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분야 전체
크레마클럽 허브

사단칠정을 논하다

이황,기대승 공저 / 임헌규 | 책세상 | 2015년 11월 15일 리뷰 총점 8.5 (12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  종이책 리뷰 (2건)
  •  eBook 리뷰 (2건)
  •  종이책 한줄평 (3건)
  •  eBook 한줄평 (5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파일정보
EPUB(DRM) 19.56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도서의 시리즈

내서재에 모두 추가

이 상품의 태그

책 소개

인간 심성의 기원을 탐구한 두 성리학자의 철학적 논쟁
‘사단’과 ‘칠정’의 발현을 파헤쳐 한국적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탑승객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온 나라가 충격과 비탄에 빠진 가운데 노란 리본의 물결이 출렁였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성금을 내는 사람들, 서명을 하고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편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가해자에게는 분노가, 피해자에게는 연민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처럼 순수하게 선한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찍이 조선 시대에 도덕적 본성과 자연적 감정의 기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전개한 성리학자 두 사람이 있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다. 이들은 사단四端(측은·수오·사양·시비로 대표되는 순수하게 선한 도덕 감정)과 칠정七情(희·로·애·구·애·오·욕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온갖 감정 일반)이라는 성리학 개념을 깊이 탐구해 각각의 기원과 발현 과정을 논함으로써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먼저 대학자로 존숭받던 이황이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에 따라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각각 이치理와 기운氣으로 분별했고, 이에 30대 초반의 신진학자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이치와 기운이 겸해 함께 발현하는 것으로 나누어 귀속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황이 자신의 입론을 수정한 서간을 보내며 두 사람의 ‘사단칠정론’이 시작되었다.
나이와 지위의 간극을 뛰어넘어 8년에 걸쳐 진심 어린 서신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거듭한 이들의 논쟁은 성리학적 형이상학 개념인 이치와 기운으로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한 첫 번째 논쟁으로서 이후 조선 성리학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고, 보통의 감정과 선한 도덕 감정의 문제를 성리학계의 화두로 끌어올리며 인간 심성의 구조와 인간의 바른 길을 구하는 학문인 심성론과 수양론을 이끌었다. 조선시대 3대 논쟁(사단칠정론, 인심도심 논쟁, 인물성동이론)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사단칠정 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모든 논쟁을 유발한 발원지로서 이후 한국 유교와 학자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근본 사건이다. 도덕적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인간됨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고투했던 퇴계와 고봉의 철학 논쟁은 우리 자신의 도덕적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치’와 ‘기운’으로 ‘사단’과 ‘칠정’의 설을 정립하다
26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지적 논쟁, 서신으로 이루어진 두 학자의 대결
이치와 기운은 본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우주 만물을 정초할 때 사용했던 용어다. 주자는 사람, 하늘과 땅, 만물의 생성 과정을 이치와 기운으로 설명했으나 이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론은 미완인 채로 남아 있었다. 심성론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자의 주된 관심이 우주론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사단과 칠정을 주자의 이기론으로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고, 그 선두에 이황과 기대승이 있었다. 이들의 사단칠정론은 최초로 사단과 칠정의 기원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한 논쟁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논쟁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었다.
두 사람은 학문적 위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고 나이 차이도 26년이나 되었지만, 기대승이 학문적인 순수한 열정으로 호기롭고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자 이황은 스스로 잘못 생각한 부분은 겸허히 인정하고 고치며 진지한 자세로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대학자와 신진학자라는 학계 지위의 간극을 초월해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도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묻고 답하며 8년 동안이나 첨예한 논쟁을 이어나갔다. 사단칠정론은 두 사람의 진실한 우정과 학자로서의 기개가 오롯이 담겨 있는 논쟁이다. 이들의 논쟁은 이후 조선 성리학파들 사이에 다시 갈래가 나뉘어 계속해서 관련 논쟁들을 파생하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왔고, 우리나라의 성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이황의 주장은 인간 내면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근거를 확립하여 사람들이 수양을 함으로써 선하고 인간적인 자기완성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함의하는 바와 영향력이 매우 크다.

