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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 열린책들 | 2014년 3월 4일 한줄평 총점 10.0 (10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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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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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마비된 도시 더블린에 갇힌 욕망과 환멸. 20세기 문학사를 새롭게 쓴 선구적 작가
제임스 조이스 문학의 출발점.

『더블린 사람들』(1914)은 제임스 조이스의 첫 번째 소설 작품으로 조이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도시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쓴 15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로 혼란스럽고 암울한 상황에 처한 20세기 초 더블린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방탕하고 무기력한 삶을 냉엄한 필치로 사실적으로 재현해 냈다.

가난에 찌든 삶을 벗어나려 하면서도 자신을 구원할 남자의 손을 붙잡지 못하는 여자, 런던에서 출세한 친구를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고 마는 남자, 경제력이 있는 남자를 유혹해 결혼으로 옭아매려는 모녀, 짝사랑하는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러 동전 몇 푼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소년 등 비틀린 욕망과 가치를 잃어버린 사랑을 품고 사는 주인공들은 마비된 도시 더블린이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때로 천박해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묘사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의미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러한 [에피퍼니] 이론, 이를 위한 꼼꼼한 문체, 작품의 구조적 정교함과 통일성, 시각과 화자의 역할에 따른 문체의 변화 등 조이스 작품의 전반적 특징이 고루 담겨 있는 이 책은 20세기 문학사를 새롭게 쓴 조이스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목차

자매
어떤 만남
애러비
이블린
경주가 끝난 후
두 건달
하숙집
작은 구름
짝패들
진흙
가슴 아픈 사건
위원회 사무실의 담쟁이 날
어떤 어머니
은총
죽은 사람들

역자 해설 어느 마비된 도시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연보

저자 소개 (1명)

저 :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James Aloysius Joyce)
작가 한마디 A man of genius makes no mistakes. His errors are volitional and are portals of discovery.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래스거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며 예수회 사립기숙학교 클롱고스 우드 칼리지 등에서 수학했다. 열살 무렵 아버지의 실직과 알코올중독으로 가세가 기운 뒤에도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가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이딸리아어 등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헨리크 입센에 관한 논문을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발표했다. 1902년 갓 대학을 졸업한 뒤 의학 공부를 위해 빠리로 향했으나 곧 포기하고, 이듬해 어머니의 임종으로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1904년 연인 노라 바너클과 다시 대륙으로 건너가 1915년까...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래스거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며 예수회 사립기숙학교 클롱고스 우드 칼리지 등에서 수학했다. 열살 무렵 아버지의 실직과 알코올중독으로 가세가 기운 뒤에도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가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이딸리아어 등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헨리크 입센에 관한 논문을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발표했다. 1902년 갓 대학을 졸업한 뒤 의학 공부를 위해 빠리로 향했으나 곧 포기하고, 이듬해 어머니의 임종으로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1904년 연인 노라 바너클과 다시 대륙으로 건너가 1915년까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이딸리아 뜨리에스떼 등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했다. 그 사이, 틈틈이 『더블린 사람들』에 실릴 단편들을 집필해온 그는 1909년과 1912년 두차례에 걸쳐 책의 출판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했으나 출판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 『더블린 사람들』은 1914년에야 런던의 그랜트리처즈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조국 아일랜드에 양가감정을 보인 그는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몇차례의 짧은 방문을 제외하고는 유럽대륙을 떠돌며 살았다. 제1차대전 기간에는 스위스 취리히에 머물며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과 희곡 『망명자들』(1918)을 출간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빠리로 이주해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모더니즘 소설의 걸작 『율리시스』(1922)를 출간했다. 그밖에 시집 『실내악』(1907), 평생 그를 괴롭혀온 눈 질환과 싸우며 완성한 유작 소설 『피네건의 밤샘』(1939) 등의 작품이 있다. 제2차대전 발발 후에 다시 취리히로 돌아왔다가 1941년 쉰여덟을 일기로 숨져 플룬테른 묘지에 묻혔다.

그가 쓴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는 시집 『실내악』이 1907년에 런던에서 출판되었고, 첫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이 1914년에 출판되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대한 사실주의자의 연구서로서, 더블린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숨겨진 진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뛰어난 작품이다. 이탈리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자 조이스는 스위스의 취리히로 건너가서 1919년까지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과 희곡 작품인 『망명자들』(1918)을 출판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잠시 트리에스테로 돌아온 조이스는 1914년부터 착수한 『율리시즈』의 출판을 위해 파리로 이사했다. 1922년 그의 생일에 파리에서 이 책이 출판되자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그해에 시작된 『피네간의 경야』는 녹내장으로 인한 그의 시력의 악화와 딸의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완성되어 1939년에 출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를 거쳐 1940년 12월에 취리히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이곳으로 돌아온 지 6주 뒤인 1941년 1월 13일 5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플룬테른 묘지에 안장되었다.

