갈 저/정혜용 역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송태욱 역
[세설]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려 낸 당대 일본 사회
2022년 02월 14일
김영하 북클럽 2월 도서로 선택된 책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여성의 문화를 나타낸 통속소설이다. 1930년대 후반에서 초반대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시대에 해당한다.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개인의 삶을 살며
다만 전쟁으로 부족해진 물자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을 겪을 뿐이다.
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두 권 합해서 900페이지 되는 소설인데도 네 자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가 넘어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만한 일들로 여러모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사치코의 남편 데이노스케가 남편과 비슷하다 여기며 읽었던 거 같다.
자매들을 이해하고 아내의 편에서 말을 삼갈 줄 아는 남자였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가정의 행복을 위했던 데이노스케였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결혼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이해한다. 그 시대에는 달랐던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행복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관계를 이루는 삶에서도 벗어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관계는 없는 거 같다. 다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뿐.
#세설 #다니자키준이치로 #열린책들
우선 왜 제목이 세설일까? 細雪! 가랑눈.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가느다란 눈이 하늘을 날듯 조용히 떨어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름다움이란 원래 세밀한 것에서 느껴지는 법이다. 유키코! 흐릿한 이목구비에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 가녀린 체구. 그리고 왼쪽 눈 밑의 희미한 얼룩. 그녀가 세설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딱 한 장면 기억에 남는다. 아시야의 집 2층 복도 난간에 기댄 채 뜰을 바라보고 있는 유키코의 여린 뒷모습.
이 소설은 몰락한 상류 계층 마키오카 가의 세 자매 이야기이다.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 사치코는 마키오카 가의 네 자매 중 둘째로 시집을 가면서 본가에서 분가하였다. 이 후부터 두 동생 유키코와 다에코는 큰 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점, 사치코 언니와 친한 점 등을 이유로 본가보다 사치코의 아시야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 자매에 대해 차례대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치코 : 34-38세. 간사이의 전형적인 상류층 부인이다. 사교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비유를 잘 맞추어 주지만 마음이 여린 구석도 있다. 몸이 안 좋을 때가 많아 집에서 몸조리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마다 비타민 B 부족으로 비타민 주사를 맞는다. 화려한 생김새 때문에 동생 유키코의 맞선에 나가 동생의 혼담에 본의 아니게 방해가 되기도 한다. 소설은 전지적 작가시점이기는 하나 대부분이 이야기가 사치코의 시선에서 서술되고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사치코를 ‘나’로 바꿔도 무방할 정도로 사치코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이 소설의 화자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 같다.
유키코 : 30-34세.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다. 가녀린 몸매에 쿄토형의 희미한 이목구비를 가졌으며 상류층의 교양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다. 예민하지만 한편으로 의외로 느긋하게 굴 때가 많다. 옛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속물적인 면이 있으면서 가족을 위해서는 헌신적인 병간호 등 육체적 노동을 해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뭐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는 인물이기도 한다.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동생 다에코가 약혼자와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에코의 행실 때문에 유키코의 혼담이 깨지기도 하는 등 두 자매는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결혼에 초조해하는 기색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닐가 생각될 때도 있다. 이 소설은 유키코가 등장하면 시점이 관찰자점 시점으로 바뀌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심 인물임에도 그녀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녀의 행동이나 표정, 다른 사람의 추측으로 우리도 그 심리를 추측할 뿐이다.
다에코 : 26-30세. 근대적 여성으로 자유분방하다. 유키코가 늘 기모노를 입고 있는 데 비해 다에코는 늘 양장을 하고 있다. 자립심이 강하고 세상물정에도 밝다. 손재주가 있어서 인형을 만들어서 스스로 용돈을 벌고 있다. 유키코가 세 자매 외에 별다른 교류가 없는 것에 비해 다에코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활달한 성격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든지 열성적이다. 흉내내거나 재치있는 말을 잘하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유키코가 평온하게 지내는 데 비해 다에코는 통속소설에나 나올 법한 연애담을 만들어가며 많은 극적 사건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존재 이유는 다에코가 아니라 유키코에게 있다.
『세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3부는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2부는 다에코의 연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부마다 중심 사건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삽화처럼 들어있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1부에서는 벚꽃놀이, 2부에서는 전통춤 발표회, 3부에서는 반딧불 놀이에서 일본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 장면들이 있었기에 이 소설은 고전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요 인물 외의 주변 인물들도 다수 등장하는데 이들의 일화가 또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어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있다.
