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선 저
필리프 비옹뒤리,레미 노용 공저/이재형 역
오지구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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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수 저
[동물권, 비건 특집] 시작을 망설이는 비건을 위해 고른 6권의 책
2021년 06월 09일
『비거닝』은 크게 두 단원으로 나뉜다. 첫째 단원은 “뭐라도 하고 싶다면”, 둘째 단원은 “다르게 하고 싶다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전자는 채식에 기웃거리는 이들을 위한 글이고 후자는 본격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위한 글로 보아도 무방하다.
나는 첫째 단원의 「비겐의 식탁」과 둘째 단원의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비겐의 식탁」은 기사를 쓰기 위해 비건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야기이고,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는 철학(동물해방)을 공부하며 채식을 결심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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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겐의 식탁」의 ‘비겐’은 저자(신소윤 기자님)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선배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72-73쪽)
“요즘 건강 문제 때문에 나도 비건을 시작해보려고. …그런데 나는 비건까지는 아니고 비겐 정도인 것 같아.”
…
“아, 비긴-비겐-비건 중에 비겐 말하는 거지?”
비건 신청자 선배가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하하하, 무슨 그런 아재개그를……”
그때는 너무 썰렁한 농담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이후로 그의 말이 가끔 귓전을 맴돌았다.
육식을 즐기다가 갑자기 완전 채식을 시도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비건적(的)’으로 음식과 생활용품을 따져가며 사용했던 경험에서, 스스로를 옥죄는 채식은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단순 실패에 그치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83쪽)
짧고 강렬했던 경험은 내 인생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알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다시 고기를 먹지만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고, 먹는 것부터 입고 쓰는 것까지 동물의 희생을 대체할 것이 있으면 비건을 선택하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한 번의 ‘비긴’으로 완벽한 ‘비건’은 못 될지언정, ‘비겐’의 삶이라도 계속하다보면 비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비겐’의 식탁으로 독자를 초대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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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에서 ‘그 책’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이다. 저자(김성한 교수님)은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권유로 별다른 생각 없이(!) 『동물 해방』을 번역했다가 혼란에 빠져버린 일화를 소개한다.
(92쪽)
한참 치킨을 뜯고 있는데, 누군가가 멀리서 다가와 내게 불쑥 인사를 했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치킨을 계속 먹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맛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창피하다는 생각과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 교차하면서 결국 멘붕이 왔다. …마침내 나는 채식을, 그것도 완전채식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저자는 윤리교육과 교수답게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을 무려 공리주의와 칸트(!)의 철학으로 극복한다. 내가 채식을 결심한 것도 윤리 때문(『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를 읽고 설득 당함)이었는데, 덕분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95쪽)
이 세상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증진하라는 공리주의의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가축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우리에게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96쪽)
아무리 애를 써도 채식의 윤리적 정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문제는 고기를 먹고자 하는 나의 욕구였다. …문득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가 떠올랐다.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우리가 원초적 욕망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욕망을 극복하면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기준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나는 고기를 먹지 않고 오히려 채식을 해야 한다.
이후 저자는 완전채식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페스코(어류까지 허용) 채식을 시도했고 강박에서 벗어나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겐의 식탁」에서도 말했듯이, 처음부터 비건이 되려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타협적인 페스코부터라도 시도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나의 페스코 채식은, 가난한(?) 자취생으로서 매 끼니마다 완전 채식하기는 버겁기 때문에 선택한 일종의 타협안이다. 이 지점에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거닝』을 통해 완전 채식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다시 비건을 향해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교시 수업 마치는 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학생들은 손을 씻고 급식실로 질주한다. 열을 체크한 뒤 손소독제를 받아 손바닥을 문지른 뒤 한 줄로 서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아 칸막이 식탁 앞으로 간다. 제육볶음, 감자 베이컨 볶음과 밥을 받은 아이들이 눈에 띈다. 육류 중심의 편식이 일반적인 아이들은 비타민 겉절이가 있지만 채소 반찬은 먹지 않으려 급식 때 채소 반찬은 받지 않는다.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 시행으로 학생들 영양까지 챙기는 단체 급식으로 편리해졌지만 육류 반찬이 안 나올 때가 거의 없어 점심시간이 불편해졌다.
새 학기로 바쁜 봄을 보낸 여름과 먹거리가 풍성한 가을에는 도시락을 싸와 집 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는데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는 학교 급식을 이용한다. 붉은 고기를 안 먹는 대상자가 신경 쓰여서인지 조리사는 고단백 음식도 섭취해야 한다며 식이 습관을 바꾸려 하였다. 성장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단체 급식 식단을 짜더라도 육류에 편중된 식단 구성은 달갑지 않으면서도 채소 반찬 위주로 점심을 해결한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반찬을 안 받으니 개구쟁이 소년은 고기를 받아서 자신에게 달라며 청할 때도 있어 육식 위주의 식단에 길들여진 듯해 걱정되곤 한다.
현대인들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질병을 앓으며 늘어난 평균 수명에 비해 삶의 질은 떨어져 건강한 생활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건강을 잃고 치료를 받다 고통 속에 이 세상을 뜬 지인들이 늘어날 때마다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을 재발견한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어떤 것도 꾀하기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식생활습관에서 오는 여러 질병을 보면서 채식을 지향하며 지낸다. 동물 착취와 학대를 최소화하려는 삶의 방식인 비거니즘(veganism)을 지향하며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라는 부제가 붙은 ‘비거닝’을 살핀다. 생활 속에서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의 솔직 담백한 일상은 완전 채식을 강요하지 않아 심리적 부담은 덜하다. 동물 학대 논란을 고려해 우유를 두유로 대체하고, 각종 과자와 라면을 튀기는 데 쓰이는 팜유는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식습관을 바꾸는 실천은 선택의지에 따른 자기결정권이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법규에 따라 수많은 동물들이 대량으로 살처분되었다. <<묻다>>의 저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짐승들을 매몰한 지 3년 후 그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전시했다. 사진 옆에 살처분된 닭과 오리, 돼지 등의 숫자를 실어 통렬한 아픔과 강한 죄책감은 비정한 인간들의 이기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구제역으로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속 생명체의 절규는 살고 싶은 욕망을 담고 있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후로 육식 섭취를 줄이고 어패류와 과일, 채소, 곡류 중심으로 섭취하며 지낸다.
'맑고 신선한 해표, 해표 식용유’
광고를 들으며 지내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1971년 해표 식용유는 식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대두를 수입하여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소와 돼지를 먹여 축산업을 장려하게 되었으며, 기름을 짜고 남은 다량의 재료들이 가축의 곡물사료로 쓰여 축산업 발달을 돕게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지상에 공급되는 모든 것들은 그 제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고리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식용유와 동물성 식품들이 저렴하고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되어 가공식품 섭취를 크게 늘려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코로나 19사태로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야하는 위기의 시대에 기존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뉴노멀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그 이후는 이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달라져 미래를 대비할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장기화된 장마, 폭우와 폭염, 한파를 겪으며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촉발된 환경 파괴를 멈추고 환경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 사람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연대와 실천이 더 값진 때에 한 끼만이라도 자연 상태의 곡식과 채소와 과일 등을 먹으며 탄소 배출량을 줄여가려는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