출판사 리뷰

* 2008년 [하버드 서점이 뽑은 잘 팔리는 책 20]
* 2004년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 명작 소설 100선]


조이스는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짐으로써
문학적 혁명을 이루었다. 그는 피라미드만큼이나
놀랍고 중요한 일을 해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이스를 읽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의 결정체와 마주하는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완결된 작품
『더블린 사람들』에서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구성, 특히 단편들의 배열 방식이다. 발표된 시기를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배열된 일반적인 단편집들과 달리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단편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단편은 삶의 각 단계들을 암시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적으로 보여 주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작품의 주제와 구성에 대한 조이스 자신의 언급은 『더블린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의 도덕사의 한 장을 쓰는 것이었고,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내게는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나는 무관심한 대중에게 더블린을 어린 시절, 청년기, 성숙기, 공적 생활의 네 가지 측면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다. 이야기들은 그런 순서로 배열되었다. 나는 대부분을 꼼꼼한 천박함의 문체로 썼고……

이는 『더블린 사람들』이 도덕적 시각에서 본 더블린 사람들의 마비된 삶의 모습을 다룬 것임을 보여 준다. 독자는 작품을 읽어 가면서 어린아이에서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마비된 삶의 다양한 측면을 순차적으로 접하게 된다. 첫 단편인 「자매」에서 인생을 갓 시작한 어린아이와 늙은 신부의 죽음이 공존하며, 마지막의 「죽은 사람들」에서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한다. 이렇듯 반복, 순환하는 삶을 담은 『더블린 사람들』은 단편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넘어 더블린이라는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현대 도시인의 삶의 전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독립적이면서 완결된 작품을 이룬다.

종이책 회원 리뷰 (9건)

더블린 사람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핑**더 | 2023.07.31

보통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를 때는 단일 국가다. 영어로 잉글랜드로 할 때와 United Kingdom는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영국으로 생각하지만 각기 다른 국가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를 합쳐 유나이티드 킹덤이라고 한다. 이들은 같은 영어권 국가일 뿐 각자 다른 국가로 전쟁을 최근까지 했었다. 지금은 과거를 잊고 각자 살아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서로 축구 경기 할 때보면 으르릉거린다. 월드컵할 때도 서로 각자 국가팀으로 출전한다.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는 상당히 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해서 제임스 조이스도 아일랜드 작가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로 유명한데 읽는게 극악무도하게 힘들어 쉽게 책을 선택하기 힘들다. 제임스 조이스의 책을 그나마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더블린 사람들>이다. 제목만 볼 때 몰랐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단편소설을 엮었다. 총 15편의 단편소설이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 연관이 1도 없다.

공통덤을 찾자만 전부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그곳에서 태어나 그런지 소설의 배경을 더블린으로 한 경우가 많다. 책에 나온 15편의 배경이 더블린이다. 보통 단편을 엮을 때 그 중에서 하나를 대표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제임스 조이스가 의도한 것은 아닐진대 너무 자연스럽게 단편소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모든 내용을 소개하기는 힘드니 그 중에서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깔끔할 듯하다.

제임스 더피가 주인공이다. 그는 주로 집에만 머물러 살아간다. 무엇보다 제임스 더피는 무질서한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자신의 통제하에 놓인 걸 선호한다. 너무 익숙한 듯 직업이 은행원이다. 은행원은 정해진 틀에서 시간을 칼처럼 맞춰 일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숫자를 세는 직업일수록 정확함이 생명이다. 하루 일상이 칼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저절로 간다. 이는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성격을 직업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게 한 장치다.

게다가 제임스 더피는 동료도, 친구도, 교회도 나가질 않는다. 혼자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과의 만남은 아주 최소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접촉할 뿐이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행사나 경조사에만 참석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어 하는 행동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탄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에게 익사이팅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일이 생길 일도 없고 하루 종일 루틴도 뻔하니 부딪칠 일도 없다. 그런 그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다.

