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클레어 저/하은빈 역
로이 리처드 그린커 저/정해영 역
채승호 저
백순심 저
2020년 12월 01일
장애의 역사/킴 닐슨/김승섭/2020
한번도 스스로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고 살진 않았지만 열살 이후 평생 쓰고 있는 안경을 볼 때 마다 고도 근시 환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아마 과거였다면 반 소경 취급을 당했을 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새삼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사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더군요.
이 책은 미국의 한 백인 여성 역사 학자가 장애의 역사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통사적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본인 나름으로는 장애와 장애인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자신의 딸이 희귀병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지요. 거기에 에필로그까지 깜놀. 의학을 전공한 뒤 보건학박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해온 옮긴이 역시 작가의 의도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 고심하여 번역을 한 것이 서문에서나 내용에서나 잘 드러납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 시대에 장애라고 간주되었던 것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간주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신대륙 발견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비록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몫을 하면서 살아가고, 농아라 해도 수어로 소통하고 (어차피 소수 부족들이 많아서 그들간에도 수어를 했다고) 맹인이라 해도 자신이 일 할 몫이 있고 팔다리의 손상이 있어도 부족에 기여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1700년까지 유럽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식민지를 세우면서 전염병을 퍼뜨리고 사실상 정복해 나갔죠. 원주민들의 공동체는 무너졌으며 당연히 장애가 있는 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지게 됩니다. 유럽인들이 보기에 수어는 제대로된 언어가 아니었고 이들은 미개인이었죠. 짐승처럼 프릭쇼에 내보내기도 하고... 이들은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너무 끔찍하니... 3장에서는 1776년까지 후기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진 노예들을 장애에 따라 폐품 취급하거나 아예 익사시켜버린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1865년 까지 이른바 근대 시민 사회가 성립되고 산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장애에 대해 사회적으로 특히 법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병원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수용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정신병원에 사람을 가두기 시작한 때이죠.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도 어느 정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내용입니다. 시민의 탄생은 억울한 정신이상자의 탄생 시기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이때 또 좋은 시설과 교육 지침을 가진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 생기기도 합니다. 5장에서는 1890년까지로 장애의 제도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처럼 1급 장애 2급 장애 이런 게 아니고... 이 당시에는 백인 남성이 아니면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충분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 장애인으로 취급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권리가 제한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었다는 것. 대통령부터 법관들,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죠! 이러니 나치가 유럽과 미국의 우생학을 들여와서 그 미친 짓을 한 것에 대해 과연 이들이 나무랄 자격이 있나 한탄이 나올 지경입니다. 6장은 1927년까지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시기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으로 쇄도한 이민자들 중 누굴 허가할 것인가에 대한 미국의 잣대가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은 둘째치고 심지어 자국의 멀쩡한 사람들에게까지 황당한 이유로 불임수술을 시키고 태어난 아이를 빼앗고 정신병원에 수용하고... 진짜 미국의 흑역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7장과 8장에서는 당연히 이를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 않았던 장애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의 탈을 쓰고 있던 우생학이 종식되어 가고 2차세계 대전 당시 장애인들이 산업현장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능력을 입증하고 또한 전쟁과 산업화로 인해 후천적인 장애인들이 많이 생기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가 예전 같을 수는 없었던 것. 장애인들은 인종 차별, 여성 차별에 대항하는 이들과 연대하면서 일할 권리, 가족과 함께 할 권리, 가장 기본적인 인권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겪었던 고초, 노예선의 처참한 상황, 우생학의 폐해, 산업화로 인한 산업 재해와 장애인의 폭발적인 증가,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의 역사 등등 조각조각 여기저기서 듣고 읽은 바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총괄적으로 쓴 역사책은 처음이라 읽는 내내 위장 속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이런 책이 한 권 있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번역되어 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 이외의 질병으로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가장 힘든 점이 의료진들이 장애인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병원 진료를 받고 싶은데 미루게 되거나 결국 받는 걸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놀랍게도 바로 교통 문제라고 합니다. 물론 두 가지 항목 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이런 부분이 가장 높게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 부분이야 따로 보다 전문 교육을 강화해야 할 부분일 것이고, 교통 문제로 병원에 못 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출근 투쟁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지요. 장애인 택시는 불러도 함흥차사일 때가 많고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있지 않냐고 하지만 그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기 까지의 길이 만리 장성인데다 환승역은 그야말로 환장할 역이죠. 저는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 선진국인 이유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장애인들이 원할 때 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은 방해되지 않게 집에나 있으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사회.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로 어느 나라 보다 빨리 진입하고 있고 우리 모두 나이가 들고 하나 둘 장애가 생기 텐데 이런 사회로 과연 괜찮을지. 하지만 미국에도 저런 흑역사가 있는 뒤에서야 비로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변화가 있길 바라며 ...
