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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달을 생각하면 낭만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달을 좋아했고, 달과 별에 대해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였다.
나에게 달은 지구를 짝사랑 하는 이미지가 강하였다.
아무리 지구에 닿고싶어 하지만, 지구에 닿을 수 없고, 일정 거리만을 유지할 뿐이다.
뼛속까지 문과라서 그런지 나에게 달은 그런 존재였다.
작가님의 시야에서 보이는 달을 보고서는 좀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너무 달을 이용하는 시각으로 작성된 부분은 이렇게까지 생각하여야 하나 싶기도 하였지만, 달은 우리 주변에서 무한정으로 애정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이러한 모습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달은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한다. 우리는 달의 품에서 과거를 다잡을 수 있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달로 갈것이고, 달에 꼭 가야만 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다음과 같은 멋들어진 연설을 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들도 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쉽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69년, 케네디가 공언한 대로 1960년대가 다 가기 전 인류 최초로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발을 딛는다(케네디는 앞의 연설 이듬해 암살 당하는 바람에 자신이 추진한 달 착륙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말이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몇 달 전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 이후, 약 한 달 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발사됐다. 누리호와 다누리호가 다소 다른 종류이긴 하지만, 모두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의 단계를 높인 성과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누리호가 작년 절반의 발사 성공에 이은 완벽한 성공이라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뉴스인데 반해 다누리호는 갑자기 훅 들어온 뉴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기억을 되짚어 보면, 꽤 오래 전 우리가 달 탐사선을 발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게 기억난다. 그때도 사실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갑자기? 다소는 정치적 제스처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조만간 실제로 이뤄질 것이라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뉴스는 잊혔다. 그러던 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이 발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뉴스가 나오고, 달까지 가는 데 어떤 방법을 쓰는지(우주 저 멀리 달을 훨씬 지나치게 쏘아 보냈다가 떨어지면서(?) 달의 궤도를 찾아가는 방법-이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등등에 대한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발사에 성공하고, 순항 중이라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케네디는 ‘쉬운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달에 간다고 했는데, 정말 달에 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는 것이다. 케네디의 계획은 다분히 소련을 의식한 것이었고, 그때는 물론 레이건 시대에는 ‘Star Wars’라고 해서 우주 개발이 냉전 시대 군사 개발의 가장 최선두에 섰던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달에 가야 하는 것일까?
곽재식 박사의 이 책은 바로 그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여러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달의 생성에 관해서, 지구에서 벌어졌던 여러 차례의 멸종에 대한 달의 역할에 관해서, 과거 신화 속의 달의 모습에 관해서, 지구의 여러 현상, 이를테면 밀물과 썰물과 달의 관련성에 대해서, 예 우리 선조들의 달에 대한 생각에 관해서, 소련에서 비롯된 우주 개발, 달 탐사에 관해서,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미국의 추격과 우리나라의 다누리호에 관해서 등등.
모든 이 이야기들의 장(章)마다 결국은 우리가 달에 관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짓고 있다. 달을 통해 지구의 모습을 더 명확히 알기 위해서, 지구 상의 멸종에 관한 비밀을 풀기 위해서, 물리학상의 시공간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풀면서 생명의 바탕에 대한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 로켓 기술의 개발을 정교화하기 위해서, 달 탐사 과정을 통해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해서, 철 지난 음모론을 박살내기 위해서,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달의 무한한 자원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꿈을 위해서 등등.
물론 달에 가는 이유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그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달리 느낄 수 있는 문제다. 그 비용보다 적더라도 쓸 데 없는 일이라면 아주 많다고 느낄 것이고, 이보다 더 어마어마한 비용이더라도 진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세금을 내는 사람을 설득하고,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예산 당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무슨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그저 내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연구를 한다고 연구계획서를 쓴다면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정말 이런 구구절절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케네디가 얘기했던 대로 그저 ‘가야 하기 때문에’라고 하면 안 될까? 오랫동안 거기에 있었기에, 우리가 늘 보아왔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이기에, 가고 싶기에 간다고 하면 안될까? 가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지 않냐고 설득할 순 없을까? 우리가 달에 가야만 하는 구구절절한(몇 가지는 다소 억지스럽기도 하다) 이유를 댄 곽재식 박사도 끝에는 이렇게 쓴다.
“새로운 사람들의 지혜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나와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바꿀 것이다. 이렇게 더 넓은 미래를 열어주는 일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말하자면 달에 가는 것, 그거 멋진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적어도 예산 당국은 몰라도 달을 향하여 이미 떠난 다누리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곽재식 박사가 달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이유 자체만으로 달이 우리가 가보고 싶어하는 곳, 가면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