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우선 공포 단편집을 추천해 준 독서 모임 일원 분께 감사하다. 그동안 지루하진 않았지만 쳇바퀴 돌리는 반복적인 삶에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공포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호러 소설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아무튼 여성 작가들의 단편이 모여있어서 더 좋았고, 나의 네 번째 전자책 구매다.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남유하]
마마보이 남편에 한술 더 떠 부부간의 성관계까지 훔쳐보는 시어머니라니 진짜 목덜미 잡고 이혼 도장 찍을 일이다. 여기까지는 애로부부 같은 프로그램에 실제로 나올 법 한 이야기인데 죽은 남편의 영혼을 며느리에게 집어넣을 생각을 하다니 진짜 너무 싫다. 요즘 드라마 시그널을 다시 정주행하고 있어서 굳이 죄목을 붙여주자면 시어머니는 살인미수랑 특수 폭행범일까. 19금 도서에 걸맞게 복수 방식이 다소 자극적이지만, 끔찍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
[코코아드림]
자아를 가진듯한 하진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소름 돋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게임인 것도 까먹을 정도로 리얼했다. 게임 회사의 답변 없이 열린 결말인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큰언니
[장아미]
전래동화 해님달님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창귀
[전혜진]
창귀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인 줄 몰랐는데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니까 진짜 ‘**먹을?것이?있는?곳으로?범을?인도한다는?나쁜?귀신**’이었다. 첫 편부터 읽을수록 비혼이 장려되고 딩크를 결심하게 된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하나도 아닌 일곱 딸을 가슴에 묻고도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했을 준상의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그런 집안에 시집오지 못하도록 탈출시켜주다니. 마지막에 집을 태우면서 무슨 각오를 했을지 이건 공포가 아니라 슬픈 내용인 것 같다. 남아선호사상을 범에 비유하여 쓸 수도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한 것 같다. 실제로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서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해외 입양된 사례가 나왔었다. 지금도 사실 딸을 선호하는 이유도 딸을 노후연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남아선호사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매혹
[배명은]
이번에는 가정폭력범 퇴치 이야기인가. 내가 좋아하는 이름이 아내를 때리는 남편의 이름으로 나왔다. 정우라는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흠칫했다.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남편에게는 이 이야기가 그저 인과응보일 뿐인데 어째서 이를 공포라 할 수 있을까. 이건 그저 요즘 말로 ’참교육‘이다. 모범택시 여자 버전인가. 이방인을 경계하고 맞아주지 않는 시골 정서까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너의 자리
[한켠]
앞의 단편들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했다. 그때 딱 이 이야기를 읽었고, 새벽 4시였는데 잠이 확 깰 만큼 자극적이고 흥미로웠다. 꼴 보기 싫은 직장 상사 잡아먹기. 이름도 없이 김 대리, 최 과장, 정 팀장, 이 과장, 박 차장이라 불리는 (쓰레기) 상사들이 하나둘씩 처리되는데 내가 놀랐던 부분은 인육을 먹는 것이었다. 시체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들키지도 않지라는 의문점을 가지며 페이지를 넘겼었는데, 출퇴근 확인용 엄지손가락을 제외하고 전부 사골 곰탕이나 만두, 육포 같은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버리는 게 정말 참신하다. 시신이 음식이 되는 과정을 역겹게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회사에서 차례대로 없어지는 상사들을 떠올리니 마지막엔 텅 빈 회사만이 남아있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곳에서도 주방 이모에게 밥을 하라고 떠밀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나에게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을 지정해 주던 사람들도 소설 속에서라면 곰탕이 되고도 남았을거다.
