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미첼 저/신소희 역
우종영 저/한성수 편
데이비드 앨런 시블리 저/김율희 역/이원영 감수
나태주 저
로버트 맥팔레인 저/조은영 역
'현대지성클래식'도 다른 인문학책 못지 않게 애정하던 시리즈였는데, 개인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어느덧 친근하게 리뷰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겨우 5권째 리뷰이지만 기회가 닿는대로 리뷰하고자 한다. 맘만 먹으면 '100리뷰 달성'도 어렵지 않을 것인데, 아직은 맘이 먹어지지 않는다.
암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이제야 겨우 휘뚜루마뚜루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이들이 왜 <월든>을 필독서로 꼽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움이고, 둘째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써내려간 아름다움이고, 셋째는 올곧고 올바른 예의바름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로의 글을 읽으면 먼저 가슴이 뜨거워지고 생각이 냉철해지며 행동거지 하나라도 허투루하지 않겠다는 마음씨가 새록새록 샘솟게 만들곤 한다. 이런 책을 어찌 읽지 않을 수 있느냔 말이다. 미국 교육정책으로 소로의 <월든>을 으뜸 필독서로 삼은 까닭도 정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난 이 책의 소중한 까닭 가운데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공학도의 시선'으로 책을 읽어내려갔기 때문인 듯 싶은데, 소로의 해박하고 유쾌한 '비유적 표현'들이 공학도의 눈에서는 그저 '자연풍경'을 '글자'로 옮겨 놓은 것으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은 까닭에서였다. 겨우 '뒤친이(역자)의 주석'을 읽고 나서야 깊은 사색과 시인의 마음으로 써낸 '감성적이고 중의적인 시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기에 안타깝게도 난 <월든>의 아름다움을 반의 반의 반도 채 이해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소로의 위대함은 '정의로움'과 '예의바름'을 통해서도 굉장하다는 것을 맛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책의 말미에 함께 수록된 <시민불복종>의 내용은 한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이 매료되고 말았다. "정부는 기껏해야 시민 편의에 봉사하기 위한 조직일 뿐이다"라는 문구만 읽어도 가슴속에 뻥뚫린 듯 시원상쾌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기반한 소로는 불의한 미정부가 부과한 세금을 내지 않은 탓에 수배를 당했고, 그 때문에 '월든 숲'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살아갔던 것이다. 소로는 그곳에서 2년여 동안 지내면서 '시민불복종'을 몸소 실천했으며, 월든 숲과 호수가 제공하는 자연에서 적응하는 것을 넘어 '자연예찬'을 적극적으로 하는 신봉자가 되길 기꺼워하며 스스로 은둔생활을 한 것이다.
하지만 소로는 비록 깊은 숲속에서 홀로 지내지만 '문명인'의 모습을 내던지고 야성을 간직한 '야만인'으로 살아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가장 문명인답게 살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경>과 <신화>를 벗삼고 중국과 인도 등 '동양사상의 경전'을 살펴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성'과 '도덕', 그리고 '생존'을 위해 농사와 사냥, 낚시 등을 직접 하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월든>을 남겼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6차례나 '수정'을 거듭하며 마치 '팔만대장경'을 한자한자 깎아내듯 정확하고 올곧게, 그리고 올바른 마음을 수양하면서 써내려갔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월든>을 써낸 소로는 참으로 대단하고 위대한 인물인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정부정책'을 왈가왈부하는 것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허나 옳지 못하고 부당한 '정부정책'을 향해 온몸으로 거부하는 일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로 인해 수감이 되고 '자유'를 억압 당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월든>은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위대한 위인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단다. 지금도 불의한 정부정책에 바르고 따끔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월든>은 큰 힘이 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대한민국에도 꼭 필요한 책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꼭 읽혀야 하는 중요한 책일 것이다. 그리고 '달걀로 바위치기의 교훈'을 의미심장하게 되새길 수 있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분명 '잘 깨지는' 달걀 따위로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 바위를 깨부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던져진 달걀을 맞은 바위는 반드시 '더러워'진다. 시간이 지나면 더럽다 못해 '달걀 썩는 냄새'로 뒤덮여서 코를 틀어쥐고 막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달걀을 연이어 맞게 된 바위는 깨어지지는 않을지언정 더럽고 냄새가 지독해져서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게 된다. 자, 이제 그 바위의 실체를 까발려보자. 단단하기 그지 없는 바위는 '권력자'를 뜻한다. 그런데 권력자가 부당한 짓을 일삼고도 잘못을 바로 잡지 않으려고 할 때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기꺼이, 그리고 반드시 '달걀'을 던져야만 한다. 그렇게 던진 달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쏟아진다면 '더럽고 냄새나는 권력자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달걀을 던지는 것으로 그쳐선 절대 안 된다. 코를 틀어쥐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고약한 썩은내를 풍기는 '바위'는 반드시 치워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소로는 '멕시코 전쟁', '노예주 확장 문제' 등을 이유로 19세기말 미국 정부정책의 불의함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비록 현실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백인의 이득'을 위해 정부정책이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소로의 <월든>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바꾸지도 않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불의함'이 만천하에 드러난 오늘날에는 두 번 다시 저질러서는 안 되는 부당함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바로 '미국의 양심'이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물론 '불의한 정부'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불의를 통해서 얻게 될 '달콤한 이익'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소로의 <월든> 덕분에, <시민불복종> 덕분에 아무리 달달한 이익이 눈앞에 있더라도 '불의한 짓'을 저지르면 언제고 '책임'을 져야만 하게 되고, 그 책임은 달달했던 이득보다 훨씬 더 무겁게 치뤄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나야만 한다. 스스로 '깨어있지' 않으면 불의한 정부와 부당한 정책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하고, 이를 제때에 막지 못한다면 그 뒷감당은 우리 모두가, 아니 정확히는 '우리의 후손'이 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당면한 과제를 절대 외면해선 안 된다. 그 과제가 무엇인지는 잘 알 것이다. 당신은 '이미' 깨어있는 현명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가 2년 2개월 동안 숲속 생활을 하면서 쓴 내용으로, 그는 도시생활을 잠깐 접고,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월든 호수의 가장자리에 직접 집을 지으며 살아갔다.
