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현대지성 출판사 메리 셸리/오수원 역의 <프랑켄슈타인> 잘봤습니다.
유명한 작품인데 이제서야 봅니다.. 번역본이 여러개인데 고민하다가 번역이 가장 훌륭하다기에 현대지성 것을 골랐습니다. (저렴하기까지해..)
19세기에 이런 소설이 탄생했다는게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18살에 썼다니...
잘봤어요~!
외롭고 서럽고 비극적인 삶.
이름조차 없는 삶.
프랑켄슈타인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모두가 그랬듯, 나 역시 책을 읽게 된 계기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이 아니라고?"하는 경악이었고, 그렇게 읽게 된 책의 내용은 경악 그 이상이었다.
남을 헤아리고, 보듬어 살피고, 아끼며 위하는 다정한 마음. 물론 사전적 정의와는 살짝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적임"의 뜻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인간들은 인간적이지 못하다. 가장 인간적인 것은 이름조차 없는 흉측한 괴물이다.
이번 2월의 독서모임을 통해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이 기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괴물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나누는 인간적인 자리를 갖게 된 것이 기쁘다. 이야기를 나누다 찾아보게 된 이토준지의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이 짝을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된 것 또한 기쁘다.
또다시 10년 후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매체를 추가적으로 보게 될지 궁금하다. 이래서 고전을 읽나보다.
현대지성 출판사 추간,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리뷰입니다. 리뷰 내에 작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타인의 감상에 영향을 크게 받으신다면 열람 시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기억도 안나는 어렸을 적 프랑켄슈타인은 나에게 그저 할로윈 코스프레하기 쉬운 소설 속 존재, 과학자의 실패로 탄생한 괴물이었고, 나이가 들어서 도덕을 배울 때는 프랑켄슈타인이 과학의 발전에 반비례하는 인문학적 감성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정도로만 알고있었다. 고전 소설을 그저 교과서 속 한정된 틀에서만 느끼고 배우려고 하니 나에게 그렇게 큰 감흥있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고전을 교과서 속에서 넣으면서 까지 왜 자꾸 곱씹으려 하는걸까? 문명의 발전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과학 기술에 의존하면서 사는데도 왜 자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존재로 우리의 의식을 다시 한 번 바로 잡으려는걸까? 인문학적 감성이 죽어버린 요즘 시대에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 기술의 발전은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삭막함에 숨어버린 나의 감성을 다시 느껴봐야 하는걸까.
월턴과 대화를 나눈 발트만 교수는 "천재들의 노고란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인류에 견고한 유익이 되지."라고 말한다. 기대에 부풀어 항해에 나선 월턴은 이에 반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괴물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로, 자신과 반대되는 따듯하고 자애로운 가족들을 훔쳐보며 인간의 글, 역사, 마음을 하나씩 배워나갔고 금새 매료되었다. 글자 하나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 준 가족을 대면하고 보호와 친절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결심 끝에 가족들 앞에 나타났을 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괴물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창조자를 얼마나 원망했을지. 모든 과학자와 공학자가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묘사된 괴물의 외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초록색의 프랑켄슈타인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다. 책에 묘사된 '누런 살갗', '까만 머리칼'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생소했던 동양인의 외형을 묘사했다는 의견이 흥미롭다. 우리가 현재 묘사하고 있는 괴물의 모습은 어떨까? <한국 요괴 도감>에서 당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과 그때의 생활상이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는데.. 평소에 스위트홈 같은 걸 잘 안봐서... ^^;
해제를 통해 과학자의 윤리와 책임, 도덕적 딜레마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에 관해 알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으로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소설을 여성만의 역할(출산, 임신)을 가로채고자 하는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욕망이 빚을 수 있는 끔찍한 결과로 바라보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잘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이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박사의 이름이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고, 출판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책이 기념비적이라는 것이 전재되었겠지만) 다양한 해석이 쌓인 해제를 읽는 즐거움도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책을 이번에 읽어보기 전에는 이야기의 줄거리만 알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만 워낙에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읽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단편적으로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소설들이 꽤 있는데,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이야기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북극을 탐험하고 있는 로버트 월턴이라는 탐험가가 자신의 누나인 영국에 사는 새빌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합니다.
월턴은 누나에게 몇 통의 편지를 쓰게 되는데, 북극 탐험 중에 겪은 신기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탐험 중에 아무도 없는 북극의 광활한 얼음 위에서 썰매를 끄는 거대한 몸집의 여행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다음날 전날과는 다른 사람인 또 다른 여행자를 얼음 위에서 구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해낸 여행자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이 어떻게 자랐고,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해부학과 같은 여러가지 학문을 배우고 인체를 다루는 연구와 새로운 생명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오래 전에 벌써 이런 소설을 쓰다니 정말 상상력이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