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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 특집] 매주 한 편씩 보낸 뉴스레터, 책이 되다 - 배달의민족 마케터 김상민
2022년 05월 16일
모두 그런 건 아닐 거다. 어떤 사람들은 큰 통증도, 감정 기복도 없이 보통의 하루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그건 정말 축복이다. (P.301 핫펠트,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
글 쓰는 사람에게 추억팔이란 숙명 같은 일이다. 원고 마감을 위해서는 삶의 어떤 시점이든지 기꺼이 곱씹을 준비가 되어있는걸. 특히나 헤어진 애인과의 이야기 같은 건 가장 꺼내쓰기 좋은 조미료와도 같다. (P.88 디에디트, 첫 양파 수프의 맛)
나는 묽은 사람인 동시에 아주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자기 신념에 너무 몰입하여 엄격해지면 자신의 무결함에 도취되기 쉽다. (p.198 요조, 저는 채식주의자이고 고기를 좋아합니다.)
새해 선물로 핫펠트 작가님의 사인이 담긴 을 선물 받았다. 이름난 열 두 명의 작가님들의 글을 모은 이 책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여러 작가님이 참여한 책에는 각각의 작가님 '맛'이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에 매력이 부족하달까. 그런데 이 책은 '일상 속 음식' 이야기여서 그런지 날 것 그대로의 작가님들도, 조미료 듬뿍 쳐서 맛깔나는 작가님들도 가득 들어있었다. 글 잘 쓰기로 이름난 분들인 것은 진작 알았으나, 이렇게 일상을 재미있고 맛있게 쓰실 수 있는 분들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음식에는 언제나 감정이 담긴다. 누군가를 추억하는 것에도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어떤 음식을 먹으며 '이거 그때 00이랑 먹으며 어땠지~'하는 추억팔이는 너무 흔한 경험.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웃음이 나기도 했고 코가 시큰해지기도 했다. 핫펠트 작가님의 김치 이야기에서는 엄마가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존재인지를 생각했고, 김겨울 작가님의 요거트 이야기에서는 나도 관대한 근자감에 차올랐다. 디에디트 작가님의 양파 수프에서는 나 역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요조 작가님의 글에서는 그 아이러니에 공감이 넘쳐서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고 하면 못하겠다. 음, 엄청나게 잘 차려진 푸드코트의 느낌이랄까? 그들의 글은 재료도 다 다르고, 그것을 담아낸 그릇도 다르다. 다양한 맛과 다른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있는데 짬뽕 같은 느낌은 전혀 아니다. 푸드코트에서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기분 좋게 고르고, 마침 테이블도 금방 나서 기분 좋게 차려놓고 먹는 기분이랄까? 의식주는 우리의 기본이기에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듯,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들은 역시나 수많은 이야기를, 감성을 자아내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작가님들도 나도, 올해에는 더 맛있는 인생이길 바라보며, 덕분에 나의 도 참 좋았다.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인사말 중 하나가 아마 “밥 먹었어?”일 것이다.
헤어질 때나 전화를 끊을 때도 “다음에 밥 한번 먹자”가
마지막 인사가 되곤 한다. 혹여 상대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이렇게 밥에 진심인 민족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 먹는 일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의 척도가 된다.
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떻게 먹는지만큼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시킨다
3월 한 달은 그랬다. 그게 그러니까 카드 내역을 보려면 스크롤을 한참이나 내려야 했다. 소비의 달이었다. 은행 앱으로 든 적금을 깨서 신나게 써 제꼈다. 하나 살 걸 두 개 사고 평소 같으면 안 사야지 했던 것도 샀다. 뭔가에 씐 듯. 소위 말하는 지름신이 강림하사 그분께서 시키는 대로 했다. 뭘 해 먹으려는 마음도 없어서 배달의민족에 의지했다.
『요즘 사는 맛』을 쓴 저자 중 한 명인 배우 박정민처럼 카드 내역서에 자주, 빈번하게 우아한 형제 님들이 등장했다. 다들 아시나. 배달의민족 앱에서 결제를 하면 사용처는 우아한 형제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대체 우아한 형제가 누구길래 자꾸 돈을 가져가나 하겠다. 그렇다. 우아한 형제는 지금의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형제님들이다. 그 분들은 게으르고 배고픈 형제, 자매님을 위해 집 앞까지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준다.
거기까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돈 백은 우습게 사라진다. 어떤 유튜버는 배달 음식비로만 백만 원을 넘게 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주문하는 동안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이것도 못 먹지는 않잖아. 이 정도는 쓰면서 살 수 있잖아. 흥분된 마음으로 포장을 뜯고 먹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밥해 먹을걸. 펑펑 쓴 3월 지나 4월,의 첫 소비는. 두구 두구. 바로. 우아한 형제님이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사이드 메뉴까지 욕심 부리며 시켰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작가들이 배달의민족 레터에 음식을 주제로 산문을 썼나 보다. 시켜 먹기 바빴지 배민이 그런 걸 하는 줄도 몰랐는데 책이 나오고서야 알았다. 『요즘 사는 맛』은 무얼 먹고 사는지 왜 먹는지 먹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작가들의 귀여운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사는 모습만큼이나 먹는 모습도 다양하다.
남들이 어떤 걸 먹으며 사는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무얼 먹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을 때 읽으면 딱 좋은 책이다. 입이 터져 버린 배우 박정민의 이야기. 토마토에 진심인 김겨울. 혹독한 직장 생활을 견디게 해준 음식의 추억을 꺼내는 김혼비. 헐렁헐렁한 비건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요조. 한 음식만 패는 최민석. 읽으면서 깜짝 놀라서 다시 정독하게 만든 훌륭한 글솜씨를 가진 핫펠트.
요즘 나는 괜찮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원래도 아무거나 잘 먹는데 더 아무거나 잘 먹게 되었다. 매일유업에서 나오는 두유를 사서 냉장고에 일렬로 정리해 두었고(마치 편의점 같은 진열로) 친구 찬스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종종 먹고 있다. 샐러드 가게에 가서 감탄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걸 보고선.
다들 요즘 사는 맛은 어떤지. 세상은 점점 이상하고 기괴해져 가는데 괜찮은지. 그러니까 시간이 난다면 마트든 편의점이든 가서 달달한 걸 하나 사서 입에 넣으며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쓴맛 나는 하루였대도 하루의 끝은 달았으면 그랬으면 한다. 정 힘들 땐 배달비 생각하지 말고 제일 먹고 싶은 거 시켜서 먹어. 결제는 한 달 후 월급 받을 네가 할 테니까. 미래의 너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