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 애럴 저/박슬라 역/김현수 감수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공저/김희상 역
문요한 저
김아라 저
스콧 배리 카우프만 저/김완균 역
장성숙 저
유투브 등에서 조던 피터슨의 영상을 어쩌다 한 번씩 마주쳤던 사람에게는 그는 '말빨 좋은 사람' 정도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다른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풀어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원작격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러나 아주 아주 난해한 <의미의 지도>는 피터슨의 수려한 말솜씨가 그의 오래된 사유와 축적해 온 지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책을 읽으며 그의 범상치 않은 젊은 시절 고뇌의 흔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달까.
928쪽으로 일단 두께가 상당하다. 책 뒷편의 주석 등을 빼더라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85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매일 써내려가 13년에 걸쳐 완성해 99년에 출간했다. 매일 매일 쓰다보니 앞에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난 것일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내용은 반복되기도 하고 2장은 또 왜이리 긴지, 읽느라 지루해지는 것을 끝까지 읽어보겠다고 나와 사투를 벌였던 것 생각하면, 반복된 내용을 없애고 책의 두께를 1/3로 줄였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피터슨의 <의미의 지도> 집필 동기는 당시 냉전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전쟁에 너무 화가 나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인 책의 정서는 왜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고 또 노력해야하는지를 주창하는데 그 근거들을 신화, 문화, 문학, 심리, 종교, 철학, 뇌과학 등 방대한 분야에서 끌어와 뒷받침하고 있다. 다른 느낌에서의 재레드 다이아몬드랄까. 86년도 젊은 피터슨이 자신이 발견한 엄청난 철학적 지식에 대해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아도 정말 뽕잎부터 다름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는 몇 가지 역사적 경향을 설명하고 그것이 개인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 편지에서 쓴 방식대로 설명해 보려 합니다. 더 중요하게는 역사의 측면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능한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그 해결책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아버지께서 이 책에 대해 더 듣고 싶으시다면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누군가가 제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지 없을지는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버지, 저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발견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그 생각이 너무 광범위해서 한 번에 명확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을 글로 전부 써 내려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논리적인 언어로 전달하려고 하는 지식은 대부분 지금까지 합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늘 미술과 음악과 종교와 전통을 매개로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전수되어 왔던 것이어서 마치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다른 언어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경험의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다양한 부문에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읽기는 더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피터슨은 칼 융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칼 융과 니체에 대해 안다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집필 당시 피터슨은 종교인은 아니었기에 밖에서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종교의 기능을 설명함) 성경 이야기가 많이 나와 훨씬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해보자.
1. 영유아기에서부터 놀이와 의례를 통해 부모 등에게서 나의 문화를 배우게 되는데 이는 어떤 행동을 모방하고 거기에서 도덕 윤리 등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놀이를 통해 창조적 행위를 하게 되고 그것들은 연극과 이야기를 통해 구현이 된다. 이러한 것은 결국 신화에서 종합되어 볼 수 있는 요소들이며, 결국 신화에서 나온 요소들은 종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철학으로 이어진다.
