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박상영 "내 글쓰기 대원칙은 일어나자마자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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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뻔하지만 이번 에세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어서 좋았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박상영 작가를 처음 접했고,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솔직히 소설 보다 에세이가 더 내 취향이었다.
내가 에세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흔한 일기 처럼 되어서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일상 들춰보는 알맹이 없는 글이 대다수라서 였는데, 이 책은 재미와 사유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특히 솔직한 자아성찰이 좋았다.
(물론 아닌 척 하지만 직장생활하면서 출판에 성공한건 확실히 갓생러라는 반증임)
덕분에 나도 에세이 장르에 욕심이 생겨 글을 쓰고 싶어졌다.
꾸준하게 써서 나도 출판계의 장윤정 까진 아니더라도 장윤정 키즈 정도라도...?ㅋㅋㅋ
박상영 작가가 또 에세이 써주면 좋겠다.
저자 박상영은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일러스트 윤수훈은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어 그림을 그렸지만 스무 살에 돌연 뮤지컬을 시작했다. 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30대 사회인 소설가가 꿈이나 목표 같은 것은 사치가 되어버린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를 담은 에세이다.
목차는 ‘01 출근보다 싫은 것은 세상에 없다 02 비만과 광기의 역사 03 살만 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04 청첩장이라는 이름의 무간지옥 05 내 슬픈 연애의 26페이지 06 최저 시급 연대기 07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딜레마 08 그토록 두려웠던 일이 벌어지고야 만, 그날 09 누구에게나 불친절한 김 반장 10 너무 한낮의 퇴사 11 유전, 그 지긋지긋함에 대하여 12 뉴욕, 뉴욕 13 대도시의 생존법 14 플라스틱의 민족 15 제발 다리 좀 내리라고! 16 이를테면 나 자신의 방식으로 17 부산국제영화제 18 레귤러핏 블루진 19 내 생애 마지막 점 20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한다’로 되어 있다.
(...) 퇴근을 한 뒤 서너 시간 남짓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다 된 시간. 씻고 침대에 누우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허기가 몰려온다. 자제해야지,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마음먹어본다. 하지만 애써 눈을 감아도 허한 느낌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어 배달 앱을 켜고 만다. 오늘의 메뉴는 순살 반반 치킨. 50분 뒤 내 방 안에 찾아드는 고소한 기름의 향. 고독하고도 따뜻한 인생의 맛. 도대체 내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시껄렁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치킨 한 마리를 해치우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잠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바로 누우면 어김없이 위산이 역류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는 없다.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출근도 어림없을 테니까. 나는 기어이 침대에 눕고 만다. 내일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생각하면서.(018~019쪽)
거리에 나설 때만 해도 오늘은 기필코 운동을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헬스장이 가까워져 오자 가방끈을 꽉 잡고 있던 손이 느슨해져갔다. 어제도 빠졌으니까 오늘은 꼭 가야 하는데. 근데 목 뒤가 왜 이렇게 뻐근하지? 허리는 또 어떻고. 오늘 업무가 좀 빡세긴 했어. 이렇게 경직되고 피로한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다칠 확률이 높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효율이 떨어지고 근손실도 심할 게 분명해. 일주일은 7일이고 그 중에서 딱 사흘, 사흘만 운동하면 되니까 오늘 정도는 제껴도 돼. 내일이 있잖아? 그렇고 말고.(023쪽)
내 좁은 방에는 M 사이즈부터 XXL 사이즈까지 엄청나게 많은 티셔츠와 속옷이 발 디딜 틈 없이 자리하고 있다.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하며 족히 100킬로그램은 찌고 빠진 몸을 감당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들인 싼 옷들이다. 패스트패션의 풍토 속에 함부로 사서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얼마나 큰 공해인지 이제는 상식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 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싼 옷을 사는 습관도 멈출 수가 없다. 때때로 나는 그저 먹고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179~180쪽)
나는 나의 비좁은 원룸이 커다란 죄의식의 전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마감의 불을 끄고 나니 지금 내 책상 주변은 온갖 일회용 용기와, 눈에 보일 만큼 많은 수의 초파리들, 옷 무덤과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 나 하나 살자고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니. 그리고 심지어 그 몸조차도 제대로 건사하고 있지 못하니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다.(180쪽)
