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크리처 저/신해경 역
<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
○ 저자 : 디파 아나파라
○ 출판사 : 북로드
V 2021년 에드거상 수상
V 인도 출신 영국 작가
■ 인도 빈민가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어린이 실종사건을 9살 소년 '자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사회와 어른들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사라진 친구를 찾아 빈민가 구석구석을 다니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어른들의 초조한 단속에도 더 많은 아이들이 사라지며 상황은 점차 심각해진다.
♤ 경찰은 우리에게 ‘봉사’하고 우리를 ‘보호’해야 하지만, 유령시장에서 내가 본 경찰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일을 한다. 가게 주인들을 괴롭히고, 노점상에서 공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하프타 뇌물을 제때 바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경찰봉으로 등을 맞을 건지 불도저로 집을 쓸어버리게 할 건지 고르라고 한다.
♤ 신이 주신 것이 결점일 리는 없었다. 신이 주신 것은 언제나 선물이었다. 옴비르는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일이 일어날 이유가 뭐란 말인가?
♤ 도대체 신들이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동네 경찰이 받는 것보다 더 많은 하프타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때리는 구루가 드린 푸자보다 더 성대한 푸자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푸자는 크고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정말 지겹다.
디파 아나파라 >
넝마주이로 일하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독학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아이들, 종교적 폭력에 희생되어 학교를 떠나야 했던 아이들.
작가는 사회와 그 사회가 선택한 정부가 버린 아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닌 유쾌한 유머와 신랄함과 에너지를 보게 된다.
인도에서는 하루에 180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지만 사건은 유괴범이 체포되거나, 잔혹한 범행이 세간에 알려져야만 비로소 뉴스에 나오며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것은 다뤄지지도 않는 실정이다.
그곳의 끔찍한 비극을, 취약계층의 문제와 자주 동일시하는 인도인들의 정서와 가난에 대한 진부한 서술에 머물거나 불평등을 축소하고 싶지 않았던 작가는 고민 끝에 '자이와 친구들'을 통해 그 길을 열었다. 글을 쓰던 시기, 개인적인 시련을 겪으며 많은 물음을 안고 있었지만 결국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그 아이들이 통계수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맞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숫자 뒤에 숨겨진 그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을 이 책을 덮으며 답답한 가슴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 사회나 어른에게 보호와 도움을 받지 못해 정령에게나마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만연한 곳에서, 어린 자이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인도의 적나라한 모습을 구석구석 손에 잡힐 듯이 그려냈다. 그 모습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불편하고 답답해 불쾌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책을 읽는 내내 가지고 있어야 했다.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과 가정 내에서조차 성별에 의해 역할이 정해지고 차별당하는 모습.
불편한 시선과 편견, 혐오와 이해할 수 없는 늪과 같은 뒷말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자들, 소수자들의 모습에서 인도에 만연한 사회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계급과 계층,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척, 서로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사회의 모습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사건도 불편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아팠다.
계급으로 위에서 아래로 찍어내리는 모습도 존재하지만 그것보다는 일말의 사건들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이웃을 옆에서 바닥으로 밀어버리는 모습은 익히 알고있던 '신들의 나라, 신성의 나라 인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심각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단 한 권의 소설 속에 담아낸 작가의 방식이 굉장히 영리하게 느껴졌다.
'자이'의 시선으로 자이와 친구들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귀여운 행동들, 에피소드에선 손에 힘을 빼기도 하고 사건의 이면을 맞닥뜨릴 땐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기도 하며 시종일관 책에 몰입하게 한다. 이야기의 사건과 그 현실성에 아프고 무겁지만 책을 덮고 싶지 않을 정도를 내내 가지고 가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고 우리가 어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만들어 나가야 할 사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도 빈민가에서 일어난 어린이 실종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 또는 탐정소설이지만 작가의 사회고발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작가는 감정을 절제하고 9살 된 주인공 자이와 친구들로 구성된 '자이 탐정단'의 눈에 비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인도 사회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을 우리나라 경험에 빗대어 표현하면 1960년대 판자촌 모습과 흡사하다. 빗물에 질척이는 비포장 도로, 아침마다 공중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볼일을 보는 모습, 정해진 시간에만 물이 나오는 급수 상황, 공부하기보다는 무료급식을 위해 학교에 가는 아이들 ... 경제적 상황이 그 때 우리모습을 닮았다. 하나만 빼고 그렇다. 차이점이라면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스모그가 없었는데 인도 아이들을 스모그로 인해 뿌연 공기를 마시며 기침을 해대야 하는 어려움까지 가중된 상황이다.