사단칠정론, ‘호발설’과 ‘주기론’의 대립
이황과 기대승은 둘 다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했으나 기본적인 입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논쟁을 거듭하며 서로 자신의 입론을 보완하고 고쳐 합일점을 찾아가면서도 중심이 되는 핵심 주장들은 확고히 유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이 치열한 접점을 이루고 다른 학자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차이점에 초점을 맞춰 갈래를 구분한 이황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각각 분리해 귀속시켰고 끝까지 그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처음에 ‘사단은 이치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운의 발현이다’라고 언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치와 기운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기대승의 반론에 따라 이 최초의 입론을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치이기 때문이니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현은 기운을 겸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있다’라고 고쳐 제시했고, 이것을 다시 수정해 ‘사단은 이치가 발현함에 기운이 따르고, 칠정은 기운이 발현함에 이치가 타는 것이다’라고 하며 최종 정론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각각 유래하는 곳에 따라 구별해 말하지 않으면 인욕이 천리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단의 기원을 칠정과 달리 이치에 귀속시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치의 능동적인 발현을 주장한 이러한 이황의 입론은 ‘호발설’이라고 불린다.

공통점에 주목해 하나임을 주장한 기대승
반면에 기대승은 사단이 비록 순수하게 선하다고 해도 그것 역시 감정이므로 칠정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너무 심하게 구분해 다른 곳에 귀속시켰다고 지적하며, 사단은 칠정이 발현해 절도에 맞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칠정 이외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래서 논쟁의 종결부에서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나누어 귀속시키는 데에도 뜻이 있고 이유가 있다며 이황의 입론을 인정하면서도, 이치와 기운이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고 또 이치와 기운, 선과 악을 겸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감정이 발현함에 혹 이치가 움직여 기운이 함께 갖추어지기도 하고, 혹 기운이 감응해 이치가 타기도 한다.” 기대승의 주장은 기운을 강조하는 ‘주기론’에 속한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이 조선 성리학에 미친 영향
퇴계 이황, 성리학의 기초를 닦다
‘사단은 이치가 발현할 때 기운이 따르는 것이다’라는 이황의 주장은 학계에서 비판과 옹호를 한꺼번에 받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왜 사단을 굳이 칠정에서 분리했을까? 이황에게는 ‘사단’이라고 하는 순수한 도덕 감정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사단칠정론의 핵심 과제였다. 즉 그가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이치와 기운에 따로 둔 것은 일반적인 기쁨, 슬픔 등의 감정과 구별되는 순수한 인간 본성의 근거를 확립하려 했기 때문이다.

퇴계는 고봉의 이치·기운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끝까지 “이치와 기운은 서로 섞일 수 없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아도 이치는 스스로 이치이고, 기운은 스스로 기운”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사단의 근거로 사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문답에서 드러나듯 ‘인간됨의 근거 확보’에 있었다. 사단칠정론을 통해 퇴계는 인간됨의 근거를 확보하고, 진정한 인간 본성(이치)에서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있음을 주목하고 이 마음을 확충해 인간 본래의 덕을 가장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완성인 성인이 되는 길임을 밝혔다.
_옮긴이 해제에서

결국 이치와 기운을 분리해 ‘서로 섞일 수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춘 이황의 학설은 ‘인욕을 억누르고 천리를 따르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수양을 통해 사람이 도덕적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며, 이를 통해 이황은 성리학적 수양철학의 큰 길을 제시했다.

