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저
델리아 오언스 저/김선형 역
천선란 저
이미예 저
박완서 저
2020년 08월 20일
이 책 어쩌죠. 너무 웃겨요. 벽치며 미친 듯 웃게 되는 위트와 해학, 정보까지 있다. (왠지 그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내 안에 너 있다'라는) 그거로도 부족했나요? 정겹다. 여기서 끝인 줄 알겠지만 하나 더 있다, 가슴 뭉클함.
이 책을 읽고 생긴 한 가지 고민. 내 글은 누구도 읽지 않겠구나. 가뜩이나 복잡하고 지루한 인생, 무겁기 그지없는 내 글을 누가 돈 주고 사볼까. 낚였다고, 돈 주고 똥 밟았다고 하면 어쩌지? 출판 의뢰 준비 중인 원고를 전면 수정해야 하나 어쩌나 그러고 있다. 이 모든 게 김칫국이지만. 마음껏 비웃으세요. 교만의 대가로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한 번 읽어보시라. 저는 권남희 작가의 가족도 친지도 아닙니다, 아니고요. 그저 이 책을 읽은 또 한 명의 독자일 뿐.
1. 전생에 우리 헤어진 쌍둥이? 왕팬 자처의 증거 문단들
이상한 타이밍에 눈물 흘리고 자랑거리도 못 되는 관계 끊기 좋아하고, ‘나도 나도’를 연발하게 되고, 어쩜 읽을수록 나랑 똑같지? 우리 혹시 전생에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
“타고난 성향이 어둠의 자식이어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는 무리야, 이번 생은 망했어” 읽다가 '여기 한 명 추가요'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희망적인 저자의 말, “그게 또 굳이 바꾸면 바뀌더라고요”란다. 이러니 그녀의 팬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지.
나도 집에 틀어박힌 나무늘본데. 이름이 나무늘보라 하여 더해진 사람들의 편견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 - 불쌍한 나무늘보는 매일 나무에 매달려 18시간씩 잠을 자다가 게으름뱅이의 아이콘이 돼 버렸다. 알고 보면 나무늘보는 체온 조절도 하지 못하고, 신진대사가 다른 동물에 비해 느린 탓에 먹이를 먹고 소화하는 데 16일이나 걸린다고 - 그래서 움직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 살아가느라 애쓰는 것이다. 동물이 느린 것도 빠른 것도 나름대로 찾은 생존 방법일 뿐.” 그런 나무늘보도 새끼에게는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부단히 보살피는 모성애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내가 절대적으로 공감한 건 이어지는 문장들이다.
“나무늘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종일 집 안에만 있는 내가 느리고 게을러터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나름대로 쉬지 않고 번역만 하며 성실하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기 가치관과 다르게 산다 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교만이다.” 아이고, 제 말이오. 가족과 더불어 몇 안 되는 제 주변인들은 전부 절 답답해하더라고요. 밖에 좀 나가서 바람도 쐬고, 사람 좀 만나고 하라면서요. 하지만 바람 쐬고 풍경 감상하는 건 괜찮아요. 사람 만나는 일은 제게 엄청난 감정 소모를 요구하더라고요.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요. 이것도 병이겠지만 어쩌겠어요. 그나마 몇 안 되는 대인관계도 완전히 단절한 상태랍니다.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역자 후기를 쓰면서 편집자와 생긴 오해로 저자가 떠올린 조병화 시인의 시 <남남>의 구절이 맴돈다. “오해로는 떠나지 마세. 오해를 남기고는 헤어지지 마세.” 이에 대한 저자의 첨언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내 말이' 궁금해 미치겠는 분들 위해 권남희 저자의 첨언 올립니다. “애초에 오해인 줄 알았으면 떠났겠습니까요”
생강 보관법을 생각 보관법으로 본 저자와 마찬가지로 눈 치매인 나도 얼마 전 리뷰 제목에 황당한 오타를 발견하고는 식겁한 적이 있다. 화제의 작품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저(그새 또 ‘빈센트’를 ‘레오나르도’로 성性 갈아치울 뻔)/신성림/위즈덤하우스) 요주의 리뷰 제목은 ‘어둠을 빛으로 밝힌 빛’ 앞의 빛을 빚으로 오타 입력. 사는 내내 동생 테오에게 부채감으로 산 건 맞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런 실수를... 혼자 얼마나 어이 상실의 헛웃음을 터뜨렸던가. 이것 말고도 나의 눈은 수없이 잘못 보거나 읽어내는 기염을 토했다는.
아, 또야? 저도 후지산 이마라고요. 설상가상, 그 이마가 자꾸만 뒤통수 쪽으로 밀리고 있어서 걱정이 많답니다. 어찌어찌 대머리는 면했다 쳐도 m자형 여자 이마는 참으로 거시기 하더라는. 실제 나이보다 늙어 뵈는 게 문제가 아니죠.
