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 무르자니 저/웨인 다이어 서문/황근하 역
비벡 H. 머시 저/이주영 역
네이딘 버크 해리스 저/정지인 역
킴 닐슨 저/김승섭 역
문요한 저
이낙림 저
2019년 02월 14일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동아시아/2018
저자의 첫번째 저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을 읽고 나서 이어서 찾아 읽게 된 책입니다. 개개인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6가지 테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직업적으로도 그렇고 관심이 있기도 해서 이 분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도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내용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저자는 의학적 지식이라고 하는 것도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권력에는 물론 자본도 있고, 그 자본이 권력자와 지식인을 움직인 것도 있겠지요. 대부분의 임상 실험이 초기에 남성들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막상 여성들에게 처방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임상실험은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남성들 이를 테면 군인이라든가 동원하기 쉬운 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저개발 저소득 국가에 만연한 여러 전염병이 이들 국가가 치료비를 댈 수 없기에 연구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당연히 치료약도 잘 나오지 않는 백태를 지적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 일라이일리가 비만약으로 주가가 천정을 뚫고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주식 살 걸 하는 마음과 아, 그런데 더 급한 게 있는데 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두번째는 식민지 시대 서구 제국주의 국가와 이를 추종한 일본이 자신들이 식민 통치를 원할하게 하기 위해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한 자별적인 여러 시행 조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식민지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올라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주장이 일견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차별 당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하는 것. 더구나, 여러 자료에 의하면 불평등 자체가 질환을 유발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는 일본에 의해 주입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그만한 환경만 주어지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인력이 있었으니 말이지요.
세번째는 불평등에 대한 기록입니다. 미국의 인종 차별로 인한 건강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만, 현재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차별, 소수자 차별, 그리고 실질적인 외국인 차별 역시 같은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네번째 대목이 저에게는 직접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암에 대한 이야기나, 과거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책이나 자료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들을 약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에 불과했다면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이라는 챕터는 제가 약간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것이 또렷해 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유방 검사를 받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다 양성 판정이 났다고 알려 준 적이 있습니다. 의사는 희소식이라고 알려주면서 종양의 크기가 커서 만약 악성이었다면 시한부 였을 거라고 이야기 했다며 씁쓸해 했습니다. 저는 위로랍시고, 그 의사도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지도 모르면서 남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고, 친구는 다행히 빵 터졌습니다. 의사에게 죽음을 맡기고, 장례도 집에서 치르지 않으며, 죽음은 고사하고 질병 조차도 삶에서 유리되어야 하고,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구성원들이 어디론가 안 보이는 곳에 치워버리고자 한다면 과연 그 구성원들의 삶은 온전한 삶인가. 제가 평소 생각해 왔던 내용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꽤 급진적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책도 기회가 되면 읽어볼까 싶고, 이기적 유전자 만이 아니라 협력의 유전자, 이타적 유전자, 공감하는 유전자 등의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섯번째는 과학사 이야기입니다. 기존이 상식과 통념을 깨고 과학사 특히 의학사에 현격한 발전을 이루어낸 사람들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이야기와 끔찍한 터스키기 사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터스키기 사건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읽는 내내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만, 본래 이런 얼척없는 일이 더 사실이죠.
여섯번째는 상식, 아니 사실상 무지, 편견과 싸우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멀쩡한 사실을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실. 아, 도대체 왜 세상이 이모양인 걸까요 ㅜㅜ
저자의 이전 저작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과 마찬가지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마음 아프지만 깊이 있는 내용입니다. 즐거운 의학사 탐방도 되고, 뼈아픈 현실 고찰도 됩니다. 멋진 독서가 되시길^^;;
2023.09.26.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을 읽고
1. 감정적이지 않고 논리적인데 따뜻하다.
처음에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네트워크를 인간의 몸으로 빗대어 설명하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깜냥도 안되는 내가 너무나 가볍게 판단했다. 이 책이 단순한 1차원적인 몸의 비유가 아니라는 것은 5페이지만 읽어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질병을 보여주는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녀야 할 책임감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우리들의 비정한 외면을 잘 보여주었다. 객관적인 통계 자료가 방대하게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분석하는 저자 김승섭 교수의 시각은 감정적이지 않고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다. 전체적으로 책이 차분하고 따뜻하다.
사회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간혹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임계점을 넘는 순간이 한 번씩 오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활활 타오르는 감정이 올라올 때 지식인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저자 김승섭 교수에 대해 찾아보았다. 대부분 저자에 관한 자투리 정보뿐이었는데, 교수님과 직접 인터뷰한 글이 있어서 따뜻하게 읽었다. 그리고 김승섭 교수의 다른 책을 주문했다.
2. 지식이 권력을 만나면.
