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스 코브 저/정지인 역
나와 가깝든 가깝지 않든 죽음이란 언제나 낯설다. 나 자신은 매일 끊임없이 숨을 쉬고 다양한 생명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먹어보지 못한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다른 시야가 펼쳐지듯, 죽어보지 못하고 죽는 경험을 할 수는 없다. 죽음은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손뻗어도 닿을 수 없는 평행선과도 같다. <여섯 밤의 애도>는 그 평행선을 함께 걸어줄 책이다. 건너편에서 죽음을 목도한 뒤, 의문 가득한 평행선의 주변을 맴도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여섯 밤의 애도>는 자살 사별자 애도모임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 박사 고선규 저자의 도서로, 5명의 자살 사별자가 여섯 밤 동안 '마인드 피크닉' 애도 모임을 통해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살 사별자란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사람을 일컫는다. 책에 등장하는 5명의 자살 사별자는 모두 2~30대 여성으로, 모두 가명을 사용해 해당 도서에 등장한다. 원이는 남동생, 민이는 오빠, 선이는 여동생, 영이는 아빠, 경이는 언니를 잃었다.
이들은 자살이 있었던 날을 '그날'이라고 언급하며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애도 모임을 시작한다. 고인의 시신을 본 사람도 있는 반면, 장례식에서 염을 할 때까지 시신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겨우 5명의 사람이 모여도 이토록 다른데, 자살 사망자가 계속해서 증가 중인 한국 사회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득해진다.
이어서 자살 사별자들은 그날 이후 가족으로서 처리해야 했던 행정적 절차(사망신고 등)를 수행하고, 우려를 가장한 주변인들의 무례한 언어들을 삼킨 기억을 회상한다. 여기에는 고인의 물건은 물론, 디지털 공간에서 고인의 과거 활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 역시 등장한다. 이에 고선규 저자는 '기념계정화' 기능을 언급하며, 사망 이후 자신의 SNS 기록을 어떻게 처리하기를 원하는가를 먼저 선택하기를 추천한다. 사망 이전 사용자가 보존을 원하는 '기념계정'으로 남겨지고, 폐쇄를 원한다면 유족의 사망신고를 거쳐 영구 삭제되는 형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세상에서 죽음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이 아니므로, 기념계정화 기능을 비롯해 나의 죽음을 대하는 여러 방식을 인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책을 읽는 동안 문득 서늘해지고 문득 축축해졌다. 내 주변 사람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상상했기 때문에. 잠깐동안 떠올려보는 일조차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계속해서 상상하고 떠올리는 것이다. 이 책 덕분에 그 상상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계속해서 여러 형태의 죽음을 직면하고, 그들의 지난 삶과 남겨진 이들의 삶을 지켜보고 싶다.
55-56p. 때로는 죽음과 관련된 어떤 사실의 일부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반응들은 사별자가 미쳐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고 상실에 대한 애도가 진행되면서 충격적인 스트레스에 반응하고자 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은 회복될 수 있다.
70p. 장례식은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음을 생각하는 자리이자 어떤 존재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자리이면서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사회적 만남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떠나는 것을 잘 배웅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살 사별자들이 기억하는 장례식은 산 사람의 잔칫집 같은 장례식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도 아니다. 낯설고 불편하며 혼란스러운 장례식이다. 그래서 고인을 잘 배웅하지 못했던 장례식이다.
105p. 애인을 자살로 잃은 지 2주 만에 애도 상담에 찾아온 내담자가 있었다. 자살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다며 하루빨리 '연착륙'하고 싶다고 했다. 비행하던 물체가 착륙할 때, 비행체나 탑승한 생명체가 손상되지 아니하도록 속도를 줄여 충격 없이 가볍게 내려앉는 것이 연착륙이다. 애도 상담을 통해 충격을 줄이고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말이다.
156p.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자살 예방 아닐까요? 살아야 할 이유가 거창하다면 죽지 말아야 할 삶의 이유들을 생각하게 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삶의 끈들을 많이 만들어주는 거요.
165p. 저는 동생 옷을 보고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동생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좋거든요. 저는 죽음에 대해 어떤 것은 호상이고 어떤 것은 불길한 죽임이고, 그런 이분법적인 분류가 싫었어요.
275p.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고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피크닉을 떠난다. / p.42
뉴스에서 죽음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나의 동년배인 사람들의 죽음일 경우에 더욱 감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며칠 정도는 묘하게 우울감이 자리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더욱 공감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임상심리학자이신 고선규 작가님과 다섯 명의 자살 사별자들의 대한 도서이다. 자살의 심각성을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더욱 경각심을 가지는데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책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구매했었다. 기회를 보다 여행을 동행할 책으로 골라서 읽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분들은 신청과 개별 상담 등을 통해 다섯 명을 선정되었고,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애도 모임의 리더인 원이는 2018년에 남동생을 잃었다. 민이는 2019년에 오빠를 잃었고, 과중한 업무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이는 2015년에 여동생을 잃었으며, 여동생을 자살로 이끈 우울증을 알고 싶었다. 영이는 2019년에 아버지를 잃었고,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니의 간병으로 지쳤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경이는 2019년에 언니를 잃었으며, 유일하게 자살한 이후의 모습을 봤다.
자살 사별자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남은 가족들의 심리부검면담을 한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흔히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시체를 부검을 한다는 것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심리부검면담은 처음 들어서 생소했다. 고인을 기억하거나 보내는 방법뿐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차원에서 주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인에 대한 감정들을 다루는 면담을 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담담하게 어떤 상황에서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었는지 서술된 부분에서 참 마음이 아팠다. 산에 오르다 내려오는 길에, 학교에서 공부하다, 엄마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벽에 잠을 자고 있다가 등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던 그 시간에 들었다고 한다. 과연 나라면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그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눈앞이 아득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우리나라 사회가 자살 사별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여기에 나오는 자살 사별자들 중에서도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자살이라고 하면 뒷말이 나오기 때문이겠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 이유가 그렇게 중요할까. 이러한 부분은 인식이 조금 바뀌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가족의 옷을 전부 없애거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볼 때마다 떠오르기 때문에 조금은 멀리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가족의 옷을 입고 다니고, 누군가는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후회스럽다고도 했다. 각자 사람에 따라 애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일괄적으로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중간에 샤이니에 대한 임상심리학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나오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저자는 샤이니의 활동이 무엇보다 반가웠다고 한다. 상처와 슬픔을 안고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고, 고인을 잊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느꼈다는 것인데 이는 샤이니의 팬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살 사별자들에게도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샤이니의 팬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타격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동년배이기도 하고, 데뷔 때부터 매체를 통해 봤던 아이돌 그룹이었기 때문에 내적인 친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충격을 많이 받았고 한동안 우울했었다. 더이상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못 듣는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샤이니의 컴백이 반가웠고, 노래 자체에서 희망을 느껴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주 듣는데 이러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사실 처음에는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에 울컥할 때가 많아서 이 책을 가져온 것을 후회했었다. 여행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울 수는 없지 않은가.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면서 읽었는데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금 읽게 된 게 다행이었다. 마음이 무겁고 슬프기는 했지만 마냥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책이었다. 다섯 명의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힘과 용기가 느껴졌다. 큰 아픔을 겪었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 일상을 잘 살고 있다고, 고인을 지우지 않아도 오롯이 기억하면서 이겨내고 있다는 말이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다.
꼭 가족과 친구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응원했던 연예인들 역시도 어떻게 보면 소중한 존재이기에 아마 우리 모두 자살 사별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나에게는 하나의 큰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남은 이들을 위한 이야기들이 인상 깊게 남았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