작가 데뷔 초만 해도 책 관련 행사가 있을 때면 마치 중견기업 영업직 사원처럼 칼정장만을 고수하곤 했었다. 독자를 접할 기회가 적었을뿐더러, 매 순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입을 수 있는 셔츠가 점점 줄어들면서부터 그런 원칙이 무너졌다. 외적인 모습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허상처럼 느껴졌고, 내가 지금껏 가져왔던 쓸데없는 자기 강박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분 매초 더 나은 가치 기준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최선이라는 것이 존재할 리 없다. 시상식도, 북토크도 일종의 축제(?)이자 잔치인데 즐기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포멀한 정장이 원칙인 행사 장소를 제외하고는 그냥 편한 옷을 입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꽉 끼는 정장 바지에 가로 주름이 간 것을 신경 쓰는 대신 내가 하는 말이나 태도, 내게 주어진 마이크에 신경 쓰는 것이 작가이자 강연자로서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그것이 비록 기성복 상점에서 옷을 살 수 없게 된 내가 하는 자기합리화일지라도 말이다. 그래, 양질의 토크를 하는 게 중요하지 복장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물론 내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말이 양질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다시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 결국에는 실패할 것을 알지만 나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중이다.(192~193쪽)
통장 잔고가 바닥났음에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던 어느 우울한 날, 나는 마치 관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회사 생활이 아주 조금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이토록 치를 떠는데도 불구하고) 기업과 노동이라는 시스템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존속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루틴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싫은 사람일지언정 그가 주는 어떤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며, 한 줌의 월급은 지푸라기처럼 날아가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현실에 묶어놓기도 한다.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시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를,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다고 해서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는 당신은 누가 뭐라 해도 위대하며 박수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비록 오늘 밤 굶고 자는 데 실패해도 말이다.(256~257쪽)
저자는 스물여섯 살 때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 잡지사, 광고 대행사, 컨설팅 펌 등 다양한 업계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나들며 7년 동안 일했다. 그 경험이 ‘최저 시급 연대기’에 나와 있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겪는 취업난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한 직장에서 40년간 근무한 후 정년 퇴임한 나는 베이비 붐 세대의 행운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배달 음식을 시켜 한 끼 배부르게 먹고서야 겨우 잠들어본 적이 있거나, 잠자리에 누워서 내일은 꼭 굶고 자야지 하고 다짐해본 적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기존의 소설집처럼 재미나게 잘 읽히고, 읽고나면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술술 잘 읽어놓고는 '내가 왜 이런 책을 돈을 주고 사서 읽었을까'하며 곧바로 후회를 하니...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따로 있는데, 이런 에세이들을 간간히 읽어내는 것을 보면
문학적인 재미보다는 그냥 의무적으로 활자를 보고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여하튼, 책 자체로만 놓고보면 10여년 전의 마음산책에서 나왔던 '독신남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때는 모든 책들이 재미나기도 했지만, 타인의 그러한 소소한 일상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굳이 읽지 않아도 되었을 책이고,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경제적으로 어떤지 모르겠지만, 박상영 작가는 TV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오기도 하고, 글쓰기에 전념을 하기로 했다하니 먹고살만한 것 같다. 즉, 신인 작가에서 책이 좀 팔리다보니 작가 중에서는 나름 셀럽이된 셈이다.
깊이보다는 재미있는 책을 찾아읽은 것은 요즘은 여기저기 피곤하고 신경쓰이는 일들이 많아서일게다. 그래서, 책마저 진중한 것은 진절머리가 나는 탓일테지. 이 책을 읽고... 앞으로는 이런 책을 읽지 않도록 내가 조금 더 여유있는 마음을 갖든지, 아니면 독서라는 그 끈을 버리던지 결판을 내야겠다.
박상영 작가의 몇몇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뭐 그가 야식을 먹든지 말든지, 누굴 만나든지...내가 그런것까지 알 필요는 없을게다. 다시 '독신남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책을 쓴 조한웅 작가는 비록 소설가는 아니지만...그 이후로 비슷한 잡글을 몇 권 책으로 묶어 낸 후에 그냥 잊혀졌다. 박상영 작가는 아직 제대로된 긴 호흡의 장편을 쓰지 않았고, 그렇다면 빛의 속도로 잊혀지는 것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책을 구입하는데 사용하는 1만원 남짓의 돈은 소중하다. 작가가 주옥같은 글쓰기에 더 매진했으면 좋겠다.
요즘 어쩌다보니 에세이 위주로 읽고 있는데,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도 사고 얼마 안되서 바로 완독을 했다. 즉, 아주 잘 읽히고 재밌게 읽었다는 것. 작가의 단편들도 괜찮았는데 에세이도 생각보다 좋았고 아 약간 아쉬운게 있다면 제목이 계속 반복되니 그냥 글이 좀 예측이 되버린다는 것?
나름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작가가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 맘에 들어도 에세이가 맘에 안드는 경우가 있고, 소설은 별론데 에세이는 괜찮은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둘다 쏘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