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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 제철소 | 2020년 2월 14일 한줄평 총점 9.0 (43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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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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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무튼 시리즈의 스물여섯 번째 주인공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스트’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가진 하루키는 아무튼 시리즈에 처음 등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등을 번역한 이지수의 첫 에세이집으로, ‘하루키’라는 입구로 들어가지만 결국 ‘나’라는 출구로 빠져나오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에세이 열네 편이 실려 있다.

중학생 시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하루키 월드에 처음 발을 들인 저자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의 일본어 번역가가 되었지만,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통째로 외워버려서 마음에 엉겨 붙은” 하루키의 문장들은 언제 어디서든 그를 청춘의 한복판으로 훌쩍 데려다 놓는다. 하루키와 함께 젊은 날의 긴 터널을 지났거나 아직 지나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일상에 치여 잊고 지내던 과거의 어느 눈부신 순간들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모든 것은 지나쳐 가고 우리는 어른이 되고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그 문장이 나를 데려간 곳
- 『노르웨이의 숲』
안됐다면 안됐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운 이방인 생활
- 『이윽고 슬픈 외국어』
한밤중에 내게로 오는 자전거 소리
- 「한밤중의 기적에 대하여, 혹은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팬심은 무엇을 어디까지 참게 하는가
- 『기사단장 죽이기』
파스타를 만들고 재즈를 듣는 남자들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반환점에서 기다리는 것은
- 「풀사이드」
앙코르와트를 무너뜨리고 인도의 숲을 태우는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
- 『스푸트니크의 연인』
직업으로서의 번역가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 『1973년의 핀볼』
난 이런 글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거든
- 『무라카미 라디오』 1, 2, 3
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
-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작가에게 바라는 것
- 『양을 쫓는 모험』
에필로그
- 아무튼 뭐라도 써야 한다면

저자 소개 (1명)

저 : 이지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키키 키린의 말』, 니시키와 미와의 『고독한 직업』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 『그냥 믿어주는 일』,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무튼, 하루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공저), 『읽는 사이』(공저)를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키키 키린의 말』, 니시키와 미와의 『고독한 직업』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 『그냥 믿어주는 일』,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무튼, 하루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공저), 『읽는 사이』(공저)를 썼다.

출판사 리뷰

1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무튼 시리즈를 기획할 때부터 제철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로 (살아 있는) 인간이 등장한다면, 첫 테이프는 하루키가 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하루키는 취향 강한,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는 몇 안 되는 작가니까요. ‘이 구역의 하루키스트는 나’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한 후보군을 추려 집필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하루키의 임자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아직 하루키 책을 한 번도 번역한 적 없는’ 이지수 번역가에게 그 미션이 돌아갔습니다. (우여곡절이 뭔지 궁금하시다고요? 『아무튼, 하루키』의 에필로그 ‘아무튼 뭐라도 써야 한다면’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만...)

2
그에게 초고를 받은 날, ‘드디어 하루키가 임자를 만났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어떤 대상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하지만 단단한 태도와 목소리가 글 곳곳에서 묻어났습니다. 앉은자리에서 400매 분량의 원고를 다 읽은 뒤 바로 책장에 꽂혀 있는 하루키의 산문집 한 권을 꺼내 읽었습니다. 하루키를 다시 읽고 싶게 만들었으니, 일단은 성공입니다.

3
세계적인 작가답게 ‘하루키’를 소재로 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특히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음악(주로 재즈)이나 음식(주로 맥주), 동물(주로 고양이), 취미(주로 달리기와 여행) 같은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루키 읽기’를 시도한 것들이 많죠. 이지수 작가는 그런 익숙한 방식 대신 자기만의 고유한 기억으로부터 하루키를 데려옵니다. 하루키 읽기가 아닌 하루키라는 프리즘으로 ‘나’를 읽어내는 것.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입니다.

4
중학생 시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하루키 월드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맞닥뜨린 하루키의 문장들을 지금 여기로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루키를 원서로 읽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결국 번역가가 된 저자가 하루키의 문장과 관계했던 내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는 『1973년의 핀볼』 속 문장처럼 ‘하루키’라는 입구로 들어가 마침내 ‘나’라는 출구로 빠져나오는 어느 하루키스트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아무튼, 외국어』를 쓴 조지영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하루키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언제 적’ 하루키는 ‘그래도’ 하루키가 된다.” 『아무튼, 하루키』는 ‘언제 적’ 하루키가 ‘그래도’, ‘여전히’, ‘아무튼’ 하루키인 까닭을 다정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네가 좋아”라는 두 마디를 정성껏 늘여서 해주는 『노르웨이의 숲』 속 와타나베처럼요.

