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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가 이번에는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의 미래를 바라본다
예스24 독자가 선정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세계 작가' 1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고양이』(전2권)가 전문 번역가 전미연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고양이』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고양이의 시각에서 인간의 문명을 바라보는 작품으로, 프랑스에서는 작년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잠』보다 높은 인기를 누렸다(프랑스에서 현재까지 30만 부 판매). 파리에서 살고 있는 암고양이 바스테트. 그녀는 ‘집사’가 틀어 놓은 TV 화면과 점점 잦아지는 골목길의 총성을 통해 그동안 당연시하던 안락한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무렵 바스테트는 옆집에 이사 온, 어떤 이유에선지 인간 세계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고양이 피타고라스와 친구가 되는데…….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타자의 시각을 도입하여, 인간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이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적절한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베르베르의 작업은 이미 첫 번째 작품인 『개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이번 『고양이』에서는 그 문제의식이 그동안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해 왔음을 알게 된다. 베르베르가 보기에, 이 지구상의 생물종들과의 대화는 필요하다. 단지 인간의 어떤 흥밋거리나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전쟁과 테러 등 자기 파괴적인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다룰 줄 알고, 과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의 에피소드들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리는 베르베르의 솜씨는 여전하다. 남성이 아닌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책 전체에서 남성 중심의 세계관과 ‘수컷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번역자인 전미연 씨는 후기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으로서 본인에게 이 소설은 각별한 만족을 주었으며, 베르베르가 암고양이 주인공을 그리며 보여 준 깊은 이해에 매료되었다고 쓰고 있다. 원제는 ‘Demain les chats’. [내일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미래는 고양이에게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이 이제까지는 <개미의 작가>로 기억되었다면 앞으로는 [고양이]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일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 언론에서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
예스24, 전자책 구독 서비스 ‘북클럽’ 1주년, 이용자 독서 행태 분석
2019년 11월 22일
2019년 10월 01일
2019년 06월 24일
2019년 03월 05일
[출판 특집] 2018년 상반기, 우리가 주목한 책 - 장은수 출판평론가
2018년 08월 02일
유명한 책인데 이제서 야 읽어보네요 ㅎㅎ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로서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에요
우리 집 고양이들도 저런 생각을 갖고 있을까란 생각과 함께
작가는 어떻게 이런 고양이의 시각에서 생각을 하지라는 궁금증이 유발되었던 책이네요ㅎㅎ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져서 흥미진진했어요
저희 집 고양이들은 어떤생각을 갖고있을지도 내심 궁금해졌어요 ㅎㅎ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접하면서 이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다른 많은 책을 봤지만 이 책 '고양이'는 개미를 연상케 해서 더욱 재미있게 봤다. 다른 종과의 교류를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많은 암고양이 바스테스의 사랑 피타고라스를 통해 인간과 고양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그런 과정속에서 인간의 잔인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엄청난 발전을 가져온 과학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간의 욕심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그로인해 인간멸종의 시간을 밟아 간다. 그것을 고양이의 시선에서 풀어가는 것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고양이는 그냥 동물의 시선이 아니라 또다른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개는 백스무 가지 인간의 어휘와 행동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
개는 열까지 셀 줄 알고 더하기나 빼기 같은 간단한 셈도 할 수 있다.
다섯 살짜리 인간 아이와 맞먹는 사고 능력을 지닌 셈이다.
반면 고양이는 숫자를 세거나 특정한 말에 반응하거나
인간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하게 가르치려 들면
즉시 쓸데없는 짓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한다.
인간으로 치면……
쉰 살 성인과 맞먹는 사고 능력을 지닌 셈이다."
에드몽 웰즈 교수(인간 과학자이자 고양이 소유자)
가끔 길을 가다 길고양이를 만난다. 벤치에 앉아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하는 건 아닌가 싶었던 때가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 도도하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뭔가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배고픈 걸까. 뭔가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관망하는 것 같기도 한 도도한 표정과 눈빛. 내가 고양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거기서 더 이상 확장될 이야깃거리가 없는 나와 고양이의 '거리'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선,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보고 평가한다면 불편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처럼 그 음흉한 속을 알 수 없기에 솔직히 궁금할 때도 있다.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이야기! 인간이 아닌 고양이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고양이들 이야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다.
