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그루에 저/송경은 역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기담과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조합한 ‘미야베 월드 2막’ 가운데 ‘기타기타 시리즈’는 이제 막 두 편의 작품만이 세상에 나온 따끈따끈한(?) 막내입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미야베 월드 2막’의 간판인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와 함께 작가로서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부를 만큼 ‘기타기타 시리즈’에 대한 애정 어린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기타이치는 명탐정도 아니고 뛰어난 자질을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책을 담는 상자’인 문고를 만들어 파는 행상에 불과한데다 비주얼도 완력도 결코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미 여사는 “이 젊은 문고상이 시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트러블을 ‘입장이 약한 사람들’과 더불어 해결하며 어엿한 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에도 시대의 풍경과 함께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히어로는 없지만 어벤저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도 시대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물론 기타이치가 마주하는 사건들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다뤄지는 사건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표제작 ‘아기를 부르는 그림’에 등장하는 기괴한 사건으로, 당초 아기의 탄생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 제멋대로 저주를 부려 아기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미스터리 괴담의 전형적인 공식에 충실한 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기타이치가 단골로 드나들던 도시락가게 일가족이 참혹하게 독살당한 사건으로, 이 역시 기담과 괴담의 분위기가 진하긴 하지만 비교적 현실적인 미스터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론 점포를 지닌 성공한 문고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기타이치는 두 개의 사건과 마주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오캇피키(하급관리의 지명을 받아 치안업무를 맡던 민간인)가 되면 어떨까, 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힙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자신을 키워준 오캇피키 센키치 대장의 뒤를 잇는 것은 기타이치에겐 더없이 각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문고상으로도, 오캇피키로도 한뼘 훌쩍 성장하는 기타이치의 눈부신 시간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기타이치가 맹활약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엄청난 반전이나 짜릿한 결말을 맛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시리즈의 진짜 매력은 기타이치 주변의 인물들, 즉 기타이치를 후원하거나 도와주거나 쓰디쓴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조연들에 있습니다. 남편 센키치 대장과 사별한 뒤로 기타이치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마쓰바 마님, 기타이치의 버디 캐릭터이자 모든 것이 비밀투성이인 목욕탕 직원 기타지, 무가의 자식이지만 기타이치의 문고에 그림을 제공하는 신비로운 인물 에이카, 그리고 가난하지만 정감 어린 기타이치의 셋집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조연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타이치를 도우면서 스스로도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체크하면서 읽는다면 이 작품의 맛을 좀더 진하게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야베 월드 2막’을 초기작부터 읽은 독자라면 이 작품 곳곳에서 반가운 이름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맏물 이야기’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캇피키 모시치 대장, (잠깐 지나가듯 두어 줄 정도만 언급되지만)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등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의 주인공인 미소년 유미노스케, 그 유미노스케를 도와 뛰어난 기억력을 발휘했던 짱구(산타로) 등이 그들입니다. 특히 이제 중년에 이르러 관리가 된 짱구의 경우 앞으로도 기타이치를 계속 도울 예정이라니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미미 여사는 그동안 다른 시리즈에 등장시켰다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들을 ‘기타기타 시리즈’를 통해 모두 회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기타이치의 삶에 끼어들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만발합니다.
본편 뒤에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편집자 후기’가 수록돼있는데, 삼송 김사장 님께서 미미 여사에게 품고 있는 진한 애정과 함께 ‘미야베 월드 2막’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친절한 해설을 만날 수 있으니 혹시 이 작품으로 ‘미야베 월드 2막’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일본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이 시리즈만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소설도 없을 듯하다. 서민보다 더 하층 계급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맞을 것 같고.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기에는 꽤나 적절하지 않을 것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참으로 절묘하게도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그려 낸다. 그만큼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일본이라는 나라, 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비호감과 강한 편견을 무릅쓰고 일본의 소설과 만화를 자주 보는 나. 변명하기 힘든 이중성이지만 이건 이것대로 어쩔 수가 없다. 미운 건 미운 것이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것이니. 넓은 포용력으로 다 받아들일 것도 아니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와 국민성에 대한 관심은 이어진다.
오캇피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직책이다. 앞잡이라고 번역이 되기도 하는데 썩 긍정적인 역할이 아니었다. 앞잡이가 되는 과정에서 시작부터 한계를 가졌다고 해야 할까.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이가 그 잘못을 덮어주는 조건으로 도신에게 고용되어 도신이 원하는 정보를 가져다 주어야 한 셈이었으니. 일제강점기 시대 때 이런 앞잡이들 때문에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많은 시련을 겪었다는 게 새삼 생각난다. 앞잡이, 고발자, 끄나풀 등등.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오캇피키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다루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캇피키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소설 속 인물들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캇피키의 나쁜 성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는 곧 자국의 제도와 문화를 향한 바람직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관습으로서의 사회문화적 특성들로. 소설은 사회의 모습을 담는 장르이므로 이 또한 적절한 방법이 될 것이고.
기타이치가 기타지와 더불어 온전한 오캇피키가 될 때까지 소설은 이어질 것이다. 작가도 계속 쓰고 싶어한다니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흥미로울 뿐. 나이가 들면서 쓰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 써 내 주시기를 기대한다.
미미여사의 작품은 다 좋아하긴 하지만 에도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안에 스릴러, 공포, 드라마, 로맨스, 추리 등 온갖 장르적인 느낌이 혼재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실 외국지명이나 이름ㅋㅋ을 잘 외우지 못하는 편이라(서양, 동양 할거 없이^^;;) 특히 이런 시대물에는 좀 약한 편이지만, 이런 핸디캡에도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작가의 맛깔난 필력때문이 아닐까.
최애는 미시마야 시리즈이지만 옴니버스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기타기타 사건부 시리즈도 차애 정도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사실 1편인 기타기타 사건부가 나온 후 꽤 오랫동안 후속편 소식이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이렇게 2편인 아기를 부르는 그림이 나와줘서 정말 기뻤다ㅎㅎ
1편도 재밌었지만 2편도 밤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읽었다.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안의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역시 미미여사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성장담이 참 매력이 있는 것 같음^^
언젠가 또 3편으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라며.. 미미여사가 오래오래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