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죄가 아냐. 아무 잘못 없어. 우리가 뭐, 사람을 죽였어? 아님, 사기를 쳤어?” 누구든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사랑하고, 자기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삶이란 소중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안락한 죽음이 필요하다. 타인의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으므로,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최선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 생의 끈을 놓으려 한다면, 나는 그의 손을 꽉 붙잡을 것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삶, 상처, 아픔, 고통, 우울…그리고 그 사이를 밝히는 다정한 빛“누군가는 죽음을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였다.” _본문 중에서 아직 한국에서는 죽음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부족한 편이지만, 죽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일부로 수용하려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은 현 존재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고 했다. 서우가 끝내 엄마를 설득해 안락사 센터에 입소하게 된 것은 죽음을 존재의 끝이 아닌 존재의 방식으로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센터에서 내린 처방은 한 달. 그 기간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서우는 언제든지 약을 받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서우는 죽기 위해 들어간 센터에서 태한을 비롯한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나눠 먹고, 각자의 아픈 상처를 나누면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사랑이 삶에서 얼마나 큰 영역을 차지하는지 깨닫는다. 삶이란 거창한 단어를 이루는 것들은 소소하고 작은 생활에서 비롯된다. 좋아하는 밀크티를 마시며 산책하는 기쁨,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유쾌함, 서로를 안아주는 품의 따뜻함, 누군가와 맞잡은 손의 떨림까지. 모두 서우가 죽음 앞에서야 마주한 가장 깊고 진한 생의 모습들이다. 결국 작가는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은 좋은 삶을 생각하게 하며, 미련하리만큼 삶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아픔누구가의 삶에 대해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꽤 소중하지. 필요한 거고.그렇다고 해서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삶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_본문 중에서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는 아픔이 곪은 채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어떤 마음에 대한 소설이다. 삶이 한 개인의 무수한 선택으로 점철돼 있다면, 여기 그 선택지에 죽음만 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소설은 서로 다른 세대와 성별의 인물들을 통해 삶의 서로 다른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밝게만 보이는 ‘양지’는 숨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반려견 또또의 모습을 목격하며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공포를 경험한다. 죽음이 무서워 더 이상 사람의 눈을 바라볼 수도,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한 여사’는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어떤 향수로도 가릴 수 없는 늙음의 체취를 마주하자,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손 형’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다. 결국 그의 가족은 깨졌고 그렇게 그는 남은 것 하나 없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자 한다. 그 외에도 평생 외톨이였던 ‘민아’와 사랑하는 이의 배신으로 꿈마저 잃어버린 ‘연우’까지. 삶은 때때로 죽음보다 더한 아픔을 준다. 그 아픔은 삶의 작은 균열에서부터 서서히 다가올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큰 사건처럼 내 앞에 놓이기도 한다. 이는 전작 『모두가 부서진』의 지독한 현실을 깨우는 서늘한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번 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의 온도는 보다 따뜻하다. “그래, 사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애썼어” 하면서 삶의 고통에 밀려 죽음에 바투 선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이 삶으로 향하길 바라는 바람을 담아. 서우의 아침에는 삶과 죽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