남자에게는 역시나 여자를 만나는 것만큼 흥미진지하고 익사이팅한 일은 없을 듯하다. 제임스는 극장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다소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보이는 시니코였다. 텅빈 극장에 사람이 너무 없다고 말한 시니코가 한 말을 대화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도 여러 연주회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한 시니코 부인이었다. 서로 몇 번의 만남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제임스는 자신의 천성을 버릴 생각이 없던 인물이다. 또는 그가 만나 시니코는 제임스를 변화시킬 정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제임스에 비해서 시니코가 좀 더 적극적인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 점이 제임스에게 맞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생각이 확고한 제임스 입장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걸 반기지 않았다. 서서히 스며들듯이 제임스 원 안으로 들어가 어느 순간 시니코가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제임스는 시니코가 자신에게 한 행동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생활에 함부로 침입한 사람으로 여긴 듯했다. 사람은 세월이 흘러가며 변한다. 천성은 변하지 않을 수 있어도 다양한 면에서 나이에 맞게 변한다. 남들 눈에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제임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삶을 더 중시한 듯했다. 시니코에 대해 그는 거절한다. 더 가까이 오려는 시니코를 의식적으로 밀어내며 관계를 끝내버리며 헤어진다.

시니코 입장에서는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제임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을 듯도 하다. 자신에게 한 행동에 모멸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제임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시니코를 삭제했다. 원래대로 루틴대로 제임스는 살아가며 아주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우연히 부고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어느 여인이 기차역에서 사망했다. 플랫폼에 기차가 움직이는데도 철로를 걷다 사망했다. 그녀가 바로 시니코였다. 부고기사에는 2년 전부터 술에 취해 폭음하며 살았다고 한다.

제임스가 한 여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것일까. 자신은 그 이후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하고 평온하며 일상을 살고 있었다. 기억조차 못하고 있던 시니코는 전혀 딴판으로 고통스럽게 살았다. 둘 사이에 생긴 일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지금까지 아주 평범하게 살던 제임스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까. 그건 전적으로 제임스에게 달려있다. 소설에서는 제임스가 흔들리는 걸로 나온다. 해당 역사를 찾아갈 정도로 마음이 흔들리고 요동친다.

<더블린 사람들>에 나온 단편소설은 전부 끝이 뚝 끊긴다. '소설이 이제 끝났구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한다. 우리 일상은 소설처럼 마무리가 확실히 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어떤 이벤트가 끝나도 삶은 이어진다. 그처럼 소설은 전부 읽다가 순간 끝이 난다. 그는 행복하다, 슬프다. 이런 식으로 종결은 없다. 그는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단편소설이라 집중하며 읽을만하면 내용이 끝나 연속성이 없다는 점이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집중하는 게 조금 어렵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여러 단편을 통해 인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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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식민시대, 타락하고 부패한 도시인들의 자화상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게* | 2016.06.21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에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영미 작가로는 세익스피어에 비견될만큼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20세기 영어권 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그나마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쉬운 편이라고 말하는 더블린 사람들을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읽거나 번역본을 바꿔가며 읽었고, 심지어 영문판까지 들쳐보았는데, 오래전에 정규 라디오 방송에서 다루고, 팟캐스트로도 파일이 남아있는 영미문학관에서 30여회에 걸쳐서 방송한 팟캐스트 방송과 펭귄 클래식의 해설이 도움이 되었다. 


더블린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일단 제임스 조이스가 애증어린 마음으로 그려나간 더블린을 수도로 가진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당시 처해있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여야 한다. 정치지도자 파넬의 죽음으로 카톨릭 민족주의자들이 품고 있던 독립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난 현실 앞에 식민통치의 그늘과 만성적 부조리의 상징이 된 카톨릭 종교, 그리고 열뜬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환멸을 제임스 조이스는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담았다. 


조이스는 이 작품집을 개별 작품의 연속으로 읽지 말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줄 것을 바랬다. 얼핏 보면 단편집 같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 스스로가 '마비'라고 명칭한 커다란 주제로 모아져, 일관된 지향점을 갖는다. 18세기 초만 해도 베네치아와 견줄 수 있을만큼 명물 도시로 자리매김했던 더블린은 연방법의 적용을 받아 그 위치가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과 식민적 약탈적 통치로 인해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이것은 제임스 조이스 가족의 쇠퇴와 맞물리면서, 작품과 시대와 개인을 연결시킨다. 그가 말하고 있는 더블린의 마비란 무엇인가. 궁핍과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타락하고 무능한 사람들의 마비된 양심, 마비된 진실, 마비된 존엄성, 결국은 마비된 아일랜드 정신이기도 하다. 


