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09일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노력하는 사람이 일구어가는 한편의 성장기
2020년 03월 24일
잠깐 선 좀 넘겠습니다』와 함께 대전 친구 결혼식 갔을 때 읽었던 에세이.
저자는 10년차 직장인(서점에서 일함)이다.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빠다. 아, 듣는 것만으로 공감된다... 회사에서는 쪼이고, 배우자와 가사 및 육아 분담으로 다투고, 말 안 통하는 아이와 씨름할 테다. 자연스레 읽으면서 공감가는 대목이 꽤 많았다.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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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원이라고 해도 업무 시간에 책을 읽긴 힘들다. 출판사로부터 신간을 전달받을 때, 귀로 설명을 들으며 눈으로 잠시 훑어보는 정도다. 주요 코너에 소개할 책을 고르면서 책을 들춰보지만 말 그대로 '들춰보는' 수준이다. '하루에 몇 분 정도는 책을 읽는다'고 말하기 힘들다. 전혀 읽지 못한 날도 상당하다.
일은 충분히 많았고 늘 시간에 쫓겼다. 읽을 책이 너무나 많은 반면 시간은 크게 모자랐다. 다행히 야근 압박은 받지 않기에 일찍 퇴근해서 항상 책을 읽었다. 주말에도 혼자 있는 시간엔 늘 책을 읽었다. 나 자신에게만은 괜찮은 서점원이 되고 싶었다. (10쪽)
삶이 일의 속도를 따라가야 할 때, 우리는 마땅히 챙겨야 할 것들을 미쳐 살필 여유를 갖미 못한다. (25쪽)
정신없이 일하다 퇴근 시간을 맞았다. 내 일을 돌아보며 점검하거나 새로운 기획을 섬세하게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일을 통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다. 재고를 관리하고, 품절 도서를 확인하고, 고객 주문을 상담하고, 신간을 소개받는 등 판에 박힌 일에 치일 때는 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져 있었다. (33쪽)
출근하기 전,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 내려놓고 그저 아이 옆에 눕고 싶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달콤한 아기 냄새. 빈손에 조용히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어보면 아이는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살며시 감싸 쥔다. 따뜻하고 보드랍다. 이 친밀한 감각을 오래 느끼고 싶다. (45쪽)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 차례 고열을 겪었다. 경험이 쌓이니 우리의 대응도 능숙해졌다. 하지만 첫 경험이 나름 호되었던 탓인지 아이가 콧물만 흘려도 늘 긴장이 된다. 열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경험은 익숙함과 능숙함을 선사했지만 평정은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아플 테지만, 나는 더 능숙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안하지는 못할 것 같가. 경험이 더 쌓이면 다를까. 글쎄, 부모란 결코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 같다고, 지금은 느끼고 있다. (50쪽)
육아는 생활이고 삶이다. 삶을 면제하거나 면제받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일. (64쪽)
회사 밖의 삶을 '라이프'라고 통칠할 수는 없다. 퇴근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을 마치면 잘 시간인데, 이 시간들도 삶의 중요한 일부라 생각하지만, 이게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부모의 삶'과 구분되는 '개인의 삶'도 분명 필요하다. 내게(그리고 누구에게나) '라이프'는 하나가 아니다. (67쪽)
아내의 진통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이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다. 세상에 순산은 없다. 혈관이 터져나가고 몸의 구조가 비틀려 깨지고 옆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의 고통 끝에 아이는 세상에 나온다. 순산이라 불리는 출산이어도 그렇다. (78쪽)
서점 MD는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변화가 도서 구매로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재고를 잘 갖추고 출간 소식을 널리 알리고 굿즈나 이벤트를 기획한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입장이다. 매출의 큰 흐름은 앞서 말한 요소들이 좌우한다. 목표는 내 것이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단은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비슷해 보인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와 책임을 부여 받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부모가 온전히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적절히 개입해 아이를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낸다는 생각은 사실상 '환상'에 불과하다. (81쪽)
최선이라는 말을 좋아하므로 늘 주의를 기울이려 한다. 굉장히 엄격한 말이라 타인에게 함부로 들이밀면 안 된다. 몸의 일부를 잘라낼 만큼 열심히 했느냐고 타인에게 묻는 일은 끔찍하다. (89쪽)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고, 책의 영향력은 자주 상찬되지만, 때로 책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책이 삶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꽤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삶으로 돌아오고, 책은 거기서 끝난다. 세상은 책 바깥에 있다. 아름다운 책을 판다고 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훌륭한 책을 읽는다고 삶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127쪽)
'너는 자라겠지. 너는 이렇게 자라고, 마음을 누르는 것을 배우고, 그러면서 자기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가 되겠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꼭 거쳐야 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울고 싶을 땐 울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누르는 일뿐 아니라 잘 꺼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망므은 아프기 마련이고, 모든 감정을 누를 수는 없단다. 아빠도 지금 마음이 아프다. 너의 울음이 여전히 아프다.' (137~138쪽)
그러니까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여부로 판가름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맑은 하늘을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한는 것들은 가족 안에서 다 얻을 순 없다. 가족 바깥의 많은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대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달성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체득케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 아닐까. 가족의 구성원임을 감각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임을 자각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시야는 아이나 내 가족에게만 고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150쪽)
그러나 현실의 일상은 이미 꽉 짜여 있어서 이 당연한 일을 하려면 시간을 짜내야 했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있었지만 '당연한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중략) 세상은 우리에게 할 일은 많이 주고 시간은 조금 주었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해질 수 있도록 세상의 시간 구조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누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들, 그 역할들이 부여하는 당연한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너무나 바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 (202쪽)
- 특정한 책을 골라 읽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그 글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어찌나 나와 비슷한 생각의 지점들이 많고, 여러가지 일상의 경험들과 그 속의 생각들이 어쩜 이리 비슷할까 신기해 하며 읽었다. 이 책을 옆에 놓고, 나의 경험들과 생각들을 비슷한 분량으로 써 내어 놓으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한 꼭지를 읽고 난 후, 내 경험을 곱씹게 되는 글들이 많았다. 하루에 읽을 분량이었지만, 일주일 이상 이 책을 가방에 가지고 다닌 것 같다. 한 꼭지 읽고 보이지 않는 저자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순댓국을 먹고 들어갔어야지,.. 우린 둘이 갈비탕을 다 비우고 들어갔었는 데 말이야. 그리고 맑은 날에만 배달음식을 시키면, 라이더분들 생계도 있으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게.."
