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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페터 한트케 저/홍성광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8일 한줄평 총점 9.6 (21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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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독일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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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작가는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198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2월의 오후에 외출을 한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외부 세계를 묘사한다. 첫눈이 내리는 것 외에 다른 사건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짧은 이야기 안에서 독자는 사건이 필요없는 자유로운 묘사와 그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감정에 보다 주목하게 된다. 작가가 산책길에 만난 사물들, 풍경들,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한트케식 글쓰기인 정확한 관찰, 감정이 이입된 묘사, 시적 사유의 아름다움의 표본을 보여 준다.

페터 한트케는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작가는 외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존재와 꿈꾸는 세계를 보여준다. 12월(정확하게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해 저문 오후,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난 어느 작가가 바라본 외부 세계는 절망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산책'이라는 말이 풍기는 편안함과는 다르게, 작가에게는 휴식과 같은 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산책은 전쟁과 같을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 안에서 작가는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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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어느 작가의 오후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원자, 페터 한트케의 삶과 작품 (역자 해설)
페터 한트케 연보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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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저 :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문화적으로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1966년에 등단했다. 그해 미국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한 한트케는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실험적인 희곡 「관객 모독」도 같은 해에 출간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내용보다 서술을 우선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다수의 혹평과 소수의 호...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문화적으로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첫 소설 『말벌들』로 1966년에 등단했다. 그해 미국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한 한트케는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실험적인 희곡 「관객 모독」도 같은 해에 출간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내용보다 서술을 우선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다수의 혹평과 소수의 호평을 받다가 1970년대 들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다. 독일어로 쓰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1972년에 거장 빔 벤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67년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1972년 페터 로제거 문학상, 1973년 실러 상 및 뷔히너 상, 1978년 조르주 사둘 상, 1979년 카프카 상, 1985년 잘츠부르크 문학상 및 프란츠 나블 상, 1987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및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실러 기념상, 2001년 블라우어 살롱 상, 2004년 시그리드 운세트 상,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 상 등 많은 상을 석권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마침내 2019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트케에게 슬로베니아는 오늘날까지 써왔던 많은 작품들에서 중요한 문학적 토양이 되고 있다. 우선 소설로는 『말벌들』, 『소망없는 불행』, 『세계의 무게』, 『쌩뜨 빅뚜와르산의 교훈』, 『반복』(1986) 등이 있다. 특히 『소망없는 불행』에는 1971년에 51세의 나이로 자살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작품배경이 슬로베니아인, 『반복』은 1987년 슬로베니아 작가협회의 격찬(激讚)과 함께 빌레니카 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슬로베니아가 1991년에 자주국가로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이 될 때 한트케는 그의 모계에 “지나가버린 현실”로 이어져 오는 슬로베니아를 회상하면서 『꿈꾸었던 동경의 나라와 작별』(1991)을 썼다.
역 : 홍성광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헤세의 『헤세의 여행』, 『잠 못 이루는 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 『소송』, 『변신 외』,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헬렌 켈러 평전』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세계적 작가가 독특한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작가와 작품, 문학과 글쓰기론(論)
「관객 모독」,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작자이자 뷔히너상, 실러상, 카프카상의 수상자, 독일어권 문학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1942~)의 중편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1987)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내가 쓰는 것은 단지 나의 존재를 형상화시킨 것일 뿐이다>라고 말할 만큼 작가로서의 정체성 탐구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한트케가 <작가란 무엇인가?>,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작품이다. 한트케는 소설이라는, 망상과 현실의 교차가 용인된 공간을 빌려 그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세계, 작가들의 영원한 고향이며 시적 시간이 흐르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학계의 영원한 이단아 페터 한트케 작품
첫 장편소설 『말벌들』(1966)이 출간된 직후, 스물네 살에 참가한 <47년 그룹> 모임에서 자신이 속한 독일 문학을 과격하게 비판한 페터 한트케. 그 발언으로 삽시간에 유명세를 타고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 평가받게 된 그는 지금까지 80여 편의 시와 소설, 희곡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끊임없이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상 수상 포기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은 문학계에서 널리 회자된다. <발칸의 학살자>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모 연설을 하고, 그의 미망인을 위로하였다는 것을 들어 몇몇 문학계 인사들이 그의 수상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고, 한트케는 스스로 수상을 포기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했다. 페터 한트케의 전작을 읽어 본 독자라면, 『어느 작가의 오후』를 통해 그 논란에 대한 각자의 답변을 마련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198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2월의 오후에 <작가>가 바라본 외부 세계를 그리고 있다. 첫눈이 내릴 뿐 특별한 사건이라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 짧은 이야기에서 독자는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운 묘사, 그 묘사가 드러내는 작가의 감정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가 산책길에 만난 사물들, 풍경들, 사람들을 통해 한트케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한트케식 글쓰기―정확한 관찰, 감정이 이입된 묘사, 시적 사유의 아름다움―의 표본을 보여 준다.