『장애의 역사』는 Neil Marcus의 「Disabled Country」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펼쳐진다. 우리말로 옮기면 「장애라는 나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In my life's journey
I am making myself
At home in my country.
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내 집으로 삼으려 하고 있어
내 나라를.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장애라는 나라」가 단순히 장애인의 정체성을 소재로 삼은 시인가보다 싶었는데, 책을 덮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은 나의, 우리의, 당신의 집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애의 역사』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선주민(*인디언)이 주로 살던 때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장애(disability)에 초점을 두어 서술한다. 기존의 정치·사회·문화적 서술과는 달라서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집중하며 읽을 수 있다.
북미 선주민(토착민)들에게는 유럽인들이 세운 장애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살아가며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빈번하게 존재했지만 그들 모두가 손가락질 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나바호족 토착민은 신체적, 인지적 결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동체의 호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낙인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태생적 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부모가 금기를 위반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금기로 여겨지는 행동이나 장소를 매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낙인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북미로 이주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부터 장애와 관련한 사회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전염병과 멸시를 가져왔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고 왔으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웠다. (청교도적 가치관과 민주주의 위에 미합중국을 세웠다고는 하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자본주의가 더 세다.) 돈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인종과 젠더에 따라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장애는 ‘노동능력의 부재’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미국 초기에 참정권을 가진 시민과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 존재를 나누면서 빈자, 유색인종, 여성은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었다. 정치에 참여하기엔 부족한, 달리 말하자면 장애를 가진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103쪽
노예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종차별 이념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이었다. 노예 소유자들과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여성 참정권 문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고통당한 노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 주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없어서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차별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가 없고 너는 장애가 있으니까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라는 논지의 비장애중심주의는 미국사회의 전면에 스며들어서 교묘하게 차별을 더욱 조장했다. 그 편견 어린 시선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많은 발전을 일구어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독교가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저토록 장애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해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늘날에도 종교라는 미명 하에 포용이 아니라 배제를 정당화하는 미국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구어주의자들 때문에 수어를 금지당하고 오히려 더 낙인 찍인 농인들의 사례와 「Oralist(구어주의자)」라는 시를 읽으며 그 기분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190쪽 (시의 일부만 발췌, Google Scholar에 검색하면 원문을 볼 수 있다)
구어주의자여, 너의 고개를 돌려라, 당신 같은 이들의 죄를 위해 죽어간 가엾은 예수를 알고 있는가
Oralist, O oralist, turn your head aside, Know you not the pitying Christ for sins like yours has died?
『장애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장애 개념이 시대의 이념에 따라 변화한다” 라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당연시했던 수용소와 단종수술 등이 폭력임을 깨닫고 장애인을 연민과 혐오로만 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라는 나라’는 ‘우리 모두의 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분명 우리나라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식 받으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도 함께 수입했을 것이다. 내 나라를 장애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나도 비장애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공동체를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학자
나는 강자의 축에도 들지 못하면서 늘 강자의 논리로 살아왔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폄훼하고 차별한 일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 가운데 일상 속에서 많은 이들을 차별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고, 깨닫지 못했으니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승섭 교수를 알게 되었다. 그가 발표하는 글과 그의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수많은 차별이 만연하고 있는데도 대부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고 있으며,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해 그들에게 향했던 혐오에 가까운 내 감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고, 판매직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들으면서 인권이 생존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런 이들을 만나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지만,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작은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교회에서 누구보다 먼저 반대하고 나선 것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여파가 우리교회라고 비켜갈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그날부터 차별금지법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법적인 관점에서, 의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성서적인 관점에서 두 달에 걸쳐 열두 편의 글을 썼다. 그 출발은 김승섭 교수가 발표한 글이었고, 오랜 시간 그가 보여준 소수자 보호를 향한 집념이 내게 큰 격려가 되었다.
이 책의 번역자인 김승섭 교수는 2019년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만난 이 책에서 그동안 가져왔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의 학문적 집요함은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책의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저자를 만나 문장 뒤에 숨어 있는 문화적 맥락을 확인하고, 장애학과 영문학 연구자들을 만나 번역의 완성도를 높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무의식적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비하나 혐오의 의미가 들어가지 않도록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 위해 씨름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비춰 볼 때 그가 이런 용어를 가려내기 위해 씨름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관점’이나 ‘시각’과 같은 말을 비하의 뜻 없이 사용하지만 그것이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를 대체할 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존경받아야 할 모습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글 쓸 때마다 단어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장애인 비하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은 당연히 사용하지 않고, 혹시라도 그들에 비해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은 없는지 몇 번씩 살피곤 한다. 최근에는 ‘연민’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연민’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의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공감’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도 마음에 걸린다. 그건 스스로 강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해서이다.