종이책 회원 리뷰 (20건)

아무튼 책_023 (아무튼 하루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y | 2023.11.05

지난번 블로그에도 올렸다시피 분명 출장길에 챙겨간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고양이의 비밀이었는데, 정작 그곳에서 틈틈이 읽은 책은 아무튼 하루키이다. 노트북과 서류들로 묵직해진 가방에서 가장 먼저 내쫓긴 것이 다름 아닌 책이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기도 하고 이것이 종이책의 한계(?)인가 한탄(!)하면서 말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당시의 나에게 쿨한 대학생그 자체로 보였다. 눈을 감으면 언제 어디서나 고베의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청춘의 한복판에 서보기도 전에 청춘을 한바탕 겪은 듯한 느낌을 맛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 습하고 나른한, 떠올리면 조금은 슬퍼지는 세계를 나는 사랑했다.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의 과거처럼 그리워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과 함께 십대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

from ebook

 

저자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함께 십대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면 나는 상실의 시대의 서걱거리는 감정과 함께 이십대의 혼란스러움을 지나칠 수 있었다..라고 쓰면 멋지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작가가 느낀 만큼의 애착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몇 권을 읽었고,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나름의 기준도 있으니 아예 문외한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아무튼시리즈를 읽을때면 과연 이 다양한 소재(때로는 엉뚱하다싶은 소재들도 있다)로 어떻게 책 한 권을 가득 채울까 궁금해지는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13편과 작가의 이야기를 엮어두어 어찌보면 도서 리뷰같기도 하고 또 달리보면 일상의 한순간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적어둔 에세이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가 언급한 책 중 내가 읽은 책이 노르웨이의 숲 한 권 밖에 없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덕분에 작가가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특히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미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은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함에 손발이 광속으로 오그라들지만, 술자리에서 (책에 등장하는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건 염소 이야기를 하며) “근데 내 생각엔 니가 그 염소 같아따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로 이성의 환심을 사려 했던 때도 있었고(그딴 대사로 환심이 사졌다는 것이 또 미스터리다), 리포트가 잘 안 써지면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와도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반드시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일기를 끼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절에는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을 곧잘 떠올렸다. 물론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갈 때는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from ebook

 

책을 읽는 방법 중에 전작주의 독서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소위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는 방법이라는데 꼭 그런 독서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의 모든 책을 다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새롭게 만날 때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너무 좋아진다면 독서가로서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리라(내게도 그런 작가가 있고 또 있기도 했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써보고 싶다).

 

   팬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책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안 살 수가 없는 책. 그런 책을 나의 최애 작가가 또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팬이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성원이 아닐까.

from ebook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내가 읽지 못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고 그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책과 만나며 나의 시간을 돌아보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아니 그저 많은 책들과 함께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할 수 있다면 멋있지 않을까, 어느날 아무튼 책이라는 글을 혼자 끄적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

 

   여하튼 이 작품을 계기로 나도 인생의 반환점을 언제쯤으로 잡으면 좋을지 종종 상상해보게 되었다.

from ebook

 


from Millie

 

*나에게 적용하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읽기 (적용기한 : 2023년이 가기전에)

 

*기억에 남는 문장

어떤 책을 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삶의 곳곳에서 그 책의 문장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 될 때가 있으신지

 

쪼그려 앉아 한 모금 들이마신 88라이트인지 디스인지의 연기는 더럽게 맛이 없고 매워서 도무지 폐 안으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함께 장난삼아 마셔본 맥주 역시, 이걸 마시는 게 어른의 낙이라면 평생 어른은 안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한 맛이었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과거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즐거웠던 추억담만 대충 늘어놓고 헤어질 뿐인 만남은 없는 편이 낫다. 동창회에 온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이 애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인가.

 

나의 이삼십대는 하루키의 문장에서 출발하여 예상치 못한 경로를 거쳐 예기치 못한 변화를 겪은 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이렇게 열거하다 보니 나조차 어떻게 이런 종이 다른 생명체와 연애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세 달 동안 서로에게 조바심 내지 않고 물같이 만나다가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던 것 같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이었다면 누구 하나는 (혹은 둘 다) 산산이 부서져서 우주의 먼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각자의 궤도로 적당히 우주를 돌아다녔고 그러다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인도의 숲은커녕 길가의 풀조차 태우지 못할 평화로운 연애결혼이었다.