첫 작품인 <자매>에 이어, <어떤만남>과 <에러비>로 이어지면서 주인공이었던 유년기 소년은 <이블린> <경주가 끝난 후> <두 건달> 등을 거치며 차차 청년기의 소년 소녀로 바뀌고,  마지막 <죽은 사람들>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성격이 바뀌면서 주인공들은 더블린 사회의 여러 층에 포진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어떤 위치의 다른 삶을 통해서도  한결같이 더블린의 만성적인 무능과 타락을 보여준다. 만나고, 허세를 부리고, 술마시고, 그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무료하고 단순한 일상의 지속은 조이스가 보여주고자했던,  닦아내고 윤내지 않은 진실 그대로의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열린 결말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다. 독자로서 우리는 <자매>의 죽은 신부가 왜 마비되었는지, 무엇을 괴로워했는지, 그것이 혹시 매독이라든가, 혹은 어떤 성적 타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타락한 노인은 음흉하고 저질적인 모습으로 다시 소년들의 일탈을 그린 <어떤 만남>에서 나타나, 아이들에게 섬뜩하게 성적 희롱을 하고 위협한다. <에러비>를 짝사랑한 소년은 무관심한 어른들에 의해 소녀와 가까와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아마도).  그렇게 도시의 모퉁이를 돌면 재회하게 되는 인물들의 더블린 내에서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타락한 인간 본성의 내밀한 속내를 들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작은 일상들, 동전 한 잎, 술 한잔 때문에 육체와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 이것은 200년전 더블린의 모습이지만은 않다. 선거를 앞둔 한 지역 사무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다룬 <위원실의 담쟁이 날>, 무능하기 짝이 없는 회사원이 윗사람에게 당한 수모를 시계까지 팔아 술집에서 허세를 부리며 팔다가 망신을 당한 후 집에 와서 자는 아이를 깨워 화풀이를 하는 아버지를 다룬 <짝패들>, 보잘것 없던 친구가 도시(런던)에서 성공해서 돌아오자 자괴감을 느끼는 <작은 구름>, 직업도 없이, 돈도 없이 술을 얻어 빌어먹는 다니는 건달 둘과 하녀와의 약탈적 관계를 다룬 <두 건달들>, 찬 딸을 결혼시킬 목적으로 은밀한 계략을 읽을 수 <하숙집>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배경만 바꾸어 그대로 플레이해도 다를 바가 없을, 쌍둥이 같은 자화상이다. 


그렇다, <위원실의 담쟁이달>에서처럼 선거철이 되면 얼마 안되는 푼돈을 벌기 위해 표를 모으러 다니고, 무용하고 무의미한 정치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 자기보다는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 팔자를 조금 고쳐보려고 악을 쓰고 다니는 부모들, 출세한 친구와 출세하지 못한 친구와의 재회 속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갭,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처럼 서로 등처먹고 사기치는 세상, 바로 어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왜곡된 거울에 비쳐 미화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더블린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의 음산하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쳐보는 거울을 재현하기를 원했다. 궁핍하고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들이 한푼의 동전과 한 잔의 술에 팔아버리고 마비시켜버리는 모든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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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멋진 소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리* | 2014.02.28
하루애도 추천도서가 수십권 쏟아지고, 읽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보장받는 고전들이 넘쳐나는 요즘 한 작품을 두 번 읽는 다는 경우는 대략 두가지에 속한다. 일이던가 아님 진짜 재미있던가. 더블린 사람들은 두가지 모두다. 재학시절 복수전공으로 깍이느학점을 만회하기 위해 원서로 진행되는 수업전에 번역본을 읽었고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게 된 것은 20대 시절 강의 시간에 접했음에도 이 소설의 진가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역사적 배경은 다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고 그런 점이 우리의 문학과 유사성을 갖고있다. 챕터별로 읽자면 딱히 커다란 에피소드가 기승전결로 펼쳐지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마음이저리고 공감된다. 개인적으로 늘 마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eveline은 이런저런 도전앞에서 흔들릴때마다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이 타고 있는 배에 한쪽발을 걸쳐두고 망설이는 그녀는 결국 어머니의 외침과도 같은 종소리에 연인도, 자신을 옭아매는 삶의 굴레를 탈피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쳐버린다. 


20대 때는 그게 계속 못마땅했다. 그치만 지금 읽었을때는 그때와는 달랐다. 결국 어쩔수없는 운명이 아닌 선택이었던 것이다. 종소리가 엄마의 외침처럼 들렸던 것은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기 바랐던 마음이었던게 아닐까하는 열린 사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마흔의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우유부단하다고 느낄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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