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저/임상훈 역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단테 알리기에리 저/귀스타브 도레 그림/서상원 역
조너선 스위프트 저/이종인 역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서문 2편 수록 - 에디터스 컬렉션
조지 오웰 저/김승욱 역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존 에버렛 밀레이 외 그림/김기찬 역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 작가의 대표 작품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고전입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 고뇌를 하고 성장통을 겪게 되면서 방황과 내면의 변화를 느끼는 모습을 통해 공감하고 혼란 속에서도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 성찰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성장소설입니다.
<데미안>: 나는 세계를 돌아 나로 왔다
그 드넓고 험한 세계를 방황하며, 고작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버린 모든 구도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난 그것을 살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 프롤로그
이미 수많은 해석과 훌륭한 서평이 존재하는 <데미안>에게 제 글을 얹을 필요가 있을까.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시절 내가 가장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아마 그 시절엔 알아듣지 못했을 응원을 다시 한 번 전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는 한 쪽 끝에서 다른 끝을 거쳐야만 중간을 찾는다
누구는 안 그렇겠습니까만, 저 역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저는 상당히 이상주의적인 사람이었고, 늘 내 손의 이것이 아닌 저편의 저것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늘 현재의 나를 부정했고 때로 완전한 정의를 때로 완전한 자유를 믿고 좇았습니다.
제 눈에 타인은 너무 기만적이고 가증스러웠고, 동시에 저 안에 깃든 한계와 역겨운 욕망들에 괴로워하며 지냈습니다. 완전히 선해지기 위해, 혹은 완전히 악해지기 위해, 저 역시 싱클레어처럼 때로 가족에게, 종교로 표상되는 어떤 이상향에, 술집과 허풍에 기댔습니다. 누군가는 우려했고 누군가는 동경했던 제 삶은 극과 극을 오갔습니다. 원칙주의적-회의주의라는 역설을 믿으며 산 시절동안 저는 세계의 경계에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불안감에 구원을 바라며 들리지 않는 울음을 삼키다 결국 다시 세계의 품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습니다.
"거기가 아니야". "정말 그것을 원해? 아니면 그냥 그걸 원하는 너에게 만족스러워 하고픈 거야?" 저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부정했었습니다.
정말 긴 방황이었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이렇게 떠돌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낭비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상은 닿을 수 없기에 이상이고, 욕망은 가질 수밖에 없기에 욕망임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제 추도 드디어 극단의 진동을 멈추고 중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온갖 추악한 욕망의 결집체, 그의 방황과 배덕감의 원형이었던 꿈속 형상에게 속삭입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너를 놓아주지 않겠다." - 138p
경건함이 주는 안정감, 주류세계에의 소속감과, 배덕이 주는 자유와 살아있는 감각 사이를 싱클레어는 오갑니다. 후자로 갔다가 후자로 인한 사회적 도태가 두려워지면, 패배감 섞인 향수와 함께 전자로 도피하고, 그러다 또 자유를 갈망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그 일련의 방황을 거치며 이제는 두 세계, 선과 악이 결합된 아브락사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싱클레어가 마침내 그가 동경한 것과 증오한 것 모두를 스스로 축복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옵니다.
누군가는 싱클레어의 이런 여정이 결국 이상과 현실의 비극적 타협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추가 도래한 중간 지점은, 이전의 추가 닿았던 양 극단의 진동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건, 어떤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별반 새롭지 않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나라는 위로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도 틀렸고, 세상에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생각도 틀렸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가 있을 뿐 그 어떤 다른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안에서 확고해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 p.148
<데미안>을 읽기 전까지, 저는 "나"라는 단일 단위에게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나"는 외롭고, 혼자이며, 자유주의적이고 자기계발신화에 휩싸인 현대사회에서 개인이란 늘 오만한 승리자 혹은 비참한 패배자 둘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요. 근데 이 책은 제게 처음으로, 이 "나"라는 기호를 긍정하게끔 했습니다.