 

슬픈데 웃겼고 웃기다는 게 슬펐다. 디가 없는데 나는 친구와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다. 디가 없는데 열차도 가고 비행기도 뜬다. 디가 없는데 아침과 저녁이 번갈아 찾아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양,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양, 디가 없는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태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남이 나한테 끈적하게 굴어주는 건 대체로 좋았지만 내가 그러기는 싫었다. 자존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끈적하게 굴었다가 거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하루키스트라면 -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흙******에 | 2021.10.30

하루키스트라면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아무튼 시리즈 세계관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실존 인물을 다룬 책은 현재까지 두 권이 나왔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장국영 순으로 출간되었다. '하루키스럽다', '하루키스트', '하루키 월드' 등과 같은 신조어는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때마다 열성 팬들이 모여 결과를 기다린다는 소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루키는 현대 문학계에 살아 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아무튼, 하루키>는 그의 원서를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하고 그의 책을 의뢰받는 날까지 번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를 좋아하는 저자가 쓴 '하루키스트의, 하루키스트에 의한, 하루키스트를 위한' 책이다.

  책장을 넘기기 전, 책표지에 그려진 '곰''맥주' 그리고 '이지수'라는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최근 읽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의 옮긴이로서 역자의 말에서 만났던 터라 구면이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했던 곰이 하루키가 즐겨 마신다는 맥주병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이의 이름이 '김참새'라니 여러모로 예사롭지 않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타나베: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놀이 안 할래요?'하고. 그래서 너와 아기 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미도리: 아주 멋져.

와타나베: 그만큼 네가 좋아.

(331쪽, 『상실의 시대』 中)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

(24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저자는 책의 원고를 쓸 때면 하루키의 책이 등장하는 자기 인생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뒤져봤다고 말한다. 홀로 타향의 침대 위에서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며 청춘의 일과 사랑을 추억하고, 하루키의 미국 생활이 담긴 에세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 속 한 문장인 "외국어를 말하는 작업에는 많든 적든 '안됐다면 안됐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운' 부분이 있다"처럼 '낭패(狼狽)투성이'였던 일본 유학생활을 들려준다.

  또한 육아로 인한 손목 통증을 견디며 귀중한 시간을 바쳐 읽었던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넘어선 배신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찐팬으로서 다음 작품은 하루키스럽길 바라며 계속 응원하기로 한다. 『1973년의 핀볼』의 문장은 반려묘 '디'와 처음 만나서부터 헤어지기까지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데, 하루키가 고양이에 관해 쓴 에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떄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107쪽,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1973년의 핀볼』中)

 

  무엇보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회사와 출판사를 거쳐 마침내 번역하는 사람이 된 마법같은 순간과 번역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키가 어느 날 야구장에서 타자가 친 2루타를 보고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찾은 송정역 맥도날드 2층에서 저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원문을 한 줄 쓰고 번역하기를 반복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대체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와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처음부터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이류이며, 번역의 참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에 있다"는 하루키의 말들에 적극 공감하며 저자는 시대를 견디는 번역을 해나갈 것을 다짐한다. 

 

구달: 난 일문과 학생들이 하루키 팬이라는 걸 숨기는지 밝히는지가 궁금해.

(<아무튼, 양말>을 쓴 그 '구달' 작가다.)

지수: 우리 세대는 다들 좋아했으니까 그냥 좋아한다고 말했어. 나도 일문과 왜 왔냐고 물어보면 하루키 좋아해서 왔다고 하고. 근데 다자이 오사마는 좀 다른 것 같아. 다들 다자이는 속으로만 좋아하지 겉으로는 떳떳하게 말을 못 하더라고.(웃음) 너무 자기도취에 빠진 것 같고, 풋내 나는 청춘 느낌이 있어서겠지. 하루키는 그런 면에서 자기 연민이나 자기도취 없이 담백하잖아.

(145쪽, 「작가에게 바라는 것」-『양을 쫓는 모험』中)

 

  군복무 시절 선임의 관물대(내무반에서 옷이나 물품, 장비 따위를 정리하여 놓는 장) 한 편에 꽂혀 있던 <상실의 시대>를 보고 난 뒤 호기심이 일어서 휴가 때 찾아 읽었던 것이 나와 하루키의 첫 만남이었다. 이제는 흐릿해진 스무살 청춘의 멜랑콜리를 알려준 책이었고, 뒤이어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끝으로 그의 소설은 더이상 읽지 않고, 이따금 에세이를 집어들어 하루키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어쩌면 책속에 저자와 출판계 친구들의 대화처럼 그 말랑말랑함이 예전엔 좋았으나 하루키도 변했고 나도 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하루키는 하루키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떠난 게 아니라 작가와 번역가 그리고 루티너로서의 다양한 삶을 계속해서 작품들 속에 변주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여러 세대의 하루키 팬들 안에 잠재된 그에 관한 기억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어쨌든, 하루키>, <여하튼, 하루키>, <좌우간, 하루키>와 같은 책들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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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독후기 - ‘아무튼, 하루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초*공 | 2021.05.09

《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이지수 지음 [제철소]

 

짤막한 독후기 -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 시리즈는 특정 소재에 대한 애정을 지닌 저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글로 쓰는 프로젝트다. 연필 혹은 떡볶기 같은 일상의 소재들도 대상이 된다. 다만 이런 주제로 책 한 권을 써 내는 일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덕후가 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무튼, 하루키》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무겁고 버거운 주제의 책을 읽고 난 후 집어든 책이었다.