2. 인간의 경험의 구성요소는 크게 기지, 미지, 인식자로 나뉘며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기지'의 영역은 과거에 축적된 지혜 등 우리의 문화 속에 존재하여 익숙하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신화에서 기지는 위대한 아버지로 많이 그려지며 보호자이면서도 폭군의 양면성을 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은 위대한 어머니로 많이 표현되고, 기회와 같은 풍요로움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파괴적이다. 이 둘을 중재하는 기지와 미지를 인식하는 주체이자 자식인 '인식자'는 기지의 영역에서 "의지와 희망을 집어삼키는" '위대한 혼돈의 용'이 있는 미지의 영역으로의 탐험을 하는 영웅적 역할을 한다. 용과의 싸움으로 경험적 과정을 구체화시키고 미지의 영역을 기지의 영역으로 만들게 된다. 즉, 우리 인간은 미지를 직시해 그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험하는 인식자가 되는 주체적인 삶을 통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건설적 자기실현을 이룬 개개인의 집합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류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이끄는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진화론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익숙해짐에 익숙하다. 그리고 대개 그 익숙해진 상태를 굳이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고 안주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피터슨은 그런 기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위대한 혼돈의 용은 개인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관심을 좇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의지와 희망을 집어삼키는 용과의 싸움은 영웅이 신화의 시계에서 겪는 싸움이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따라가면 반드시 이 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 허용되기만 한다면, 개인의 정신에 깃든 위대한 힘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영웅은 자발적으로 용과 전투를 벌인다. (중략)
관심은 곧 의미이다. 의미는 개인이 성스러운 적응의 길 위에 있음을 드러낸다. (중략)
부활이란 곧 개인의 능력을 확장하는 문화의 정체성을 수용한 이후 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관심을 되살리는 일이다. 관심이 되살아난 개인은 미지와 기지의 경계로 향하며, 그 결과 사회가 확장된다. 현대 사회에서 신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행동하고 역사의 경계를 확장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조던 피터슨이 냉전시대를 보고 느낀 환멸감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조던 피터슨의 바람처럼 이러한 영웅적 자아들이 모인 사회는 꽤 이상적이지 않을까? 아버지와의 편지에서 보인 그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보라. 정말로 해결책을 알고 있었던거다.
이성주의가 도래하면서 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과학으로는 객관적 설명만 할 수 있을 뿐, 가치 판단은 불가하다. 그러나 이야기라는 수단을 써서 조금 더 쉽게 우리 인간의 삶과 문화에 대한 진리를 전달하고자하는 신화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우리 인간들에게 더욱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간 신화를 단순히 한 나라나 문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의미한 허구라고만 치부했던 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신화를 통해 드러난 종교/철학과 과학의 적절하고 균형있는 조합이 필요하겠단 생각도 해보면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개인들이 많아지는 현대 사회이기도 한 이 시점에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의 중요성과 계속된 자기계발/개발을 통한 자기실현을 해야함을 상기해본다. 단순히 해야지하는 의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의미의 지도>처럼 진정한 내적동기를 끌어내주는 것이 양서라 생각한다. 피터슨의 철학적 의미를 조금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고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읽으며 다독하는 삶으로 나의 수없이 나타나 혼돈의 용과 맞서 싸워 수없이 다가올 미지를 기지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하여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그들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상상을 살며시 해보며.
나는 줄곧 신화는 조상들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신격화된 대상을 허구적으로 만들어 낸 미신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로마에 있는 신전이나 이집트에 있는 파라오를 보며 감탄하다가도, 그것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빚어낸 예술의 창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겼다. 조던 피터슨의 의미의 지도는 이러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무지했으며, 오래전의 신앙들이 지금 이 순간까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머나먼 조상들의 생활양식과 믿음이 지금 우리의 삶의 기반을 만들었고, 정신세계에 깃들어 있는지를 읽고나면 누구나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만국의 신화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개념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어지러히 섞여있는 '혼돈의 용'이 태초의 상태이며, 어머니가 '미지'의 세계를 창조하자 아버지가 '기지'의 세계(질서)를 개척하고, 그 자식인 '영웅'이 미지에서 기지의 세계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는 주체자이다. 하나님과 성모마리아를 숭배하는 기독교와 카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힌두교, 불교 등 거의 모든 세계의 종교가 바로 이 도식를 기초로 하여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과거에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없었으므로 조상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틀을 빌려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후대에 이해시키고 전승시켰던 것이다. 고대사람들과 지금 우리의 삶은 표면적으로는 다르겠지만, 인류가 전생애적으로 겪는 핵심적 개념의 토대(미지/기지,음/양, 선/악, 혼돈/질서)는 같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기록인 성경을 읽고도 깨달음을 얻고 전율을 느낀다.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아주 오래전의 사상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히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과거의 생활양식과 문화는 현재의 내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이해하며(집단무의식), 두렵더라도 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뛰어들면서 창조적인 파괴를 이끌어내도록 스스로를 독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