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헤이그 저/최재은 역
영국의 학자 노리나 허츠의 책이다.
정치경제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카테고리에 속한 책인데 제목에 이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 책 너무 띵작 아닌가!
사회과학 서적치고는 그래서 리뷰들도 풍성하고, 리뷰의 내용들도 알찬 것 같다.
외로움이란 뭔가.
관계적, 정서적인 외로움이 1차적인 외로움이라고 저자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외로움도 크다고 작가는 말한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외롭다면, 성격을 바꿔보거나
비슷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타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스마트폰, SNS 시대는 보이기, 즉 Showing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더 외로움을 부채질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막연하게 나도 느끼고 있는 것들이,
정치경제학자의 해박한 언어들로 표현이 되니 정말 사이다에 팩트 폭격이었다.
이번에 주목한 것은 ‘범죄’와 테러의 관점이었다.
얼마전에 정유정 사건이라는 게 있었고, 서울과 분당의 묻지마 칼부림 만행이있었다.
그 범죄자들은 물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일 것이고
정서적 관계적으로 결핍이 많은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노리나 허츠는 말한다.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왜곡된 공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그저 그 개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너무도 묵직하고, 경제, 시사적인 이야기가 버무려진 이야기라서
이번에 간명하게 리뷰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관통하고 꿰뚫고 있는 논리가 너무도 공감이 가는 거였다.
얼마전에 꼬꼬무에서 ‘조승희 총기난사’를 다룬 것을 본 게 불현 듯 떠올랐다.
물론 조승희는 정신적, 멘탈리티에서 뚜렷하고 병리적인 질환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그렇게 끔찍한 총기난사를 저지르고 자신도 파괴하는 비극에 이른데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이고 뿌리깊은 병폐가 없다고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은 비단, 미국이라는 커다란 사회만의 일일까.
제2의 정유정, 최원종이 앞으로는 안 나올까.
이 책 <고립의 시대>는 그러한 범죄들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학문적으로, 실증적으로 후반부에 제시하고 있었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는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담론이었기에 앞으로 찬찬히 한번 더 읽어야 겠다.
경찰이나 프로파일러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치인은 정치로, 기업인은 경제 활동으로,
소비자와 유권자와, 평범한 개인들은 자신만의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었다.
저자의 글은 무척 통렬한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미 지난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분석하였는데,
현재의 우리나라 독자들도 일독할 가치가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Aslan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자.
질문 1. 오늘 누구와 몇 번 인사를 나누었나요?
질문 2. 오늘 어떤 표정을 가장 많이 지었나요?
질문 3. 오늘 누구의 말에 가장 귀기울였나요?
<고립의 시대> 저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 현재를 '고립 사회'로 부르고 있다. 경제 학자이며 현재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인 그녀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특히나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말 번역에서 부제는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우리들'인데,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 표지를 보면
-분리시키는 세계에서 인간 연결을 복원하는 방법
-외로움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재연결에 대한 요청
-왜 우리는 고독한가 등의 다른 부제가 달려 있다.
그리고 이 부제들은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저자는 1) 고립의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외로우며 외로움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2) 왜 지금의 우리가 외로운지 3) 외로움을 극복하고 서로 연결되기 위해 개인, 정부,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았다.
먼저, 저자가 제시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상태나 문제를 넘어서 가족·이웃·직장·사회·정치로부터 홀로 떨어져 있다는 고립감이며 내면적 상태인 동시에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실존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 책에 의하면 우리는 외로움으로 인해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의 위협을 받고 있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그 중 한 가지 예로 외로움은 '우리'의 범위에 속하지 않은 타인을 적대시하게 되어 정치적 포퓰리즘에 넘어가게 만든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인 남성 노동자 계급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의 정치 기반으로 이용한 것을을 실제 사례로 제시한다. 나의 외로움을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은 씁쓸함을 넘어 두려운 일이기까지 하다.
저자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왜 외로운지, 어떤 모습을 통해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는 거대 기업과 거대 금융에 재량권을 줌으로써 소득과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고 사람들이 초경쟁과 이기심의 추구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서로를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하고, 개인을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이외에도 앞서 말한 포퓰리즘, 도시화, 스마트폰과 SNS, 일터에서의 소외는 우리로 하여금 이전보다 훨씬 많은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이 매우 높으며 자신이 사회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노리나 허츠도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고립감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는 것과 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외로움의 공격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리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1인 가구를 위해 '외로움부'를 설치하고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 일본, 호주 등의 정책을 남의 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렇다면 이러한 외로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이 나온다. 정치적으로는 시민(특히, 주변화된 사람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복지, 사회보장, 교육, 의료보험에 더 많은 투입이 필요하며, 경제적으로는 불평등 해소, 기술발전에 의한 실업 대책, 외로운 노동자 입법, 소셜 미디어 규제, 임대료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사회적 측면에서는 지역 공동체 복원과 함께 어울리는 공공장소 확대가 외로움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개별 시민 역시 주변에 관심 및 교류, 돌봄의 의무 실천, 공감과 감사의 실천과 같은 미세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해결 제안 부분은 분량에 있어서나 현실성 등에서 앞선 문제 의식이나 원인 분석 부분에 비해 다소 힘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모든 부분을 커버하기는 어려우니 앞으로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지혜를 모으고 더 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생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