소설을 읽고 알게 된 것은 그 당시 혼담 문화이다. 상류 계층의 경우 혼담의 절차가 번거롭다. 지금의 경우 아무리 상류 계층이라도 혼담이 오가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오가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는 맞선 한 번 보는데 많은 절차를 필요로 했다. 우선 중매인이 양쪽 집안에 서로의 프로필을 보낸다. 그리고 각 집안에서는 흥신소에 사람을 고용하여 맞선 상대자의 성품 및 집안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알아보는데 이게 한두 달 정도 걸린다. 조사 결과 이상이 없으면 맞선을 본다. 맞선 전 길일로 맞선 날짜 정하기, 장소 정하기, 입회자 정하기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은 중개인이 양쪽 집안을 오가면서 조정한다. 맞선을 볼 때는 맞선 당사자, 양쪽 집안의 어른, 중개인이 참석한다. 맞선 당사자나 양쪽 집안 사람들은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방을 탐색한다. 그리고 맞선이 끝나고 혼담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중개인을 통해서 알린다. 이러한 혼담이 소설에 총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런데도 다섯 혼담이 다 달라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담이 나올 때마다 혼담이 성사가 될까, 깨지면 왜 깨질까, 다음에 또 혼담이 있을까, 이번이 마지막 혼담일까, 유키코는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읽어서인지 몰입이 잘 되었다.
그 외에 감상을 말한다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소설은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제일 큰 장점은 바로 문장이 좋다는 것일 것이다.『세설』에 나오는 문장들이 너무 좋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설 속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옮겨 적으면서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은 진정한 장인이 쓴 예술작품이라고.
새까맣게 어두워지기 직전 움푹 들어간 시냇물 수면에서 짙은 암흑이 기어 올라오고 아직도 근처의 풀이 움직이는 모양이 어슴푸레하게 시각에 느껴졌을 때였다. 멀리멀리 이어지는 시내 끝까지 무수한 선을 그리면서 양쪽으로 뒤섞이며 점멸하고 있던 유령 같은 반딧불은 지금도 꿈속에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는지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정말 오늘밤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것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를 보러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반딧불이잡이는 꽃놀이처럼 회화적인 것이 아니라 명상적인 것이라고 해야 좋을 것인가. 그런데도 옛날이야기 속 세계처럼 어린아이 같은 면은 있지만...... 그 세계는 그림으로 음악으로 연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토나 피아노로 그런 느낌을 작곡한 것이 있어도 좋을 텐데......
사치코는 이렇게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는 한밤중에도 그 조그만 시냇가에서 반딧불이들이 밤새도록 소리도 없이 명멸하고 무수히 날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인 기분에 빠져들었다. 뭔가 자신의 영혼이 이러저리 헤매기 시작하고 반딧불이 무리에 섞여 수면 위로 높게, 낮게 흔들리며 날아가는 듯한......
사족 하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5에서 1939년은 일제강점기 중에서도 민족말살정책 시기였다. 가장 우리 국민이 수탈을 당했던 때 그네들은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한쪽에는 구더기가 끓는데 한쪽에서는 꽃구경이라니. 화가 나서 책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했었다.
사족 둘. 소설의 배경이 1935~39년이라고는 했지만 미묘하게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세설은 1930년대 일본이 배경이고, 오사카 지방의 몰락한 상류층인 마키오카 가문의 네 자매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의 이야기이다.
이 중에서도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당시 일본의 풍속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당시만해도 여성들의 문화를 소설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니는 꽃놀이나 가부키 공연관람, 맞선 이야기 등 그 당시 여성들의 일상과감정들을 어쩜 이리 잘 표현했는지 이 분 정말 남자 작가가 맞나? 하고 앞에 작가 소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도 했다.
일본 소설을 평소에 좋아해서 즐겨 읽기는 하지만 늘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리는 탓에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곤 하는데 세설을 처음 읽을때도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나도 헷갈렸다.
사치코,유키코,에쓰코(사치코의 딸) 왜이렇게 헷갈리니~~~계속 앞으로 돌아가서 이름 복기 !!
주인공들 이름이 익숙해질무렵부터는 소설에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가지각색의 매력을 가진 네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내 모습을 대비해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1930년대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그것도 민족말살통치로 신사참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며 악독한 식민지배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소설에서도 세계 정세에 대한 언급이 가끔 나오는데 그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몽실언니들이 전쟁터와 일터로 나간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고통받고 있을 시기인데.. 사치코네 자매들은 몰락한 가문이라고는 하나 계절마다 꽃놀이를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등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니...
물론 이 모든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 실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소설에 몰입할수록 사치코 자매들과 내적 친분이 생겨난 반면 반발감도 함께 드는건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문화생활을 즐기고 맞선을 보고 양재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우리나라의 7-80년대 즈음의 모습과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