이런 인도 빈민가에서 아동 실종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당연히 뇌물만 바라는 부패한 경찰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친구인 9살 어린이들이 탐정단을 만들어 친구찾기에 나선다. 공부는 못하지만 텔레비젼 드라마 <경찰 순찰대>, <범죄의 도시>의 시청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를 지휘하는 자이, 공부 잘 하고 사리분별이 바른 여자친구 파리, 무슬림으로 순찰대의 행동대원인 파이즈로 구성된 탐정단이 출범한다. 작가는 이런 아이들의 활동과정에서 빈부격차, 부패한 공권력, 그리고 낙후된 인권의식 등 부조리로 가득한 인도사회의 민낯을 그려낸다.
이들이 찾는 사라진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인도사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단면을 가진 인물들이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매일 얻어맞는 말더듬이 아이, 댄서가 꿈이지만 집안 사정으로 일찌감치 생활 전선으로 내몰리는 아이, 남자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아이, 부모 대신 어린 동생들을 키워야 하는 아이, 현실에서 소외되고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 그리고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미래를 꿈꿀 수조차 없는 아이가 바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당연히 이런 아이들은 비루한 일상에서 그리고 상처받은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이런 측면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과연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떠난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세력에 의해 납치된 것일까?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이 소설을 사회고발 소설로 보아도 무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인도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으로 고발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눈높이에서 손에 잡히듯 선명하게 그리고 가감없이 인도사회를 그려낸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거기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돕는다.
우리도 수십년 전에 겪은 아픈 과거가 인도란 공간을 통해 재현되고 있음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 이 소설에는 권선징악도 해피엔딩도 없다. 그래도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빈민가 아이들에게도 회복력과 유쾌함과 당당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인도라는 낯선 사람들과 공간들의 설명을 따라가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이야기 구성과 사실의 묘사력이 뛰어난 멋진 작품으로 평가한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오랜만에 읽는 인도관련 책이다. 한글제목과 영어제목이 달라, 처음에는 제목이 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Djinn patrol on the purple line(보라선의 순찰 정령), 책을 읽어가면서 아하, 둘 다 책 내용을 잘 보여주는 제목이구나.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 보다는 인도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만난 삶들을 그린 소설이었다. 인도의 아픔 중의 하나인, 아동납치라는 조금 서글픈 주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납치사건이 나면 대문짝 만하게 매스컴을 차지하나, 인도에서는 거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만큼 아동납치사건이 많다는 것이다. 힘없는 애들을 납치해 판다는 것, 인간을 판다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다 아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아이고 맙소사.
줄거리는 간단하다. 붐바이(봄베이) 빈민촌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 명 한 명씩, 그 마을의 한 아이가 친구들과 이 사건을 조사(?)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지금을 바라본다.
인도의 대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간다. 그 높이만큼, 가난한 이들의 삶이 힘들어진다. 도시의 빈민,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있는 일자리도 가진 자의 배를 불려줄 일 자리밖에는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
매스컴에서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에 의존하며 산다. 쓰레기 더미가 존재하는 한 빈민촌은 있을 것이다. 자신의 땅 한 평도 갖기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인도를 보고서 우리나라가 그나마 행복하다고 느꼈다. 많은 이들이 부족함과 아쉬움을 말하지만, 한국의 성장은 눈부신다. 그렇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급격한 경제성장이 남긴 상처는 곳곳에 산재한다. 인도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소비부문은, 내가 본 인도와 지금의 인도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인도가 곳곳에 존재한다. 제목에서 왜 지하철역을 넣었는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지하철은 보편적인 대중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다. 이 책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인도의 빈부차, 경찰과 정치권력자들, 종교차별, 여성차별, 가난한 자들의 삶 등등, 좋게 말하면 인도를 이해할 수 있는 종합서 같다고 할까?
그렇게 어렵게 쓰인 책이 아니라 술술 넘어간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책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