내게 일어난 이 모든 변화는 김승섭 교수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지만, 정말 기적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는 훌륭한 학자이기보다는 성실한 학자이기를 꿈꾼다. 그러나 강퍅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생각을 기적처럼 바꿔놓은 그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학자이다. 자식 또래의 젊은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존경한다.
의도하지 않은 차별
나는 저자인 킴 닐슨이 장애를 다루는 의학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뜻밖에도 그는 역사학자로서 장애와 여성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고, 특히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인 앤 설리번의 정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여섯이던 저자의 딸이 갑작스럽게 심각한 병에 걸렸고 결국 장애 여성이 되었다. 그로 인해 집필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저자는 그 경험 때문에 질문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초 집필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책이 된 것은 딸의 장애로 인해 자기 가정이 달라졌고, 자신이 그 일을 겪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장애를 연구하는 학자였으면서도 장애인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 장애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자도 장애인 가족이 생긴 것만으로도 생각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면, 하물며 일반인이 장애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장애인 본인이 느끼는 것 사이에는 얼마만한 간극이 있을까
저자는 상당수의 차별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비장애중심주의적 태도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장애인을 향한 혐오가 일어나고 그것이 차별과 무지와 편견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눈에 드러난 차별, 스탠딩 콘서트를 계획하면서 모두가 두 시간동안 서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무지, 그리고 미디어에 장애인이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불쌍하고 슬픈 모습으로 그리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그들을 아예 사회로부터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인종주의ㆍ성차별주의ㆍ동성애 혐오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구조 속에 축적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그렇게 축적된 편견이 장애인의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말한다. 물론 장애인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낮고 가난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러나 저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며, 이는 역사ㆍ법 집행ㆍ세금 구조ㆍ이념ㆍ그 밖의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사회구조가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평등이고 그 이후의 결과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평등은 모든 이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이 같은 출발점에 설 수 없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개인의 문제 때문이 아닌 역사ㆍ법 집행ㆍ세금 구조ㆍ이념과 같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작은 실천이라도 할 생각으로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을 이렇게 바꿨다.
<장애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서술
민주주의의 선진국이고 어느 나라보다 인권이 존중받는 나라인 미국도 처음부터 장애를 이해하고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의 식민지로 있었던 때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2차 대전이 끝나도록 노예와 여성은 존재 자체로 장애인으로 취급되었으며, 노예와 여성과 장애인이 부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사회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 받기까지 지난한 투쟁이 필요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에 발을 내딛은 1492년 이전까지는 토착민에게 장애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과 채집이 생업의 주요수단이었던 당시로서는 신체적인 강건함이 필수적이었을 텐데, (따라서 지금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그를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는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오늘날 장애에 해당하는 단어나 심지어는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장애에 가까운 개념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신체적 상태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더라도 그로 인한 인지적ㆍ신체적ㆍ감정적 역량과 관계없이 구성원으로 공동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한 그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다만 공동체에서 축출되거나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그렇게 취급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매사에 그런 기준이 통용되지는 않았다. 농인이나 맹인처럼 움직이는데 제한이 있는 사람들은 추장이 될 수 없었는데, 이것은 낙인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가 요구하는 책무 때문이었다. 추장으로 일하는 동안 장애를 입게 되면 지도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부추장들이 그를 보좌해서 임무를 끝내게 했다.
전기 식민지시대에 유럽계 정착민들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장애를 정의했고, 따라서 노동이 가능하다면 신체적 결함은 장애로 여기지 않았다. 노예제가 만연했던 후기 식민지시대에는 북미대륙으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 인종차별이라는 부끄러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예주인과 노예제 옹호자는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노예주인은 자신이 부리는 노예가 몸과 정신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노예제가 돌봄이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1848년 세니커플스 여성권리회의에서 여성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시민으로서 적합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우월한 인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한 것이었을 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출신인 노예폐지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권리의 진정한 기반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노예 출신조차 같은 노예 안에서 차별을 주장한 것이다.
