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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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유시민 저
김정선 저 저
유선경 저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해 일한다.
내가 이 일을 한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700여 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드렸다. 그저 죽음을 돌보는 일에 끌려서, 누구에게 무엇도 받지 않고서 말이다. 그중 대부분은 무연고로 돌아가신 고독사 시신들, 돈이 없어 유족들도 장례를 꺼리는 기초수급자와 생활보호대상자의 시신들이었다.
p.13
저자 강봉희씨는 장례지도사로 2004년 11월에 장례봉사단을 꾸리고 20년 가까이 ‘장례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다.
원래는 건축,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시다가 1996년, 한창인 사십대일 때 갑자기 방광암3-4기 진단을 받았다. 1999년에는 암이 재발하는 등 2002년까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여 창 밖을 보니 병실 옆에 있던 장례식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 일을 해보면 어떨까, 내가 죽은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투병 중임에도 그는 마음 속에 희망을 다졌다. 2003년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장례지도학과를 수료했다. 그리고 장례지도사가 되었다.
그는 장례지도사가 되기 전 자신의 성격이 아주 날카로웠다고 묘사한다. 180센티미터에 56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였으며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람이었다고. 주변에서는 성질이 못되고 무서운 놈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은 이후 그가 가진 완벽주의를 내려놓게 된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고 체중도 늘었다고.
이익이니 손해니 세상의 복잡한 것을 모두 내려놓으니 그에게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남았다.
이 책은 그가 장례지도사로서 만난 수많은 죽음들을 이야기한다.
코로나 사망 환자를 처음으로 수습한 이야기부터 죽음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잘못된 장례 문화, 연고자 없는 슬픔 죽음과 어떤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까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쿨하게 살아야 하니 사는 동안 ‘삶’에 대해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삶과 정반대인 것 같은 죽음 역시 아름답게 마무리 되어야 한다. 삶은 끝인 죽음이 있기에 아름답고 찬란하며 슬프고 재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
죽음은 재미 없다.
죽으면 재미나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반대로 내가 짊어진 짐이나 슬픔이 사라지는 계기이니 마냥 허무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재미있다. 죽음이라고 하면 마냥 슬프고 아픈 이야기만 가득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읽으면서 코가 찡해지다가도 저자의 해학섞인 문장덕분에 웃게 된다.
14 죽은 뒤에 리무진을 타면 무엇 하나
25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나쁜 인간들이었다
27 명당은 ‘좌택시 우버스 1분’이라는 걸 잊지 말길
부분은 실컷 웃으면서 읽었다.
명당은 ‘좌택시 우버스 1분’ ㅋㅋㅋ 좌청룡 우백호같은 풍수지리보다 좌택시 우버스 1분 내의 거리야말로 명당이라고!
죽은 사람을 위해 허례허식하지 말며 명당을 고집하지 말라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좌택시 우버스 1분으로 압축하여 나타낼 수 있다.
죽은 사람에게 좋은 수의, 꽃가마, 리무진을 제공하며 뭐하나. 이미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더 자주 찾아뵙고 연락드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또한 풍수지리에 입각한 명당 자리는 결국 자기를 포함한 자손 잘되기를 빌며 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니 죽은 사람과 상관없는 것이다.
수의도 그렇다.
지금 수의로 삼베옷을 지어 입는 것은 일제시대 이후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죄로 자손들이 까끌하고 좋지 않은 재질의 죄수복의 일종인 삼베옷을 입었는데 그게 와전되어 돌아가신 분이 입는 수의가 삼베옷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죄수들이 입는 옷(수의)가 둔갑되어 돌아가신 분이 입는 옷(수의)가 되었다.
조선 시대나 그 이전에는 명주나 비단옷 혹은 평상시에 입던 옷을 입혀드렸다고 한다.
저자 역시 죽으면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옷을 입히라 주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고.
그러고보니 입어보지 못한 삼베옷보다는 평소 애용하던 옷이 나을 것 같다.
‘장례 쇼핑’ 이라니?
저자는 미리 장례 쇼핑을 다녀보라고 권유한다.
한국은 죽음에 대해 다른 나라에 비해 폐쇄적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시내 한복판에 장례 시설이나 묘지가 조성될 수 없다.
혐오 시설이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영원히 살 것 같이 살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쉬쉬하며 외면하는 문화가 지금의 장례 문화를 만들었다.