성리학의 또 다른 큰 줄기, 율곡의 실천 철학에 영향을 준 고봉 기대승
사실상 후대의 평가는 이황보다는 기대승에게 우호적이었다. 율곡 이이는 ‘기운이 발동할 때에 이치가 타는 하나의 길만이 가능하다’라는 입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며 기대승의 논변에 힘을 실었고, 다산 정약용 또한 이황의 설에 대한 의혹을 드러내며 이이와 동일한 주장을 폈다. 이는 이치와 기운이 실제 현실에서는 혼재되어 구분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서, 이치보다는 기운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단칠정론에서의 기대승의 주기론은 이후 율곡 이이에게 흡수되어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이는 이후 이황이 닦아놓은 조선 성리학을 정착시키고 한국 사회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퇴계退溪 이황 李滉(1501∼1570) : : 한국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퇴계 退溪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진사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1527년 소과에, 1534년 문과 을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을사사화(1545) 때 모함을 당하고, 친형 이해李瀣가 참소로 목숨을 잃자 벼슬에 대한 뜻을 거두고 도산서원을 세워 후학 양성에 열중했다. 조정으로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다양한 직책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병을 이유로 응하지 않다가, 말년에 대제학과 지경연사를 겸직하며 정치의 방향을 6조목으로 제시한〈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와 임금의 학문하는 길에 대한 열 가지 도리를 담은〈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 올렸다. 1569년에 다시 병을 이유로 낙향했다가, 이듬해 아끼던 매화분에 물을 주게 하고 침상을 정돈한 후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1600년에 그의 문집이 편찬되었으며, 1610년에는 문묘에 배향되었다. 당대에만도 유성룡·정구·김성일·조목·이덕홍·기대승 등 260여 명이 그의 학풍을 따랐으며, 이후 영남학파의 종주로 존숭되었다. 임진왜란 때 그의 문집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일본 근세 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 :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峯과 존재存齋,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1549년 소과에, 1558년 식년문과 을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성균관대사성,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다가 말년인 1572년에 병을 얻어 귀향하던 중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임종을 맞이했다. 1558년 김인후·이항 등과 태극설太極說을 논했고, 정지운의《천명도설天命圖說》을 탐구하면서 퇴계를 찾아가 의견을 나눈 뒤 12년간 그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 가운데 1559년부터 1566년까지 8년 동안 주고받은 사단칠정에 대한 논쟁은 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평가받는다. 제자로는 정운룡·고경명·최경회·최시망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논사록 論思錄》《왕복서往復書》《이기왕복서 理氣往復書》《주자문록 朱子文錄》《고봉집高峯集》등이 있다.
옮긴이 임헌규 : : 경북 의성 출생으로 경북대에서 신오현 선생의 지도로 철학에 입문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서양철학,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동양철학, 석사·박사), 그리고 미국 하와이대(동서비교철학)에서 공부했으며 유도회 부설 한문연수원에서 3년간 한학을 배웠다. 현재 강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며, 동양고전학회 회장,《동방학》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유가의 심성론과 현대 심리철학》《노자 도덕경 해설》《소유의 욕망, 이利란 무엇인가》《노자, 도와 덕이 실현된 삶》《유가철학의 이해》(공저)《장자사상의 이해》(공저)《기독교와 현대사회》(공저)《종교, 부를 허하다》(공저)《대학의 종합적 고찰》(공저)《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노자 철학 연구》《장자, 고대중국의 실존주의》《주자의 철학》《노자》《인설》《답성호원》《후설의 현상학》《하버마스 다시읽기》《현대 유럽철학의 흐름》《데리다, 푸코,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등이 있고, 유가와 도가의 형이상학과 심성론에 대한 논문을 주로 발표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들어가는 말 | 임헌규 7
《천명도설》 후서 부록 도안 15
사단칠정을 논하다 33
1. 기명언 대승에게 드림 35
2. 기명언의 사단칠정은 이치와 기운으로 나눌 수 없다는 논변 37
3.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첫 번째 서간 40
4. 고봉이 퇴계에게 답한, 사단칠정을 논한 서간 46
5.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두 번째 서간 81
6. 고봉이 퇴계가 사단칠정을 재론한 것에 대해 답한 서간 114
7.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세 번째 서간 136
8. 기명언의 사단칠정 후설 141
9. 기명언의 사단칠정 총론 144
10. 거듭 기명언에게 답함 147
해제 ? 조선 최대의 지적 사건, 사단칠정 논쟁 | 임헌규 149
1. 사단칠정론의 배경 149
2. 사단칠정론의 경과 151
(1) 발단과 고봉의 문제 제기 151
(2) 퇴계의 1차 답변 154
(3) 고봉의 반론 157
(4) 퇴계의 수정안과 반론 159
(5) 고봉의 재반론과 논쟁의 타협 161
3. 논쟁의 평가와 현대적 의의 164
용어 해설 179
주 189
더 읽어야 할 자료들 211
옮긴이에 대하여 215

