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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이 책은 벽에 걸어놓고 바라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2020년 06월 25일
대한민국의 현대사에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아프고 괴로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처.벌.받.지.않.는.자.들.의.나.라.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는 인권운동가 박래군 님의 인권 현장 답사기예요.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현장을 인권의 시각으로 살펴보도록 안내하는 것이라고 해요.
저자는 역사를 해석하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인권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일단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니 그 아픔이 배가 되었고,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해방 이후에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어떻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한국현대사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는 그것을 국가폭력-국가범죄의 원형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제주 4.3 과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은 광주에서 재현되었고, 그 진실은 아직도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채로 책임자들의 처벌은 중단되었어요.
이 책에서는 그 역사의 현장인 제주 4.3 현장, 전쟁기념관, 소록도, 광주 5.18 현장, 남산 안기부 터와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마석 모란공원,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어요. 그 현장을 지키고 싸우는 이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들이 곧 나였을 수도.
사실 인권의 현장으로 '전쟁기념관'이 있어서 처음엔 의아했어요.
그러나 저자의 설명 덕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됐어요.
전쟁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전쟁의 상처에 대한 성찰과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에는 승리한 전쟁, 전쟁의 영웅 등을 기린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2차대전에 대한 인류의 반성 속에 탄생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는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불러온 전쟁이라는 비극을 "인류의 양심을 모독한 만행"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없기를 염원하면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할 것을 다짐한다.
현대 인권의 개념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의 이런 바람은 문서로만 남았고, 2차대전 이후에도 세계는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국전쟁은 유엔 창설 이후 현대의 전쟁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었다. (52-53p)
무의식 중에 조국을 지키는 국군과 이를 도왔던 유엔군은 전쟁 영웅이고, 북한군은 죽어 마땅한 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쟁기념관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부추기면서, 북한의 학살만 강조하고, 남한 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은 묵인하고 있어요. 더 끔찍한 건 전쟁을 게임처럼 구현해놓은 시뮬레이션 전시관에 K-2 소총 사격연습까지 할 수 있게 해놓았다는 거예요. 기념관 안에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전쟁 영웅을 가르치면서, 한강 인도교 폭파장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놓았어요. 최근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이승만은 부산에서 피란 정부를 꾸리고 있을 당시, 남한을 포기하고 일본 망명정부 수립까지 고려했다고 하는데, 그런 역사적 사실 기록은 전쟁기념관에는 없다고 해요. 오로지 한강철교를 폭파해서 북한군의 남하를 6일간 막았다는 기록만 있고, 그 한강철교의 폭파로 시민들이 죽어가고, 피란길이 막혔다는 설명은 나와 있지 않아요.
저자가 대표로 있는 '열린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에서는 회원들과 함께 2019년 6월부터 전쟁기념관을 평화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해요.
평화의 관점, 인권의 관점으로 전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 기념관을 바꾸자는 것인데, 백 퍼센트 동의해요.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그곳이야말로 올바른 정신을 담아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나는 2017년 37주기 기념식에도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면서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그리고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을 언급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 동생 박래전의 이름이 불려졌다. (111-112p)
2020년 40주기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 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들"이라면서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새기길 희망한다고 말했어요.
그동안 수없이 짓밟히면서도 끝끝내 일어나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다는 것.
이 책은 역사의 현장에서 바로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줬어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권의 역사, 그 사람들.
문득 김수영 시인의 <풀>이 떠올랐어요. 풀은 바람에 누울지언정 꺾이지 않았어요. 다시 일어나 웃는 그 날을 위하여.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29>
중고등 학교 도서관 필독서 지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많은 분들이 피 흘린 댓가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 꼭 비치하고, 사회 교과목에서 한번씩 읽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서정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제주에 그런 아픈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은
제주도로를 자주 찾는 사람도 잘 모르는 일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책, 그렇지만 우리 모두 꼭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박래군님의 인생이 새겨져 있어서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