잘 모르다보니 허례허식만 가득찬 장례식이 되기도 하고 고인의 뜻이나 유족의 뜻에 어긋나기도 한다. 남의 말에 실컷 휘둘린 피곤한 죽음은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전에 미리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다.
다양한 장례식장을 다녀보며 항목들을 비교해보고, 어떤 옷, 어떤 관을 쓸 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잠식되어 달아나지 말고 정면 승부를 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과 삶이 결국 같은 단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내 생각, 행동, 말투, 경제 활동, 생활 반경, 가족, 친구 등 모든 것이 ‘죽음’으로 결산된다.
그러니 나도 모르는 계산서를 받아들며 죽음을 맞는 것보다 미리 준비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염습 과정에서 뻣뻣하게 굳어진 시신들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피를 토하며 세상을 하직하는 분들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죽음은 내 삶의 결산이구나.
내 건강 상태는 물론 평소 자세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구나.
그것이 죽음이구나.
나도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나니 예전처럼 철부지같이 죽음을 마냥 귀신보듯 피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은 두렵다. 그래도 인식하지 않는다고 죽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삶보다 더 끈끈하게 나에게 붙어있는 존재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생각하다보니 현재 내 생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남긴 기록들과 앞으로 나올 기록들 그리고 여러가지 유무형의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도 고민해보았다. 아직 답은 모르겠다. 그래도 다가올 죽음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러니 매 순간을 알차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죽음을 이야기하다보니 사는 것에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 아이러니랄까? 정말 유명한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아이러니하다.
죽음이 두렵기만 한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일단 이 책에는 웃음이 있으니 두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시신을 남긴다. 아무리 자신의 죽음을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시신을 거두어 줄 타인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허나 ‘죽음’이 소외된 시대, 시신과 접촉하는 일을 좋아할 이는 거의 없다.
'죽음학’ 서적 대부분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의사’들이 저술했지만, 그와 별개로 더 이상 의사들이 필요 없어진 이후, 그러니까 사람이 죽은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맡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른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이 연결된 시간, 공간, 사람들과 거기서 파생된 경험, 감정, 교훈 말이다. 이 책은 죽은 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례지도사’의 이야기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저자는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해 일하기로 다짐하고, 시신을 염(殮)하고 유족들의 장례 절차를 돕는 장례지도사의 길을 걸어왔다. 나아가 장례를 ‘예식’이 아닌 ‘서비스’의 영역으로 발상을 전환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조차 이윤을 창출하는 유명 상조회사 소속의 장례지도사가 아닌, 가족과 자신의 장례마저 치를 형편이 못 되는 이들을 금전적 보상 없이 도와주는 ‘장례봉사자’로서 20년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저자의 손을 거쳐 떠나보내는 이들은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 고독사, 코로나 사망자 등 생의 끝에서야 고통의 끝을 낸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은 죽음을 기꺼이 돌보았던 저자의 경험은 꼭 기록으로 남겨져야 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쓴 결심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의 한 사람인 내가 보증한다. 정말 옳은 일을 하셨다.)
사망 후 시신의 부패와 염습 과정, 장례 절차 등 이 분야의 전문가만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도 그 자체로 유익했지만, 그보다는 누구나 외면하고 (어쩌면 혐오하기까지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또는 그 이후에 정리된 저자 고유의 진솔한 사유에 감동했고, 진지한 당부를 가슴 한 켠에 새겼다. 또한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장례식, 허례허식으로 훼손된 제사의 본질, 죽은 자와 산 사람에 대한 예의 등 죽음을 둘러싼 일들에 무지와 더불어 왜곡된 인식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뼈를 때리는 저자의 비판에 모든 이들이 귀 기울여야 함이 마땅하다.
죽음으로부터 삶의 방식과 철학을 꽤 많이 찾아왔던 나로서는 특히 마지막 30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배웠다. 저자를 존경하고,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몇 구절 발췌 및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친다.
“살아 있을 때 억지로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죽음이 다가오면 그때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그저 삶과 죽음은 한 선에 맞닿아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늙고 병들고 죽는 순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 나는 그저 오늘도 웃으면서 즐겁게 산다."
지난 3월, 코로나 확진가 함께 개인적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발병하여
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나름 튼튼하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는 아줌마였는데,
어느날 새벽.. 내가 발작 증세로 혀를 깨물고 30여분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은 떴음에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신랑의 응급조치로 정신을 차린 나는, 그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혀를 깨물어 혀에서 피가 났고 퉁퉁 부운걸 보고 그제서야 아픔이 느껴졌을 뿐..
