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쿡 저/조은영 역
이상희 저
다네다 고토비 저/쓰치야 겐,박진영 감수/정문주 역
다네다 고토비 저/쓰치야 겐,박진영 감수/정문주 역
박재용 저
2020년 02월 14일
이 책의 도입부는 다윈의 대표적 저서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연선택에 바탕을 둔 적응적 진화라는 개념을 창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초반에만 해도 많은 비판을 받았던 해당 개념은 현재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다윈 스스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있었는데, 자연선택에 바탕을 둔 진화가 계속된 경우 종의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어떠한 점으로 수렴할 법 하지만 실제로는 무한하게 많은 다양성을 지닌 형태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유일한 진화의 원동력이 아닐 것 같다는 추측과 고민 끝에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라는 저서에서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다윈의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선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듯한 논리라고 받아들여져, 심지어 다윈주의자라고 불리는 학자들에게도 외면받은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프럼은 본인이야말로 진정한 다윈주의자로써 그간 학계에서 외면을 받았던 이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야말로 현존하는 종의 다양성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필요한 과학적 검증 도구인 영가설에 대한 개념을 다음 장에서 설명한다. 영가설이란 과학과 통계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추측으로 '딱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추측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영가설은 언제든 실험을 통해 틀린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명제이다. 영가설은 그 명제의 특성상 이를 기각하는 증거들을 통해 틀림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영가설 그 자체는 증명하기 불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항상 특정한 이슈에 대해 유의미한 설명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이와 관련 저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경제 상황에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경제 기사의 예를 들었다). 현재까지의 많은 진화론 및 배우자 선택에 대한 가설들은 모든 현상에 대한 유의미한 소위 "이치와 순리에 맞는" 설명을 하려는 강박 하에서 만들어졌으며 적응주의적 모델은 이러한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용이한 도구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적응주의에 바탕을 둔 모델들의 허점들을 제시하면서 이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앞으로의 논의에서 기존에 더 설득력 있다고 여겨져 왔던 적응주의에 입각한 배우자 선택 모델(생존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배우자를 선택한다)이라는 가설 대신 "세상에는 별의별 아름다움이 있다"(임의적인 미적 선호에 바탕을 둔 성선택)는 명제를 영가설로 해야 함이 타당함을 주장하며 이후 그 근거를 제시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후 저자는 그의 전공 분야인 조류와 관련된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 사례들을 제시한다. 수컷 청란의 깃털에 발생한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의 발달, 수컷 마나킨 새의 노래와 춤을 비롯한 과시행동, 수컷 오리의 과격한 성행동과 강제교미 성향과 이로부터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한 암컷의 생식기 구조 진화, 수컷 바우어 새가 건축하는 다양한 종류의 정자(바우어) 등등의 사례들을 통해서 거의 대부분 암컷이 생식 과정에 있어서 많은 부분 능동적이고 임의적인 미적 기준에 바탕을 둔 자율적인 성선택을 해 왔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컷의 외모, 행동, 만드는 구조물들의 미적인 발달과 암컷의 미적 안목의 발달이 거듭되는 공진화를 통해 현재에 이르는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런 성선택에 있어서 주도권을 쥐었던 것은 암컷이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출산이라는 비싼 가치를 지닌 암컷 입장에서 좀 더 매력적인 형질, 행동을 보이는 수컷을 선택하는 것이 그 암컷의 자손의 번식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점에서 암컷의 성선택에 있어 좀 더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주도권을 쥐게 되므로, 수컷들은 그 암컷의 자율적인 성선택을 최대한 보장하는 조건 하에서 본인을 뽐내기 위한 각종 미적인 장치들을 진화시키게 된다.
앞서 조류에만 국한되었었던 논의를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영장류, 인간으로 확장을 하며 앞서 언급한 미적 진화의 사례가 우리 인간에게도 발생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인간 여성은 여타 암컷 유인원과는 달리 은폐된 배란을 진화시켜 개별적 관계가 수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반복적 짝짓기 선호라는 특징이 생긴다. 이를 통해 앞선 조류들의 사례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요소 하나가 추가되는데 바로 쾌락, 오르가즘에 관한 점이다. 인간 남성의 성기 크기는 절대적으로나 몸집 대비로나 꽤나 큰 편인데 이는 여성이 반복적인 섹스를 통해 어느 정도 이상의 크기를 지닌 남성을 선호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관계 지속시간은 평균적으로 수분~십 수분 수준 정도가 되는데 이는 여타 동물들이 대개 초 단위, 길어야 1분을 넘기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또한 인간은 성행위에 있어 다양한 체위를 발전시켰는데, 관계 시간과 체위의 종류는 수정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은 성행위와 그 과정에서 얻는 쾌락에 초점을 맞춰 성선택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중심에는 오르가즘을 추구하고자 한 여성의 성선택이 바탕이 되었다고 말하며 이는 기존에 학계에서 인식해 왔던 "성적으로 수줍은 여성"이란 개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부분이라 말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인간이 성선택을 할 때의 그 미적 기준은 속한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나타난다고도 말한다. 그 근거와 관련해서 다양한 기후에 노출된 원주민들의 다양한 미적 기준들에 대한 언급한다. 또한 동성 간 성행동, 다시 말해 호모 섹슈얼리티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추론이 있었고, 인류 사회에 나타났었던 가부장제 문화와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페미니즘이 왜 나타났는지에 대해 여성의 자율적 성 선택권을 박탈하고자 하는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반발로써 자율성을 되찾고자 하는 반발적 운동으로의 페미니즘이라는 저자 나름대로 미적 진화 이론 및 성 갈등 이론을 바탕으로 풀어낸 부분도 나름의 새로운 인사이트를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 방대한 내용의 책을 통해 내가 생각한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 모든 동물의 성선택의 기준은 내 자손이 매력적인 형질을 갖고 태어나 지속적인 성 선택에 성공하여 대를 잇는 데에 있다. 이런 선택의 주도권은 대체로 임신 능력이 있는 암컷이 가질 확률이 높아 미적 진화는 최대한 암컷의 성선택의 자율성이 최대한 확보되는 방향으로 이뤄지게 된다. 한편 매력적인 형질이란 획일화된(적응적) 어떠한 형태가 아니고 각 개별 개체마다 능동적이고 임의적인 미적 기준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임의적인 미적 기준에 기반한 성선택은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다양한 개체의 생성으로 나타났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화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현재의 해당 학계의 주류 의견이 무엇인지까진 모르지만, 비전공자 입장에서 어렴풋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만이 유일한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미적 선호에 바탕을 둔 자율적인 성선택이라는 (내 입장에선) 새로운 개념이 얼마나 자연의 진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었다. 또한 조류에만 국한되지 않고 논의의 범위를 우리 인간에게까지 확장하여 성선택에 의한 생물학적 진화와 우리 인류의 문화 발달 간의 역학 관계까지도 다룬 부분도 나름의 설득력과 재미가 있었다. 또한 과학적인 논리 전개와 관련된 방법론적인 점에서도 나름 공학하는 사람으로서 참고하고 배울 부분이 있었다.
끝으로 저자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되는 책의 말단 부의 문단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미학의 프레임을 완전히 뜯어고쳐 인간을 학문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인간과 비인간 동물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만이, 인간 예술의 경이로운 다양성, 복잡성, 미적 풍성함, 다양한 사회 기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의 존재를 고려하여 우리와 인간 예술계의 좌표를 설정하는 포스트휴먼적 미학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별함이 진정 무엇인지'를 좀 더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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