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기 로마의 속주였던 그리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그가 활동할 당시 그리스 지식인들은 로마의 통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도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고 다양한 관직을 맡았다. 신탁이 정확하다고 소문난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소도시 카이로네아가 플루타르코스의 고향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플라톤학파 철학자 암모니오스에게 수학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흔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불리는 『대비열전』이다. 『대비열전』 외에 그의 작품 78편이 현존하는데, 이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 『모랄리아』다. 이 책은 그중 ‘지혜’와 관련된 다...
제정기 로마의 속주였던 그리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그가 활동할 당시 그리스 지식인들은 로마의 통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도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고 다양한 관직을 맡았다. 신탁이 정확하다고 소문난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소도시 카이로네아가 플루타르코스의 고향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플라톤학파 철학자 암모니오스에게 수학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흔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불리는 『대비열전』이다. 『대비열전』 외에 그의 작품 78편이 현존하는데, 이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 『모랄리아』다. 이 책은 그중 ‘지혜’와 관련된 다섯 편을 담았다. 플루타르코스는 생애 말년의 30년 정도를 아폴론신전의 신관으로 봉직하며 델포이의 성역을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델포이와 카이로네아의 주민들은 존경의 표시로 아폴론신전에 그의 흉상을 만들어 세웠다. 그는 실로 그리스(교육)와 로마(권력)의 관계를 대표하는 저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