갑자기 무서워졌다.
내 딸들에게 엄마의 빈자리가 생기면 어떻하지?
우리 엄마, 딸 잃은 슬픔을 어찌 감당하시리..
난 오래 살고 싶은 맘이 큰 사람이다.죽음은 생각하기도 싫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의욕이 사라질 것 같다.
아둥바둥 사는 것도 의미가 없고, 일단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슬프다.
주변 지인의 죽음은,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아예 생각 조차 하기 싫다.
그런데 이번 일로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내가 그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에 없었겠구나 싶었다.
죽음이란게 여전히 겁이 나는게 사실이였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장 다 때려치우고 일상을 떠나서 놀고먹고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
좀 허망한 마음은 있지만, 아이들 챙기며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야겠지..
이런 시기에 만난 책 한권이다.
우연히 전자책으로 이 책을 열어보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강봉희 님
강봉희 님은 장례지도사 이시다.
40대 중반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나셨고,
그 때 다짐 하셨던.. 아무에게도 돌봄 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일 하고자,
평생교육원 장례지도학과를 수료하고,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해
무연고자 및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치러드리고 계신다.
2020년 코로나 사망자들의 시신을 누구보다 먼저 수습하셨다고..
저자의 강직한 성품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요즘 책을 쓰는 일도, N잡 세대의 파이프라인 중 하나가 되어
돈 벌이용으로 나오는 넘쳐나는 책들 속에서
저자는 주목을 받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경험했던 죽음과 장례의 의미를 뒤따라올 사람들과 나누고,
이웃과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방치되는 죽음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진정 이런 책이 유명해지고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게나마 전파되길 바라는 맘에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도 했다^^;
이책을 읽으면서 아직은 이르다며 미뤄 둔,
장례 절차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죽은 몸은 자신이 보낸 평생의 삶과 죽음을 증언한다고 하기에
나도 죽었을 때 세상 편한 아기 같은 모습이였으면,
죽음을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임을..
내 다음 세대에게 최대한 부담이 되지않게 정리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다짐!
정신적 건강을 위해 최대한 스트레스 줄이고,
신체적 건강을 위해 운동 꾸준히,
마음을 편안하게~ 마인드 컨트롤!
한번 뿐인 인생,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가족에게 최선을, 나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한다.
<기억 남는 구절들 >
(더 많지만, 일부만 옮겨 본다.)
♧ 돌아가신 분들의 몸에는 그의 삶과 죽음이 정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출 수가 없고, 속일 수가 없다.
♧ 누군가가 태어나는 일, '생(生)'을 향해서는 모두가 축복을 한다. 반면 생을 마감하는 '졸(卒)'에 대해선 아무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치인데도, 우리는 항시 생과 졸을 철저하게 끊어놓는다.
♧ 죽음을 삶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는 이 문화를 없애야 한다. 언젠간 나의 부모,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자리이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딱 끊어놓은 생졸(生卒)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붙이면 된다. 나는 그 둘이 같이 가야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 핏줄이 우리에게 주는 '괄호'의 의미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자주'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당신의 가족과 친지에게 연락을 하라. 먼저 연락하라.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얼굴을 확인하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소홀히 하지 마라.
♧ 제사란 무엇인가. 제사는 자신의 삶과 자기 주위의 관계들에 감사해하는 마음이며, 그들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이다. 나는 그것만은 잘 알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내 핏줄들과 우애와 배려를 나눈다면, 굳이 이승까지 나들이를 하지 않더라도 조상들은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 명당은 '좌택시 우버스 1분' 이라는 걸 잊지 말길. 요즘은 자손이 편하게 관리할 수 있고 여유롭게 가볼 수 있는 곳이 명당이다. 후손들이 가기 편한곳이 제일이다. 안 편하면 안 찾아본다. 그래서 시내에서 가까운 납골당도 참 좋다.
♧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게 맞는 일이다. 그걸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말을 절대로 들을 필요가 없다. 진짜로 귀한 명당이 있다면 풍수 지관이 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릴 주겠는가. 자기 조상들을 거기 모셔두고 자기 자식들이 잘되게 했을 것이다.
♧ 죽음은 다른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일거다. 잠에서 못 깨어나면 죽음인데 뭘 그리 안타깝게 매달리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얘기한다. 밤에 잠들듯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우리는 죽지 않아서 그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죽으면 다시는 못 만날 거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들과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