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저 저
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안데르스 한센 저/김아영 역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유시민 저
톰 필립스 저/홍한결 역
1970년 프랑스의 정신의학자는 의대생으로 실습 인턴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자동차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인해 그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소에서 정비공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료통에 물이 고여 있는 걸로 봐서는 모터가 녹이 슨것 같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기, 이 정비소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차를 고치기 위해 온 간호사가 있었다. 간호사에게 혹시 자동차가 이런 증상이 있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대뜸 병원에 망상 증세가 있는 조현병 환자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는 이렇다. 망상증 환자는 자신의 소변이 강력한 연료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고로 자신의 소변이면 행성 간의 왕복이 가능할 만큼의 열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하기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자동차 연료통에 소변을 누었다. 자동차 연료비를 절감해 주기 위한 선의다. 의도는 언제나 결과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선한 의도는 때로 악이되고 악한 의도는 때로 선이 된다. 인간의 역사는 이처럼 어리석음과 지혜라는 두 쌍두마차에 의해 굴러간다. 어리석음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어리석음을 낳았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류역사 최악의 실수는 농업혁명이다.' '제러미 다이아몬드' 또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언뜻 이해가 어렵다. 농업혁명은 문명의 시작이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으로인해 영양불균형을 낳았다. 또한 계급을 통해 불균형한 사회를 만들었고 각종 질병과 전쟁의 씨앗이 되곤 했다. 농업혁명은 가뭄과 홍수 등 배고픔과 같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벗어나 미래, 전쟁, 가난 등의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인지혁명으로 한 차원 더 고차원적이게 된 인간이 농업혁명으로 다시 '바보스러움'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 역사에는 이와 닮은 역사가 너무 많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력 혁명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갖기 위해 투쟁한다. 자본은 더 많은 생산량을 가질 수 있었다. 이중 거대 자본을 소유하기 위해 소유권을 분할하며 '주식회사'가 탄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권을 나누어 더 큰 자본력을 갖게 되자, 생산성은 폭발한다. 소비 대비 생산이 폭발하자, 시장은 포화에 이른다. 시장을 확장하고 자본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서구는 커다란 배를 증축하여 배를타고 나간다식민지 시대가 열렸다.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나누어 점령하던 시기, 마지막 남은 땅까지 식민지 각중장으로 변하면서 인류는 커다란 전쟁을 하기도 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바보스러움은 '선'을 낳기도 하고 '악'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농업혁명으로 생겨난 불균형과 불합리성은 고대, 근대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그 여파가 이어진다. 우리는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진다. 심지어 성차별과 노예제도를 아주 근대까지 갖고 있었다. 프랑스의 여성참정권은 비교적 최근인 1946년 이후에 생겼으며 1995년까지 미국 미시시피주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다. 지금 현재도 베트남인의 평균 월급여는 30만원이 되지 않는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둘이서 먹으면 한끼 식사에 40만원을 결제하고 나오는 이들이 적잖은 것과 대조적이다. 과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또한 적잖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인간의 수 많은 역사는 언제나 바보스럽다. 인간 개인은 조금 더 현명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바보 같아졌다. 소수 엘리트들과 대중으로 나누어져 대중은 선동당하기 쉽고 엘리트들은 바보은 실수를 저지른다. 고로 대중과 엘리트는 모두 바보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역사는 대중들과 엘리트들의 이야기로 쓰여 있다. 이를 재미요소로 보고 대중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생겨 나기도 한다. 대중심리학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편향 등의 작은 오류가 얼마나 커다란 나비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준다.
어리석음과 지혜는 우리 인간사에서 쌍둥이처럼 붙어 있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환경 재앙의 암흑에 둘러싸인 한계 상황에서 우리가 진화의 오수관을 피해 갈 만큼 충분히 지혜로운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역사는 자기가 한 일이 뭔지 모르는 멍청이들에 의해 쓰인다.”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이 말이 떠오른다.
‘아니, 어째서 이런 멍청이가 저렇게 큰 힘을 쥐고 세상을 휘두르는 거지?’ 우리의 직장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SNS를 하다가, 뉴스를 보면서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생각이다.
윈스턴 처칠의 이 말이 이번 대선에 딱 맞아들어가는 것 같아서 슬프다.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컸다.” 사실 어리석음은 그 어떤 요소보다도 인류의 탄생기부터 현시대까지 끊임없이 역사의 불길을 이어온 원동력이었다.
『바보의 세계』에서는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우리 인간들이 행한 멍청한 행각, 각 시대와 문화마다 어리석음을 규정하던 방식을 각 분야의 석학들의 유쾌한 필치로 만날 수 있다.
심리학자이자 인문과학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저자는 전작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로 화제를 일으킨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이다.
이번 책에서는 인류사적 차원에서 어리석음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려 각 분야 전문가를 찾아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다양한 시대에 따라 선사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미래까지, 지역별로 고대 문명 발상지인 이집트, 인도, 중국과 그리스, 로마시대를 지나 저자의 연고지인 프랑스까지를 넘나든다.
분야별로는 문학, 정치, 의학, 환경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슈별로 인종, 식민, 성차별, 유대인 문제 등을 망라하는 35개 주제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해박한 지식이 드러나는 유의미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지금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점성술이나 사주, 기타 각종 예언 등을 믿고 있지만 중세만 해도 이런 점성술은 과학적 학문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성을 띤 분야였음에도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마져 도리어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보다 더 과학적인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처럼 당시는 어리석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슬기로웠다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속에서 어리석음과 멍청함이 또 어떻게 역사를 바꾸고 우리 인류 삶의 원동력이 됐는지 역사적인 통찰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류의 역사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이 없었던 '어리석음' 또는 '바보', '멍청이'라는 표현으로 인간의 역사를 다시금 볼 수 있게 한 저자가 바라보는 시각이 대단히 신선합니다. 논란 거리의 근거를 배제하더라도 인간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 점은 높은 살만한 것 같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데 부추기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키우고, 진실을 떳떳이 말하지 않아서 가로막고, 희망을 자의로 부수고 배반한 인간은 늘 공범이고 그 희생자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각 분야 35명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인류의 바보짓의 연대기가 사뭇 흥미롭습니다. 어리석음의 기원과 중세의 점성술과 주술, 여자의 인식, 노예, 의학의 어리석음, 인종차별, 리더의 멍청이, 식민사, 세계화 등 인간의 어리석음의 전 분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방대합니다.
하나의 예가 인간은 폭력적이라는 일반적인 지식들이 실제는 폭력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지 않으며, 폭력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하여 원한, 증오, 적개심과 같은 몇몇 사회적 일탈로 인해 발생한 요구불만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인간 조건에서 때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산물이 셈이라는 겁니다.
방대한 자료만큼이나 모든 것을 단기간에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간의 어리석음의 역사를 정리된 서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벽돌 책 독파의 희열과 인간 역사의 다른 모습을 접한다는 희열도 맞볼 수 있는 기회로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