분명히는 '의학 지식'이 권력을 만났을 때라고 해야 옳겠다. 이 책의 첫 장을 읽고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좋아라하는 권력 지향과 또 우리가 좋아라하는 의학과 만나기 때문이다. 의학적 지식과 권력이 만나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아질까. 일제강점기, 일본의 의학적 지식으로 우리 조선인들은 건강하게 잘 살았던가.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온다.
뉴스 기사를 통해, 혹은 인터넷 배너 광고를 통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전염병으로 혹은, 기아로 죽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후자는 논외로 두고, 전자에 대해 나는 가끔 이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의학적 지식이 이렇게 최첨단을 달려가도 아프리카의 전염병은 구제할 수가 없는가 보다, 아니면 비위생적(국가적 재난에 따른 비위생적 환경 구조를 말함) 국가에서는 전염병이 끊임없이 창궐하는가 보다라고 말이다.
2002년 패트리스 트루일러 박사 연구팀은 학술지 <랜싯>에 논문 「소외 질환을 위한 신약 개발 : 결핍된 시장과 보건 정책의 실패」(58쪽)에서 전 세계적으로 DALY(장애보정손실연수)가 가장 큰 항목은 결핵, 말라리아를 포함한 감염병, 신경계 질환, 심혈관 질환, 암 순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러나 개발된 신약의 질병별 분포를 보면 신경계, 심혈관계 질환이 높게 나타난다.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질병들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이 적게 이루어진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저소득 국가의 질병에 대하여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약 개발을 하지 않는 민간 제약회사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나라에 필요한 신약만 개발이 되고,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상황이 곧 지식과 지식인 생산의 불평등인 것이다.
3. 그렇다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는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2004년에서 2015년 사이 평균수명의 변화를 살펴보면, 2004년 소득수준 하위 20%는 74.64세, 상위 20%는 80.69세로 그 격차가 6.05년이었다. 이는 12년 동안 6.59년으로 더 벌어져 있었다. 기대수명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릴 기회의 시간인데 소득수준에 따라 누군가는 그 삶의 전제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다.(135쪽) 태어날 때부터 이 격차를 들여다보면 섬뜩해진다. 우선 가구 소득수준에 따른 영유아의 대뇌 회백질 크기와 변연계, 해마 세포 변형에 영향을 끼쳤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뇌는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잠재적인 역량 자체를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을 쓴 아라이 노리코 교수가 진행한 문해력 원인에 대한 연구에서 그 어떤 것도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었는데, 부모의 경제 수준은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결과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아 시절의 건강 불평등과 응급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살펴본 ‘아버지 교육 수준’에 따른 1-4세 영유아 사망률에 대한 통계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피할 수 있는 아이들의 죽음은 부모의 낮은 학력 탓이라는 말인가. 사회적 환경은 살펴보지 않고 개인의 책임만을 묻는 이 사회의 능력주의 '정의'는 과연 공정한지 묻고 싶다.
소득 불평등에 따라 암을 초기에 발견하는 수치가 다르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여건도 달라진다.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사람들이 '지위 불안'을 겪는다. 즉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일수록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문화 인류학자인 김찬호 교수는 이와 같은 상황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여 '모멸감'이라고 표현하였다. 심각한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신뢰 수준이 떨어지고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까봐 불안해하는 사회적 환경의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위험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국가별 소득 불평등 정도에 따른 청소년 학교 폭력 발생비율(150쪽)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묻지마 폭행, 살인의 원인을 우리 사회 소득 불평등과 연결 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도덕적 일탈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소득 불평등은 나아가 죽음 역시 빈부로 나누었다. 처참하게도.
4.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228쪽)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필립 아리에스는 산업화 이후 공중위생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233쪽)고 한다. 병원은 이러한 추한 죽음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 위한 공간이었으며 이상적인 죽음은 생명 연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의료적 처치의 중단으로 인한 기술적 현상'이 되었다. 질병이 발생한 몸은 환자 자신의 몸이지만 의사에게는 외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의학은 병든 몸의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은 의학의 식민지가 된다는 표현을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우리의 죽음이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5. 조선인의 몸에 제국주의를 묻다(88쪽)
일제강점기에 우리 조선인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우리 조선인들은 건강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보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조선은 결국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라고 했던 아베 노부유키의 말은 볼 때마다 분노를 일으키지만 볼 때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이렇게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에게 혜안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저자는 구한말 시대의 한계 속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자 했던 지석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가 종두법을 배우기 위해 기울인 열정은 감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부산까지 걸어서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인을 붙들고 종두법을 배웠다. 이렇게 배운 종두법을 알리는 책을 써내고, 종두 의무 접종을 국가 정책으로 입안시켰다. 당시 이 뜻을 함께 했던 동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고군분투했다. 이를 일본은 활용했다. 지석영을 통해 제국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석영의 노력과 조선이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종두법을 도입하고자 했던 노력은 사라져 버린다. 결국 지석영은 일본의 우수한 의학 기술을 배우고자 했던 합리적인 식민지 조선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석영은 단순히 제국주의에 이용당한 희생자가 될 수도 없다. 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을 때 추도사를 읊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오사카 박람회에서 전시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보다 덜 진화된 민족으로 조선이 두 명이 전시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 전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유행과 같은 것이었다. 조선인을 이렇게 생각한 일본이 인도주의적으로 조선인의 근대화를 애썼다고 할 수 있겠는가. 조선인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고 여러 통계가 말해준다.
