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열린책들)』는 작년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뒤 바로 구입했다. 두 작품이 추한 겉모습 때문에 배척당하는 존재의 등장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왜’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내가 또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에 혼자서 헛다리짚는 경우가 몇 차례 있어서 정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특히 이번 경우는 착각하기 힘들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라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었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표제작 외에도 4편이 더 수록되어 있었다. 당연히 장편일 거라 생각했는데 중편 분량의 짧은 소설이었고 나머지 4편은 이보다 더 짧았다. 처음에는 단편집이 낯설었는데 한 편씩 읽다보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다섯 편이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변호사 어터슨 씨가 서술자다. 어터슨 씨는 지킬 박사와 막역한 사이다. 그는 친구 지킬의 유언장에서 하이드의 이름을 보았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하이드를 본 적 있는 지인을 통해 그의 생김새가 불길하고 혐오스러울 뿐만 아니라 행동도 폭력적이며 기이하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어터슨 씨는 친구가 왜 불길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하이드라는 작자에게 재산과 지위를 상속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킬의 엉뚱한 행보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으니 더 이상 그의 판단을 믿을 수도 없고 기다릴 수도 없다고 생각한 어터슨 씨는 직접 하이드의 실체를 알아내기로 한다. 그러나 어터슨 씨가 직접 알아낸 사실은 없다. 어터슨 씨는 독자와 마찬가지로 두 명의 친구, 래니언 박사와 지킬 박사가 남긴 편지로 지킬의 수상쩍은 행동의 이유와 하이드의 정체를 알게 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인간 내면의 악이라는 인류 최고의 악몽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선과 악의 대립, 이중인격 또는 이중생활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악’에 대한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악을 대면한 사람들은 모두 불쾌함과 역겨움을 느낀다. 어터슨도 하이드와 처음 대면했을 때 그의 외모에 강한 반감부터 느꼈다. 지킬 조차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하이드의 얼굴에는 악의 특성이 선명하고도 노골적으로 새겨져 있(p.85)’었다고 말했다. 하이드가 당당하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 지내면서 사람을 해치는 등 악행을 일삼는 행태는 ‘악’의 부정함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읽었다. 하이드가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 금방이라도 지킬을 집어삼킬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위험을 감지하는 모양새는 광기로 인한 파멸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이 떠올랐다. 지킬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갈등하는 두 개의 본성을 발견하고 ‘이율배반의 쌍둥이가 함께 붙어 있는 건 인류의 비극(p.83)’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인간은 선과 악이 혼재된 존재인데 반해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에드워드 하워드만이 순수 악의 존재임을 뿌듯해했다. 하지만 「반쪼가리 자작」에서 ‘반쪽이 된 불완전한 인간, 자기 자신을 적으로 가진 인간은 바로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반쪼가리 자작은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소외된 인간이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억압받는 인간’이라고 말했듯이 에드워드 하워드는 순수 악의 존재인지는 몰라도 소외된 인간이면서 억압받는 인간의 전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표제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이어서 수록된 네 편의 단편도 독특하다. 오래 전에 읽은 <자살클럽> 보다 더 흥미로웠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ㅡ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물론 이것은 어터슨 씨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워낙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데다가 친분 관계 역시 비슷하게 너그러움이라는 훌륭한 품성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 운명이 정해주는 대로 친구들을 받아들이는 건 소심한 사람들의 특징인데 , 이 변호사가 바로 그랬다 . 그의 친구들은 친척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뿐이었다 . 애정은 담쟁이덩굴만큼이나 느리게 자랐고 특별히 대상을 가리지도 않았다 .
ㅡ본문 10 쪽 ㅡ
나는 도덕적 의식과 지적 의식 양면으로 부단히 진실에 접근해 나갔다 . 그 진리의 일부를 깨달은 탓에 이렇게 끔찍한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 바로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 내가 둘이라고 하는 까닭은 내 지식 수준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들은 내 견해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그 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 . 어쨌든 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감히 내 놓고자 한다 .
ㅡ본문 82 쪽 ㅡ
나로 말하자면 , 살아온 방식상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었다 . 그것은 바로 도덕적 측면이었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인간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이중성을 나 자신이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 의식 속에서 갈등하는 두 개의 본성을 본 것이다 . 내가 그중 어느 한 본성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게 가능하다면 , 그건 단지 근본적으로 그 둘 모두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애초에 내 과학적 발견이 기적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전부터 , 나는 그런 인자들의 분리를 백일몽처럼 즐기곤 했었다 .