오호, 저자와의 접점 또 찾았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일명 빨책)》 애청자. 물론 거기서 자신의 번역 작품 《종이달》을 다룬대서 편집자 제의로 함께 다녀왔다지만 어떻든 반갑기 그지없고. 열혈 애청자였던 나는 내가 읽었던 모든 작품의 빨책을 듣고 감상평까지 남겼더랬다. 부작용은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는 점. 결국 다 사 읽진 못했지만 대여섯 권? 정도 구매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김중혁 작가가 말 걸고 질문하자 떠는 것까지, 줄리 델피 닮은 우리 번역가 님 역시 귀여우셔라.
2. 깨알 정보의 홍수에 빠져, 빠져
이직한 지인의 온 가족에게 일주일 여행권을 준 것도 놀라운데, 그들이 머물게 된 숙소
에는 가족이 먹을 간단한 음료와 빵, 계란 등은 물론이고 반려묘 일상용품 일체와 사료 심지어 유심카드 장착한 아이폰까지 있었단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애플사의 예비 직원을 향한 대우되시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걸 뿌리친 지인이 토익 점수 400으로 구글로 재이직한다는 것. 더블 놀람 후엔 고득점 토익 없이도 글로벌 회사 취업에 합격한 성공 노하우가 공개되었다. 와우! 이 책 재미만 있는 건 아니었어, 유익하기도 하여라. 토익 930점 받은 우리 조카가 새삼 대단해 보이더라는.
“편지를 일본어로 ‘手紙’라고 한다. 중국어로는 화장실용 휴지를 ‘手紙’라고 한단다.” 일본과 중국의 ‘수지(手紙)’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번역가인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가 보다. 이어 이런 말을 한 거 보면 “내가 보낸 수지들은 편지였을까, 휴지였을까”
'발 끼우고 문 닫기' 관련 글이 탈무드에 있었던가?
“유태인은 싸우고 돌아서서 ”너랑 다시 안 볼 거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문을 ‘쾅!’ 닫는 게 아니라, 한쪽 발을 살짝 끼우고 닫는다고 한다.” 싸울 당시엔 절교할 심정으로 상대와 다시 안 보겠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다. 즉 아무리 화가 나도 만약을 대비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라는 말.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헛독자’다. 도대체 완독한 책들의 내용을 잘도 잊는 데다 인상 깊었던 문장의 단 한 구절도 암기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인상 깊다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요점은 현명한 대인 관계법 내지 처세술도 이 책에 담겨 있다는 것.
'핑프' 첨 듣는다. 신세대 은어 하나 알았다고 깨방정 떠는 중. 대딩(대학생) 딸도 알고 있으려나, 한번 물어봐야지. 여러분들도 알고 계셨나요? 정답은 이 책에 있답니다.
마스다 미리는 역사 에세이 작가 블로그의 리뷰로 자주 만났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진 않았다. 안경을 써야 할지 이름도 여태 마스다 마리인 줄. 저도 눈 치매 맞지요
난 마스다 미리보다 아직까지는 번역가 님 왕팬이므로 (커피를 안마시기에) 그녀가 주스 취향이라는 정보 하나, 일본인들은 내 것 안 나누고 남의 것도 마다하는, 정확하디 정확한 더치페이 문화라는.
3. 행복한 위트와 해학의 늪
‘추억의 사오정 소환’이란 글의 제목만으로도 뭔가 마구마구 웃길 것만 같더라니. 저자가 어머니와 온천에 갔다 재래시장에 콩을 사러 갔단다. 다음의 대화는 그녀의 어머니가 길 가는 할아버지(노인)께 콩이 파는 곳을 물어보는 데서 시작된다. 짧으니 대화 전문을 옮겨보겠다. 저처럼 많이 웃으세요.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요.
엄마: 여(여기) 공물(곡물) 파는 데는 없심니까
노인: 동물이요? / 엄마: 예, 공물요. / 노인: 무슨 동물이요
엄마: 공물이 공물이지 무슨 공물이 어데 있심니까.
노인: 동물도 종류가 있지. 뱀 같은 거요? / 엄마: 콩 같은 거요.
노인: 곰 같은 걸 왜 여기서 찾아요!
하하하하. 저 글들 옮기면서 또 자지러졌다. 어쩜 좋아, 너무 재밌죠.