소로는 초월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책을 쓰며 개발로 인해 콩코드 고유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흥미로운 것은 서양인인 소로가 숲속 생활을 통해 불교와, 맹자와 같은 동양 사상의 깨달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물 속에 존재하는 의미나, 인간의 본질, 영원성을 탐구했고, 그에 가까울수록 감미롭다 여겼다.
소로가 전달하는 주요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이 숲속 생활을 선택했듯, 주체적인 삶과 많은 삶의 가능성들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것을 자기의 손으로 했다. (물론 빨래는 빼고) 우리는 만들어진 것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은 스스로 즐겁고 기쁜 삶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유행에 따르는 도시인들의 삶은 소로가 보기엔 낮은 곳을 겨냥하고 있는 삶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감독자가 되려 하지 말고, 이 세상의 가치 있는 인물이 되려고 애쓰라." 그는 의도적이고, 작의적인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자선사업과 같은 의도된 선행도 거부했다. 그에게 자선과 같은 것은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삶의 모습이어야 했다.
그가 숲 생활을 하면서 도시생활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기술의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가 퇴색되어가는 사회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의 빠름 예찬을 경계하면서도 화물기차가 물건을 싣고 가는 그 웅장함으로 세상을 느끼며 상업 행위의 진취성과 용감함을 좋게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빠르게 변하는 농촌과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선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했다. 자기만의 목표가 있고 그것을 실행할 계획과 능력이 있다면, 시도해도 괜찮을만한 삶이 아닐까 그의 삶이 말해주는 것 같다. 도시의 삶을 찬양하는 이들에겐 흥미로운 숲속 생활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인간의 가치, 영원성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에 대한 책으로 보일 것 같다.
"인생이란 자신이 아직 상당 부분 시도하지 않은 실험의 장이다."
<시민불복종/헨리 데이비드 소로>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 소로가 정부의 노예제를 비판하면서 쓴,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전달하는 내용의 밀도가 높다.
월든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사상이 나타난다. 인위적인 국가 권력은 어떻든 좋지 않은 것이고 법률보단 정의를 존중하며 좋은 것은 인위적인 것보다 자유로운, 각자 덕을 깨닫는 것과 같은 삶이었다. 이런 인간의 내면의 소리는 노예제를 옹호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소로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정부를 반대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정책과 편의성에 의해서만 통치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전달한다. 민주주의 체계에서의 투표를 편의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개인이 더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는, 넓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온 정성을 다해 투표하라... 소수는 그저 과반에 순응하기만 하면 무력해진다. 그때는 이미 소수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온몸의 힘을 다해 제동을 걸고 나서면 그때는 못 말리는 큰 힘이 된다."
소로의 책을 읽다 보면, 대체로 교조적이고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듯, 이상적이고 기준이 높다고도 느꼈다. 검색해 보면 더 자세히 나오지만, 그가 숲속 생활을 하면서 근처의 도시에서 어머니와 누이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비판이 있긴 하지만 이런 면보단 그의 글에서 나타나는 사상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의 글은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글은 아니다. 소로가 원래부터 자연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숲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당황스러운 느낌이 있고, 읽다 보면 종종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더더욱 효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느꼈던 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스스로 해내보려고 하는 노력을 강조한 것이었다.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현대생활에서 도움을 받으며 살면서도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내는 것처럼, 어느 정도 양쪽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로의 글에는 각종 통찰이 돋보이며 곧곧하게 서있는 자아가 존재한다. 그래서 한 텍스트를 읽어도 다양하게 사유가 가능하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개인적인 깨달음에선 어느 정도 다른 점이 있었다.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듯 인생철학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나에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좋은 책이었다 :)
인간들과 문명을 벗어나 자연속에서 함께하는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읽게 되는 좋은 책이였습니다. 독서를 통해서 오랜만에 힐링 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책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자문하게 합니다. 얼마전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면서 "월든"이 자주 언급되었는데 '무슨 책이지?' 하는 궁금함에 늦게나마 읽어 볼 수 있었네요. 비록 여유롭게 가진거 없이 호숫가에다 혼자서 오두막을 손수 짓어 살면서 그만의 일상과 철학을 차분하게 적어 나갔다는게 너무 좋았습니다. 도시의 그 어떤 고급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볼 수없는 호수 주변의 풍경과 자연의 친구들, 그리고 계절의 변화들을 사진과 함께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월든 호수 주변의 신선한 공기와 사시사철 변하는 호수의 물속 모습이 정말 보고 싶어 집니다. 또한 시민 불복종에서 공감하게 되는 작가의 철학과 정치적인 신념도 인상적이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은 그런대로 잘 굴러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의 우리 주변을 볼때, 월든 호수의 깨끗하고 차가운 물 한바가지 퍼서 정신 차리라고 끼얹어 주고 싶네요. 책상 옆에 놔두고 생각 날때마다 읽고 싶어지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