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책을 모셔둔 지는 좀 되었다. 물론... 한 두 권이 아니다. 눈길이 자주가면서 조바심이 드는 책들도 읽고, 시도만 하고 시작을 못하는 책들도 있다.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고 토론을 해야 좋은 책들도 적지 않지만, 다들 번다하게 사는 걸 아는지라 모임을 제안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나는 마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재료를 보고 자책만 하는 기분으로 <유한계급론>을 읽게 되는 날을 고대했다. 반갑게도(?)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현대지성에서 모셔만 둔 책 읽기 챌린지 이벤트를 마련해 주었다.
1일 1쪽이란 독서의 부담을 100% 덜어주는 마법 같은 표현이었다. 근래에 이렇게 즐겁고 기쁘게 뭘 덥석 시작한 일이 있나 싶게 밴드에 가입했다. 1일 1쪽의 마법이 내게 미친 영향은 대단해서 1일 1쪽 이상 매일 술술 읽었다. 그동안 눈을 가린 건 부담감이었나 싶게.
너무 느긋하게 즐기느라 마지막 며칠은 분량을 늘렸지만, 이미 익숙해진 문장과 내용 파악이 상당히 된 책이라 그 또한 무리가 없었다. 읽었고 기록이 남았다. 만족스럽다. 지난 달 일주일 독파 모임은 다들 울면서 진행했는데... 즐거운 독서의 비결은 ‘한 달’ 이구나.
무섬증이 가시니 다음 책은 뭘로 할까 싶은 생각이 분주하다. 11월 중에 2차 챌린지가 오픈될 예정이다. 처음처럼 설레고 기쁘다.
! 같은 고민이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 그것도 다 다른 책 - 것만으로도 무척 다정한 댓글 소통이 가능한 다정한 공간이 생깁니다.
<유한계급론>
명징한 사유와 분석을 쓰인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 한편에는 사는 일이 더 불편해질 것이란 두려움도 공존한다. 고찰과 실천을 요구하는 공부는 대개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을 늘린다.
120년 전 - 읽고 나니 유사성이 많아서 그리 오래 전이란 생각이 안 든다 - 도금(gilded) 시대 미국 사회를 관찰한 책이 현대 사회를 분석한 사회학 보고서 같으니, 미국식 삶의 양식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패권이었단 자각이 절로 든다.
물론 빈부격차와 계급문화는 전 세계에 온존하는 질서이며, 이는 국경에 무관한 빈곤층의 보수화, 유한계급에의 동경, 흉내 내고 싶은 욕구로 인한 과시적 여가와 소비현상 - 유한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주장’을 실증하는 필요한 데이터들이다. 베블런은 이런 자료를 일상생활에서 드러난 사례들에서 찾았다. 학술적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가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엄밀히 따져보면 워크푸어와 가장 비슷한 삶을 사는지라, 불쑥거리는 감정의 기저에 온갖 복잡한 배경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노, 경멸, 우월감, 만성피로, 좌절, 절망, 망상 등등. 다행스럽게도 좋은 이들을 만나 늘 배우고 살지 않았다면 더 이상한 인간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자연스럽게 지혜가 비례증가하진 않지만, 너무 늦지 않게 물건과 소유에 대한 욕구를 절제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다. 그중에는 포기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소비 중에서도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들의 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 것만은 만족한다.
반백년을 살아보니, 기성세대의 변화와 실천으로 세상을 개선시키는 일은 어렵다고 본다. 살던 대로 살 가능성이 훨씬 높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젊은이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빈부격차의 위계를 인지하고, 부를 부러워하고 추구하기보다, 구조 자체를 뒤집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마 여전히 주식 이야기를 하고, 돈에 상당히 휘둘리며 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깃발을 들면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 걸을 기성세대들이 많을 것이란 희망은 낙관하고 싶은 나의 의지이다. 소유와 소비가 명예와 존경의 바탕이 아니란 통찰이 사회의 상식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1866년에 공개된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저 "죄와 벌"을 1984년에 읽으면서 난 전율을 느꼈다. 당시 120년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계급갈등 속에 분노하는 사회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인간이 느끼는 갈등을 동시대처럼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고전에 대한 엄청난 대우를 했다. 현대인이 쓰는 책은 그 아류작들일 뿐이라고 대학 첫 미팅 때 서점주인을 아빠로 둔 독서광 여대생에게 퍼부었었다. 고전예찬론자로서^^
1899년에 발간되었는데 12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필독서적으로 추천되는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추천하고 해설하지 않았으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건데....
그러나 위에 극찬한 도스토예프스키와 달리 120여년전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정도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도무지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죄와 벌"은 소설이어서 잘 읽혀졌던 것과의 차이가 있지만 책을 번역한 이의 '해제'가 없었다면 이런 정도의 감상평도 쓰기 힘들었을 것 같다. 고전예찬론자로서의 이력은 먼 대학시절의 멋부림이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최근에도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은데...
번역자는 그래도 대학초년생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난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고전을 원문대로 읽어서 얻을 가치보다는 그 추종자들이 해설을 곁드린 경제학 서적을 읽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소비'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생겨 여러 책을 검색하다가 이 책까지 왔다. 언제부터인가 명품 소비 현상의 이면을 분석할 때 단골 이론으로 등장하는 '베블런 효과'. 이 이론의 창시자가 소스타인 베블런이라니 더욱 호기심이 갔다. 먼저 '유한계급'이라는 말은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이 정의에서부터 시작되는 책의 구성은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 금전이 좌우하는 취향 및 의복 등으로 이어진다. 이 계층의 일상과 의식의 유래를 파고드는 베블런의 통찰력을 수시로 느낄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상류층을 꿰뚫는 분석은 오늘날에 빗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맥이 관통한다. 소비와 유행의 측면에서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짐멜의 저서와 함께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