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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sf 소설을 접하던중 생각나서 찾게된 듀나의 소설. 아마 영어로 번역되었다는 (어쩌면 여러권이 이미?) 온라인의 코멘트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을 듯. 듀나다운 빠른 전개와 절대 대충 다루지 않겠다는 듯한 기술 및 배경 묘사들이 일품. 물론 도중에 책을 놓기가 어렵게 만드는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면 어느덧 몇 시간만에 책장을 덮게되는 아쉬움을 맛보게 된다.
《면세구역》《태평양 횡단특급》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난 듀나의 작품.
SF 읽기가 조금 불편한 이유는 아마도 그 세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가 세팅해 놓은 시공간은 어느 정도의 미래일까. 아니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일까.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그리고 낯선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나 현재의 정보만으로 바로 파악을 할 수 없는 설정들이 일반 소설들과 가장 큰 차이일 테지. 그것 또한 재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야기에 들어가면 곧 알게 된다. 시간과 공간이 낯설고 파악할 것이 좀 있어도, 결국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듀나의 작품은 SF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리극 혹은 미스터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실마리들을 연결하고 폭발해 버리며 진실을 찾아가는 긴장감 제대로의 이야기. 너무 숨가쁘게 읽어나가느라, 작가가 공을 들였을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런 의미로 SF는 두 번의 독서를 권하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 첫 독서에서는 낯설게만 들리고, 설정이 촥 붙지 않아서 흘려가며 흐름만 파악했던 디테일들을 다음 독서에서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날 밤, 요트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을 때 아이 왼쪽 옆에는 죽은 엄마의 유령이 앉아 있었다. 그동안 비서 프로그램의 아바타에 조금씩 누적된 엄마의 말과 동작은 그 증강현실 유령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불꽃놀이도 엄마였다. 그 안에 잠시 엄마의 몸을 이루었던 가루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요트, 장례식, 불꽃놀이 모두가 죽은 엄마의 계획을 따른 것이었기에. 아이가 보는 건 죽은 엄마 정신의 연장이었다.” (pp.10~11)
소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세 페이지 분량의 챕터에는 죽은 엄마를 불꽃놀이로 장례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아이의 장례의 순간에는 죽은 엄마의 유령이 함께 한다. 죽은 엄마의 유령은 아마도 삼차원 홀로그램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니 가상 현실로 구현된 (난치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만나는 엄마가 등장하는 <너를 만났다>라는 TV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죽은 회장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었을까. 내가 알기로 회장의 뇌에는 최소한 네 개의 웜이 들어 있었다. 두 개는 알츠하이머 치료용이었다.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훨씬 손쉬운 방법이 나와 있었지만, 회장은 이를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죽기 전, 한정혁의 정신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회장이 죽자, 생전에 엄선한 몇몇 데이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사생활보호법에 의해 파기되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p.80)
프롤로그에서 넌지시 암시하고 있듯 소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어떤 정신 혹은 어떤 욕망의 찌꺼기에 의해 세상에 남아 있는 이들이 움직이고 마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세상을 떠난 이는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궤도 엘리베이터,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의 승강장에 해당하는 파투산의 시작점을 건설하고 우주의 스테이션으로 올라가는 연결 통로를 만드는 일까지 해낸 LK 그룹의 회장이었다.
“... 너무 앞뒤가 딱딱 맞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거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그럴싸한 근거를 들이대며 최강우와 시장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진실을 따지는 곳에서 내가 입을 놀리는 건 무의미하다.” (p.180)
그리고 한정혁에 의해 발탁되어 비밀스러운 업무를 진행하였던 내가 있고, LK 그룹의 신입 사원인 최강우가 있다. 죽은 한정혁의 남은 찌꺼기가 스며든 최강우는 파투산 정부와 LK 그룹의 회장 로스 리 등 여러 사람들에 의해 추격을 당하고 나는 그 곁에서 이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한정혁이 마음에 들어 하였던 조카인 김재인이 출현하여 모든 사건의 핵심을 향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 평형추가 원심력으로 케이블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그 장력으로 궤도 엘리베이터의 구조가 유지된다. 케이블의 두 가닥이 되고 양쪽 모두 점점 굵어지는 동안 나포되어 탄광으로 쓰였던 소행성의 잔해인 평형추는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성장해갔다. 정지궤도의 스테이션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들도 그 성장을 보탰다... 지금 그곳은 오직 로봇들만의 영역이다. 지상의 방해 없이 쓰레기와 운석을 정리하고 쌓고 엮는 작은 기계들의 세상.” (p.219)
소설의 배경이 근미래이다보니 어림짐작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등장한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유령은 소설 안에서도 구현된다. ‘웜’은 몸 속에 주입하는 것이 가능한 장치인데, 투입과 추출이 가능한 만능 프로그램으로 기능이 확장된 스마트폰 같다. 이러한 웜을 통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고, 나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축적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웜이 있어 유령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 빛나는 노란 별이 구름을 뚫고 느릿하게 하늘로 올라간다. 인질극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엘리베이터의 운행이 재개된 것이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별이 구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그대들은 하늘로 가시게, 우리에겐 지상의 일이 있으니.” (p.252)
좀더 확장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현재 출간된) 지금의 소설 분량으로 만족해야 하다 보니 여기저기 설명을 통하여 진행시키는 부분들이 보인다. (반대로 개념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근미래의 풍광을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고 싶다. 죽은 이가 품었던 사랑 혹은 이름 붙이기 애매한 욕망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해결해버리는 것도 요령부득이다.
듀나 / 평형추 / 알마 / 256쪽 / 2021 (2021)
책을 펼치는 순간 친절한 설명 없이 긴박한 추격전에 탑승하게 된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파투산이나 LK기업의 정보를 받아 들이다보면, 나도 모르게 SF게임의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기분조차 든다. 배경은 즐겁고, 전개는 시원시원하다. 군데군데 좀 더 생각해 봐도 좋을 흥미거리도 포진해 있고, 마무리도 억지스럽지 않다. 즐거운 게임을 한 편 한 것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