'무지한지 무례한지' 이야기 끝에 저자의 속생각을 읽고 빵! 터졌다. “A, B 선생님 다음에 내 이름을 떠올려 주어서 고오맙습니다.” 앞의 문장은 편한 대화 끝에 친해졌다 싶은 편집자가 저자에게 번역을 의뢰하게 된 경위를 듣고 그녀가 떠올린 생각이다. 두 명의 선생님께 거절당한 후, 권남희 번역가에게 의뢰를 한 것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버린 편집자라니. 아이고야... 당시 저자의 기분을 정확히 전달해 주는 저 놀라운 뉘앙스와 재치라니. 역시, 번역가 님이셔!
91년생 김은비 시인? 그녀가 부럽다. 나도 저자와 이메일 주고받고 싶은데. 시인과 번역가 님의 기막힌 인연은 은비 시인의 시집 제목도 한몫한 것 같다. 『꽃 같거나 * 같거나』 이곳에 제목 전체를 공개하기엔 다소 민망해서요. 그저 책을 참고하시란 말밖에는. 출생연도 앞자리가 ‘9’인 데서 신선함을 느꼈다던 번역가 님.
“사람이 태어날 때 신이 던져 준 시나리오에는 의외로 세세하고 촘촘하게 인연의 작대기가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이제 3분의 1 정도 남았을 나의 시나리오에는 어떤 이들과 작대기가 그어져 있을까.”
알고 보니 두 분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의 팬이었던 것. 이후 그들은 자주 이메일 대화를 주고받게 됐다고.
4. 울컥울컥, 가슴 뭉클함
‘효도와 디스의 경계’를 읽는데, 대학생이 되기 전까진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옷 잘 입는 줄 알았다는 딸 생각이 났다. 말은 그렇게 해도 쇼핑 때마다 아직도 내게 자기 옷을 골라 달라고 한다.
옷 살 때 딸 정하에게 “괜찮네”라는 말 듣기가 어려운 저자는 명절 날 큰맘 먹고 산 분홍 땡땡이 블라우스를 보여주고, “으에에에엑, 이건 아니지, 엄마.”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 딸에게 자신의 옷을 골라달라고 말해보지만, 딸은 그 제안에도 난감해한다. 엄마 취향을 모르겠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골라 들이미는 옷마다, “이건 너무 중년 여성복이야” “나 중년 여성이야”라고 엄마가 말하면 딸은 또 “얼굴이 아니잖아”라고 말한단다. 그렇다면 좀 더 젊은이들 옷 가게 옷은 괜찮겠지 싶어 보여주면, “엄마는 50대야. 이건 아니지” 하하하, 이제 웃음은 여기까지. 휴지나 손수건 미리 준비하시고, 저자와 함께 들른 백화점에서 딸이 한 말을 들어보자.
“나는 몸매가 좋아서 싼 옷 입어도 되지만, 엄마는 비싼 옷 사 입어.”
5. 그녀가 번역한 일본 작품의 작가들
애석하게도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완독 후 별점도 박하게 주고 썼던 리뷰도 삭제한 걸로 기억한다. 그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읽게 된 첫 작품이 하필 그닥 좋지 않으면 나는 다음 작품 읽기를 포기해 버린다. 그런데 권남희 번역가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라 하니 그새 또 마음이 바뀌려 한다. 밑지는 셈 치고 그녀의 다른 작품도 한번 읽어 볼까 싶은 것이다.
무레 요코나 오가와 이토 이야기를 접하니 저자의 말마따나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싶다. 자꾸 그 비슷한 다른 여성 작가들의 삶까지 더해져 이 또한 여성 작가들의 숙명인 건가 라는 생각에 미친다. 그래도 난 가족사에 대한 글쓰기가 아직 두렵고 조심스럽다. 첫 도전에 너무 무리해서 엄마에게 안 죽을 만큼 혼이 난 이후로 그렇게 됐다.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면서 나는 좀처럼 일본 작품은 잘 안 읽게 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필두로 한 나쓰메 소세키의 대여섯 작품, 『인간실격』, 『사양』 의 다자이 오사무의 다섯 작품 외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텐도 아라타, 가쿠다 미쓰요 등의 작품을 읽긴 했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일본 작가도 더 있겠지만, 그중에 나의 최애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다. 나와 비슷한 정신세계의 사람으로는 그렇고, 작품을 읽고 필력에 놀란 건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 죽음에 천착해 비상한 애도를 불러일으킨 (『애도하는 사람』을 쓴) 텐도 아라타를 좋아한다. 독서량으로 따지면 상위 두 작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읽긴 했지만, 한 작품만으로도 흡입력이나 매혹적인 측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최상단에 나왔어야 할 일본의 대표 작가 두세 명이 빠졌음을 눈치채셨을 거다. 지금 바로 그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그 유명한, 그의 팬들에게 총살당할까 봐 실명 공개는 못 하겠고, 하여튼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작가의 책도 힘겹게 읽어 낸 한 권(이것도 제목을 밝히지 못하겠다)이 전부다. 힘겨웠던 건 그 작품이 내 취향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참으면서까지 억지로 읽었던 건 어디에서고 그 작가의 명성을 찾기 위함이었다. 독자마다 도서 취향이 제각각일진대 독서계에서 그 작가의 책을 모르거나 안 읽는 사람은 거의 간첩 취급당할 정도였기에 그 한 권을 읽어내는데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인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같은 헛수고를 반복하지 않았다. 명성이든 대가든 말든 나완 상관없다는 거만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반전, 이 책에 언급된 바로 그 작가의 분량이 좀 되기도 하지만 읽을수록 그 작가 자체에 매혹되고 말았다는. 편집자의 교정 작렬을 감사해하는 대가라니, 이 작가의 명성은 인품도 한몫했구나 싶은 것이다. 알고 보니 겸손을 겸비한 노력형의 작가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제발 좀 겸손 또 겸손해지자고 대가도 저럴진대 내가 뭐라고’ ‘쥐뿔도 없는 게 그동안 나는 교만의 최고봉이었구나’
그동안 몰라봬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니 더 조심하겠습니다, 성급히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점을 먼저 보고 발견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잊을 뻔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작가 님 작품을 애정을 갖고 더 읽어 보겠습니다. 작가 님의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이죠. 그건 도리가 아니겠지요.