왜 산책인가?
작가는 외부 세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이 질문은 독자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페터 한트케는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위해 <산책>이라는 형식을 택한다.
12월(정확하게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해 저문 오후,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난 어느 작가가 바라본 외부 세계는 절망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매일 같이 오가는 길이지만 작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또한 낯설며, 두렵고, 또한 아름답다. 작가가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모습은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인 <글쓰기>와 정확하게 닮아 있다. <산책>이라는 말이 풍기는 편안함과는 다르게, 작가에게는 휴식과 같은 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산책은 작가가 자신의 전(全) 존재를 심판받는 자학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 외부(바깥)에서 보내는 외부의 시간에만 작가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카프카의 부활! 망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세계
페터 한트케는 1979년에 제1회 카프카상을 수상했지만, 신인 작가에게 수상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2009년 다시 카프카상을 수상한다. 실제로 한트케는 열여덟 살 때부터 카프카의 작품을 탐독했고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도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망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글쓰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작품의 주인공인 <작가>는 <집 안의 집>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그 공간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가 숨어 있는 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방 안에 갇혀 있는 것과는 달리 <작가>는 끊임없이 집 안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외부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집에서 보낸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주위가 더욱 조용해지자 작가는 바깥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방 안에 자기 혼자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었다.(본문 중에서)

집 안에서부터 시작된 망상은 산책의 길목 곳곳에서도 계속된다. 골목 안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당신의 문학을 기소합니다!>라고 엄숙하게 통고받으며, 골목을 벗어나 다다른 숲에서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보고, 끝내는 모든 것이 망상의 소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바라보는 모든 것,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들, 풍경들 속에서 망상은 끊이지 않고 펼쳐진다. 그 <불안>과 <두려움>을 통해 독자는 작가라는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을 탐험할 수 있다.
독자의 감각마저 깨우는 한트케식 묘사의 힘
한트케는 자신의 망상을 그대로 옮겨 적는 한편, 현실을 끊임없이 묘사한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묘사 대상이 아닌 묘사자의 기억과 감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작가>가 산책 중에 바라보는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다. 한트케식 묘사가 갖는 힘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그려 낸 풍경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총동원하여 풍경을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는 것에 있다.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유일하게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것은 첫눈이 내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한트케는 첫눈이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는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채워 넣는다. 이를 통해 독자의 감각과 기억마저 깨어난다. 그리하여 풍경은 사라지고 <첫눈>이라는 사건만이 남는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린다>와 <시작한다>는 그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실이라 할 수 없는 거의 같은 개념이었다. 그리고 <첫눈>은 초봄의 첫 노랑나비, 5월의 첫 뻐꾸기 소리, 여름의 첫 잠수, 가을날 베어 먹는 첫 사과와 같은 것이었다. 이렇듯, 세월이 흐를수록 사건 자체보다 기다림이 더 위력적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옷깃에 살짝 스치기만 한 눈송이를 벌써 이마 한가운데서 느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본문 중에서)

느림과 숙고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시적 리듬
망상과 현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작가론>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어느 작가의 오후』의 핵심을 간파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독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은 한트케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느림>과 <숙고>의 미학이 빚어낸 시적 리듬이다. 하루의 오후에 한정된 이야기, 그것도 특별한 사건 없이 묘사로만 펼쳐지는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구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린 리듬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시적 리듬은 근본적으로 한트케의 주제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페터 한트케는, 그리고 <작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간과되고 경시된 것을 아주 천천히 지각하여, 말할 만한, 쓰고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추려 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나간 것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숙고한다. 무의미하게 소멸되는 시공간의 빈자리를 기억과 회상으로 채워 넣는 그의 글쓰기는 건축가의 작업, 직조공의 작업과 닮아 있다. 오랜 세월 무수히 지각되어 왔지만, 결코 이해받지 못했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그와의 조우를 통해 자유를 획득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날개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부리를 약간 벌린 채 한 곳을 응시하는 새들이 보이는 이러한 살아 있는 풍경에서, 관찰자인 그의 눈에는 그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인 여름 풍경이 떠올랐다. 라일락 숲에서 희고 셔츠 단추처럼 작은 꽃들이 빗발치듯 쏟아졌고, 호두나무에서는 과일 껍질이 둥글게 변하고 있었다. 분수의 물줄기는 하늘 위의 적운(積雲)과 맞닥뜨렸다. 양 떼가 곁에서 풀을 뜯는 시골의 밀밭에서 더위에 지친 이삭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지고 있었고, 도시의 모든 하수구에는 바람에 흩날린 버드나무의 솜털이 떨어져 발목 깊이로 쌓여 있었다. 그곳은 너무 푹신푹신하여 저 아래 아스팔트의 바닥에까지 눈길이 갔다. 정원의 풀밭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꽃을 찾아드는 벌이 사라질 때처럼 붕붕거리는 소리가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강에서 헤엄친 사람이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다시 물 밖으로 내밀었다. 그의 콧구멍에는 한참 숨을 참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과는 반대로 언젠가의 여름에 작가는 겨울이 배경인 이야기를 생각하며, 고양이에게 장난삼아 눈덩이를 던지겠다고 자기도 모르게 무성한 수풀 속으로 허리를 굽힌 적이 있었다.(본문 중에서)

