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저
서은국 저
루시 쿡 저/조은영 역
알베르 카뮈 저/서상원 역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저/홍지수 역
루시아 벌린 저/공진호 역
리딩투데이 독서모임 지사오독으로 만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전 세계를 덮쳐든, 여전히 버티고 있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읽게 되었다. 알제리 해안의 오랑이라는 제한적 공간 안에서 발생한 페스트라는 전염병과 그 위기를 대하는 여러 인물들과 사회를 그리고 있다.
너무나 신기했던 것은 1940년대 책의 내용들이 2020년의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모든 변화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특별했고 너무나 신속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변화들이 정상적이며 지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개인적인 감정들을 가장 우선시했다.
P105
실제로 코로나가 시작할 때는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늘어가자 혼란에 빠졌다.
우리나라에서의 제한은 인원과 시간 등이었지만 폐쇄를 결정한 적은 없었다.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이동을 제한하고 도시 전체를 폐쇄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통제에 대해 시위를 하기도 하며 반발이 있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에서 특히 그러한 일들이 많았다.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중 무엇이 우선일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다 몇몇 단어와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요, 공감이지요. - P326
하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 하려 하는 겁니까? - P327
한데 말입니다. 폐스트란 대체 무언가요? 인생인 거죠, 바로 그거죠, 뭐. - P393
리유와 타루가 옥상에서 바다를 보면 이야기하는 장면과 마지막 노인과 리유의 대화 장면은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눈앞에서 맴돌아 다시 펴보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리유는 타루에게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길을 물어본다. 타루는 공감이라고 대답한다.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에서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 공감이라...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에는 공감을 잘 하지 못한다. 오랑이라는 폐쇄된 도시 안의 이들은 페스트라는 공통의 경험이 있다. 그리하여 그 안에 있는 슬픔, 고통, 그리고 페스트에서 벗어났을 때의 기쁨 등과 무서운 전염병을 이기기 위해 함께 투쟁했다는 유대감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투쟁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것(자신을 사랑하던 연인이든 가족이든)이 있을 때 더욱더 격렬해진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기뻐하고(코타르의 경우에는) 페스트라는 병을 물리치기 위한 모든 과정은 인생에 비유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더 이상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페스트가 그들에게서 가치 판단력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P235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것을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그 삶을 과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뒤표지 중
질문에 대한 답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하겠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읽은 이마다 다른 느낌, 생각 등을 지닌다. 그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독서모임 중 나왔던 몇몇 주제 중 흥미로웠던 것은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의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자신을 투영했을까였다. 랑베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가장 강렬하게 바깥세상에 나가고 싶어 했으며 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타루가 아닐까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방황하는 모습이 그리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과의 투쟁을 이어온 모습에서 그렇게 느낀듯하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를 프랑스 독립투쟁에 묘사했다고 한다. 보건대는 레지스탕스를 나타낸다. 프랑스의 저항운동이나 저항정신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레지스탕스 그들은 끊임없이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 담고 싶었던 것은 자유로운 삶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들에 대한 투쟁은 계속 이어져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페스트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다. 바로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코비드 19가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많은 위험을 느끼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 언론에 대한 불신, 많은 불안감 등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악행을 보게 된다.
극단적인 이기 주의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못살리게 되는 아쉬운 일이 일어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읽어보기를 추천드린다
제목은 페스트, 작가는 알베르 카뮈.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만 읽어보진 않은 책. 이유는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이곳저곳에서 '페스트'라는 책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왠지 나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책장을 넘기기는 어려웠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언제든지 (거의) 무료로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러다 독서 모임원들의 만장일치로 드디어 '페스트'를 읽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페스트'는 어려웠다. 읽다가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면서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뭔가 번역 문제 같아 출판사를 바꿔봤다. 여전히 어려웠다. 다시 바꿔봤다. 이제 조금 쉬웠다. 번역의 신비함을 느끼며 이번에는 후루룩 읽었다. 새벽 2시에 읽기 시작해 5시 즈음에 다 읽었다. 아쉽게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책이 아니라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겪고 있어서일까.
'페스트'는 19세기 유럽 한 도시에 페스트가 창궐하며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과 인간의 이면을 보여준다. 봉쇄된 도시 안에서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누군가는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흥미로운 부분도 여럿 있긴 했다. 목사의 태도 변화, 재난에 대한 리외의 철학, 툭 치면 명언이 튀어나오는 엄청난 말빨 등. 하지만 펜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절망적인 뉴스들 때문인지 '페스트'는 코로나 긍정회로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재난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의사 리외의 아내나 어머니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작가는 아마도 부조리, 절망, 공포, 폭력 등의 '악'과 선의, 공감, 희생 등의 '선'이 공존하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인간은 서로 같은 불안과 희망을 느끼기에 인간다워진다.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꾼 랑베르가 그 예다. 전제조건은 '같은' 불안과 희망을 느끼고 마주한다는 거다. 외면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다워진다. 이왕이면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 재난과 재난으로부터 휘몰아치는 절망과 희망을.
학창시절때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인지라 읽어봤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일련의 시간을 내어서 다시 읽어보기 시작한 작품이다. 이방인은 기억에 남는 데 아마 이 작품은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했거나 엄두를 안 냈거나 했을 것이다.(중학교때는 어렵게 느껴졌었다.)
근래 메르스에 최근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다시금 재조명하여 읽게 되는 것이었다.
작품 전반에 페스트를 비롯한 인류의 해를 끼치는 전염병의 역사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간 쉽게 읽히고 쉽게 잊어버릴 작품을 읽어와서인지 간만에 보는 고전은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아 독서의 편식이 얼마나 무서운 지 여실히 느껴가는 중이다.
쥐 한마리의 죽음이 방역과 은폐, 사람들의 두려움 이윽고 도시 전체에 퍼진 죽음의 그림자는 평화롭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의 행동들과 탁상공론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금의 현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높았다.
문학이 주는 깊은 고찰과 심상 이 계절에 곱씹으면서 더 몰입감을 주는 것이었다.
진도는 그리 빨리 넘어가지 않았지만, 한자한자 딱딱한 음식을 먹듯 불편한 이물감처럼 책을 읽어내려갔다. 앞으로도 이런 고전은 자꾸자꾸 찾아봐야겠다. 어려움이 희석되어서 유들유들해질 때까지...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진료실 앞에서 발견된 쥐의 시체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번지는 전염병으로 도시가 폐쇄되고
혼돈과 공포에 빠진 인간들의 본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0개월 전에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 같은 느낌을 받았을까?
코로나 19로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된
오랑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단언하건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즉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란
되도록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이죠.
우리가 마주한 일들은 결코 소설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관통해서 지나가야 하는 현실이며,
오랑의 시민들처럼 언젠가 '해방의 밤'을 맞이한다고 해도
과거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페스트에 나오는 타루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멈추지 않는 의지로 함께 이겨내고 있고,
이 연대로 현재의 '페스트'를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