이야기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로 생각의 틀을 뒤집어 놓더니 이제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세계를 바라보고 인류 역사의 핵심적인 역사를 아우르며 인생의 참된 진리를 터득하기에 이른다. <고양이>는 테러와 전쟁이 벌어지고 페스트까지 덮치게 되면서 인류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위기에 빠진 인류 문명을 구원하기 위해 고민하는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 이 두 고양이의 지혜를 유머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고양이가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위태롭고 짜릿한 고양이들의 모험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우리 인간의 이기심, 폭력성, 학대, 잔인함, 전쟁과 테러 등 우리가 눈 감았던 역사를 폭로함으로써 우리 인류 문명의 과정 또한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인간 스스로 자멸해가는 순간에 '인간다운'이 아닌 '고양이 다운' 삶의 대안을 제시한다. 종과 종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고 협동하며 함께 진화해가는 것! 1인칭 화자인 고양이 바스테트와 지적인 고양이 피타고라스를 통해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그들에게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인간들과 화해했듯이 쥐들과도 화해할 날이 올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가능해. 잔인한 침략자들과는 평화를 구현할 수 없어.나는 피타고라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아직 이런 거대한 주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견이 없다. 하지만 고민을 시작했다는 자체가 이미 내 정신이 한발 물러나 거시적 차원에서 시간과 공간을 대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쥐들이 세상을 지배할까 봐 두려웠다면 지금은 쥐들이 다른 종들과 화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양이 2> 216쪽
너는 너 나는 나, 각기 제 잘났다고 떠들고 소통 따위 버린 지 오래인 인간 세계에서 고양이 바스테트는 다른 종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소통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대안을 찾고 원하는 방향으로 강요하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생물종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스테트는 마지막 대안으로서 소통을 강조한다. 소통을 통해 결합하고 뜻을 모으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때론 그것이 무모할지라도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큰 장애물을 만나 극복하고 이겨나가는 과정에 있다. 누구도 대처 방법을 몰랐기에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상황에 처했든 누군가는 따르고 방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고 코로나와 싸우고 이겨나가기 위해 애를 쓰는 바스테트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그나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 책이 주는 묘한 감동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그냥 흘려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가 오랜 관찰과 연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궁극적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미 있다. 그 세계 안에서 누구든 사랑받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 누구는 신처럼 살아가기도 하고.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동네 샛길 학교 근처에 아이들이 돌보는 고양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센스 넘치는 고양이 집도 있고 고양이의 특징을 살려 예쁜 이름도 붙여 주었다. 아이들은 가까이서 고양이를 관찰하고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한데도 질문을 던진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 비친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가 아닌 것만 같다. 어쩌면 순수한 영혼들이 영혼의 소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지켜낼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면 그때 너희들은 피타고라스가 되고 바스테트가 되는 거야.
새로운 너희들의 세상을 만드는 거지.
그게 어쩌면 현명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출처 입력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있다.
요즘 유명한 소설작가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알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고양이라는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품 중 하나다.
물론 최근에 한 편이 출간됐고 그 전에 다른 책도 한 권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지금도 최근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게 아주 독특하다.
이 책이 1권이고 2권이 있는데 과연 내가 2권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든다.
베르나르베르베르님의고양이를읽고쓰는리뷰입니다리뷰에스포가포함되어있을가능성이높습니다고양이에대하여관심이없었는데고양이책을읽으면서고양이들이생각하는세상에대한시선을조금은생각할수있었고고양이가왜매력적이고요물이라고하는지를느꼈습니다본능에따르는동물임에틀림없지만그것이인간과무엇이다른것인가생각하게되었습니다재밌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에는 고양이다.
이책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고양이의 사유를 통해 진단하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고양이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그저 자신들을 수발들고 있는 집사로서의 존재이다.
주인공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모든 생명체의 종을 넘어서는 소통을 시도하지만, 생쥐, 물고기 , 사람 등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러는 와중에 이웃집 숫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나게 된다.
피타고라스는 실험실 실험용 고양이 였다. 그의 머리속의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라 불리는 기계장치를 통해 인간이 생산해낸 모든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할 수 있다.
usb단자를 통해 자유로이 인터넷을 접속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러한 피타고라스를 통해 바스테트 또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게 되고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때마침 이야기 배경이 되고 있는 도시 '파리'는 테러와 전쟁, 변종 페스트의 창궐로 인하여 폐허가 되고 도시는 페스트균을 머금은 쥐들이 장악하게 된다.
도시는 더이상 사람과 고양이가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되고, 고양이들은 파리 외곽 블로뉴 숲으로 모여든다.
피타고라스의 주도로 고양이군대를 조직해 쥐떼를 몰아내고 도시를 되찾고자 하는 고양이들은 인간들과 연합해 시뉴섬이라는 곳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고 쥐들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피타고라스와 바스테트는 인간과 고양이의 종말적 상황을 마주하고, 이 시뉴섬을 근거지로 하여 모든 생명 종이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계획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신비'한 소재를 많이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고양이 바스테트와 샤먼인 인간 '파트리샤'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인간과 고양이의 소통을 그렸고,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구현해 나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결말즈음에 와서야 옛날 이집트 여신으로 숭배받던 고양이 형상의 '바스테트'와
고향 그리스를 떠나 타국을 떠돌다 이탈리아 크로토네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피타고라스'를 이작품의 주인공으로 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주인공 고양이들을 통해,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지구상 모든 생명, 자연과의 상호 소통을 통한 공생의 역할을 우리 인간들이 주역이 되어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