출판사 리뷰

인간 심성의 기원을 탐구한 두 성리학자의 철학적 논쟁
‘사단’과 ‘칠정’의 발현을 파헤쳐 한국적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하여 수백 명의 탑승객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자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에 노란 리본의 물결이 출렁였고,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성금을 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본능적이고 도덕적인 반응들은 흉악한 범죄를 접했을 때에도 나타난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악행에 대한 보도를 들으면 자연스레 가해자에게는 분노가, 피해자에게는 연민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처럼 순수하게 선한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수한 인간다운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일찍이 조선 시대에 도덕적 본성과 자연적 감정의 기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전개한 성리학자 두 사람이 있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다. 이들은 사단四端(측은·수오·사양·시비로 대표되는 순수하게 선한 도덕 감정)과 칠정七情(희·로·애·구·애·오·욕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온갖 감정 일반)이라는 성리학 개념을 깊이 탐구해 각각의 기원과 발현 과정을 논함으로써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먼저 대학자로 존숭받던 이황이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에 따라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이치理와 기운氣으로 분별했고, 이에 학계에 막 진출한 30대 초반의 신진학자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이치와 기운이 겸해 함께 발현하는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이황이 자신의 입론을 수정한 서간을 보내며 두 사람의 사단칠정론이 시작되었다. 학문적 지위의 간극을 뛰어넘어 8년 동안이나 진심어린 서신을 통해 서로의 논변을 주고받으며 전개된 이들의 논쟁은 성리학적 형이상학 개념인 이치와 기운으로 사람들의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한 첫 번째 논쟁으로서 이후 조선 성리학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고, 보통의 감정과 선한 도덕 감정의 문제를 성리학계에 지배적인 화두로 끌어올리며 인간 심성의 구조와 인간의 자세의 바른 길을 구하는 학문인 심성론과 수양론을 이끌었다.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은 한국 유교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며 거의 모든 성리학자들에게 확대되어 이후로도 많은 논쟁을 낳은 근본적이고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치’와 ‘기운’으로 ‘사단’과 ‘칠정’의 설을 정립하다
26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지적 논쟁, 서신으로 이루어진 두 학자의 대결

이치와 기운은 본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우주 만물을 정초할 때 사용했던 용어다. 주자는 사람, 하늘과 땅, 만물의 생성 과정을 이치와 기운으로 설명했으나 이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론은 미완성된 채로 남아 있었다. 심성론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자의 주된 관심이 우주론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단과 칠정을 주자의 이기론으로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고, 그 선두에 이황과 기대승이 있었다. 이들의 사단칠정론은 최초로 사단과 칠정의 기원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한 논쟁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대규모 논쟁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26세였지만 기대승이 학문적인 순수한 열정으로 호기롭고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자 이황은 스스로 잘못 생각한 부분은 겸허히 인정하고 고치며 진지한 자세로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대학자와 신진학자라는 학계 지위의 간극을 초월해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도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묻고 답하며 8년 동안이나 첨예한 논쟁을 이어나갔다. 사단칠정론은 두 사람의 진실한 우정과 학자로서의 기개가 오롯이 담겨 있는 논쟁이다. 이들의 논쟁은 이후 조선 성리학파들 사이에 다시 갈래가 나뉘어 계속해서 관련 논쟁들을 파생하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왔고, 우리나라의 성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중 특히 이황의 주장은 인간 내면의 도덕적인 본성에 대한 근거를 확립하여 사람들이 수양을 함으로써 선하고 인간적인 자기완성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함의하는 바와 영향력이 매우 크다.

