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저
이미예 저
김소연 저
김민철 저
박완서 저
문미순 저
여기 여러 커플들의 모습이 있다.
수년간의 권태와 혼란을 겪으며 몇 차례 이별과 만남을 거듭하는 남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내는 유부녀와 유부남, 질투심이 가득 차 있는 남자 친구 때문에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리려 하는 여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 가끔 만나 육체적인 관계만 갖는 남자와 여자, 노파가 불치의 병에 걸리자 함께 자살을 하는 부부.
수많은 커플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러 가지 표면적인 모습을 합쳐놓으면 이상적인 사랑의 본질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는 힘들어 보인다.
저자는 이상적인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위한 사랑, 사회적인 행위가 배재된 오로지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랑,
곰곰이 생각해 보자.영원한 사랑이 있는가?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타인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이 존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관계에 얽혀있는 인간에게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는 가끔 이성적인 사고의 틀을 위협하기도 하고, 남을 의식하는 그 시점에서 사랑은 둘만의 개인적인 행위에서 사회적인 행동으로 변질된다. 그와 나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든다. 이물질이란 사랑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되풀이되는 일상과 노동의 세계에서 잠시 일탈을 꿈꾼다.
“감각의 제국”에서 장소와 시간,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이라는 고립 상태에 빠진 두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사랑에 빠졌던 초창기 시간, 즉 무한한 약속을 되새기게 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 즉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회적인 질서에 편입되거나 약해지는 사랑에 대항하여 그들은 극단적인 사랑을 택한다. 시간을 이겨낸 사랑, 어쩌면 광기만이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의 생각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커플들의 모습과 행인의 모습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일정하고 비교적 반복적인 만남들 유지하는 커플들과 단발적으로 스쳐가는 정도의 관계가 있을 뿐인 행인들과의 관계를 나란히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가 사랑에 대한 냉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어가는 인간, 그들의 사랑의 모습도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으로 서로 비슷하게 발현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최신형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프러포즈를 대신하고 드라마 주인공이 다녀간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이 러브신을 찍었던 호텔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흔한 모습들, 사랑도 누군가에 의해서 철저히 상품화 되어 가고 있다. 사랑의 유희는 어쩌면 문학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그럴 수 없는 현실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랑을 하면서 가끔 아플 때가 있었다. 아니 사랑을 시작하는 동시에 아픔도 함께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그와 다르다는 생각이 그 아픔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 내가 그가 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설령 사랑으로 한 몸이 된다고 한들 그러한 아쉬움을 상쇄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영원히 한 몸을 될 수 없는 두 영혼이 일시적으로 하나가 되는 황홀경을 체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름다운 죽음의 모습이 사랑을 나누다가 함께 죽는 것이 라는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가 더 이상 황당한 말처럼만은 들리지 않는다.
나도 작가의 생각에 물든 것일까?
힘들다.
책 읽는 행위 또한 일상으로부터 일탈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통로 중의 하나인데, 이 번 통로는 통과하기에 힘에 부친다.
물론 뒷산만 오르다보면 산의 매력이 감소할 수 있다.
반대로 안나푸르나 정상을 오른 산악인만이 산의 매력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쉽게 읽히는 텍스트에 익숙해진 나머지 간혹 앞문 장으로 되돌리기를 반복하게 하는 이런 텍스트를 만날 때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곱씹다는 것이 이럴 땐 필요한 독서법이 아닐까.
단숨에 완독하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불행하다고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과정이다.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 내는 것도,
사랑을 이루어 내는 것도,
결과에 치중하지 말고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의 풀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듯이 그렇게 텍스트가 떠오르는 순간이 왔을 때 다시 펼쳐 들면 된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다. 남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추측된다. 빛이 없는 걸로 보아 저녁이나 밤일 것이다. 아마 타인은 없는, 그들 커플만이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다. 그들은 검정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어 남과 여라는 경계는 사라지고 하나의 형체로 보인다.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설렘이나 당당함보다 불안을 감춘 격정이 느껴진다. 은밀한 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을유세계문학전집【커플들, 행인들】의 표지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키스]다. 표지에서 짐작했어야했다. 【커플들, 행인들】은 불안했던 영혼 뭉크의 그림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거라는 것을.
【커플들, 행인들】은 보토 슈트라우스의 국내 초역 작품이다. 보토 슈트라우스는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소설인지 알았다. 다양한 커플들, 행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로 모아 스토리로 완성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였다. 나에게 에세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상대에 상관없이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는 장르다.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에세이의 개념과도 많이 달랐다.
【커플들, 행인들】에는 [커플들], [차량의 강물], [글], [황혼/여행], [단독자들], [현재에 빠져 사는 바보] 이렇게 6편이 실려 있다. 각기 다른 단편들이고 각 단편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뒤엉켜 혼재한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사랑, 그리움(기억), 글 등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카페에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하면 밖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다정한 커플들도 보이고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행인들도 보인다. 그때의 나는 그들의 관찰자이다. 바쁘게 혹은 느리게 길을 걷다가 카페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타인의 시선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때로 타인의 관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때론 관찰자가 되어 때론 커플이나 행인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나 문학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성공한 사람들은 현실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며 당당하게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무대에서 나는 엑스트라나 단역으로 여겨진다. [커플들], [단독자들]의 사람들처럼 슬픔과 고통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육체에 탐닉하며 사랑을 계산한다. 혼자가 두려운 사람들은 감정을 위장하고 자기를 기만하며 ‘사회적 장치’로서의 관계를 맺으며 이중생활을 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그들은 ‘단독자’이고 외톨이다. 한때 애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길을 가는 행인일 뿐이다. 사랑의 기억은 잊혀 진다. 인터넷이나 TV 등 매체의 영향으로 세상에는 글과 말이 넘쳐난다. 매체의 글과 말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한다. 자신의 생각을, 기억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말을, 타인의 기억을 내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작가는 역사 · 문화 · 사회활동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문학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작가가 독문학과 사회학, 연극학을 공부하고 편집장과 극 평론가, 극작가로 활동해서 그런지 【커플들, 행인들】에서 다루는 내용은 광범위하다.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질 않았다. 내겐 좀 어려운 책이었다.
보토 슈트라우스 저/정항균 역 |커플들, 행인들Paare, Passanten 을 읽어보았습니다. 보토 슈트라우스의 여섯개의 에세이가 실려있습니다, 작가의 사랑,문학,회상,고향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커플들, 차량의 강물, 글, 황혼 여명, 단독자들, 현재에 빠져사는 바보 모두 잘 읽었지만 그중에서 현재에 빠져 사는 바보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