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당신들이 좋아했던 여자들은 아직 TV에 나오나요?
책 <어제 그거 봤어?> 프롤로그 中
영화, 드라마 보기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종종 어떤 작품을 보기 전 검색을 해본다. 누가 나오는지, 출연진 중 범죄자가 있는지, 짜증 나는 이슈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출연진을 위해 봐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이전처럼 그냥 보려고 해도 보다 보면 스토리 라인이나 캐릭터 활용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한 번씩 일시정지를 누르던지 결국 탈주하고야 마는 작품을 만난다. 그 작품이 어떤 이유로 내게 그런 기분을 안기는 건지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도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제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 만난 이 책은 나쁜 작품이라고 해도 그 와중에도 왜 나쁜지를 더욱 풍성한 언어로 표현하고, 비슷한 작품이 있었는지, 내 일상이나 다른 작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오지랖이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미 봤거나 혹은 보지 않았던 작품을 더 나은 기분으로 보거나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발언의 자유가 있는 걸까?
된장녀 신드롬처럼 걸그룹이 토크쇼에 나와서 "에이, 그건 한남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있기 전까지는 아닌 듯하다.
너무 사랑했던 영화/드라마마저 지금은 당당히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렵다. 한눈에 반해 말을 거는 행위는 가히 공포스럽고, 그가 어디로 가는지 쫓아가는 모습은 스토킹 범죄이며 간다는 사람의 손목을 힘주어 잡는 건 폭력이니까. 이런 걸 말하려 하면 문득 겁부터 난다. 낙인찍힐까 봐. "어차피 변해가는 세상 조금 늦게 바뀔 수도 있지 그렇게 닦달해야 해? 너만 다 아는 거 같아? 분위기 망치고 싶어?" 이런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리뷰 쓰기도 어려워했던 때가 있었다. 쓰는 와중에도 자꾸만 검열하기 바빴다. 그러다 결국 쓰지 못하고 쌓아두다 없애버린 글만 수두룩. 그러다 작가가 리드하는 한 프로그램 <나만의 관점으로 애니메이션 재해석하기>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진행보다는 사실 작가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신청했지만 이 시간 속에서 깨닫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서로 말하는 톤이나 사용하는 단어는 종종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이전에 봐왔던 것보다는 확실히 다른 작품을 갈망하고 있었다.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쓰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런 작품을 봤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남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니까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관련 자료를 준비하며 일련의 과정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물론, 여전히 우리 동료들 앞에서만 소리 높여 말하긴 하지만 이 든든함이 곁에 있음을 잊지 말고 기회가 온다면 꼭 놓치고 싶지 않다.
(신입사관 구해령) 구해령이 안내하고 동행한 모든 경험의 마침표는
결국 우리들의 얼굴이었던 게 아닐까?
책 속에서 만난 작품들은 내가 봤던 거나 보고 싶었지만 아직 보지 않았거나, 앞으로 보지 않을 예정인 작품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떤 부분은 공감하거나 짜릿했으며 어떤 부분은 아직 접하지 못해 쭉 읽어 놓기만 했다. 작가는 날 고민하게 만든다. 그 작품을 볼까? 말까? 보면서 후회하지 않을까? 아마 후회할 걸 알아도 보고야 말 것이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나 허술하다고 느꼈음에도 각 이음새마다 다채로운 기분과 새삼스러움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말엔 확신이 느껴진다. 수많은 절망과 안타까움을 느꼈음에도 작가는 그럴수록 왜 그랬는지 자꾸만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하나의 작품에 대한 글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장에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처음엔 지나치던 그 질문에 답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만 하는 것보다 연필로 직접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은 항상 그랬듯 금방 날아가니까, 꼭 써가며 관련된 다른 것을 떠올리거나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길 바란다.
(소울) 자유롭게, 아주 자유롭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험을 갖는 것.
목적의식 같은 거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여유 가득한 목소리로.
누가 알까. 그러면 가끔은 살고 싶어질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당장 작가가 언급한 작품 중 하나를 봤다. 감상을 바로 써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작가가 짚어낸 지점이 떠오른 것만으로 좋았다. 작가가 짚어낸 이 지점에서 나의 어떤 기억이 떠오르고, 그건 내게 지금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생각은 쉽게 날아가고 말았지만 그 느낌은 간직하고 있다. 에너지가 남아도는 어느 날 애써 꺼내어 쓰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을까. 굳이 쓰지 않아도 이렇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곱씹는 행위와 더 이상 멀어지지 않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가볍게, 오래 살아내고 싶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의 삶도 가끔 기웃거리면서.
영화 "겨울왕국"에서 안나는 왜 한스 왕자에게 사랑이 빠진 걸까?
안나는 따뜻하지만 화끈하고 자신이 경험하지 않는 한에서는 타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 인물이다. 안나에게는 한스가 어떤 인물인지 판단할 비교군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성문이 닫히면서 안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전무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경험이 없었으니, 이렇게 공간의 부족이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