이 괴롭고 큰 방황을 끝내 싱클레어가 찾아낸 건 고작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늘 자신과 함께 했던 존재. 그러나 싱클레어가 진정한 단독자로서 선 것은 그 방황의 끝에서야 처음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도덕적 부모가, 악랄한 크로머가, 구원자 데미안이, 제2의 아버지 피스토리우스가, 사랑하는 성녀 에바가, 그의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런 싱클레어는 책의 끝에서 드디어 홀로 서기 시작합니다. 인도자라 믿었던 피스토리우스조차 자신이 그린 완전한 성자가 아니라는 것, 그조차 한 명의 인간임을 깨닫고나서, 싱클레어는 편지를 씁니다.
"한 인도자가 나를 떠났습니다.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혼자서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p.151~152
그러나 싱클레어는 이 편지를 데미안에게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외롭지만, 그 구원의 열쇠를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맡김으로써, 드디어 자기 자신과 함께하게 됩니다.
책 말미에, 늘 싱크레어를 이끌어주었던 데미안은 이제 싱클레어를 아주 떠나며 말합니다.
"꼬마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떠나갈 거야. 아마 너는 언제고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게 될 거야. ...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나는 이제 더 이상... 달려오지 않아. 그럴 때 넌 너 자신 속으로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알게될 거야."
- 193p
제가 데미안을 '응원이 되어주는 책'으로 꼽은 게 이상하고 야속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픈데, 사무치게 고독한데, 이 모든 껍데기를 거쳐 도착한 곳이 고작 '나'라니.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내가 알아서 하라고? 이보다 더 매몰찰 수 있을까. 너무 지친 누군가에게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어"라며 싱클레어를 떠나버리는 데미안의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딴 건 디즈니 ost만 틀어도 수백번 나오니까요.
저는 기대지 말라, 남의 응원을 바라지 말라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지지 속에서도 결국 당신은, 스스로의 여행을 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 타인의 응원이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되지 않게 스스로의 돗단배를 움켜쥐라 하고 싶습니다. 그 괴로운 여행을 스스로가 축복할 수 있는 날이 당신에게도 오기를. 당신이 부정하며 떠나왔고 지금 어딘가로 저어가고 있는 이 순간, 당신이 발견한 것이 당신 자신이 아닌 새로운 세계가 "아니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나 스스로가 비로소 스스로에게 저주이자 축복이 되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비로소 내 빈 공간을 꽉 채우며 나의 세계 자체가 되는 순간, 이제는 여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까요.
지금도 위태로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여행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다음 구절을 바칩니다.
"태어나는 것은 늘 어려워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돌이켜 생각해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려웠나요? 그저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혹시 더 아름다운, 더 쉬운 길이 있던가요?" - p.165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감상평이 포함 될 수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열람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데미안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앞부분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을유 출판사 번역이 제일 잘 읽히고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아서 을유 출판사 데미안으로 구매하려고 결정한지는 한참 되었는데 드디어 구매해보네요. 왜 사람들이 인생 책으로 데미안을 많이 고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을유 번역 추천해요!
중학생때인가 고등학생때인가 읽었던게 기억나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어요.
어린시절 흑과백 이거 아니면 저거 모든게 이분화되어있는 세상에서 알을 깨고 나와서 깨달은 아브락사스.
순응하면 편리하고 쉬운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알을 깨고 나와야하는 걸까요?
읽으면서 성장소설 보다는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 숏츠나 보고있을 시간에 책을 읽고 꽤나 진지하게 감상평을 쓰고있는걸 보니까요.
제가 성경을 공부한게 아니라서 그 부분에 대한 이해는 조금 어려웠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불교적인 가르침이 흥미로웠습니다.
읽고나니 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는지 알거같아요. 분명 그때 이렇게 생각했을거 같네요.
싱클레어X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예전부터 고전 명작 소설이라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여태 관심이 없었다가, 이번에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싶어 특히 번역이 잘 되었다는 을유문화사의 데미안을 선택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에 사이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우정 등을 그리는 내용인데, 청소년기 특유의 풍부한 감수성이 짙게 느껴졌던 것 같네요.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이 인상깊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읽게되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