성주 단지
[김이삭]
이번에는 데이트 폭력 사건이다.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안전 이별했으면 좋겠고, 중국에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째서 한국에서는 이런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뉴스에 틈만 나면 나오는지 모르겠다. 죽어서까지 주인공 지영에게 폐를 끼치는 전남친 귀신을 성주신이 잘 처치해 줘서 다행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동정은커녕 너무 꼬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가 좀 놀랐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서슴없이 기술하는 내 스스로가 대단하고 징그러워
산상수훈
[서계수]
책과 관련된 기억은 아니지만 어릴 때 고모 집에 맡겨지는 날마다 교회에 가곤 했다. 고모부는 내 앞에서 고모에게 식탁 의자를 집어던지는 시늉까지 할 만큼 교회를 싫어했으나, 고모의 신앙심은 견고했고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전도사님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영어도 배웠었고, 고모를 따라 여름성경학교도 가봤으며,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봤고, 달란트 시장에서 수수께끼 책도 한 권 사봤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신앙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그 당시 교회는 나에게 일종의 보육 시설인 셈이었다. 재미없는 찬송가를 따라 불렀고, 닿지 않는 기도를 누군가에게 의무적으로 해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일기를 쓸 때 ‘하느님’이라고 썼던 걸 고모가 ‘하나님’이라고 고쳐줬던 순간과 발을 삐끗했을 때 누구나 ‘엄마야’라고 하지만 ‘아버지’를 찾던 다른 집사님(?)을 부러워하던 고모의 모습이다. 그 순간에 나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이 뭔지 다시금 생각했던 것 같다. 산상수훈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신약?성경?가운데?<마태복음>?5~7장에?실려?있는?예수의?가르침.?신앙생활의?근본?원리가?간명하게?정리ㆍ기술되어?있다.** 주인공이 줄곧 새인이가 이단이라고 여겼는데, 그 판단을 믿는 것 또한 신앙의 행위인 것 같다. 주인공과 새인이 현대인이 아니라 과거 유럽인이었다면 새인은 마녀사냥을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처럼 선동하는 사람에 의해서. 요즘 JMS나 신천지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점점 교묘하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아서 무섭다. 나는 여전히 무교이지만, 내 삶이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의 덕분이라거나 탓하지 않을 거다. 그게 다 믿음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뷰티풀 라이프
[사마란]
그래서. 여자의 정체가 뭐야? 안 알려주고 끝나서 뒷부분의 내용이 궁금해 죽겠다. 어찌 됐건 명철은 불륜남이고, 모두가 다 아는 사실처럼 영원을 맹세할 것 같던 불륜도 오래가지 못 한다는 것. 드라마 아는 와이프가 생각나기도 했고, 부부의 세계가 생각나기도 했다. 끝까지 여자의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았는데, 명철이 안면인식장애였을 수도 있다. 내 상상이 과할지도 모르고. 불륜남 시점으로 두 집 살림하는 걸 읽어보니 어떤 생각으로 바람을 피우는지 그 심리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명철이 사랑했던 두 여자 모두 살해된 것이 속상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가 버리지 못했던 집에서 남자가 죽으니 더 이상 공포가 아니게 되었다.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
[유기농볼셰비키]
‘그것을 앞니로 잘랐다.’ 읽자마자 잠깐 쉬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사랑에 빠지는 포션은 해리 포터 덕분에 아주 익숙한데, 다크웹 몰카 피해자가 그것을 이용했다니. 이따금 뉴스로 피해자의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 여자라면 누구나 가해자에게 끔찍한 벌을 주는 발언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거기를 잘라야지, 죽여버려야지 따위의. 주인공이 감히 그 상상 속 잔인한 벌을 전부 이루어냈으니 이제 실제로 가해자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당하길 바란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 때문에 자살한 연예인이 생각났다. 그들은 항상 여자였고, 지금도 피해자는 어딘가에서 울고 있겠지..
결론
공포 소설이 아니었다.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다 읽은 후에야 마지막 페이지를 발견했다. ‘억울하게 죽지 않고 무고하게 희생되지 않으며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어디선가 전해내려오는 괴담이 아니라 현실에서 한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사례들을 다루었다. 그걸 다 읽고 나서야 알다니.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파트는 한켠 작가의 너의 자리이고, ‘인육’이라는 소재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더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듯하다. 그동안 뉴스에서 얼마나 자극적인 사건을 많이 접했으면, 글에서 죽임당한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것들을 참신하게 잘 엮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닌 것에게 최후를 맞게 되는 게, 이보다 더 후련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여성 작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