종이책 회원 리뷰 (6건)

포토리뷰 2019 노벨상 작가의 글은 [외국소설-어느 작가의 오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벤 | 2019.10.24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다. 그런데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따라 걸어야만 가 닿을 듯한 길이다. 막상 그러다가 작가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 작가라면 소리를 내면서 따라 걸어도 미처 못 느낄 것 같다. 누가 따라오는지, 왜 따라오는지, 멍한 눈빛만 보일 뿐 도리어 흠칫 물러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슬금슬금 뒤따라 가 본다. 

 

작가는, 특히나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될까. 아무 소설이나 쓰는 아무 소설가 말고, 그래도 남들에게 권할 만한 가치를 준다고 내가 믿게 되는 소설가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나,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쓰게 되었다는 말은 어떤 한계를 드러내는 말이던가. 끝내 쓰고야 말 주제의 글이라거나, 기어코 써야 할 몫이라며 발표하는 글들은 어떤 글이었던가. 그런 작가로서의 사명감이나 본분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 독자로서는 어떻게 읽고 어떻게 평가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보낸 어느 날 오후. 온몸으로 받아들인 감각과 감상들.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산책길. 그 모든 시간의 결을 글로 고스란히 옮겨 놓는 재주. 왜 쓰는지. 어쩌자고 쓰는지. 읽는 나는 무엇을 읽어 내려고 이토록 용을 쓰고 있는 것인지. 장차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다른 이의 의식 세계는 나의 어디에 무엇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쓰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선천적인 본능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안 쓸 수 없어서, 써야만 살 수 있어서 쓴다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이 작가가 된다면, 좋은 글을 써 준다면 당연히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겠지.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겹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생기나? 작가로서는 억지로 쓴 글, 독자로서는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 나오는 것일 테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요즘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이 작가의 경우에는? 글쎄, 섣불리 말하지를 못하겠다.

 

작가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수상 이전에 도서관에 신청해 두었던 것이라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밀로셰비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을 한 작가라는 것도 수상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직은 망설이고 있다. 한 권 더 읽어 보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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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 작가의 내면이 본 흔들리는 풍경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최*미 | 2015.08.05

소설<어느 작가의 오후>, 작가의 내면이 본 흔들리는 풍경들




Written by. DdAm*




책<어느 작가의 오후>는 소설이라곤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 같다. 책은 12월의 어느 날 오후, 한 작가가 그날의 글을 쓴 후 외출 후 그의 '마음'이 본 풍경들을 묘사한다.







작가, 그에게 있어 '사건'은 '내면의 언어'들로 구성돼 있다. 외부적인, 그러니까 독자의 입장에서 사건이라 부를 만한 '진짜 사건'은 없다. 위태롭고 불안하며 흔들리는 풍경들은 바깥이 아닌 작가 '안'에 있다.


그래서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풍경의 묘사들에서 '뾰족함'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묘사가 아닌,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생경한 느낌…. 사실,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에서 그러한 '낯섦'은 줄곧 느껴왔지만 내겐 <어느 작가의 오후>가 유달리 그러했다. 여느 작가들보다 '형식'을 중요시 여기는 그는 그래서 그것들을 파괴한다. 책 속 작가처럼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해 중점을 두는 그는 묘사에 있어서도 여지껏 보아왔던 것들과 '다름'을 명백히 보여준다.