이제 저자의 또 다른 에세이, 『번역에 살고 죽고』를 읽어 보리라.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집. 아마 대중적으로 많이 성공을 한 것 같다. 구독서비스로 읽었다.
에세이만의 매력이 있다. 소설과 달리 일단 현실 기반이라는 것과, 개인적으로 연이 없는 사람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에세이에서 다루는 내용을 일상적 대화로 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이니까.
이 글에 나오는 작가의 삶, 딸과 둘이 사는 가정이라든가, 노견이라든가, 임종 전 아버지에 대한 기억 같은 부분, 패키지 여행과 경제적 여건에 대한 부분 같은 것이, 가능한 솔직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듯 해서 좋았다.
300권의 책을 28년간 꾸준히 번역하며 살아오셨다고 하니, 일견 대단해 보인다. 마스다 미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읽은 사실이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동시대인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패키지 여행 가고 싶은데, 코로나 시국이라니 아쉽다. 책과 영화도 괜찮지. 오늘은 비도 오고 재즈 음악과 함께 독서다.
“권남희 번역가의 글은 정말 재미있다.” 정세랑 작가가 쓴 평가다. 지극히 공감한다.
≪번역으로 살고 죽고≫를 읽고 권남희 번역가님 팬이 됐다. 그래서 이번에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번역으로 살고 죽고≫는 더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면, 이번 에세이는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을 담은 이야기가 많았다. 일 이야기도 있지만 가족 이야기, 여행 이야기, 덕질 하는 이야기 등등 사소한 소재들을 가지고 짤막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읽다 보니 권남희 번역가님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다. 부끄럼 많은 성격, 긴장 잘 하는 체질도 나랑 같아서 묘하게 위안이 됐다. 번역가도 생각하는 건 똑같구나. 인간적이라고 할까.(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번역가님은 나한테도 어머니뻘에 가까운데 말투에서 세대차가 거의 없는 점도 신기했다. 정하는 이렇게 허물없는 어머니랑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타인의 행복은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행복이란 대체 뭘까.
행복에 관해서 후기 맨 마지막에 적으신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 맞아. 그렇네, 싶었다.
‘아, 귀찮은데’라는 표현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책 제목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였구나. 조금 후련한 기분이다. 행복하려고 발버둥 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정말 딱 ‘행복해볼까’하는 정도로만 사고를 바꿔줘도 삶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남들도 행복하지 않다. 인생이 조증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이 글을 쓰다 네이버에서 ‘행복이란’을 검색해 보니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뭐야, 언제부터 인생에 그런 목표가 있어야 했던 거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행복해 볼까. 아, 귀찮은데.
해당 리뷰는 상상출판에서 출판된 권남희 작가님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리뷰입니다.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책 내용 중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생각해보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관계는 그에 비해 쉽게 변하는데, 왜 누군가와 나쁘게 이별할 때면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매도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관계였을 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지 못하며 나쁜 관계로 변해간 것은 아닐까 하네요. 평소 번역가로 익숙한 작가님의 에세이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권남희 작가님의 귄찮지만 행복해 볼까 리뷰입니다. 100% 페이백 소설로 가볍게 구매한 소설입니다. 일본의 문학을 많이 번역한 작가님이 이번에는 일생 생활 을 담담하게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았습니다. 작가님 특유의 유머 코드와 말투가 여전히 있어 반가웠습니다. 몰랐던 일본 문학을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고 공감이 많이 되는 일상의 내용들도 많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