 

하루키와 관련하여 한 권의 분량으로 에세이를 써낸 저자는 하루키 덕후다. 학창시절에 하루키를 읽었고, 원서로도 읽고 싶어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 물류회사, 책과 관련한 직업을 거쳐 번역가로 일한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표현 그대로, 하루키의 작품들은 저자의 삶(공부와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그의 문장이 입에 맴도는 정도라면 진정한 ‘하루키 덕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할 테다.

 

저자는 불타던 학창 시절의 연애담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슈뢰딩거의 파스타”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과 전공자의 비애다. 대학을 졸업한지 오래되었건만.. 이런 부분에서 웃다니...(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웃는다.) 내가 처음 하루키를 만난 것은 대학시절일 텐데, 아마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책 전반을 흐르는 묘한 정서가 꽤 오래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루키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에 읽은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가다.

 

《아무튼, 하루키》에서 저자가 반려묘와 사별한 부분을 읽을 때, 한 달 전 세상을 뜬 우리 집 반려견도 생각났다. 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집에 온 녀석은 17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나이가 들어서 대소변을 잘 가리던 녀석이 집 안 아무데나 누기 시작하고, 걷다가도 주저앉기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녀석의 소변을 밟을까 조심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우리 가족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다가온다. 식구들이 집을 나가거나 올 때면 항상 현관에서 맞아주던 반려견이었다.

 

번역가로서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통해 다져진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번역의 세계와 반려묘의 세계, 그리고 하루키의 세계를 넘나들며 분주하지만 순간순간 정성껏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밋밋할 수 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론 바둥거리면서도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이 먼저인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누군가가 특정 대상에 대한 덕후라면, 그 대상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잡다한 지식 이전에, 그에겐 대상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먼저일 것이다. 대상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 모두를 속속들이 알고, ‘그럼에도’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기준에 그 대상이 중심이라는 것. 만약 덕후의 조건이 이런 것이라면, 저자야말로 ‘하루키’ 덕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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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추억소환. 하루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로얄 모**시 | 2020.04.22
번역가인 작가는 아마도 나랑 나이가 같은가보다.
신변잡기적 글인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빨려 들어가 휘리릭 읽어버렸다.

내가 (또는 나와 비슷한 우리 세대가) 하루키에 대해서 느꼈던 것들은 주로 아래와 같다.

- 너무 다들 하루키를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창피한 기분, 하루키 무슨 작품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상실의 시대"가 아닌 다른 작품 쯤을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압박, 다들 하루키 하루키 거리니까 초기작들을 찾아서 읽어보지만 당최 양사나이니 뭐니 이해가 안되서 이게 뭔가 싶었던 기억, 표지만 봐도 무슨 책인지 알아볼 수 있는 상실의 시대 하나 쯤 들고다녀주면 멋있어보인다는 착각, 섹스 장면이 너무 야하다 뭐 그런것들.

최근에 하루키를 다시 읽는데,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이고,지금의 나는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좋다는 건 이제 알겠다.

작가의 하루키 취향을 엿보아 볼까? 반짝이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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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추억소환. 하루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로얄 모**시 | 2020.04.22
번역가인 작가는 아마도 나랑 나이가 같은가보다.
신변잡기적 글인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빨려 들어가 휘리릭 읽어버렸다.

내가 (또는 나와 비슷한 우리 세대가) 하루키에 대해서 느꼈던 것들은 주로 아래와 같다.

- 너무 다들 하루키를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창피한 기분, 하루키 무슨 작품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상실의 시대"가 아닌 다른 작품 쯤을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압박, 다들 하루키 하루키 거리니까 초기작들을 찾아서 읽어보지만 당최 양사나이니 뭐니 이해가 안되서 이게 뭔가 싶었던 기억, 표지만 봐도 무슨 책인지 알아볼 수 있는 상실의 시대 하나 쯤 들고다녀주면 멋있어보인다는 착각, 섹스 장면이 너무 야하다 뭐 그런것들.

최근에 하루키를 다시 읽는데,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이고,지금의 나는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좋다는 건 이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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