모든 글들을 독백으로 볼 수 있었고, 이것이 1인극(희곡)으로 쓰인다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것 같다. 결국, <어느 작가의 오후> 속 작가는 페터 한트케 자신이 아닐까(거의 명백하다고 본다)? 내면의 딜레마가 바라본 풍경들은 불안정하다. 비단 페터 한트케 그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작가들이라면 한 번 쯤 고충거리로 여겨졌을 법한 '내적 고뇌'들이 그려진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물들은 현실과 망상을 제대로 구분짓지 못한 채 걸어다닌다. 싸구려 음식점에도 들르고, 가판대에서 신문도 사지만 그의 흔들리는 내면은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대중(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작가들은 그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 의식의 강박관념은 망상과 착각으로 이어진다. '재료보다는 구조(형식)가 중요한 것'이라 여겨왔던 작가는 모든 외부 요소들을 자유로이 놓아두고 관찰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아보인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검은 옷을 '입히고', "당신의 문학을 기소합니다!"라는 통고의 행동을 짓게 '만든다'. 결국 그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오고' 그의 묘사를 읽는 나도 머릿속에서 '소용돌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사건이 없지만 엄청난 사건들이 작가의 망상 위에서 펼쳐지는데, 어쩌면 그 망상 혹은 상상들이 작가들의 원천(소재)거리들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묘사에 집중하기에 앞서, 작가들의 고충에 대한 연민이 더 짙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12월, 첫눈이 내린 것이 사건이라면 사건일 것이다(그저 우리들에겐 날씨일 뿐인데 말이다). 철저히 문어체로 구사된 된 '1인칭 묘사'들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담아 낸 묘사거리들이 선사해 낸 '힐링'이 아닌 '불편'을 건넸다.


결국, <어느 작가의 오후>는 페터 한트케의 자기고백의 에세이라 결론짓고 싶다. 짧은 시간 내의 일상을 펼쳐보이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글이 만들어지는 머리와 가슴을 '지독하게' 엮어냈다. 비틀기의 달인인 만큼, 이 책의 '언어들' 덕분에 모든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깨워야만 했다. 더 잘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시간들이,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래 걸렸다.


책의 서문에서 인용된 요한 볼푸강 폰 괴테의 희곡『토르과토 타소』의「……모두가 있는 곳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다」는 탁월했다. 모든 외부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한 작가는 실질적인 외로움과 내면의 고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정신'을 실현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 그리고 우리들 또한 '모두가 있는 곳'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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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당신의 오후는 어땠나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 2011.06.27



'작가는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
독특한 시선으로 스치듯 지나치는 사물들을 묘사하고,
길모퉁이에선 환상을 보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페터 한트케는 이런 작가였구나...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럼에도 이 소설에 빠질 수 있었던 건
일상이 주는 묘한 평온함때문이었다.
작가 내부에 격렬한 파동이 일더라도
일상은 늘 같은 주파수로 파도를 타고 있기에.
이 일상이 뒤집어진다면 비로소 소설이 될테니까.
내 일상도 물론 내부적으론 소설이지만.

당신의 오후는 어땠나요?
"어느 작가의 오후"같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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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5건)

구매 어느 작가의 오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디* | 2022.11.29
작가의 산책 코스를 따라가면서 잘 읽었습니다. 초반에 고양이를 집안에 들여놓는 얘기가 나오는데 고양이도 키우나 봅니다. 세세하게 주변을 묘사하고 있어서 생각없이 느긋하게 따라가면서 읽었습니다. 별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읽다보니 산책을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중간에 보면 집에서 고양이랑 대화를 나눴다는 대목도 나와요. 집에서 혼자 글쓰면서 고양이랑 대화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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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eBook] 어느 작가의 오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D****9 | 2020.11.18

열린책들에서 나온 체터 한트케 작가의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책입니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말하는 작가의 삶에 흥미가 일어 구입하게 된 책입니다.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 없이 소소한 일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작가의 하루가 끝나있습니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인 흐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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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어느 작가의 오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높**람 | 2020.11.16

코로나를 겪으면서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땡볕에서 농작물을 가꾸는 일을 하지 않기에 햇볕 쬐는 시간이 모자라 일부러 햇볕 쬐는 시간을 시간표에 넣어야 하고, 잘 움직이지 않아도 되기에 굳이 운동이나 산책 시간을 시간표에 넣어야만 한다. 이 책은 2000년대 이전에 쓰여진 소설이다. 지금보다 고층건물이 더 적고, 도시 안에서도 인정이 어느 정도는 넘치던. 아니 스마트폰이 없기에 사람들이 소통이 더 자주 있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작가는 타인들의 삶에 무관심한 듯 하지만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물론 다음 날이 되면 다 잊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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