각각의 인자가 각각의 인격으로 분리될 수 있다면 인생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거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 부도덕은 보다 강직한 쌍둥이 인자의 규율과 자책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제 갈길을 갈 것이다 . 도덕적 인자 또한 굳건하고 안전하게 출세의 길에 오르고 , 원하는 대로 선행을 베풀면 그만이다 . 더 이상 관련없는 악으로 인해 굴욕과 후회를 반복할 필요도 없다 . 이율배반의 쌍둥이가 함께 붙어 있는 건 인류의 비극이다 . 번민하는 의식의 자궁 속에서 이 양극의 쌍둥이가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ㅡ본문 82 , 83 쪽 ㅡ
지킬은 절제의 불속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 반면 하이드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의식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 상황이 기이하기는 했지만 , 이런 식의 논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보편화되어 있었다 . 자극과 불안감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죄인에게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다 . 결국 그 수 많은 친구들처럼 나 역시 선한 자아를 선택했지만 그를 지켜 낼 힘이 부족했다 .
그렇다 . 나는 초로의 투덜이 박사를 선택했다 . 친구들한테 둘러싸인 채 , 정직한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나 . 지금껏 하이드로 변신해 누렸던 자유와 젊음 , 가벼운 발걸음과 거침없는 충동, 은밀한 쾌락 등 난 그 모든 것에 단호하게 작별을 고했다 .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
ㅡ본문 92쪽 ㅡ
그러나 결국 시간은 최초의 불안감을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 양심에 대한 찬양도 당연한 것으로 되어 버려 , 나는 다시 고민과 갈망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 바로 자유를 갈망하는 하이드의 고통이었다 . 그리고 도덕적으로 나약해진 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변신 약을 제조해 마시고 말았다 .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나쁜 습관에 대해 핑계를 찾을 때 , 자신의 우둔한 신체적 무감각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경우는 5백 분의 1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야말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그렇게 고민했으면서도 ,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격을 특징짓는 철저한 도덕적 무감각과 과도한 악에의 탐닉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 내가 벌을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
ㅡ본문 93 쪽 ㅡ
ㅡ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어릴 때 축약본 세계명작선으로 읽고 성인이 되어선 처음 읽는다. 이미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뮤지컬등으로 미디어 노출이 많았던 탓에 ) 몇 번을 읽은 듯한 기분이지만 실상은 몇 십년 만의 재회이다 .
암튼 기회 있을 때 읽어봐야지 ㅡ 열린책들 소장 도서 읽기를 하는 중이다 .
하이드에서 지킬로 , 지킬에서 하이드로 처음엔 절제 속에 맛보던 악의의 해방였겠지만 점차 선한 의지의 지킬을 지키는 것이 하이드 , 악의 속성을 지키는 것보다 어려워진다는 데 인간적인 희비가 엇갈린다 .
도대체가 그렇다 . 어려운 것들일 수록 가치가 있는 그것들은...도덕적으로도 더 우위에 있는 의지들인 것이다 .
헨리 지킬은 하이드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없을 만큼 약해진 다음 스스로 죽었다 . 그것은 일종의 면피 , 도주 인 셈이라고 생각이 든다 . 속수무책인 그를 , 그가 먼저 죽을 리는 없으므로 보는 것조차 고통을 주었을 테니 귀결은 너무 당연한 방향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 선의란 이렇듯 지키기도 어렵고 유지하긴 더 어렵다는 그런 얘긴 모양이다 .
옮긴이가 페친 조영학 쌤이다 . 역은이의 말을 읽다보니 백설공주와 하이드 &지킬이 페미니즘과 그런 영향을 주고 받는구나 알게 되었다 . 좋아하는 책의 번역자로만 ( 붹댁은 첫째 애정요소지만) 생각해오다 책을 통해 다른 이해를 불러올 수도 있단 점에서 그간 역자 후기를 정말 싫어라 했는데 이 책 부분은 좀 멋졌다 . 대게의 역자 후기는 독자의 감상을 빼앗아 가는 정도였는데 앗아가는 수준을 넘어 더 훌륭한 생각을 듣게 되면 드는 생각이 순전히 새로운 발상으로 초대가 되서 다른 책 한권을 더 읽은 듯한 기분 !! 순수한 초대 ㅡ기쁨 으로 이어진다 고 웃기게도 생각했다 . 변덕인지도 모르지만 !
하이드 씨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단편이 더 이어진다 . 메리 맨 , 마크하임 , 목이 돌아간 재닛 , 프랑샤르의 보물 편들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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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오타
p 83 , 위에서부터 11번째 줄 < 전술했듯 , ☞진술했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