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스 드 케랑갈 저/정혜용 역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송태욱 역
[세설]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려 낸 당대 일본 사회
2022년 02월 14일
세 자매와 여행을 자주 다닌다. 한 자매가 멀리 있을 때는 자주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 오면서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열심히 친해지는 중이다. 사람은 타인이든 가족이든 자주 만날수록 가까워지는 거 같다.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매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게 되면 어쩐지 내 자매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성적인 시각과 여성의 문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오사카의 마키오카 집안의 네 자매 이야기다. 네 자매 중에서 셋째 딸인 유키코의 혼담을 주제로 하여 오사카 지방의 다양한 문화를 나타낸다. 자매들의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비교되기도 한데 자매간의 관계가 더 주를 이룬 게 특색이다.
소설 속에서 몇 번 언급하는데, 편지나 전화에서 받았던 자매간의 갈등도 마주보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 다투지만, 결국엔 미워할 수 없는 자매들의 특성을 나타냈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일본식 미인으로 비치는 유키코의 결혼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남자들은 왜 유키코의 매력을 보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니 우울하게 비치는 것도 있었다. 유키코와 혼담이 오갔던 남자들은 정숙하고 조용한 여성을 바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더 선호하는 거 같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타니 씨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언니 사치코나 다에코가 함께 나오는 걸 주저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키코가 빛나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이 눈에 띄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신부보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가장 빛이 나야 할 사람을 가리게 되므로 그렇다.
유키코와 다에코, 사치코의 맏언니인 쓰루코를 내심 미워했다. 비록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였다지만 유키코와 다에코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쓰루코와 남편 다쓰오는 사치코의 집에 머무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듯했다. 물론 쓰루코의 자식들은 여섯 명이나 되어 경제적으로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소설의 전개상 계산적인 면을 내보이는 데서 나타난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치코와 데이노스케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자매들에게 헌신적인 사치코를 이해했고 아끼는 모습에서다. 원래는 유키코나 다에코는 큰집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도쿄나 우에혼마치의 집을 불편하게 여겼고, 무엇보다 유키코는 사치코와 데이노스케 부부의 딸 에쓰코를 자기의 친딸처럼 아꼈다. 유키코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다아시 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다. 우리의 희망에 불과했다.
유키코와 대조적인 인물로 넷째 딸인 다에코를 들 수 있겠다. 인형 만드는 손재주가 있어 그 시대에는 드문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나온다.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비치는데 일찍이 오쿠바타케와 가출한 전력도 있었다. 오쿠바타케나 그의 점원이었다가 사진사가 된 이타쿠라와 염문을 뿌리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자매들은 유키코의 혼담이 깨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다에코의 행실을 든다. 아무래도 이 시대는 혼담이 오가는 사람의 가족들 면면을 상세히 알아보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인 다에코를 응원했다. 유키코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줄 알고 양재 기술과 인형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되길 바랐던 거 같다.
통속소설은 그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임에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알았던 것들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려함을 엿보았다. 자매들과 함께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행복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쯤 뒷면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매화가 필 무렵이나 벚꽃 필 무렵에 자매들과 다시 꽃놀이를 가야겠다. 거창한 게 필요하겠나. 그저 마키오카 가 자매들처럼 다음 해에는 함께 여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떠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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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은 1930년대 일본이 배경이고, 오사카 지방의 몰락한 상류층인 마키오카 가문의 네 자매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의 이야기이다.
이 중에서도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당시 일본의 풍속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당시만해도 여성들의 문화를 소설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니는 꽃놀이나 가부키 공연관람, 맞선 이야기 등 그 당시 여성들의 일상과감정들을 어쩜 이리 잘 표현했는지 이 분 정말 남자 작가가 맞나? 하고 앞에 작가 소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도 했다.
일본 소설을 평소에 좋아해서 즐겨 읽기는 하지만 늘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리는 탓에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곤 하는데 세설을 처음 읽을때도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나도 헷갈렸다.
사치코,유키코,에쓰코(사치코의 딸) 왜이렇게 헷갈리니~~~계속 앞으로 돌아가서 이름 복기 !!
주인공들 이름이 익숙해질무렵부터는 소설에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가지각색의 매력을 가진 네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내 모습을 대비해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1930년대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그것도 민족말살통치로 신사참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며 악독한 식민지배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소설에서도 세계 정세에 대한 언급이 가끔 나오는데 그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몽실언니들이 전쟁터와 일터로 나간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고통받고 있을 시기인데.. 사치코네 자매들은 몰락한 가문이라고는 하나 계절마다 꽃놀이를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등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니...
물론 이 모든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 실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소설에 몰입할수록 사치코 자매들과 내적 친분이 생겨난 반면 반발감도 함께 드는건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문화생활을 즐기고 맞선을 보고 양재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우리나라의 7-80년대 즈음의 모습과도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