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희 장례지도사는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기초수급자의 장례를 치렀다. 그는 왜 대가 없이 이 일에 자원했을까? 죽음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한 많은 죽음 앞에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에 관한 묵직한 글을 담았다. - 손민규 인문 MD
사)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의 단장이며, 과거에는 ‘염장이’라 불렸던 장례지도사의 일을 하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건축업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아가다 1996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암에 걸렸다. 병원에서 석 달을 못 살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병실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간다면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자고 다짐했고, 2003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장례지도학과를 수료했다. 2004년 그곳의 후배들과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해 그때부터 대구시의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치러드리고 있다.
사)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의 단장이며, 과거에는 ‘염장이’라 불렸던 장례지도사의 일을 하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건축업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아가다 1996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암에 걸렸다. 병원에서 석 달을 못 살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병실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간다면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자고 다짐했고, 2003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장례지도학과를 수료했다. 2004년 그곳의 후배들과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발족해 그때부터 대구시의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치러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