- 2년 전 쯤, 내가 속해 있는 교사단체의 온라인 공간에서 책에 관한 글들이 올라왔고, 나는 내가 읽고 생각했던 책들이 올라오면 댓글을 올렸고, 가끔 내가 읽은 글에 대한 글도 올리기도 했다. 서로 댓글을 주고 받으며 (주로 한국소설, 그 중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소설)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이 이 책의 아내로 등장하는 에세이다.
- 작가는 10년 넘게 서점에서, 정확히는 온라인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데, 현시점에서는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짜투리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10년 넘게 학교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짜투리시간에 책을 읽어보려고 (실상 많이 읽지는 못한다), 글을 써보려고 (실상 많이 쓰지도 못한다) 노력하는 나의 상황과 좀 비슷한 점이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우리 우영이가 2013년 생인데, 지안이도 그보다는 조금 늦는 것 같지만, 얼추 그 무렵인 듯 하고, 그러면 우린 같은 육아시간대를 같이 지나 온 동지다.
- 지하철의 추억들은 시골 청년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는 일화들을 떠올리게 했고, 아이의 온도가 40도가 넘는 상황을 읽을 땐, 우리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아이는 고열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을 되뇌이며 긴장하며 읽었다. 아이가 수액을 맞을 땐, 우영이가 수액을 맞았던 그 장소와 그 시간, 그 공간의 냄새까지 다 동원되었다. 새벽시간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도. 아이들을 위해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보다 좋은 시민이 되려고 노력했던 점도.
- 하지만, 육아하는 아빠,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남편의 글을 읽을 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내가 그렇게 육아에 많은 시간을,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 내내 걸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첫째를 출산한 이후 직장을 그만 두고, 내내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 줄 형편이 못 되고, 무리해 가면서 맞벌이를 하는 것보다는 아내가 아이들을 더 보살피는 게 낫다는 결론을 우리가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전주로 출퇴근 할 때는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집안일은 많은 부분이 아내의 몫이 되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내가 집에 오면 내가 푹 쉴 수 있게 해 줬다. 미안하고 고맙다.
- 저자의 책사랑은 이 책 전반에 흘러 넘친다. 책을 읽기 위해 혼밥을 선택할 정도로. 또한 그 책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물론 책의 한계도 알고 있다. "훌륭한 책을 읽는다고 삶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몇년전 책을 항상 끼고 있는 제자(정말 다독가여서 그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을 읽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다)에게 "그 책이 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심히 궁금하다"라고 농반 진반인 말을 던진 게 떠올랐다. 어제 나도 정말 오랜만에, 1년이 넘은 것 같은 데, 동네 도서관에 올라가 책을 훑어봤다. 무인대출을 이용하다가 많은 책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저자가 근무하는 곳의 책들을 상상해 봤다. 그 어마어마한 책들 속에서 어떤 맘으로 일할지에 대해. 난 그저 좋았는 데 말이다.
- 학기초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어서, 이것저것 열심인 척하며 며칠을 지냈다. 이 책을 조금씩 읽으며. 이 가족이 빨리 코로나가 종식하여, 다시 다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발췌)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 김성광지음
생각만 많고 삶은 대단할 것 없는 존재의 기록일 수도 있다. (머리말)
아이에게 아빠는 너로 인해 자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랐다고 말해줄 수 있길 소망한다.(p.29)
앞으로의 내 삶은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p.51)
(- 이 말 정말 공감한다.)
블록으로 큰 병원을 만든 뒤에는 대체 몇 명의 친구를 치료해주었는지 모르겠다. (p.54)
(- ㅋㅋㅋ 많이 웃었다. 나는 아직도 윤영이의 그 말이 기억난다. 거의 하루종일 윤영이와 놀아 준 날이었는데,
지쳐 쓰러져 있는 데, 아빠는 잘 안 놀아줘 하고 삐친 표정을 하는 윤영이의 그 모습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참 인격이 얄팍한 인간이구나, 인정하니 비로소 마음속 찜찜함이 사라졌다.(p.93)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당부는 당부가 아니고, 우리가 상대에게 요청할 수 있는 최선은 언제나 '그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행동이었다. (p.113)
(- 이 지점 역시, 내가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능숙함에 이르는 길은 '열심'보다는 '계속'이다 (p.194)
(- 결국 시간을 이기는 힘은 없다. 필립로스의 명문장. "영감을 찾는 것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책의 내용은 괜찮습니다. 연재했던 칼럼들을 엮어 다듬어 내놓은 책이라고 보고 구매했지만... 일상 칼럼이라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연재분으로 봐야 재미있게, 흡입력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습니다. 흑흑. 괜히 한꺼번에 봤나봐요. 하루에 한편씩, 느긋하게 읽어내야 공감하고 돌아보고 느끼면서 읽을 수 있을 듯. 그러니까.... 저는 그랬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