사단칠정론, ‘호발설’과 ‘주기론’의 대립

이황과 기대승은 둘 다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했으나 기본적인 입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논쟁을 거듭하며 서로 자신의 입론을 보완하고 고쳐 합일점을 찾아가면서도 중심이 되는 핵심 주장들은 확고히 유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이 치열한 접점을 이루고 다른 학자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차이점에 초점을 맞춰 갈래를 구분한 이황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각각 분리해 귀속시켰고 끝까지 그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처음에 ‘사단은 이치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운의 발현이다’라고 언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치와 기운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기대승의 반론에 따라 이 최초의 입론을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치이기 때문이니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현은 기운을 겸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있다’라고 고쳐 제시했고, 이것을 다시 수정해 ‘사단은 이치가 발현함에 기운이 따르고, 칠정은 기운이 발현함에 이치가 타는 것이다’라고 하며 최종 정론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각각 유래하는 곳에 따라 구별해 말하지 않으면 인욕이 천리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단의 기원을 칠정과 달리 이치에 귀속시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치의 능동적인 발현을 주장한 이러한 이황의 입론은 ‘호발설’이라고 불린다.

공통점에 주목해 하나임을 주장한 기대승

반면에 기대승은 사단이 비록 순수하게 선하다고 해도 그것 역시 감정이므로 칠정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너무 심하게 구분해 다른 곳에 귀속시켰다고 지적하며, 사단은 칠정이 발현해 절도에 맞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칠정 이외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래서 논쟁의 종결부에서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나누어 귀속시키는 데에도 뜻이 있고 이유가 있다며 이황의 입론을 인정하면서도 이치와 기운이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고, 또한 이치와 기운을 겸한다는 입장을 지키면서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감정이 발현함에 혹 이치가 움직여 기운이 함께 갖추어지기도 하고, 혹 기운이 감응해 이치가 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기대승은 기운을 강조하는 ‘주기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이 조선 성리학에 미친 영향
퇴계 이황, 성리학의 기초를 닦다

‘사단은 이치가 발현할 때 기운이 따르는 것이다’라는 이황의 주장은 학계에서 비판과 옹호를 한꺼번에 받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왜 사단을 굳이 칠정에서 분리했을까? 옮긴이는 해제에서 이황이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이치와 기운에 따로 둔 이유는 바로 일반적인 기쁨, 슬픔 등의 감정과 구별되는 순수한 인간의 본성의 근거를 확립하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퇴계는 고봉의 이치·기운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끝까지 “이치와 기운은 서로 섞일 수 없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아도 이치는 스스로 이치이고, 기운은 스스로 기운”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사단의 근거로 사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문답에서 드러나듯 ‘인간됨의 근거 확보’에 있었다. 사단칠정론을 통해 퇴계는 인간됨의 근거를 확보하고, 진정한 인간 본성(이치)에서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있음을 주목하고 이 마음을 확충해 인간 본래의 덕을 가장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완성인 성인이 되는 길임을 밝혔다.
_옮긴이 해제에서

결국 이치와 기운을 분리해 ‘서로 섞일 수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춘 이황의 학설은 ‘인욕을 억누르고 천리를 따르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수양을 통해 사람이 도덕적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며, 이를 통해 이황은 성리학적 수양철학의 큰 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의 또 다른 큰 줄기, 율곡의 실천 철학에 영향을 준 고봉 기대승
사실상 후대의 평가는 이황보다는 기대승에게 우호적이었다. 명유 율곡 이이는 ‘기운이 발동할 때에 이치가 타는 하나의 길만이 가능하다’라는 입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며 기대승의 논변에 힘을 실었고, 다산 정약용 또한 이황의 설에 대한 의혹을 드러내며 이이와 동일한 내용을 주장했다. 이는 이치와 기운이 실제 현실에서는 혼재되어 구분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서, 이치보다는 기운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단칠정론에서의 기대승의 주기론은 이후 율곡 이이에게 흡수되어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이는 이후 이황이 닦아놓은 조선 성리학을 정착시키고 한국 사회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회원 리뷰 (4건)

한줄평 (8건)

0/5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