노예제와 인종차별은 북미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과 그 후손이 공동체와 시민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적ㆍ신체적 능력, 심지어는 인간성도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이념을 전제하고 있었다. 노예주인, 의학자, 신학자,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 특히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인물이자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그리고 유럽과 미국 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노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정신적ㆍ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장애의 개념은 노예제와 인종주의를 정당화시켰고, 심지어 많은 백인으로 하여금 노예제가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아프리카인에게 이득이 된다며 스스로를 기만하게 만들었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고 나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크게 변화했는데, 광기(狂氣)를 신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던 데서 점차 생물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1825년 이전에 광기를 ‘신의 손길이 닿아 초래된 끔찍한 불행’이라고 판단했던 대법원은 그 이후 질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퇴역군인이 집으로 돌아오고 도시가 확장되고 산업재해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도시들은 Ugly Law라고 불리는 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1867년 샌프란시스코는 병에 걸렸거나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거나 몸이 훼손된 사람, 혹은 어떤 형태로든 신체가 기형이거나 보기 흉하거나 역겨운 존재를 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추방했다. 포틀랜드는 불구나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것을 금지했고, 1911년 시카고는 병들었거나 불구이거나 또는 기형인 신체부분이 노출되는 것을 금지하도록 주법을 개정했다. 공무원과 이 법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추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장애인들이 도시의 공공장소를 점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길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사람을 처벌했고, 장애인들을 대중의 뇌리에서 지우려고 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저자는 이런 부끄럽고 쓰라린 장애인 차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이 어떻게 지금과 같이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 손색없는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7장과 8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뒤따랐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그를 극복해온 과정보다는 장애인이 그런 상황에서 여성이나 노예와 더불어 얼마나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들이 당시에 받았던 차별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에게도 동일하게 가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데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법안이 발의된 6월말부터 내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책이 미국에서 일어난 장애의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지만, 읽으면서 상당한 기시감(旣視感)을 느꼈다.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토착민 세계에서는 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전기 식민지시대에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장애를 정의했기 때문에 노동이 가능하다면 신체적인 결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 식민지시대에 들어서면서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오히려 확장되어 아프리카인을 존재 자체로 장애인 취급해 노예제를 정당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적ㆍ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노예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그런 주장에 스스로 세뇌되어 그것을 사실로 믿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독립하고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Ugly Law를 만들어 장애인을 추방하고 아예 대중의 뇌리에서 지우려고까지 했다.
우리도 장애인을 천형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고, 장애를 가진 가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들에게 유형무형의 차별이 가해졌다. 그러나 적어도 법을 만들어 그들을 추방하려 한 일은 없었고, 그들을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버리려 한 적은 더욱 없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내 기억에는 그렇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주변을 돌아보면 예전에 비해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도 그들에 대한 차별이 시정되고 있으며 편견이나 차별이 해소되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들었을 뿐 더 치밀하고 집요하게 확산되어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배제의 대상이 날로 확장되어 간다는 것이다. 성소수자ㆍ이슬람ㆍ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문명국이기를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차별과 혐오를 신념이요 신앙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것을 차별과 혐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해서라도 기어코 막아내야 하는 사회악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소수자는 그것이 존재의 문제임에도 전환치료를 통해 기어코 ‘그들이 말하는 본래의 성’으로 돌려놓는 것이 성소수자를 위한 길이라는 사명감으로 여긴다. 그것이 ‘노예제는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아프리카인을 위하는 길’이라는 인종주의자의 주장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저자는 북미 토착민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지만 자리가 요구하는 책무 때문에 농인이나 맹인이 추장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서술하면서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조화를 이상으로 추구했지만, 그 이상대로 살아가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이상을 달성하고도 남은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그것을 차별로 받아들이겠는가.
저자는 여성들과 노예들이 이런 부당함에 맞서는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차별받는 여성이 차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노예였던 사람이 능력이 있어야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서 무능력한 노예를 차별하는 모습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또 다른 모습의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가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겹쳐 보인다.
역자에 거는 기대
그런 가운데 그나마 역자와 같은 학자들의 헌신으로 차별의 부당함을 알리는 주장이 동력을 잃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내게는 역자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과 이의 연장선상에서 읽게 된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 강릉원주대학교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그동안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지침이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인생서적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이 책을 꼽겠다.
오늘 아침 그렇게 소중한 책을 쓴 위의 저자 중 한 분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다르게 판매부수가 4만 부에 불과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 책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던 내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나마 그 분은 다른 이들에 비해 책을 쓸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이런 양서를 다시 보기를 기대하는 게 욕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역자에게, 그리고 홍성수 교수, 김지혜 교수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 더욱 정진하여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지침이 되는 글을 계속 발표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독자의 반응 없이 저자의 의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이 펴내는 책을 열심히 사서 읽고 형편 되는 대로 주변과 나누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런 기대를 접을 수 없다.
어쩌다 보니 페이스북에서 출판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글을 통해 출판시장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과 신간을 펴내게 하는 동력은 수익보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아울러 깊은 감사를 전한다.
역자인 김승섭 교수가 천착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한 소식도 듣고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싶어 오래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관계를 맺어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활동이 뜸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도 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물으니 여전히 글이 올라온다고 했다. 차단당한 게 아닌가 싶다. 댓글을 몇 번 달기는 했어도 결례가 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내가 올리는 글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아직도 차단한 이유를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생각날 때마다 일일이 김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해서 소식을 듣고 있다. 혹시 누군가 페이스북 말고 그의 근황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차단을 풀어주도록 김 교수께 말이라도 넣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