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함께 읽은 책이었습니다. 노란 표지에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한 해 동안 늘 베스트셀러 상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관심이 가던 차였습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공통의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과 나누는 책이라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무려 박준 시인의 추천사는 더욱 흥분하게 했지요.
저자 김혼비는 여전히 백지 앞에서 낳을 많이 가린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싶어서 자꾸 그 위에 뭘 쓰는 것 같다고 해요. 저서로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전국축제 자랑>이 있습니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어요. 1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인 김솔통 같은 글들이 모여 있습니다. 2부는 자신의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죠. 미괄식 인간이었던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의 방향을 잡게 해준 김솔통을 발견했던 마트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따뜻하면서도 기발한 그녀의 생각과 다정들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봅니다.
영원한 위선은 결국 선으로 남을 테니까. 이 위선과 가식이 헐거워져서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위선과 가식으로 아주 똘똘 뭉쳐 살고 싶다. (p65)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와 함께 가장 참신하게 생각의 틀을 깨버린 가식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위선적이다, 가식적이다’라는 말에 과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죠. 물론 가식적인 것과 위선적인 것이 전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쁜 것은 또 뭐냐라는 말을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설명하죠. 어떤 위선은 들키지 않은 이상 선의 모습을 갖는다고 하면서요. 자신을 힘들게 했던 A 팀장은 솔직함을 무기로 하고 싶은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 상처를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B 팀장은 좋은 팀장이고, 열린 팀장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렇게 되려고 애썼던 사람이라고 했어요. 물론 B 팀장이 마음까지도 그런 것은 아니어서 간혹 들키거나 속내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정말 애를 써서 모른척했다고 합니다. 그걸 들킨 걸 아는 순간 본래의 모습으로 힘들게 할까 봐요. 그렇게 서로 들키기 않으려고 애쓰면서 노력하다 보니 나중에는 진짜 좋은 팀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고, 심지어는 B 팀장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 완전히 설득당한 저는 이제라도 선을 흉내 내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위선적이라고 흉보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선을 흉내라도 내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고 나도 그렇게 돼야겠다고요. 솔직히 말해서로 시작하는 말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던가요? 솔직함은 잠시 넣어두고 선을 흉내라도 내 봐야겠습니다.
집에서조차 안전할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흔적을 기를 쓰고 없애야 하는 현실이. 안간힘들이.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해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야 안전할 수 있을까?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우리의 귀신들이 부디 제 몫을 해주기를.(p97)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여성이 혼자 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남자 신발을 현관에 두거나, 택배 수신인의 이름을 건장한 남자 이름으로 하는 등은 이제 애교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실체 없는 귀신들을 빗대어 여성의 안전을 말하는 사고의 확장을 넓히는 작가가 대단해 보였어요. 우리는 그냥 익숙해져서 조금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일인데요. 뉴스를 통해 늦은 밤 기숙사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여학생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남편과 잠깐 실랑이를 하기도 했죠. 남자라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좌절하게 만들었던 대화였습니다. 왜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냐면서 그 여학생이 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 여학생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거라고 딸들과 함께 설명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여성이 안전하지 못한 것은 남자들이 여성의 불안과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신들은 전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괜히 여자들이 호들갑 떤다는 식의 생각. 그 생각을 생각으로만 갖고 있지 않고 자랑하듯이 언론을 통해 말하는 정치 지도자들. 답답합니다. 우리의 귀신들이 더 잘 자신의 몫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진정 답이 없을까요? 여성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모두가 안전한 나라는 꿈인 걸까요?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p211)
자신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다던 A 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팀장의 시선은 쓸모없고 성가신 사람 보듯 했다고 해요. 그 시선은 점점 자기 자신도 쓸모없고 성가신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계속될수록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인 자신만 남았다고.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인해 3개월 만에 살이 4킬로그램이나 빠지고 휴가를 맞은 자신을 친구가 극진히 대접해 줍니다. 작은 행동에도 예민하게 살피면서 쉴 수 있게 집을 제공하고 끼니때마다 잠든 저자를 깨워 식사를 챙겨주죠. 밀린 잠을 몰아 자듯이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한 마지막 날 친구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음식을 만듭니다. 이틀을 꼬박 자지 않고 우려낸 사골 국물에 사리 곰탕면을 끓여서 내 놔요. 그 과정이 담긴 블로그 영상을 친구에게 보여주면서요. 그 블로그를 보면서 완성된 ‘미친 사리곰탕면’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눈물과 함께 맛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의 말이 다시 일어나게 했죠.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곰탕을 먹고 좋게 소분하여 냉동실에 얼려 놓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 먹으면서 힘을 냈다고 해요. 그날 이후로 그 팀장과도 업무 조정을 통해 분리할 수 있었고, 힘들 때 더 힘들게 하던 애인과도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 음식이 보양식이라서 힘이 났던 것만은 아닐 거예요. 친구의 마음이 담긴 응원과 격려 때문이었겠지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와 격려를 받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죽 집에서(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위는 소화를 거의 못했기 때문에) 죽을 앞에 놓고 울었어요. 그 죽을 사주는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져서. 그 죽이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조명보다 더 따뜻한 눈길로 나를 보던 친구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죠. 어떤 음식은 기도라는 말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도 같은 음식으로 섬길 수 있기를, 그때 내가 받았던 마음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또 다짐합니다.
