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저/최고은 역
범유진 저
피터 스완슨 저/노진선 역
히가시야마 아키라 저/민경욱 역
로라 데이브 저/김소정 역
최구실,김상원,김달리,엄성용,김구일 저
2023년 02월 16일
[책읽아웃] 그 사건을 몰랐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G. 손보미 소설가)
2022년 09월 22일
[이주의 신간] 『헤어질 결심 각본』, 『사라진 숲의 아이들』 외
2022년 08월 03일
서재 안 서랍은 늘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잠그는 것을 잊었나보다. 채유형은 하필 그날, 서랍을 열고 만다.
부모님은 알고 있을까? 유형이 발견한 사진에 대해. 처음 보는 사람들 속 유형의 모습. 유형은 입양된 것이다.
세 번. 딱 세 번이었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우편을 받은 때. 기사 그리고 물음.
전장 속 남자의 사진, 시위방화 사건의 기사, "넌 어때?". 마지막 "넌 어때?"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누가 보낸 것일까? 사진 속 남자아이. 아마도 유형의 오빠가 보낸 것일까?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미성년자인 사건.
유형은 최영인 팀장으로부터 사건의 변호사를 만나보라 소개를 받았다.
팀장은 자기비하에 능한 사람이었다. 능력이 출중한 반면,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고 유형은 그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변호사 윤종. 그와 함께 가해자인 소년을 만났다. 네가 한 일이니? 어쩌면 누명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년.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꾸만 감이 말을 걸어온다. 뭔가가 있다고.
숲에 가본다. 오토바이를 타던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에서 유형은 아이들에게 테러를 당한다. 한쪽 귀에 뚫린 구멍.
피어싱. 아이들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가까스로 힌트를 하나 얻었다. 숲. 을지로의 숲.
최영인 팀장이 연락을 해온다.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오라고.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유형은 줄곧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본인이 스스로 그만 두었다고 생각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사직서 제출)를 거치지 않았다. 가지 않는다. 그것으로 된 것일까? 유형은 사건을 놓지 않았다. 경찰서에 가본다. 그곳에서 진 형사를 만났다.
홀로 경찰서를 지키고 있던 그녀. 진 형사.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 실수일까?
유형이 경찰서를 방문할 때 사들고 간 빵. 어쩌면 그 빵 덕분에 진 형사는 유형에게 협조할 마음이 들었나보다.
진 형사는 스스로 유배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그 사건'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내다 그만 두는 것. 그녀의 지금 목표이다.
하지만. 진 형사는 수많은 '하지만'을 놓고 고민한다. 지금 이 사건에 내가 뛰어들어야 하는 명분이 무엇일까?
유형 때문이다. 명분 다음엔? 다시 수많은 물음표가 그녀를 괴롭힌다.
사건에 다가갈수록 유형은 자신의 친오빠가 윤종이라 착각한다. 그가 자신을 안았을 때의 느낌. 밀고 싶지만 놓지 않고 싶은 그 느낌 덕에 혈육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아마도 친오빠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것만은 비슷하지만. 그는 유형의 친오빠가 아니었다.
숲. 을지로의 숲. 진 형사가 먼저 도달했다. 아이들을 보호하던 어른의 존재.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있어주던 어른의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소년들의 비극은 유형이 관심을 갖게 된 이 사건 전에도 존재했다. 아이들은 누구의 존재를 숨겨준 것일까?
마침내 그 어른의 존재가 드러난다. 유형이 알고 있던 사람. 그는 유형에게 무엇을 묻고 싶었던 것일까?
오래 전 보낸 우편에 적힌 "넌 어때?"라는 말.
아이들에게 그는 어떤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그 문장이 떠올랐다. ‘넌 어때?’ 그는 무엇을 묻고 싶었던 것일까?
넌 어때? 나 대신 행복해?
넌 어때? 나만큼 불행해?
채유형은 행복했었나? 불행했었나? 그 어느 쪽도 아닌 삶도 있다."
덧) 작가님이 이 소설을 구상한 장소 덕분에 당신은 허기를 달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 먼저 빵집을 들릴 것.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빵을 사들고 올 것을 권한다.
손보미 작가의 소설 하면 <디어 랄프 로렌>이 떠오른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갈마드는 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적응하고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손보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도 비슷한 구성을 지녔다. 처음에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해서 중심에 놓인 살인 사건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채유형과 진경언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 정통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채유형이라는 인물이 우연히 접하게 된 살인 사건을 통해 그동안 외면해온 문제들과 마주하고 끝내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야기는 채유형이 대학 후배의 소개로 한 인터넷 방송국의 PD가 되면서 시작된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랐지만, 취업에 있어서도 학업에 있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유형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여태 숨기고 있는 양부모와, 고등학교 때 받은 익명의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 친부의 정체- 친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며 파월 노동자와 참전 군인의 밀린 월급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방화를 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가 채유형으로 하여금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고 느낀다.
그런 채유형이 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직 형사인 진경언을 만난다. 채유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은 10대 남학생이 동갑인 여학생과 2살 연상의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문제아의 일탈 행동으로 보고 있지만, 채유형은 진경언과 함께 사건 기록을 살피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 사건이 그런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이들 모두가 '을지로의 숲'이라는 장소를 알고 있고 이들의 배후에 한 남자가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두 사람이 협력하여 청소년 범죄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버디물이자 사회파 추리 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속하는 장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이 소설의 전체를 설명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근간이 되는 살인 사건 외에도 채유형과 진경언 각자의 개인사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채유형은 친부가 살인자이며, 그런 살인자에게조차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이 부러워한 사람이 남모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채유형과 진경언이 만난 '숲의 아이들'은 한 남자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그의 살인 병기로서 행동했다. 이는 외화 벌이와 애국 행위라는 명목으로 이국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수많은 군인(+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