지배받고 이용당하고, 비참하게 꾸역꾸역 보낸 시간도 슬프지만 우리의 역사이다.
6.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드는 일
대학을 평가할 때 교수와 연구진들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거나 학술지에 제출한 것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들과 연구진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영어로 내기 급급하다. 이를 두고 저자는 몸은 한국에 있지만 지식 기반과 정보를 유출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영어로 번역하여 해외 학술지에 게재하면 다른 나라 사회학 교수들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학교 평가의 실적을 쌓을 수도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식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나아가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게 된다.
대학이 지금과 같은 지식 생태계 시스템으로는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쓰는 연구자들이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는 한국에서 권력과 자본에 소외된 이들의 삶을 연구를 한 결과가 더 발전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는 김승섭 교수의 뜻이 거룩해 보인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일의 필요성에 따르겠다는 그 의지를 지지한다. 저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찾아 읽으며 그가 하는 일이 묻히지 않도록, 소외된 이들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관심 갖고 살펴보고 끝까지 응원할 것이다.
https://blog.naver.com/mate3416/222325012588
<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두어 시간만 내어 김승섭 교수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연세대 의과대학 학사, 서울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학위에 이르는 학문적 결실이 전부가 아니다. 1,120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문헌을 살폈다. 시설 구금자, 소방공무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트랜스젠더, 천안함 생존자, 세월호 생존 학생과 가족, 백화점 화장품 판매자의 건강과 인권에 대한 실태를 조사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동성결혼,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군형법 위헌을 다투는 소송에서 법정증언을 하고 전문가 소견을 제출했다. 그렇게 체득한 20년의 공부를 올리브 색 예쁜 책 한 권에 담아 건네는 그의 친절에 우리도 화답을 하자.
두어 시간이면 읽을 것이고, 이삼일 뭉근할 것이고, 어쩌면 그의 친절이 당신이 살아갈 오랜 날들이 정의로울 수 있도록 단단히 받쳐줄 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라보자.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않는 고통. 이것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의 아토피는 엄마의 책임인가? 허리케인으로 사망한 흑인들은 운이 없었던 걸까? 저소득층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비가 없어 목숨까지 잃었던 것일까
피가 나도 손톱을 세워 긁을 수밖에 없는 아이의 괴로움은 게으른 엄마 탓이 아니다. 백옥 피부를 가진 아이의 해맑음은 능력 있는 엄마의 자랑이 아니다. 아토피를 낳는 환경을 유지하는 사회에, 자신의 죄는 은폐하고 은근슬쩍 엄마들에게 죄를 떠넘기는 사회에 물어야 한다.
2005년 미국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루이지애나에서 사망한 사람은 971명이었다. 사망률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1.7~4배가량 높았다. 그들은 태풍에 취약한 곳, 홍수에 위험한 곳에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도 유방암 발병은 부유한 여성들에게 더 많다. 하지만 이들은 더 적게 죽는다. 죽음에까지 이른 유방암 환자들은 이들보다 조금 배우고 조금 가진 여성들이다. 발병과 사망의 위치가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면 누군가는 왜 조기 검진을 받지 못했는지, 그것을 물어볼 일이다.
이런 일들은 숱하다. 가까운 곳에서 끊임없이 숱하다. 어쩌면 내가, 당신이 그 안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들―비용은 누가 내야하지? 누가 시간을 내고 체력을 쓰고 갈등에 지쳐야 하는 거지? 누가 죽인 거지 ―에 멈추게 될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그 다음은?
책을 열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분명 당신에게 전보다 더 눈 밝고, 똑똑하고, 반듯하고, 자유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문학을 좋아하는데, 그 중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반성해 볼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개달음을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이 저자의 책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처음 접해 봤는데 너무 잘읽은 기억이 있어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아직 완독하진않았지만 챕터 하나하나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 비문학을 좋아하는데, 그 중 사회문제를 다루는 책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반성해 볼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개달음을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이 저자의 책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처음 접해 봤는데 너무 잘읽은 기억이 있어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아직 완독하진않았지만 챕터 하나하나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진다..
저자의 전작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워낙 감명 깊게 읽어서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각종 수치와 데이터, 지식을 나열할 때는 특정 사안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 약자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데 저자의 이런 모습이 전혀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자의 책 두 권은 기회 될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