추천사를 쓴 김소영 작가는 책을 읽고 저자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도 책을 읽고 저자와 친구가 된 느낌을 가져요. 그녀의 남편 책을 검색하고, 그녀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면서요.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축구를 해 볼 생각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저자처럼 다정한 사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낱말 하나에도 상처받을 사람들을 생각해 다른 단어를 고르고, 기본이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을 가두지 않으며, 편견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그러면서도 다정한 사람이라니 정말 요즘 말로 사기 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위선을 다시 배우고, 조상 혐오를 멈추는 방법을 고민하고, 귀신들을 연대하는 방법을 배워요. 무엇보다도 흉내로도 쉽지 않은 다정들을 배웁니다. 선을 흉내 내듯이 그녀의 다정들을 흉내라도 내기 위해 애씁니다. 다정을 발견하기를 마음먹자 소소한 일상에서 다정들이 눈에 들어와요. 엄마를 배려하는 딸의 말 한마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남편의 마음,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저의 다정한 마음들이 보이시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다정들이 늘려 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줘요. 노랗고 작은 책이 이런 큰 발견을 가져다주다니!! 당신에게도 작고 소중한 다정들을 선물합니다. 다정하고 훌륭한 친구 한 명 만나 보실래요? 책과 함께 기다릴게요.
김혼비 작가의 글은 다정하다. 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도 다정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의 글을 처음 읽은 게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술』이었다. 술 좀 마신다고 말하길 꺼렸는데, 작가의 글을 읽고는 생각을 바꿨다. 술 좋아하는 게 어때서, 라는 마음이 강해졌달까. 술에 관한 생각들을 읽고서는 술 마시는 즐거움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었다. 어디 가서 술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것들.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후 구입한 첫 번째 책이다. 『다정소감』을 읽고 났더니 전작주의 형태로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점이 좋았다.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차별적 언어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차별적인 발언을 싫어하면서도 무심코 사용했던 것들에 대하여 반성했다.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부모가 없거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의식해 학부모 등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 다정한 마음이 깃들지 않고서야 생각해낼 수 없다.
가식에 관하여 말하는 부분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솔직하다는 미명 하에 여과 없이 말하는 사람과 적당한 가식을 섞어 말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을까. 상처받더라도 솔직한 사람이 낫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선적으로 한 말에 상처가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면 차라리 적당한 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가식은 사람과의 관계를 친화적으로 만들 것이므로. 작가는 말한다. ‘솔직한 나’를 사랑하더라도 그 솔직함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타인의 커다란 비극을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눈치껏 슬퍼하는 척을 바라는 게 비단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적당한 위선과 가식을 필요로 하는 이유,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맞춤법이 틀린 사람을 참기 힘들다. 잘못 쓴 게 아닌 아예 잘못 알고 있는 단어를 말할 때의 틀린 사람 말이다. 단체 채팅방에 틀린 단어를 계속 쓰는 이에게 지적한 적이 있다. 결론은 뭐냐고? 알았다고 해놓고도 그대로 사용했다. 지적하는 게 기분 나쁘다는 뉘앙스를 발견해 조심하는 중이다. 자꾸 지적질하고 싶은 걸 참느라 애가 탄다. 작가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SNS를 보며 팬심이 자꾸 어긋나는 것을 느끼는 부분에서 마구마구 공감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마음이 그럴 것이다. 비록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그가 함부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저자는 다정할뿐더러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온 후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으로 보이는 여행 후기를 읽으며 생각에 잠기는 부분을 읽을 때다. 같은 사람을 바라보아도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중년, 단체, 패키지여행이 빚어내는 편견에 대한 글을 읽고 있노라니 우리 역시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아는 언니들과 서부해당화를 보러 갔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할머니들의 다양한 옷 색깔을 보며 불편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그 나이대만의 여행과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겠느냐는 거였다. 가까이에서 패키지여행을 온 단체여행객들의 말을 들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연스럽게 합석해 맥주 한 잔을 마셨던 기억과 대조로 그들의 행태 묘사를 개탄했던 누군가의 여행 후기를 읽고 나서 쓴 글에 여러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 또한 그러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말이자 다정에 대한 소감, 혹은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라고 밝혔다. 책에서 느꼈듯, 다정한 작가이듯,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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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만나본 다정은 삶을 살아갈 힘을 주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같습니다.
작가님의 다정다감한 시선은 책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되고, 독자는 책을 읽으며 마음의 따뜻함과 곳곳을 비추는 작가님의 생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정함의 따뜻함이 필요하거나 좋은 분에게 <다정소감>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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